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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가문 사생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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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아이
작품등록일 :
2020.09.02 11:30
최근연재일 :
2020.10.16 22: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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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60
추천수 :
227
글자수 :
173,902

작성
20.09.2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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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4화. 근신

DUMMY

헬키움의 정문, 거대한 암석을 깎아 만든 이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배웅하러 나온 헬키움의 생도들과 돌아가는 루니아의 학생들.


마침내 제 151차 교류전이 무사히 막을 내린 것이다. 이번 교류전의 총 책임을 맞은 카진은 페이런에게 작별의 말을 건넸다.


“안녕히 가시지요. 학원장님께서도 임기가 좀 남으셨으니, 내년에 또 뵙겠군요.”


“하하. 올해는 참 사건이 많았습니다, 내년이 기대되는군요.”


서로 심심한 인사를 주고받는 두 집단의 책임자들. 그리고 한 소녀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프리네. 그녀는 어제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과 호아킨이 싸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녀석은 어딨지?’


떠나면서까지 뒤를 돌아보며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는 프리네의 모습을 본 페이런은 작은 웃음을 지었다.


‘프리네가 반을 보통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보네. 하긴 이번 교류전에 참석한 사람 중 그 아이가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


하지만 여기 나와있지도 않은 사람을 계속 찾도록 둘 수는 없는 법.


“프리네, 혹시 반을 찾는 거라면, 그 녀석은 숙소에 갇혀있다. 어제 연회에서 제 형하고 싸웠거든.”


페이런의 말에 프리네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자신이 반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연회 자리에서 주먹질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프리네의 의문을 알아챈 듯 페이런은 의미심장한 말을 보탰다.


“우리 셀시아와 달리, 스트라페의 형제 사이는 남보다 못한 사이란다.”


남보다 못한 사이.


프리네 역시 스트라페의 가주 계승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형제들을 죽이고 자신의 자격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 이긴 자는 철혈 가문의 모든 것을 갖지만 진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다는 그 싸움을 모를 프리네가 아니었다. 경쟁 가문에 대해서는 수업을 통해 이미 충분히 배웠으니까.


‘이게 그 아이가 강한 이유일까.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인데 많이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어제 온종일 반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일까. 프리네는 어느새 나이에 맞지 않는 담담한 눈을 가진 그 소년의 처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



프리네가 걱정을 하고 있는 그 시각, 반은 프리네가 떠올렸던 그 담담한 눈으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는군. 하긴 교류전의 끝이란 곧 가을의 끝이니까.’


가을의 끝. 사막에 인접해 있어 유독 짧은 가을을 가지고 있는 헬키움의 풍경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었다. 나무들은 서서히 잎을 떨구고 있었고, 낮과 밤의 온도차는 피부로 와닿을 만큼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은 곧, 생존 훈련이 시작된다는 뜻. 교관들의 감시가 사라지는 생존 훈련에서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나곤 한다. 반이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기습이었다.


본래 같은 생도들을 공격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 하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아무도 안 볼 때 해치우고 사막의 모래 속에 묻어버리면 끝인 것을. 그렇기 때문에 반은 호아킨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호아킨과의 싸움은 시작됐다. 호아킨은 분명 생존 훈련 중에 자기 파벌을 이용해 나를 공격할 터, 방법을 생각해야 해.’


호아킨은 단순히 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반과 함께 훈련을 받게 되는 9살짜리 생도들 중에는 호아킨을 따르는 세력이 여럿 있었다. 이들이 반뿐만 아니라 반을 따르는 삼인방까지 노린다면?


‘나 하나야 어떻게 버틴다고 해도 루카스, 라길, 마크. 그 아이들까지 지킬 수는 없다······ 역시 그 방법뿐인가.’


자신을 따르는 삼인방까지 고려해야 하는 반. 아무리 고민해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



다가오는 생존 훈련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아픈 반. 그리고 그런 반 만큼이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헬키움의 총교관 카진이었다.


카진은 지금 반과 호아킨에 대한 처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반, 그 녀석의 입장에서 언제까지 호아킨을 피할 수는 없을 테지. 하지만 그렇다고 벌을 안 내릴 수는 없는 법. 어떤 벌을 내린다······.’


