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96,829
추천수 :
5,234
글자수 :
328,730

작성
22.05.28 21:25
조회
1,634
추천
50
글자
13쪽

예정에는 없던 일 (5)

DUMMY

56.


깜빠악.


“······.”


말없이 잠시 눈을 깜빡인 한지혁은 희뿌연 안개로 뒤덮인 정경을 바라봤다.


‘여긴······.’


생각을 이을 틈도 없이 턱 끝까지 밀려온 소름에 일단 몸을 비틀어 무언가를 피해냈다.

그의 심장을 노리고 다가왔던 촉수가 찰나의 간격으로 스치듯 지나갔다.


‘······돌아온 건가.’


주마등이 해제되고 그는 원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부터 어딘가로 이동했던 적이 없는 건가.’


주마등이란 찰나의 순간에 억겁의 세월을 순식간에 훑어본다는 데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주마등처럼 살아온 나날을 훑어본다지.

한지혁은 그 스킬을 활용해서, 그저 샬롯의 과거 시점을 한 차례 들여다봤을 뿐이었다.


“뭔가 복잡한데.”


한숨을 푹 내쉬며 촉수를 피해 다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어째서 주마등을 통해 샬롯의 과거를 보게 된 건지는 알 것도 같았다.


‘본질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겠지.’


어떤 경위로 주마등을 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지혁의 그 의도가 놈의 과거를 들여다볼 원인이 된 것이다.


스거어억!


다가오는 촉수를 몇 차례 더 잘라본 한지혁은 여전히 소용이 없는 현실에 한숨을 삼켰다.

샬롯의 과거를 일부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진 못한 듯했다.

한지혁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혹시 다른 힌트는 더 없을까?”

-······.

“야, 자냐?”


몇 번의 물음 끝에 아일로이는 퍼뜩 고개를 들어 한지혁을 돌아보았다.


-무어라 했더냐?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리 말이 없어? 뭔데?”

-그게 말이다. 흐음······.


한숨을 길게 흘린 아일로이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샬롯의 주마등 속에서 나왔던 여자를 기억하느냐?

“기억하지. 이상하게 이름만 가려진 것처럼 안 들리던데.”

-기억하니 다행이구나. 내가 생각이 많은 이유는 그 여자 때문이니라.

“응?”


스거어억! 스걱!


크게 검을 휘둘러 수 개의 촉수를 동시에 잘라낸 한지혁은 이형환위를 발동했다.

그의 주변을 두둥실 날아다니고 있던 아일로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그의 어깨에 안착한 건 그때.


-그녀의 이름은 스탈렌이니라.

“······아는 사람이야?”

-알다마다. 나와 함께 탑을 오르던 동료였으니까.

“뭐?”


미간을 좁힌 한지혁은 놀란 눈으로 아일로이를 바라봤다.


“그게 뭔 소리야? 탑을 오르던 동료라니? 그게 말이 돼? 샬롯은 너의 세계를 파괴했던 다섯 번째 재앙이잖아. 그 재앙의 과거 속에 어떻게 네 동료가······.”

-그러니 복잡하다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꼬이디 꼬인 일들은 도통 그 시작점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확신하는 건 단 하나였다.


-그녀의 이름은 스탈렌. 나와 같이 탑을 오른 동료이자 오랜 전우인 여자.


아일로이가 말했다.


-빛의 별자리를 차지한 광성(光星)이라 불렀느니라.


*


광성, 빛의 별자리, 같이 탑을 올랐던 동료이자, 무명의 과거에 개입했었던 묘령의 인물.

정보를 나열해 봤지만 아무래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쉽사리 따라오진 않았다.

우선 인과부터 틀려먹었다.


‘재앙을 겪은 당사자가 재앙이 탄생하기 직전의 세계에 나타났다는 게 뭔······.’


이 세상의 일이란 건 모두 시작점이 존재했고, 그에 따른 영향으로 결과가 파생된다.


‘그것이 인과.’


한마디로 스탈렌이 무명의 과거에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스탈렌이란 존재는 무명을 겪고 난 뒤에야 완성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시간 축이 엉망진창이잖아.’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한지혁은 그 사실이 영 틀려먹지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도 아닌 그였기에, 그럴 법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난 회귀자니까.’


그라는 존재는 과거의 재앙에서 비롯되었으면서도, 이젠 그 과거에 개입하고 있었다.

스탈렌이란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아일로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회귀라. 녀석이 어떻게 그 모습 그대로 간직했는지는 몰라도 나쁘지 않은 추측이니라.

“나쁘지 않긴,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인과를 바꿀 방법은 회귀밖에 없으니까.”

-흐음······.

“문제는 그거야. 어째서 회귀를 했음에도 재앙이 발생하도록 놔두냐는 거지.”


회귀자는 응당 과거의 잘못을 되돌리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선택할 것이다.

한지혁이 그러했고, 또한 성공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오늘 이곳에 다다랐으니까.


-확실히 이상하긴 하더구나. 스탈렌의 성격이라면 일찍이 무명을 죽이고도 남았을 테니.

“······아예 재앙이 탄생하지 못하게?”

