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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준 책방

철혈가문 사생아의 귀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이치아이
작품등록일 :
2020.09.02 11:30
최근연재일 :
2020.10.16 22: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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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83
추천수 :
227
글자수 :
173,902

작성
20.09.3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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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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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0화. 일족의 마을

DUMMY

노파의 명령에 전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다가오는 전사들 중에는 커비도 있었다. 커비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반은 느낄 수 있었다. 커비의 경지는 적어도 6성. 자신을 사냥꾼인 것처럼 말했지만, 마물의 땅인 아키바 사막에 평범한 사냥꾼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전사들 경지 역시 적어도 커비 정도라는 건가.’


이 정도 수준의 전사가 백여 명. 웬만한 가문 하나쯤은 하룻밤 사이에 끝장낼 전력이 반 하나를 잡기 위해 모여 있었다. 이 정도의 전력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이곳의 지리도 모르지 않은가.


‘괜한 체력을 낭비하느니, 나중에 탈출할 기회를 노리는 게 차라리 가능성이 있겠군.’


저항 하나 없이 순순히 잡힌 반. 그는 곧 명령을 내렸던 노파의 앞에 꿇어 앉혀졌다. 반은 고개를 들어 담담한 눈으로 노파를 쳐다봤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리 꿇려 놓으십니까.”


반이 꼼짝 못 하고 잡혀올 때만 해도, 노파는 소년이 수많은 전사들의 투기에 겁먹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이 잡아 오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한없이 담담한 눈빛. 당당히 말하는 소년의 목소리를 겁먹은 자의 것이 아니었다.


‘하긴, 그런 얼간이를 세르갈이 선택했을 리 없지.’


잠시 반의 차분한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노파가 말했다.


“네가 세르갈의 신전에 들어간 것만으로 죽을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반은 조금도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누구도 제게 이곳에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세르갈을 모시지도 않는 당신들이 왜 이곳을 지키는지.”


반의 당당한 말이 끝나자 침묵이 이어졌다. 전사들은 노파의 입에서 떨어질 명령을 기다렸다.


“그래, 어차피 죽을 몸이니 알려주마. 우리 일족은 이자벨라님의 유언을 지키며 살고 있다. 언젠가 테오도르 님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자가 이 신전을 찾을 것이다. 그를 지켜보고 올곧은 마음을 지닌 자일 때만 신전에 들여보내는 것이 우리 일족의 사명이다.”


본래 말해줄 필요가 없는 일. 하지만 반의 당당한 태도 때문일까, 노파는 반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치기인가, 이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구나.’


노파가 생각한 것처럼 이야기를 듣는 반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야기 다 듣고 나자 반은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살길이 열렸다.’


물론 반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전사들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녀석이 드디어 미쳤구나, 하는.


하지만 반의 입이 열렸을 때, 전사들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은 반 이니그람 스트라페. 당신들이 기다린 사람이 나인가 보군요.”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노파. 물론 반이 테오도르와 같은 이니그람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테오도르 님과 같은 이름이라는 게, 미들네임을 말하는 거였어!?’


노파는, 아니 일족의 구성원들은 다들 이자벨라의 유언을 잊은 적이 없었다. 다만 테오도르와 같은 이름이라고 했으니 테오도르라는 사람이 오겠지, 하고 생각해 왔었는데······.


상당히 당황했는지 노파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노파의 침묵이 길어지자 반도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설마······?’


반은 주변을 둘러봤다. 전사들 역시 하나같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반은 자신의 의심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테오도르라는 이름을 기다렸다는 거지······?’


크흠, 반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이자벨라 님께서 굉장히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나 보네요. 유언이 구체적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노파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그녀는 일족의 책임자였다. 금세 그녀의 얼굴은 위엄을 되찾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갑작스러운 최후였다고 들었다. 반, 네 녀석이 유언 속에서 말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사명은 네가 올곧은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었을 때, 신전으로 떠나보내는 것. 올곧은 사람이 아닐 시,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로선 어쩔 수가 없구나.”


반은 황당했다. 저게 뭔 소리란 말인가. 한마디로 올곧은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을 못 해봤으니, 그냥 죽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아니, 그럼 저를 감시하면서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리시면 되잖아요. 올곧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때 죽이세요.”


