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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준 책방

철혈가문 사생아의 귀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이치아이
작품등록일 :
2020.09.02 11:30
최근연재일 :
2020.10.16 22: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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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77
추천수 :
227
글자수 :
173,902

작성
20.09.0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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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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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3화. 스트라페의 헬키움(2)

DUMMY

반은 짐짓 당황한 척을 했다. 마치 숨겼다는 쿤드의 표현이 사실이 아니라는 듯이.


“숨긴 게 아니에요. 그저 처음에는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그 힘을, 아니 마나를 통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린 거예요.”


쿤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반이 대답하며 예상한 대로였다.


반은 분명 ‘통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저 마나를 느끼고 밖으로 쏟아낸 것이 아니란 말인가?


천재들이 모인 스트라페에선 종종 10살 이전에도 마나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발산해내곤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힘을 토해내는 것에 가까웠다.


반이 말한 통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8살에 마나를 온전히 다루는 것은 천재 중에서도 극히 뛰어난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했다.


아까부터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카진도 깜짝 놀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더 이상 듣고 있기에는 반의 이야기가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반, 마나를 통제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


반은 최대한 능청스러움을 가장하며 말했다. 자신이 한 일이 대단한 일인 줄 정말 몰랐다는 순진무구한 표정.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처음에는 마나를 움직이는 게 힘들어서, 계속 연습했더니 마나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요.”


반의 대답을 들은 쿤드는 오랜만에 흥분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로 오랜만에 스트라페에 자신에 필적하는 천재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스트라페의 가주로써,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로써 기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어서 눈앞에 앉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켜주길 바랐다.


“지금 한번 마나를 움직여 보거라.”


반이 마음만 먹는다면 마나를 움직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8살의 몸으로 7성 기사 수준의 마나 컨트롤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때문에 반은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는 척을 하다가 마나를 슬쩍 발산했다.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쿤드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카진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형님! 형님 이후로 8살에 마나를 움직이는 녀석은 처음 봅니다!”


‘형님 이후로······?’


저 말은 쿤드가 8살 때 마나를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회귀한 자신의 마나 통제 능력에는 못 미쳤을 테지만, 쿤드가 8살 때 홀로 마나를 깨우쳤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 반은 자신이 깨부숴야 할 벽이 결코 얇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쿤드가 살아온 삶이란 진정한 천재의 영역. 자신이 넘어서야 할 산은 아직도 높고 험할 뿐이었다.


그런 태산 같은 존재에게서 칭찬이 이어졌다.


“훌륭하구나.”


“감사합니다. 가주님”


반의 대답에 쿤드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반이 적자가 아닌, 사생아라는 것이 안타깝다는 표정. 쿤드의 얼굴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반이 그 표정을 놓칠 리 없었다.


‘이런 반응이라면, 전생보다 빠르게 적자로 인정받을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어지는 쿤드의 말에 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반. 앞으로 아버지라 부르거라. 내 곧 너를 적자로 인정할 것이다.”


“예?!”


이번엔 연기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놀랐다. 전생보다 빠를 줄만 알았지, 이토록 빠르게 쿤드의 인정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전생에서는 진정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니까, 어쩌면 이번이 최초일수도 있지만.


하지만 반이 모르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쿤드에게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은 자식은 자신이 처음이라는 것.


9성의 기사로써, 자기 자신이 이미 어렸을 때부터 타인과 비교를 불허하는 천재였던 만큼. 천재들이 모인 스트라페에서도 그를 만족시킬 만한 자식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반이 어렸을 때의 자신을 보는 듯한 재능을 선보인 것이다. 쿤드는 9성의 지고한 경지에 오른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만족이란 감정을 느꼈다.


‘그저 쓸 만한 정도가 아니다, 훌륭하다.’


철혈 가문의 가주,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그를 만족시킨다는 것. 그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쿤드의 비교 기준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이점이 쿤드의 자식들에게 불행이나 다름없었다. 웬만한 천재들은 평범해 보이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게 바로 쿤드였기 때문이다.


그런 쿤드가 반의 재능을 인정한 것이다. 자신을 버린 쿤드를 미워할 수밖에 없으나, 솔직히 조금은 기뻤다. 지난 생에서 평생을 바쳐 꿈꿔왔던 일이 바로 쿤드의 인정이었으니까.


복잡한 심경. 이 순간만큼은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전부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반의 심경을 알 리 없는 쿤드의 음성이 전해졌다.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고 느껴지는 목소리.


