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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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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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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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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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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망령 감옥

DUMMY

48.


온몸의 무게가 0이 된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한지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절그럭, 절그럭······.

어디선가 들려오는 규칙적인 쇳소리에, 불빛 하나 없어 시야는 완전히 가려졌다.


“흐음······.”


공기는 서늘했고 더듬어본 바닥에선 이끼 같은 게 딸려 올라와 부서졌다.

이내 조금씩 돌아온 감각을 느끼며 한지혁은 몇 번이고 숨을 들이마셨다.

몸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제 정신이 좀 들더냐?


옆에서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고 누웠던 아일로이가 한지혁을 돌아보았다.


“나 얼마나 잔거야?”

-4시간 정도.

“생각보다 많이 잤네.”

-전부 수행부족이니라.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차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손목을 차례로 돌리며 몸도 풀었다.

잠시 통제를 잃었던 신체의 감각은 머지않아 그의 손안으로 꽉 들어왔다.

눈앞의 메시지도 읽었다.


[당신은 ‘생자’입니다.]

[‘망자에 대한 구속’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곧 헌터폰을 꺼내어 조명을 켜니 먼지가 흩날리는 내부의 공간도 살펴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축축한 지하에 마련되어 어두컴컴하기만 한 감옥의 풍경이 드리웠다.


“여기가 그 유명한 망령감옥인가.”

-불쾌한 냄새가 가득한 곳이니라.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방 이곳저곳을 조명으로 비춰보던 한지혁은, 빛에 눈살을 찌푸린 한 남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


벽면에 등을 기댄 채로 아무런 표정조차 짓질 않고 그저 멍한 눈만 멀뚱멀뚱 뜬 남자.

눈살만 찌푸릴 뿐, 다른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질 않는 그 남자를 보며 한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

남자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끙······.”


낯이 익은 그 얼굴을 몇 번이나 살펴보던 한지혁은 이내 그를 알아보기를 포기했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잊혀진다는 게 이런 거였나. 여기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곳이네.”


쓰게 웃음을 흘린 한지혁은 주머니를 뒤적여 ‘녹슨 열쇠’를 꺼내었다.

이곳에 진입하기 전에 겨우 망자의 고택을 털어 얻어낸 특수한 아이템.


“그럼 움직여볼까.”


철창을 비튼 한지혁은 어두운 복도로 소리 없이 뛰어들었다.


*


한지혁은 이후로도 긴 복도를 쭉 따라 이동하면서 수십 개의 철창을 지나쳤다.

불빛 하나 없는 복도 안쪽으로는 오직 그가 걷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리고 있었다.

한지혁이 말했다.


“저 사람들도 누군가에겐 부모였고 자식이었으며 또 소중한 친구였겠지.”

-혹은 적이었거나.

“······어느 쪽이든.”


철창 안쪽에서 멍한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말 한마디를 꺼내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숨만 쉬는 것만을 반복했다.

그저 눈만 뜨는 게 유일한 자유였다.


“망자(亡者)인가······.”


한지혁은 짧게 혀를 차며 그들을 일별했다.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저들은 한지혁이 아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캠프에 남았던 헌터일 확률이 높겠지. 해오름 길드의 사람들······ 그러니, 그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사람들은 대충 ‘그들’이라 말하기로 했다.

기억 속 얼굴은 누가 일부러 지운 듯 선명하지 못했고, 이름 또한 검은 줄로 찍찍 그어놓은 것처럼 불투명했으니까.


‘이해해. 망자란 그런 존재니까.’


그리고 여기서 ‘망자’란 진짜 죽은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잊혀진 존재’, 즉 아무도 기억하질 못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이를 뜻한다.

망령감옥이란 망자의 미궁에서 그림 리퍼에게 휩쓸려 모두에게 잊혀져버린 망자가 투옥되는 곳이다.


“진짜 지랄 맞은 곳이라니까.”


한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더욱 걸음을 빠르게 옮기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만약 그도 공략을 몰랐더라면 별 수 없이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됐을 거다.