-내가 아는 그녀라면 그럴 것이다.


확신어린 아일로이의 말에 한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아일로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방향은 결정됐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네.”

-다시 주마등을 쓰는 수밖에.


의견의 일치를 보인 두 사람은 씨익 웃으면서 다가오는 무명을 응시했다.


-이름······ 이르으음······ 이름······.


여전히 같은 말만을 반복하는 무명을 향해 한지혁은 거두절미하고 달려들었다.

이형환위를 발동해 잔상을 일으킨 그의 속도를 녀석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지혁의 검은 다시 놈을 갈랐다.


[스킬, ‘주마등’을 발동합니다.]


이윽고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로 실타래가 풀려나오듯 무언가가 한지혁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깜빠악-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다시금 녹음이 우거진 수풀 속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 세계는 약간 달랐다.


화르르륵.


걷잡을 수 없는 화마가 주변의 나무를 뒤덮었고, 세계수 또한 그것에 잡아먹힌 상태였으니까.


“나는 잘못한 게 없어. 난 잘못한 게 없어. 난 잘못한 게 없어. 난······.”


그리고 뜨거운 화마 속에서 잔뜩 웅크린 청년은 양팔을 부여잡고 몸을 떨고 있었다.


“내 탓이 아니야. 그래. 내 탓이 아니야. 이건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야. 그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든 얼굴은 일찍이 아일로이의 과거에서 보았던 모습과 같았다.

치켜뜬 눈에 담긴 정체모를 악의. 새카만 피부 위로 넘실거리는 뜨거운 열기.

아일로이의 세계를 불태우려던 다섯 번째 재앙, 엘프군주 샬롯의 현신이었다.


“오, 오지 마······ 괴, 괴, 괴물!”

“괴······물? 내가······ 괴물?”

“으아아아악!”


샬롯의 손짓 한 번에 엘프들의 몸은 송두리째 불타올랐다.

마을을 뒤덮은 화마가 잠시 주춤한 건 그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악마여······ 네놈을 일찍이 죽이지 않았던 걸 이리 후회하게 만들 줄이야.”

“······론 장로?”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말 거라!”


론 장로의 지팡이가 빛을 휘감더니 곧 거센 물결이 파생되었다.

해일처럼 쏟아진 물은 곧 샬롯의 정면으로 들이닥쳤고.


“어째서······?”


의문을 품은 샬롯이 고개를 갸웃하자, 거센 화마가 해일에 부딪쳤다.

놀랍게도 불꽃이 새카맣게 변색되더니 다가오던 물을 모조리 증발시키기에 이르렀다.


“극악무도한 악마여! 천벌을 받을······!”


이윽고 쏟아진 불꽃은 론 장로의 전신을 불태우고, 인근에 섰던 엘프마저 잿더미로 만들었다.

샬롯은 여전히 의문을 토했다.


“왜······?”


이후로도 수많은 엘프들이 샬롯의 행보를 막고자 노력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눈길 한 번에 모든 건 불타올랐고, 손짓 한 번에 누군가의 생명은 잿더미가 됐다.

한지혁은 미간을 구겼다.


‘이게 엘프군주 샬롯······.’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 샬롯은 공허한 눈으로 불타오르는 세계수를 올려다보았다.

수천 명이 거주했을 엘프들의 도시는 이젠 새카맣게 죽어 그 누구도 숨을 토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후련해?”

“······누나.”


거센 화마가 곧바로 그녀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건 빛의 장막을 뚫을 수 없었다.

손끝 하나 까닥이지 않은 채 샬롯의 불꽃을 막아낸 스탈렌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후련하진 않을 거야. 넌 그저 괴물이 되었을 뿐이니까.”

“괴······물. 내가······ 괴물······. 나는······ 그러니까.”

“자아를 완전히 잃었나.”


피식 중얼거린 그녀가 손가락을 딱 튕기니, 그 앞으로 구멍 하나가 생겨났다.

다채롭게 빛나는 빛깔 너머의 세계로 낯설지만 너무나도 낯익은 세계가 보였다.

아일로이가 말했다.


-······나의 세계다.


중세시대에 나올 법한 성탑이 보였고, 그 위로 흑의를 걸친 사내들이 뛰어다녔다.

다급하게 생성된 게이트를 경계하며 저마다 무기를 꺼내 쥐고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난 잘못한 게 없어. 이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


나지막이 중얼거린 샬롯은 홀린 듯이 그 구멍으로 스스럼없이 들어갔다.

자박자박 걸음을 옮긴 샬롯이 건너가자마자 그 화마가 그 세계로 옮겨 붙은 건 당연지사.

한지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재앙이란 게 원래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거였나.”

-······글쎄. 이젠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두 사람의 시선은 아련한 듯 게이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스탈렌에게 향했다.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게이트 너머의 세상을 둘러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게이트의 문이 딱 닫혔다.


“이거 참 공교롭단 말이야.”