반은 이미 노파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었다. 이러다 덜컥 그런 건 모르겠으니 죽어라, 라고 말하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죽는 게 아닌가. 스트라페의 암수로 인해 죽거나, 쿤드와의 대결에서 패해 죽는 일은 상상해봤어도 이런 죽음은 상상한 적 없었다.


그때, 반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파의 옆에 서 있던 커비의 목소리였다.


“에밀리 님. 일단 마을로 데려가고, 일족 회의를 여시지요. 일족의 다른 사람들 역시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요.”


반은 진심으로 커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노파, 아니 에밀리는 커비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커비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일단 마을로 데려간다.”


이렇게 해서 살기등등했던 시작과는 달리 조금은 허무하게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허무하든 말든 살아남았다는 게 중요했다. 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커비 님. 감사합니다······.’




-



반이 이자벨라 일족의 마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반은 이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하마터면 자신을 죽일뻔한 에밀리가 마을을 책임지는 3명의 장로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난 또 무슨 가주라도 되는 줄 알았네. 장로가 3명이면 셋이 회의를 해보고 결정하는 거 아니야?’


목숨이 간당간당했던 일로 에밀리에 대한 반의 감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티를 냈다가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지금의 반은 약자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강자의 입장인 세 명의 원로로부터 반은 일주일간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니그람의 이름은 어쩌다 받게 되었나?”


일장로인 무칸의 질문이었다. 반이 자신이 겪은 예언의식을 자세히 설명하자, 이장로 론도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신전의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숨길 것이 없었기에 세르갈과 나눈 대화와 신력을 받아들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반.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질문을 수시로 받아야 했다.


‘이자벨라의 일족이면 스트라페와는 친척이나 다름없는데, 이렇게나 분위기가 다르다니······.’


살기가 진동하는 자신의 본가 스트라페. 그와 달리 장로들마저 인간미를 폴폴 풍기는 이자벨라의 일족들. 이들의 마을에서는 스트라페에서 들을 수 없던 웃음소리가 매일 같이 들려왔다.


“우와 커비 삼촌이랑 전사들이 샤벨타이거를 잡아 왔대! 가서 목걸이 만들어 달라고 하자!”


“히히, 좋아!”


신나서 커비의 집으로 뛰어가는 로지와 그녀의 친구. 반은 그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스트라페도 이랬다면 내가 복수를 위한 삶을 살 필요도 없었겠지.”


씁쓸하게 말을 내뱉는 입과 다르게 반의 눈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가문에 대한 복수를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그건 반이 살아가는 이유나 다름없었다.


혼자 앉아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반에게 커비가 다가왔다.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로지를 손짓으로 쫓아 보내며 커비는 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 이걸 써라. 자이언트 맘바의 입속에서 꺼낸 검은 고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커비가 내민 것은 작은 검이었다. 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반은 어느새 슬그머니 옆에 앉은 커비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멋대로 집을 떠나 난처하셨을 텐데, 이런 것까지······.”


커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내가 어렸을 때 쓰던 거라서 낡긴 했을 텐데, 관리는 잘된 녀석이니 당분간 써라. 적어도 십 년은 이 마을에 있어야 할 테니.”


그랬다. 일족 회의를 통해서 결정된 내용. 본래 올곧음을 증명하고 신전으로 떠났어야 할 테지만, 반은 이미 제멋대로 신전을 다녀온 상황. 그런 반에게 장로들은 적어도 10년간 마을에 머물 것을 명했다.


그 기간 동안 반을 지켜본다는 의미였다. 자신들의 판단에 반이 어긋날 경우 언제든 죽이겠다는 뜻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차라리 잘됐다. 헬키움에서의 훈련은 이미 별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마물의 땅에서 마물들을 상대하는 게 훨씬 낫지.’


강함을 추구하는 반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자이언트 맘바와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강한 마물이 즐비한 곳이 여기였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 큰 수련이 될 터. 반은 이 마을에 머무는 10년간, 그들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을 받아들고 생각에 잠긴 반에게 커비가 말했다.


