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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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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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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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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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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데뷔전 (5)

DUMMY

36.


말끔하게 잘려나간 메두사의 목덜미로부터 피가 솟구쳐 형상을 갖추었다.

피의 군주, 루드헬.

이는 회귀 전의 세계를 피로 물들였던 끔찍했던 재앙이 다시금 현현한 순간이었다.


‘과연······.’


누드헬이라느니 가볍게 말은 했지만 녀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저릿저릿했다.

금세 숨은 거칠어지고 손에 땀은 흥건해졌다.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몸은 솔직했다.


‘겁을 먹은 건가.’


한지혁에게 있어 루드헬은 파울로나 로툰과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게, 그는 회귀 전의 세계에서도 루드헬을 직접 목도한 적이 있던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도 명확했다.


‘수원으로 도망쳤을 때였지.’


녀석으로 인해 서울이 궤멸직전까지 내몰리고 헌터의 전선은 수원까지 내려갔다.

놈의 피로 얼룩진 인간들은 죄다 권속이 되어 피의 병사로 바뀌어버렸고.

헌터들은 전쟁 규모의 싸움 속에서 힘겹게 공방을 이어나가던 끔찍한 나날이었다.


‘그땐 진짜 무서웠는데.’


한 번 손을 휘두르면 전장엔 피비린내가 흩날리고 사람들은 미라처럼 메말랐다.

다시 한 번 손짓하면 빨아들인 피가 송곳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헌터들을 꿰뚫었다.

말 그대로 피의 재앙······.

그 기억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한지혁은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부릅떴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고 현재와는 다르다.

무력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한지혁은 무력하지 않다.

아일로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 기세니라.


한지혁이 정신을 바짝 차리니 공포에 무뎌졌던 시야는 선명하게 바뀌었다.

완연한 형상을 갖춘 루드헬은 그의 기억보다는 훨씬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덜 자랐나.”

-······?

“느껴지는 기운도 그렇고 역시 시기를 잘못 잡았지?”


모르긴 몰라도 루드헬의 현 상태는 기억 속의 녀석보다 수배는 약해빠졌다.

온몸이 저릴 정도로 두려움은 엄습했지만 그렇다고 못 싸울 정도는 아니질 않은가.

한지혁은 오로라가 없는 흐릿한 하늘을 흘깃 살펴보았다.


‘그래. 오로라가 먼저 발생하고 놈이 튀어나왔어야 정상적인 순서인 거야.’


애초에 오로라가 없는 현 상황에 루드헬이 나타난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오로라는 재앙의 전조 증상이란 건 10년을 걸쳐서 증명된 이론이나 다름없으니까.


‘인과가 바뀌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로 인해 녀석은 본연의 힘을 갖고 현 시대로 현현하질 못한 듯했다.


“······운이 좋은 걸지도.”


나지막이 중얼거린 한지혁을 향해 루드헬은 눈을 빛내면서 입을 열었다.


-네놈, 강하구나.


크콰카카칵!


동시에 공항의 저변으로 녀석의 마력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지혁은 이를 악물고 전신의 마력을 가동했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탁월했다.


-흡혈.


그대로 공항 곳곳에서 피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루드헬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으니까.


-응집.


뭉쳐진 피는 거대한 대검의 형상을 이루었고 루드헬은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럼 날 재밌게 해보거라.


눈을 깜빡인 뒤엔 녀석이 코앞까지 도달해있었다.

창졸간에 이를 악물고 놈의 공격부터 막아내었다.


-막아낼 수 있을 줄 아느냐?


하지만 타격이 느껴진 건 휘둘러진 대검의 방향과 정반대인 왼쪽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충격을 최소화했지만 얻어맞은 왼쪽은 화끈거렸다.


-정신차리거라! 또 오니라!


한지혁은 빠르게 바닥을 굴러 하늘에서 떨어지는 핏빛의 창을 피할 수 있었다.

터무니없지만 이 저변에 떠다니는 모든 핏덩이는 루드헬의 손이었고 곧 무기였다.


-호오?


루드헬의 본격적인 공세는 그때부터였다.

녀석이 손짓하자 몬스터들이 흘린 핏덩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를 향해 쏘아지는 핏빛의 창은 몇 번이고 다시 만들어졌다.