망자의 미궁에서 망령감옥까지 도달하는 건······ 정해진 레일을 밟듯 당연했으니까.

그만큼 망자가 되는 조건은 단순하다.


‘먹거나, 자거나, 만지거나.’


사냥을 제외한 다른 무엇도 허용되질 않는 것이 망자의 미궁의 특징이다.

여긴 그런 세계관이다.


“일단 애들부터 찾아야겠어. 저들의 구출은 그 다음이야.”

-한지혁, 앞에 무언가가 있느니라.


고개를 주억거리며 헌터폰의 플래시는 꺼트렸다. 동시에 껑충 뛰어올라 천장에 양손과 발을 붙였다.

마력을 갈고리처럼 가공해서 천장에 딱 달라붙자 그곳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도달했다.


-흐으으음?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도달한 해골은 뼈 밖에 안 남은 손으로 제 턱을 쓰다듬었다.

호롱불을 흔들며 주변을 둘러본 스켈레톤 나이트가 턱 뼈를 덜그럭대며 아쉬워했다.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하지만 녀석은 천장에 매달려 숨을 참은 한지혁을 찾을 정도로 기감이 좋진 못했다.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하던 해골은 아무런 수확도 얻질 못하고 되돌아갔다.


-바람 소리였나.


한껏 숨을 참던 한지혁은 이참에 그림자와 동화되듯 녀석의 뒤를 따라 밟기로 했다.

어딜 가든 길을 안내해줄 터였다.

망령감옥의 복도는 의외로 복잡해서 초행길에는 한참을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건······.’


그렇게 해골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복도 끝에 자리한 광활한 공동에 들어섰을 때였다.


쿠구궁!


돌연 땅이며 벽을 흔드는 거센 충격에 한지혁은 미간을 좁혀야만 했다.


-히이이익!


앞서 걷던 해골 녀석이 비명을 내지르며 복도를 가로지르는 건 한 순간.

꼬리뼈 빠지게 도망치자 덩그러니 복도의 한쪽에 남은 한지혁은 말없이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런 곳이 있었나.”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분명 언급된 적이 없는 장소였다.


-한지혁.


이를 쳐다본 아일로이의 얼굴이 싹 굳더니 그는 나지막이 경계심을 세우며 말했다.


-조심하거라.

‘응?’

-뭔가가······ 오고 있느니라.


그리고 곧 지진을 동반한 충격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공동의 한쪽에 있던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무저갱의 그것처럼 새카만 어둠 속에선 알 수 없는 흡입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한지혁은 미간을 구겼다.


“······뭐야, 저게.”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형용할 수 없는 불투명한 촉수가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얼핏 덩치는 두툼하게 살이 오른 오크처럼 풍만했고, 피부는 모자이크 된 것처럼 전신이 뿌옇게만 보이고 있었다.

무어라 소리도 들려왔다.


-이름, 내 이름······ 이름. 이름.


촉수는 문밖을 더듬대다가 한쪽에 쌓여있던 무더기의 시체로 손을 내뻗었다.

몬스터나 인간의 사체가 얽히고 섥혀, 산처럼 쌓여 기괴하게만 보이는 자리.

그곳에서 촉수는 시체로부터 무언가를 계속해서 빨아먹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꿈틀대던 시체가 완전히 축 처진 건 그때.


-이르으으음······.


같은 말만을 반복하던 촉수는 시체를 한 움큼 움켜쥐더니 그대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별안간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모습을 살펴본 한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저놈이 여기에.”


못 볼 것을 마주한 사람처럼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는 마음 깊숙하게 박힌 공포.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고 전신의 근육은 물에 젖은 것처럼 무겁게만 느껴졌다.

아니, 숨을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에도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야 말았다.


[특성, ‘숨을 죽이는 자’를 발동합니다.]

[숨을 죽이는 동안 시간을 느리게 인식합니다.]


한껏 느려진 시야 속에서 아직 닫히지 않은 문틈 속 괴물의 손짓이 보였다.

시체를 파먹는 녀석의 모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는 놈이라 할 것이다.