“네가 부탁한 건 당분간 힘들 것 같아. 장로님들은 네가 마물 사냥을 틈타서 도망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거든. 그리고 자이언트 맘바를 해치웠다는 건 알지만, 넌 아직 너무 어려. 수련장에서 수련하는 것까지 말리지는 않으실 테니, 당분간 거기를 사용하도록 해.”


‘아직은 안되나.’


반은 며칠 전 커비에게 부탁을 했었다. 마물 사냥에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거절당할 거란 사실은 반도 알고 있었다. 다만 미리부터 졸라놔야 조금이라도 일찍 사냥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 말해봤을 뿐.


커비가 말한 것처럼 위험하기도 했다. 자신이 자이언트 맘바를 해치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산화의 위력. 온전히 자신의 실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마물을 만날 때마다 산화를 펼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랬다간 애써 고친 몸이 금세 다시 망가질 터.


‘언젠가 데려가 준다는 이야기면 되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하하.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로지가 목걸이를 만들어 달라고 하도 졸라서 말이야.”


웃으며 떠나는 커비. 하지만 반도 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수련장의 사용을 허락받았으니. 오랜만에 검을 휘둘러봐야 할 터. 게다가 헬키움에 있을 때랑은 상황이 달랐다.


새로 얻은 신력. 1성의 경지만으로도 3성의 마나와 같은 파괴력을 내는 힘!


이 힘을 확인해봐야 했다. 지금도 몸속의 곳곳에 퍼져 있는 신력을 느낄 수 있었지만, 사용하는 것과는 또 다를 터.


‘스트라페의 가주, 테오도르가 사용했다는 힘.’


커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로지와 사라지는 것을 본 반은 몸을 일으켰다. 요 며칠간 자신에게 닥친 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지금은 생각해봤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


그저 검을 휘두를 뿐.


반은 마을 구석에 위치한 수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이언트 맘바에게 죽었다고 알려진, 철혈 가문 스트라페의 적자. 모두가 그를 잊어가는 가운데, 반에게는 고독한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고독하지만 너무나 달콤한 성장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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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반과 프리네 +1 20.10.14 355 7 12쪽
28 27화. 벨리안의 흉갑(2) +1 20.10.13 396 8 13쪽
27 26화. 벨리안의 흉갑 +2 20.10.10 445 8 14쪽
26 25화. 새벽의 축제 여관 +1 20.10.08 453 4 14쪽
25 24화. 메디나로 가는 길 +2 20.10.07 492 7 13쪽
24 23화. 벨리아의 성인식 +1 20.10.06 537 7 12쪽
23 22화. 마물 사냥(2) +1 20.10.03 588 8 12쪽
22 21화. 마물 사냥 +2 20.10.02 614 8 12쪽
» 20화. 일족의 마을 +1 20.09.30 643 8 12쪽
20 19화. 세르갈의 신력 +1 20.09.29 664 6 12쪽
19 18화. 커비와 로지 +1 20.09.28 720 6 15쪽
18 17화. 생존 훈련의 시작과 끝 +2 20.09.27 759 7 12쪽
17 16화. 엘린과의 담판 +1 20.09.25 745 7 12쪽
16 15화. 근신(2) +1 20.09.24 754 8 12쪽
15 14화. 근신 +2 20.09.23 741 7 11쪽
14 13화. 교류전(6) 20.09.22 749 9 12쪽
13 12화. 교류전(5) 20.09.21 742 8 14쪽
12 11화. 교류전(4) 20.09.18 745 9 12쪽
11 10화. 교류전(3) 20.09.17 902 6 14쪽
10 9화. 교류전(2) 20.09.16 798 8 13쪽
9 8화. 교류전(1) +1 20.09.15 848 6 12쪽
8 7화. 순혈의 방 20.09.12 894 6 13쪽
7 6화. 다가오는 교류전 20.09.10 868 8 12쪽
6 5화. 스트라페의 헬키움(4) 20.09.09 927 8 12쪽
5 4화. 스트라페의 헬키움(3) 20.09.08 945 6 15쪽
4 3화. 스트라페의 헬키움(2) 20.09.04 1,089 8 13쪽
3 2화. 스트라페의 헬키움 +1 20.09.03 1,123 11 13쪽
2 1화. 스트라페의 사생아 +1 20.09.02 1,284 10 14쪽
1 프롤로그 +4 20.09.02 1,580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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