한지혁은 쉴 새 없이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느라 몸을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놈의 공격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크윽······!”


수시로 그의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에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기회가 보일 때마다 녀석이 몸속의 피를 조종하려 든 탓이다.


-제법······ 통제를 해내는구나.


이렇듯 녀석의 ‘흡혈’을 막아내기 위한 방법은 하나였다.

몸에 흐르는 피에도 마력을 부여하여 온전한 통제를 이루는 것.

이것만 해낸다면 루드헬의 흡혈은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


‘아일로이의 훈련이 아니었으면······ 시도조차 못하고 죽었을 거야.’


핏방울 하나하나에 마력을 부여하며 전투를 잇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신의 근육을 섬세하게 조율하고 어떤 상황이 들이닥치더라도 일정하게 검을 휘두를 수준이 되질 못한다면······.

인간은 루드헬을 감당할 수 없다.

때문에 회귀 전의 세계에서 서울은 궤멸직전에 이르렀고, 헌터들은 죽음을 목전에 뒀다.


-으음······ 다시 한 번 말해 보거라.


돌연 루드헬이 공격을 멈추고 턱에 손을 댄 건 그때였다.

녀석은 눈을 빛내면서 혼잣말로 한지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인간은 정에 약하다 하였더냐?


홀로 고개를 주억거린 녀석은 이내 시선을 차유라에게 던졌다.


-제법 재밌는 계획이로다.


그렇게 놈의 눈이 번뜩이자.


“······!”


거짓말 같이 차유라의 신형은 두둥실 떠올라 녀석의 손아귀에 붙들렸다.

한지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바로 그 자리로 달려들었다. 녀석이 뭔 짓을 할지 빤했던 것이다.


“······!”


하지만 이미 늦었을까.


-놈을 죽여라.


루드헬의 나지막한 명령에 차유라는 양손에 불꽃을 쥔 채로 눈을 떴다.

살벌한 시선이 한지혁에게 닿았고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뜨겁게 달궈졌다.


“······쯧.”


그대로 거리를 벌린 한지혁은 다시금 그의 앞에 선 차유라를 마주했다.

가만히 올려다 본 시선은 냉랭했다.

정확히는 무미건조한 것이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주인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마력이 거의 소진됐다고 여겨졌던 차유라로부터 막대한 기운이 솟구쳤다.

그녀의 주변을 떠돌던 핏덩이들이 고스란히 흡수되더니 그녀의 힘이 되어준 것이다.

혈족, 그 특유의 권능.

루드헬이 그러한 것처럼 피의 종족이 된 그녀는 피로 하여금 에너지를 흡수한다.


“하······.”


한숨을 푹 내쉰 한지혁은 쏘아지는 화구를 피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근접한 차유라는 움켜 쥔 불꽃을 맹목적으로 휘두르며 한지혁을 공략했다.

한지혁은 몇 번이고 피하길 반복했다. 그중 단 한 번도 공격을 받아치질 않았다.


-과연, 어리석은 종족이라니까.


이죽이는 루드헬을 뒤로 하고 한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근접한 차유라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야 내가 알던 얼굴을 하고 있네.”


냉랭한 얼굴로 전장을 휘저으며 세상을 불태우던 최강의 헌터.

힘의 규모에서 차이가 날뿐. 그 모습은 한지혁의 기억을 빼다닮았다.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근데 넌······.”


뒤이어 숨을 죽인 한지혁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면전에 둔 차유라는 한지혁을 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웃는 게 더 예뻐.”

“크륵······!”

“쯧. 그토록 잊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하지만 차유라의 공격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다가올 뿐이었다.

허공엔 수 개의 화구가 날아왔고 일제히 솟구친 불의 장벽은 회피할 공간을 지웠다.

한지혁의 입은 멈추질 않았다.


“뭐, 잊었다면 다시 기억해내야지. 어쩌겠어.”


그 말에 루드헬이 답했다.


-이미 나의 권속이 된 아이다. 무슨 말을 하든 들리지 않을 터.

“누가 너한테 물었냐?”

-무얼 하든 소용이 없다는 거다. 어리석은 인간.


한지혁은 녀석을 무시했다.


“무릇 검사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잃어선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

“스스로를 통제하질 못한다면 망나니나 다름없어. 난 망나니를 제자로 둔 적이 없다고.”