아니, 어찌 모르겠는가!


‘무명(無名)······.’


이름 없는 재앙, 말하자면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불가해한 미래의 공포.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런 순서조차 무관한 말 그대로의 미지의 괴물!


‘하지만 이놈은 아홉 번째 재앙과 같은 시기에 나타났는데······.’


사실상 회귀 전의 한지혁을 죽였던 장본인이 이놈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녀석의 촉수가 무너트린 건물에 깔려 외로운 엔딩을 맞이한 게 그의 미래였다.


‘그 무명이 어째서 25층 따위에 있냐고. 설마 인과가 이렇게까지 바뀌어 버렸단 건가?’


입술을 꽉 깨문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종전의 생각을 부정하기로 했다.


‘인과가 바뀌어 무명이 튀어나왔다는 건 너무 비약이다. 제아무리 나비 효과가 강력하다 해도 이건 선을 세게 넘어.’


말 그대로 최종보스를 초반에 풀어놓은 격이었다. 이 정도로 인과가 바뀔 정도의 사건을 터트린 기억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과거인가.’


회귀자라고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한지혁이 망자의 미궁에 대해 알던 건 그만큼 너튜브 영상을 챙겨봤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상에 드러나질 않았더라면 내가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을 거야.’


몇 번이고 머리를 굴려봤지만 생존자의 인터뷰에도 무명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

이후 망자의 미궁을 탐색했던 몇몇의 헌터들의 공략 영상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그 즈음일까.


-숨 쉬거라! 뭐하고 있느냐!


그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충격에 한지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쪼그라들었던 폐가 순식간에 공기를 만나 활짝 펼쳐졌다 접히기를 반복했다.


“허억, 허어어억!”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고 있던 것이 위태로운 순간까지 호흡을 잊은 탓이었다.

한지혁은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굳건히 닫힌 문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어째서······ 저놈이 여기에 있는 걸까.”


이건 의미 없는 의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무명은 미래의 시점에서도 그 정체가 밝혀지지 못한 최악의 재앙이다. 느닷없이 추측하려 해봤자 답이 나올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인······.’

-저놈을 무명이라 불렀더냐.


억지로 상황을 납득하고 행동방향을 결정하던 한지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깨에 앉아있던 아일로이는 팔짱을 낀 채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지혁은 아일로이의 생각을 읽었다. 그는 묘하게 확신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놈을 알아?’

-알다마다. 놈을 죽인 건 나였느니라.

‘뭐?’


억지로 억눌렀던 의문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대단히 폭증하기 시작했다.

대관절 아일로이는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걸까. 대체 이 상황을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무명을 ‘내’가 죽였다고?

아일로이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직접 보는 게 낫지 않겠더냐.

‘으음?’


아일로이가 천천히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으로 새로운 형상이 덧씌워졌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어느 산세. 나무 위를 내달리는 귀가 뾰족한 인간은 활시위를 꽉 당기고 있었다.

이미 세상은 많이 부서졌는지 사방엔 매캐한 연기가 치솟는 와중이었다.


‘저건······.’


당겨진 활시위를 놓자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며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그 앞에 선 건, 검은 무복을 펄럭이며 검 한 자루를 움켜 쥔 생전의 아일로이.

그가 검을 휘둘렀다.


쿠아아아아아앙!


단번에 주변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폭풍마저 찢어발기는 어마어마한 참격!

이 참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바닥에 추락한 괴물은 성난 울음을 토해내었다.

현재의 아일로이가 말했다.


-이놈이 그놈이니라.

‘······무슨 소리야?’

-지금은 왜 저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느껴지는 기운······ 본질은 그놈이 맞느니라.


재생되던 기억이 멈추고 아일로이는 그 중간을 또박또박 걸어가더니 말했다.


-이놈의 이름은, 샬롯.


바닥에 널브러진 채 분노에 휩쌓인 검은빛깔의 피부를 가진 귀가 뾰족한 괴물.


-이놈은 나의 세상에선 세 번째 재앙, ‘엘프군주 샬롯’이라 불렀느니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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