그리고 한지혁은 묘한 위화감을 그제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아니, 이건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는 주마등을 활용해서 샬롯의 과거 시점을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즉 게이트가 닫혀버린 현 시점에서, 샬롯이 존재하는 이쪽 세계를 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샬롯이 게이트를 넘어갔더라면, 한지혁의 시점 또한 게이트 너머의 세상을 봐야 했다.

부득이하게 샬롯과 전투를 벌여야 했던 그의 전생. 아일로이의 싸움으로 시점이 넘어가야 한다.


-한지혁.


문득 한지혁은 이쪽을 바라보는 한 여자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거짓말로 치부하고 싶지만 눈앞의 여자의 시선은 정확하게 이쪽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대뜸 입을 열었다.


“인과는 절대적인 거야.”

“뭐?”

“적어도 그분들에게 원인과 결과는 명백하지. 이 세상은 레일 위를 밟듯 절차대로 흘러갈 뿐인 거야.”

“······너 나한테 하는 말이냐?”


한지혁이 나지막이 물었지만 스탈렌은 곧 몸을 돌리더니 불타고 있는 세계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날 너무 원망하지 말길. 너는 그저 레일 위를 가로막던 돌멩이에 불과했으니까.”


그 말에 화답하듯 혹은 분노하듯 세계수가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덩굴이 자라나고, 불타는 나뭇잎들이 비수처럼 움직이더니 스탈렌을 노렸다.


크콰가가가각!


하지만 그녀의 주변을 뒤덮은 빛의 장막은 샬롯의 불꽃을 막아낸 것처럼, 덩굴이나 그 어떤 나뭇잎도 뚫을 수 없었다.


“이건 정해진 미래란 거야.”


곧 세계수의 덩굴은 불에 타들어가 흩어졌다. 나뭇잎도 재처럼 흩날렸다. 세계수라는 거목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젠 움직이지도 않는 세계수를 내려다보던 스탈렌은 돌연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서글퍼 보이는 눈.


“흔히 그걸 운명이라고 했지.”


스탈렌의 몸은 서서히 눈부신 광자로 흩어져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동시에 이 주변의 세계가 새카맣게 물들면서 한지혁의 스킬이 해제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주마등은 이걸로 끝이었다.


[스킬, ‘주마등’이 해제됩니다.]


그렇게 눈을 깜빡여 다시금 원래의 세상을 들여다보려고 할 즈음이었다.


-여전하네, 아일로이.


귓가를 속삭이듯 혹은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음성이 그의 주변을 휘감았다.

정확히는 광자화 된 스탈렌이 한끗 차이로 한지혁의 주변을 스치듯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한지혁이 무어라 말을 더 잇기도 전에 눈앞의 풍경은 벌써부터 변하고 있었다.

코앞에서 흉악한 기세를 토해내는 무명이 촉수를 강렬하게 쏘아내는 순간이었다.


-96층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잔상처럼 목소리가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1 22.05.30 593 0 -
57 예정에는 없던 일 (6) +3 22.05.29 1,457 54 13쪽
» 예정에는 없던 일 (5) +4 22.05.28 1,635 50 13쪽
55 예정에는 없던 일 (4) +3 22.05.27 1,777 54 13쪽
54 예정에는 없던 일 (3) +3 22.05.26 1,842 63 12쪽
53 예정에는 없던 일 (2) +2 22.05.25 1,982 66 12쪽
52 예정에는 없던 일 +6 22.05.24 2,105 69 12쪽
51 망령 감옥 (4) +11 22.05.23 2,221 71 13쪽
50 망령 감옥 (3) +8 22.05.22 2,332 72 12쪽
49 망령 감옥 (2) +2 22.05.21 2,530 70 13쪽
48 망령 감옥 +3 22.05.20 2,673 77 12쪽
47 히든 페이즈 (5) +2 22.05.19 2,837 82 13쪽
46 히든 페이즈 (4) +3 22.05.18 2,934 84 12쪽
45 히든 페이즈 (3) +4 22.05.17 3,098 85 12쪽
44 히든 페이즈 (2) +3 22.05.16 3,256 81 13쪽
43 히든 페이즈 +2 22.05.15 3,566 90 12쪽
42 야시장 (4) +3 22.05.14 3,700 91 13쪽
41 야시장 (3) +3 22.05.13 3,684 88 13쪽
40 야시장 (2) +2 22.05.12 3,808 85 13쪽
39 야시장 +3 22.05.11 4,041 88 13쪽
38 데뷔전 (7) +4 22.05.10 4,276 90 13쪽
37 데뷔전 (6) +6 22.05.09 4,186 96 13쪽
36 데뷔전 (5) +5 22.05.08 4,274 88 12쪽
35 데뷔전 (4) +3 22.05.07 4,332 94 13쪽
34 데뷔전 (3) +5 22.05.06 4,480 86 13쪽
33 데뷔전 (2) +5 22.05.05 4,642 90 13쪽
32 데뷔전 +3 22.05.04 4,882 92 13쪽
31 말했잖아, 혹독할 거라고 (2) +4 22.05.03 5,012 89 13쪽
30 말했잖아, 혹독할 거라고 +2 22.05.02 5,119 97 13쪽
29 두 번째 재앙 (6) +3 22.05.01 5,202 9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