싸움이 길어지고 끝도 없는 전투는 반복될 것 같았다.

루드헬도 슬슬 질렸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답도 없는 인간이로군. 흥이 떨어졌다. 죽어라.


그저 차유라만을 조종하면서 싸울 때와는 반대로 허공으로 핏방울이 솟구쳤다.

핏빛의 창이 수십 개가 늘어지더니 한지혁의 주변을 온전히 감싸 명령을 기다렸다.

차유라가 정면으로 뛰어들고 후방엔 핏빛의 창이 포위한 일촉즉발의 순간.


콰아아아앙!


차유라로부터 거친 폭음이 터지면서 그녀의 전신으로 불길이 일제히 솟구쳤다.

그녀의 손길을 빠져나간 불꽃이 인근의 모든 핏방울을 증발시킨 건 그 뒤의 일.


-뭐, 뭣?


깜짝 놀란 루드헬의 음성이 귓가를 시원하게 때렸다.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아저씨.”


천천히 고개를 든 차유라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편 루드헬은 현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지 몇 번이나 차유라를 향해 손짓했다.

하지만 떠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듯, 차유라의 몸은 더는 놈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혈족이 되었음에도 전혀 제어가 안 된다는 사실이 그토록 충격이었을까.

한지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긴, 나도 너랑 똑같이 했지.”


은근슬쩍 꺼내어 칙칙 뿌린 건 새카만 향수.

냄새는 지독하고 역겹지만, 이래봬도 두 번째 재앙을 사냥해서 얻은 전리품이다.


‘페로몬 향수.’


잘만 활용한다면 냄새를 맡는 이로 하여금 그의 권속으로 만들어버리는 괴랄한 물건이다.


‘물론 인간을 권속으로 만들려면 우선 개미병에 감염시켜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이번의 활용에서는 구태여 차유라를 진짜 권속으로 삼을 필요는 없는 일이다.

혈족이 된 그녀의 정신머리에 새로운 향기를 주입해 혼란만 불어넣으면 되니까.

페로몬 향수라면 피에 감염된 차유라조차 어떻게든 일깨울 수 있었다.

루드헬도 미간을 좁히며 반응했다.


-그건······ 아아, 네놈이었군.

“응?”

-개미를 죽인 게 네놈이었어!


놈은 포악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그런다고 내 피를 거역할 수 있을 줄 아느냐!


루드헬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며 주변의 피를 조종해 차유라를 압박해나갔다.

차유라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비명만 질러댔다.

목적을 깨달은 피는 차유라의 몸에 스며든 페로몬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곧 차유라의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말이 없어진 그녀롭터 가공할 만한 살기가 솟구친 건 금방이었다.


-끝이로군.


이죽이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루드헬을 향해 공교롭게도 한지혁은 같은 말을 했다.


“끝났네.”


천천히 고개를 든 차유라의 눈을 본 한지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하나는 고마워해야겠어.”

-?

“네 덕에 이번 생엔 S급 헌터가 좀 더 빨리 등장할 것 같거든.”


불현듯 회귀 전의 세계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선을 수원까지 내려가도록 만들었던 극악무도한 재앙······.

서울을 피로 물들였던 세 번째 재앙인 루드헬은 어쩌다 몰락하게 되었는가.

우습지만 녀석을 막은 건 단 한 사람의 의지였다.


“넌 이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똑같은 사람에게 죽게 될 거야.”

-뭐?

“세 번째 재앙을 종식시킨 건 얼어붙은 불꽃이거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유라의 몸에서 은은하게 불꽃이 피어올랐다.

전신을 휘감은 불꽃은 마치 갑옷 같았고 혹은 악마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한지혁이 말했다.


“넌 이번에도 그녀의 제물이 되겠어.”

-크윽······!


열기가 거세질수록 허공의 핏방울이 불타올랐다.

다만 그 불길은 이전처럼 매섭고 지독한 느낌이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불꽃.

얼어붙지 못한 마음은 더더욱 강렬하게 표출되어 기세를 올려갔다.

한지혁은 루드헬을 향해 말했다.


“이제 그만 끝낼 시간이야, 누드헬.”

-······루드헬이다!


놈이 발악하듯 손을 내뻗었다.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2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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