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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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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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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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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예정에는 없던 일 (4)

DUMMY

55.


무명.

한지혁의 미래를 짓뭉개고 끝내 건물 더미에 깔려죽게 만들었던 장본인.

이름 없는 괴물이자, 회귀자인 한지혁조차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불가해한 재앙.


‘아니, 그랬었던 놈.’


한지혁은 흐릿한 안개 너머에서 다가오는 촉수를 베어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예전엔 몰랐지만 이젠 이 녀석의 진짜 정체가 무언지 잘 알고 있었다.


‘내 전생에서 싸웠던 다섯 번째 재앙······ 엘프군주 샬롯.’


하지만 아일로이의 기억 속에서 봤던 모습과, 당장 눈앞에 있는 무명은 너무나도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무명······ 이름 없는 자라.’


-이름······ 내 이르으으으음!


같은 말만을 반복하며 뻗어오는 촉수를 피해 한지혁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십 갈래로 뻗어오는 촉수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 속도가 느려 피하긴 어렵지 않았다.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찼다.


‘내가 지레 겁을 먹었던 거야.’


미래의 재앙이라고 쉽게 짐작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녀석에게 꼬리부터 말았다.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탓에 놈을 상상 이상의 괴물로 스스로 포장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여긴 과거의 시간대다.’


한지혁이 무명을 만나 죽음을 맞이했던 건 오늘로부터 무려 약 9년의 시간은 더 흐른 뒤다.

한마디로 한지혁이 기억하는 놈보다는 9년은 이르고 약한 개체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파울로나 로툰이나, 루드헬이 그랬듯.’


그 증거로 놈은 20층대의 히든 페이즈에 머물러 있질 않은가.


‘그 정도 수준이란 거다.’


한지혁은 눈에 씌었던 콩깍지가 벗겨지자 이제야 온전히 무명의 전신을 살펴볼 수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반투명한 덩치에 촉수가 수십 갈래 흐물거리는 게, 문어도, 혹은 오징어도 아닌 생김새였다.

이걸 무어라 표현해야 하나.


‘아니,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


말 그대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실 촉수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해서 그 생김새도 변화했으니 딱히 형체가 고정된 것 또한 아니었다.


스가가가가각!


한지혁은 미간을 구기며 다가오는 촉수를 애써 베었다. 하나, 둘, 넷, 열······ 수십 번을 베고 또 베었지만 도통 녀석의 촉수는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갈수록 그 숫자만 늘어나고 있었다.

아일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역시 아직 네놈에겐 무리였다. 저놈을 쓰러트리려면 본질을 베어야 하니.

‘본질?’

-놈이 어쩌다 저리됐는지는 모를 일이나······ 저놈은 당장 형체가 없느니라. 즉 벤다고 베일 게 없는 거지.


심장을 노리고 날아온 촉수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발목을 휘감으려던 촉수는 거칠게 진각을 밟아 터트렸다.

상하좌우를 동시에 노리고 오기에 칠성보를 극성으로 밟기도 했다. 전투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원래 네 녀석의 수준이라면 감히 익힐 수도 없는 단계의 검이니라.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심검(心劍)이다. 마음으로 적의 본질을 베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뭔 개소리냐고.’


무협지에서나 보고 듣던 얘기였기에 한지혁은 더더욱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마음을 벤다고? 형체가 없는 걸 벤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뭔지도 잘 모르겠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니라. 이건 수십 년을 검에 몸을 담아야만 익힐 수 있는 감각이니······.

‘으으······ 그럼 다른 대책은 없어?’

-없느니라. 형체가 없는 걸 베기 위해선 지금 당장 네 녀석은 심검을 익히는 수밖에.

‘그건 수십 년은 수련을 해야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고스란히 토해내며 한지혁은 이형환위를 발동했다.

촉수를 베어봤자 끝이 안 나니 아예 녀석의 본체를 베어낼 생각이었다.

흐릿하게 잔상을 남기며 달려 나간 한지혁은 그대로 무명을 베어낼 수 있었다.


스거어어어억!