“오늘 네가 나를 즐겁게 해줬으니 나도 상을 주마. 필요한 걸 말해 보거라.”


명백한 호의.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쿤드라면, 언제든 기준에 못 미치는 아들을 내칠 수 있는 냉정한 사람이었으니까.


대답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보여준 아이다운 모습이 있으니, 그 기준을 너무 벗어나서는 안됐다. 그렇다고 쿤드를 실망시킬만한 하잘 것 없는 대답도 용납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자신이 얻어낼 수 있는 것 중 가장 쿤드를 만족할 만한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다만 앞으로 헬키움에 있을 테니 필요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 저에게 헬키움에서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개인적 시간. 공동으로 생활하고, 훈련하는 헬키움에 개인적 시간이 있을 턱이 없다. 스트라페로써의 소속감을 키우기 위한 헬키움에 자유 시간이라니?


단번에 쿤드와 카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어린 녀석이 재능만 믿고, 훈련에서 빠져 편하게 지낼 생각이란 말인가? 재능만 믿고 나태하게 지내는 녀석은 스트라페에 필요 없었다. 생각할 것도 없는 최악의 대답. 차라리 아이답게 사탕이나 달라고 말하는 게 나은 수준이었다.


카진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반의 대답은 헬키움의 총교관인 카진에겐 모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라페의 전사라면 누구나 견디는 헬키움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예상된 반응. 하지만 말이란 게 본래 상대방의 예상을 뛰어넘는 순간에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 않던가. 반은 준비한 대답을 내놓았다. 당당한 태도를 연기하면서.


“죄송해요. 삼촌께서 그렇게 화내실 줄 몰랐어요. 저는 다만 모든 훈련이 끝나고 나서 개인적으로 더 갈고닦고 싶었을 뿐이에요.”


멈칫.


화를 내던 카진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개인적 시간이라는 게, 훈련을 다 받고 추가적인? 그럼 그렇지. 호랑이의 핏줄에서 강아지가 나올 순 없는 법이니까. 카진 뿐만 아니라 쿤드의 표정도 다시 평온을 찾았다.


카진은 무안해서 괜히 말꼬리를 흘렸다.


“그런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헬키움의 훈련장은 항상 개방되어 있으니까······.”


그 말처럼 헬키움의 훈련장이 항상 개방되어 있다는 것은 반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개인적 공간이 필요했다.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남들 앞에서 펼칠 수야 없지 않은가?


이미 충분한 변명까지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삼촌. 그래도 개인적으로 훈련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미래의 ‘경쟁자’들 앞에서 제 실력을 다 보일 순 없으니까요.”


일부러 ‘경쟁자’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곧 적자가 될 반에게 경쟁자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 달리 누가 있을까. 순혈 스트라페들. 베르트람을 제외하고도 이미 몇 년 전 헬키움에 들어와 있는 2명의 배다른 형제들. 반은 명백히 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전생처럼 무늬만 적자가 아닌 가주 경쟁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진정한 의미의 적자. 반은 이 자격을 지금 쿤드에게 확인 받고자 했다.


이를 모를 쿤드가 아니었다. 그는 반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눈앞의 어린아이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아들아, 네 큰형이 이미 스물다섯이다······. 자신이 있느냐? 몸을 낮춰야만 살 수 있는 순간도 있단다.”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질문이 끝날 무렵에는 차갑게 굳어 있는 쿤드의 표정. 하지만 반은 왠지 쿤드가 즐거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식들의 싸움을 즐기는 부모라니. 역시 스트라페는 싸움에 미친 가문이군.’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낼 반이 아니었다. 다만 진지한 표정으로 쿤드에게 되물었다.


“아버지도 여섯의 형제 중 다섯 째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 제가 잘못 아는 것인지요?”


이젠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쿤드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웃음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크하하하. 오늘 네가 나를 여러 번 즐겁게 하는구나. 부디 노력해 보거라. 카진. 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준비해 주어라.”


“예. 형님”


쿤드는 이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카진도 그 뒤를 얼른 따라 나섰다. 하지만 반은 쿤드가 나간 다음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만 움켜쥔 손아귀에 흐르는 흥건한 땀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속내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전생의 25년, 그리고 이번생의 8년. 그 모든 삶을 통틀어 쿤드와 이렇게 오래 대화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저 순종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요구해본 것도.


‘일단 작은 걸음은 뗐다. 이제 남은 것은 성장하는 일뿐이다.’