처음 쿤드와 함께 반을 본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로 보여주는 반의 행보에 어쩐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카진이었지만, 자신은 헬키움의 총교관이었다.


헬키움의 생도들을 훈육해 스트라페의 이름에 걸맞는 기사로 키워내는 일.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격한 상과 벌이 필수였다. 자신이 반을 아끼지만 그렇다고 벌까지 가볍게 내릴 수는 없었다.


‘흠······. 근신 5일 정도면 적당하겠지.’


마침내 카진이 생각한 벌은 5일간의 근신.


근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헬키움에서 근신은 무거운 벌에 속했다. 그 이유는 근신을 하는 장소 때문이었다. 다른 가문에서의 근신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처소에서 대기하는 정도겠지만, 헬키움에서는 달랐다.


처벌을 받는 아이가 직접 자신이 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깊은 구덩이. 그 속에서 아이는 처벌을 받은 기간 동안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오직 하루마다 제공되는 물 한 모금만을 마시면서 버텨야 했다. 이런 가혹한 처벌 때문에 헬키움의 생도들은 근신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을 내린 카진은 밖에 있던 교관 루인을 불렀다.


척- 척-


절도 있게 들어와 카진에게 목례를 올리는 루인에게 카진의 명령이 떨어졌다.


“반과 호아킨을 근신 5일에 처하도록. 지금 당장.”


“예.”


뒤돌아 카진의 집무실을 나서는 루인은 스트라페의 엄정함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적자라고 해도 무거운 처벌은 피해갈 수 없군.’


하지만 명령이 내려지면 그것이 무엇이든 따르는 것이 스트라페의 기사였다. 루인은 반과 호아킨의 숙소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호아킨의 숙소에 들렀다가 마침내 반의 숙소 앞에 도착한 루인.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에 루인은 숙소의 문을 열며 반에게 말했다.


“반, 나오거라. 근신 5일이다.”


전해지는 루인의 음성에 담담히 방 밖으로 나오는 반에게 호아킨이 말을 걸었다.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호아킨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섞여 있었다.


“네 녀석 때문에 나까지 근신이라니. 나와서 보자.”


호아킨은 반을 위협할 겸, 또 긴장을 털어낼 겸 해서 꺼내본 말이었지만 호아킨의 목소리에 섞인 긴장을 알아채지 못할 반이 아니었다.


“이마에 나는 식은땀이나 닦고 말하지그래?”


두 형제의 신경전을 듣다 못한 루인이 입을 열었다.


“둘 다 그만하도록. 잠시 뒤 목이 말라오면 지금 말을 많이 한 걸 후회할 테니까.”


의미심장한 루인의 말에 호아킨이 입을 다물었다. 호아킨 역시 근신이 어떠한 벌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아킨이 아는 것을 반이 모를 리 없었다.


루인의 조언 아닌 조언 덕분에 반은 모처럼 호아킨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조용히 구덩이를 팔 장소까지 갈 수 있었다.


헬키움의 본관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훈련장. 매일 아침 생도들의 훈련이 진행되는 이곳이 바로 구덩이를 파야 할 장소였다.


이곳에 구덩이를 파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창피함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생도들이 잔뜩 지나다니는 이곳에 구덩이를 파서 벌을 받는 사람을 구경거리가 되게끔 하는.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벌을 받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경고였다. 벌을 받는 아이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모든 생도들이 볼 수 있도록 하여, 조심하게 만드는 경고.


이런 두 가지 이유로 둘은 땀을 흘리며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루인의 감시 아래 쉬지도 못하고 반과 호아킨은 오전 내내 커다란 구덩이를 파야 했다.


마침내 정오가 되자 두 아이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구덩이가 완성됐다. 완성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반과 호아킨.


때마침 야외에서 훈련을 받던 삼인방은 구덩이 속으로 사라진 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반 님, 괜찮으실까······.’


하지만 삼인방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근신의 벌을 받는 사람을 도와주면 똑같이 처벌받았기 때문이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은 구덩이 속을 사정없이 내리쬈다. 안 그래도 쉬지 않고 삽질을 한 반과 호아킨의 목이 타들어 갔다. 그들의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던 루인은 작은 컵에 물을 따라 구덩이 속으로 건네며 말했다.


“물은 하루에 한번만 주니까 아껴 마시도록.”