하지만 베어낸다고 녀석이 죽는 건 아니었다. 양단 된 부위는 마치 물처럼 다시 섞이고 있었다.


-네 녀석이 무얼 베는지 이해해야 한다. 정확히 놈을 똑바로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그니까 그게 뭔데.’

-뭐든 하란 말이다! 해내지 못하면 끝장나는 상황이 아니더냐!


한지혁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어쨌든 아일로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수험생인 그가 할 일은 어떻게든 그 답을 도출해내는 것이었다.


‘그래. 놈이 무언지 똑바로 바라보자. 본질을 베어야 한다면······ 베면 돼.’


다시 호흡을 쭉 들이마시며 한지혁은 무명의 모습을 하나하나 되새겨봤다.

9년 뒤에 만날 놈의 모습은 지금의 형상보다 더더욱 그 크기나 위압감이 달랐다.

심연이 마치 그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놈을 마주한 순간 온몸이 굳었던 걸 생각해보면······.


‘아니야. 그건 이놈의 본질이 아니다.’


생각회로를 우회해서 무명의 과거를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과거, 무명 이전에 재앙이었던 엘프군주 샬롯. 그 샬롯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 놈이었을까.


스거어억!


그리 골똘히 고민하며 힘껏 녀석의 촉수를 베어낸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당신의 의식이 무명과 동조합니다.]


······뭐?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스킬, ‘주마등’을 습득했습니다.]


창졸간에 떠오른 메시지를 의식하며 한지혁의 시야가 점차 하얗게 번지고 있었다.


*


-일······나거라!

-······어나거라!

-일어나라니까!


몇 번이고 들려온 음성에 한지혁은 퍼뜩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뭐야······.”


왠지 모를 두통에 미간을 찌푸린 한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울창한 수림. 풀내음이 가득한 곳에서 봄처럼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일로이가 한지혁의 시야로 돌연 나타나더니 말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구나.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네 녀석은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이냐?


고개를 갸웃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는 본질을 베기 위해 샬롯을 상기하면서 놈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느닷없이 무명과 의식이 동조됐다는 메시지도 떠올랐다.


‘······잠깐 주마등이랬나.’


미간을 좁혀 스킬창을 탐색해본 한지혁은 헛헛하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

주마등.

주마등처럼 과거의 한 시점을 들여다봅니다.

+


그는 종종 극악의 확률로 일부 조건을 완수하면 해낸다는 두 번째 각성을 해낸 것이다.


“스킬북도 아니고 느닷없이 새로운 스킬의 각성이라······.‘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바로 이 주마등이란 스킬이었다.


-과연, 이게 누군가의 과거를 들여다본 결과란 말인가.


한지혁은 천천히 나무 근처로 다가가 나뭇잎을 쓸어보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이나 맺혔던 이슬은 모두 실제처럼 느껴졌다.


-현실이 맞느니라. 과거를 들여다본다질 않았더냐.

“그래. 흐음······ 그럼 누구의 과거냐가 쟁점인데.”


한지혁은 아일로이를 보았다.


-나는 아니니라. 내가 살던 곳엔 저리 큰 나무는 없었느니라.

“흐음······.”


아일로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신기한 건 한 그루의 나무에는 열매도 맺혔고, 한쪽엔 눈이 쌓였고, 또 한쪽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의 정경이 풍겨났다.


“사계절이 한 그루의 나무에 담겨있네. 제법 운치가 있는 것도 같고······.”

-왠지 알 것도 같느니라.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일로이를 일별한 한지혁은 그와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저토록 커다란 나무에, 사계절이 한 그루에 담긴 듯한 모양이라면.

과연 그게 어떤 나무라 할까.


‘세계수.’


부득이하지만 무명과 동조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놈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지극히 단순한 문제였다.


‘여긴 엘프들의 세계인 건가.’


즉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이 주마등의 정체는 아무래도 무명의 과거.

샬롯의 세계란 얘기다.


타타타탓!


한편 문득 귓가로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면서 한지혁은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온다는 걸 깨달았다.


[스킬, ‘숨 참기’를 발동합니다.]