이제 한동안 쿤드를 볼 수 없을 터였다. 대륙에서 손꼽히는 철혈가문의 가주가 헬키움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미 사마라 지역 신문에서는 쿤드의 헬키움 방문을 특집 기사로까지 낸 상황.


때문에 반이 쿤드를 다시 만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앞으로 6년 뒤. 정식으로 헬키움을 나서는 14살 무렵일 것이다.


이 6년.


반은 다짐했다. 아무도 모를 이 성장의 시간 동안, 쿤드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겠다고. 그에게 좀 더 가까워지겠다고.



-


쿤드가 헬키움을 떠나고 3달이 지났다.


쿤드와의 대화가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일까, 반은 지난 세 달 간의 헬키움 생활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지난 세 달 간의 훈련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애초에 헬키움에서의 처음 세 달은 아이들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한 준비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가까스로 훈련을 따라오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들으면 이를 갈겠지만.


‘오늘로 세 달 째, 이제 헬키움의 본 과정이 시작된다. 나만의 훈련도.’


쿤드가 약속한 개인적 시간. 그것이 오늘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열을 맞춰 훈련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은 즐거웠다. 다른 아이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휴식 시간에도 그는 즐거움을 느꼈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오후에 간단한 박투술을 익히는 동안에도, 또 지루한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내내 즐거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검을 잡는다.’


이 작은 사실이 반을 설레게 만들었다. 비록 목검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검을 잡는 것이다. 사막성에선 관심을 피하기 위해 검을 잡을 틈이 없었다.


본 수업을 위한 목검 지급. 전생에선 아무런 감흥 없던 일이 이토록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자, 이제부터 이 검이 너희 목숨이다. 스트라페의 전사들은 죽는 순간에도 검을 놓치 않는다. 기억해라.”


교관의 감상적인 말도 지금 반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생에 쓰던 것보다는 많이 짧군.’


어린아이의 몸에 맞췄기에 많이 짧은 검신.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반은 벌써부터 혼자 펼쳐볼 여러 검술을 상상하며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스트라페의 핏줄이었다. 검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다리십시오, 아버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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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정보국의 습격 +2 20.10.16 383 9 12쪽
29 28화. 반과 프리네 +1 20.10.14 355 7 12쪽
28 27화. 벨리안의 흉갑(2) +1 20.10.13 396 8 13쪽
27 26화. 벨리안의 흉갑 +2 20.10.10 445 8 14쪽
26 25화. 새벽의 축제 여관 +1 20.10.08 452 4 14쪽
25 24화. 메디나로 가는 길 +2 20.10.07 492 7 13쪽
24 23화. 벨리아의 성인식 +1 20.10.06 537 7 12쪽
23 22화. 마물 사냥(2) +1 20.10.03 588 8 12쪽
22 21화. 마물 사냥 +2 20.10.02 614 8 12쪽
21 20화. 일족의 마을 +1 20.09.30 642 8 12쪽
20 19화. 세르갈의 신력 +1 20.09.29 664 6 12쪽
19 18화. 커비와 로지 +1 20.09.28 719 6 15쪽
18 17화. 생존 훈련의 시작과 끝 +2 20.09.27 759 7 12쪽
17 16화. 엘린과의 담판 +1 20.09.25 745 7 12쪽
16 15화. 근신(2) +1 20.09.24 754 8 12쪽
15 14화. 근신 +2 20.09.23 741 7 11쪽
14 13화. 교류전(6) 20.09.22 749 9 12쪽
13 12화. 교류전(5) 20.09.21 742 8 14쪽
12 11화. 교류전(4) 20.09.18 744 9 12쪽
11 10화. 교류전(3) 20.09.17 902 6 14쪽
10 9화. 교류전(2) 20.09.16 798 8 13쪽
9 8화. 교류전(1) +1 20.09.15 848 6 12쪽
8 7화. 순혈의 방 20.09.12 894 6 13쪽
7 6화. 다가오는 교류전 20.09.10 868 8 12쪽
6 5화. 스트라페의 헬키움(4) 20.09.09 926 8 12쪽
5 4화. 스트라페의 헬키움(3) 20.09.08 945 6 15쪽
» 3화. 스트라페의 헬키움(2) 20.09.04 1,089 8 13쪽
3 2화. 스트라페의 헬키움 +1 20.09.03 1,123 11 13쪽
2 1화. 스트라페의 사생아 +1 20.09.02 1,283 10 14쪽
1 프롤로그 +4 20.09.02 1,580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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