한 모금 마시면 끝일 것 같은 적디적은 양의 물. 호아킨은 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와 달리 반은 물을 마시지 않고 기다렸다.


‘아직은 버틸만하다. 가장 해가 뜨거워지는 것은 두 시. 좀 더 기다렸다 마셔야겠군.’


구덩이의 바닥 한쪽을 평평하게 다져 반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그런 반의 행동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루인은 생각했다.


‘삽질을 그렇게 하고도 아직 버틸만하다는 건가······’


이번 만이 아니었다. 반이 처음 헬키움에 들어왔을 때부터 보여온 행동들은 어린아이들이 보일만한 태도가 아니었다. 지독한 훈련으로 여린 살갖이 터져 피를 흘리면서도 한없이 담담한 눈빛, 자신을 가르치는 교관들을 평가하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던가.


때문에 교관들마저 반의 앞에서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구덩이 속에 들어앉은 반은 힘들다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저 인내하는 자가 가지는 한없이 평온한 눈빛.


악으로 버티는 것이 아닌, 이 정도의 고통은 고통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듯한 차분함이었다.


그런 반의 모습을 보며 루인은 생각했다.


‘카진 님께 보고드리면 또 좋아하시겠군.’


눈치 없는 루인도 느낄 수 있었다. 반이 강인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카진이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다만 반과 카진 사이에 오간 대화를 모르는 루인으로서는 조카의 성장을 바라보는 삼촌의 즐거움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근신의 벌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걸 수 없다. 때문에 삼인방은 훈련이 끝나고 구덩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저 반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은 정자세로 앉아 시종일관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삼인방의 걱정스런 눈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근신은 정신력 싸움······.’


훈련받던 아이들이 소리가 사라진 훈련장에는 적막함 만이 감돌았다. 소리가 사라진 구덩이 속에서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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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정보국의 습격 +2 20.10.16 383 9 12쪽
29 28화. 반과 프리네 +1 20.10.14 354 7 12쪽
28 27화. 벨리안의 흉갑(2) +1 20.10.13 396 8 13쪽
27 26화. 벨리안의 흉갑 +2 20.10.10 445 8 14쪽
26 25화. 새벽의 축제 여관 +1 20.10.08 451 4 14쪽
25 24화. 메디나로 가는 길 +2 20.10.07 492 7 13쪽
24 23화. 벨리아의 성인식 +1 20.10.06 536 7 12쪽
23 22화. 마물 사냥(2) +1 20.10.03 587 8 12쪽
22 21화. 마물 사냥 +2 20.10.02 614 8 12쪽
21 20화. 일족의 마을 +1 20.09.30 641 8 12쪽
20 19화. 세르갈의 신력 +1 20.09.29 664 6 12쪽
19 18화. 커비와 로지 +1 20.09.28 719 6 15쪽
18 17화. 생존 훈련의 시작과 끝 +2 20.09.27 759 7 12쪽
17 16화. 엘린과의 담판 +1 20.09.25 745 7 12쪽
16 15화. 근신(2) +1 20.09.24 754 8 12쪽
» 14화. 근신 +2 20.09.23 741 7 11쪽
14 13화. 교류전(6) 20.09.22 749 9 12쪽
13 12화. 교류전(5) 20.09.21 742 8 14쪽
12 11화. 교류전(4) 20.09.18 743 9 12쪽
11 10화. 교류전(3) 20.09.17 902 6 14쪽
10 9화. 교류전(2) 20.09.16 797 8 13쪽
9 8화. 교류전(1) +1 20.09.15 848 6 12쪽
8 7화. 순혈의 방 20.09.12 894 6 13쪽
7 6화. 다가오는 교류전 20.09.10 866 8 12쪽
6 5화. 스트라페의 헬키움(4) 20.09.09 924 8 12쪽
5 4화. 스트라페의 헬키움(3) 20.09.08 944 6 15쪽
4 3화. 스트라페의 헬키움(2) 20.09.04 1,088 8 13쪽
3 2화. 스트라페의 헬키움 +1 20.09.03 1,123 11 13쪽
2 1화. 스트라페의 사생아 +1 20.09.02 1,283 10 14쪽
1 프롤로그 +4 20.09.02 1,576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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