본능적으로 숨을 꾹 참은 한지혁은 누더기 망토를 몸에 감싼 채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기고 그렇게 얼마나 더 기다리고 있었을까.


“······분명 소리가 났는데.”


귀가 뾰족하게 자라난 엘프 한 명이 형형한 눈을 치켜뜨고 나타났다.


“크큭, 언제까지 숨어있을 줄 아느냐?”


엘프 녀석은 활시위를 당기며 주변을 경계했다.


“거기냐?”


창졸간에 쏘아진 화살은 마치 폭풍을 휘감듯 날아가 한 그루의 나무를 꺾어버렸다.

바로 한지혁의 옆에 있던 나무.


“숨으려고 숨은 건 아닌데······.”


한지혁이 멋쩍게 양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려는 때였다.


-잠깐, 뭔가 이상하니라.

“응?”


한지혁이 버젓이 앞으로 나섰는데에도 놈은 계속해서 주변으로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


“안 보이는 건가?”


생각해보니 그게 정답이라는 결론만 떠올랐다. 그는 샬롯의 과거를 들여다볼 뿐이다. 진짜 녀석의 과거에 들어온 건 아니다.


“실체를 가졌지만 실존하지 않는다라······ 묘하군.”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곧 엘프 녀석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드러났다.


“역시 여기 숨어있었구나. 더러운 종자야.”

“사, 사, 사, 살려주세요!”

“흐응, 누가 보면 내가 널 죽이려는 줄 알겠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아니야, 넌 잘못한 게 없어. 네가 무슨 잘못이야? 네 애미 애비가······.”


꼬마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엘프의 옷자락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이 새끼가 감히 어딜 만져?”


쫘아아악!


따가운 충격음이 일었고 뺨을 얻어맞은 꼬마의 몸이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일격에 꼬마의 얼굴의 반은 부어버린 것만 같았다.

엘프의 행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너 같은 것 때문에 우리 종족이 욕을 먹는 것이다. 더러운 치부인 주제에 뭐? 감히 뭘 하겠다고?”

“아닙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 커헉!”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엘프는 몇 번이고 발길질을 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끔찍했다.

한지혁은 미간을 구긴 채 말했다.


“내가 알던 엘프들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네.”


소설 속에서 만났던 엘프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인자하며, 착한 얼굴로 비춰진다.


-세상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니라.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게지.

“하기야 인간들도 다 각양각색이지.”


꼬마 녀석을 향해서 거친 폭력이 이어졌지만 한지혁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주마등처럼 살펴본 샬럿의 과거 중 한쪽.

그가 나선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경을 쓴다고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과연 저게 샬롯의 과거인가.”

-피부색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다.


꼬마의 피부는 먹물로 칠한 것처럼 새카맣기만 했다.

이른바 다크 엘프라 부르는 족속.

잠깐의 대화를 들었을 뿐이지만 여긴 다크 엘프를 향해 꽤나 잔인한 차별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지혁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근데 왜 난 이런 걸 보고 있는 거지? 대체 이 스킬은 나한테 뭘 보여주려는 거냐고.”


미간을 찌푸리며 끔찍한 폭력의 현장을 보고 있길 얼마나 되었을까.


-으음?


아일로이의 눈썹이 구겨지고 한지혁은 온몸에 닭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이건······.”


동시에 엘프 녀석의 머리가 싹둑 잘려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모두 한 순간에 벌어진 일.


“이런 힘 조절이 안 됐네요.”


나지막이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서서히 형상을 갖추는 누군가가 있었다.

금색의 자수가 태양을 그리는 어느 흰 로브를 걸친,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의 여자.


“다, 당신은······.”


꼬마 다크 엘프, 그러니까 샬롯이 황망히 중얼거린 말에 여자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안녕?”


이어진 말은 다음과 같았다.


“만나서 반가워. 난 @%^!!@#이라고 해.”

“@%^!!@#······?”

“음. 이쪽의 말로는 그래. 이렇게 말하면 되겠네.”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저 하늘의 별자리 중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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