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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준 책방

철혈가문 사생아의 귀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이치아이
작품등록일 :
2020.09.02 11:30
최근연재일 :
2020.10.16 22: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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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91
추천수 :
227
글자수 :
173,902

작성
20.09.2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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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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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화. 근신(2)

DUMMY

낮이면 뜨거운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쫴고, 밤이면 바닥부터 한기가 올라오는 구덩이에 갇힌 지도 삼일이 지났다. 이제 남은 기간은 이틀.


벌써 삼일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반은 서서히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물이라도 마음껏 마셨다면 훨씬 괜찮았겠지만, 그런 호사가 허락될 리 없었다.


‘이대로라면 마나를 움직여 한기를 몰아내는 것도 조만간 끝이겠군.’


마른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엉망인 몸으로 마나를 움직이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그나마 마나 통제 능력이 뛰어난 반이었기에 아직 마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 호아킨은 진작 포기한 상태였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해 한기를 그대로 견뎌야 하는 호아킨. 반의 옆 구덩이에서는 호아킨이 추위로 신음하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귓가로 전해지는 호아킨의 끙끙대는 소리를 들으며 반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내 경지가 3성만 됐어도 훨씬 편했을 텐데, 고작 며칠 굶었다고 이렇게 힘들다니. 역시 어린아이의 몸은 힘들군.’


반의 말처럼 경지가 높다는 것은 마나의 축복을 한 몸에 받는다는 뜻. 충만한 마나는 몸을 강인하게 만든다. 며칠쯤 안 자고 안 먹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소리. 하지만 고작 2성의 경지로 그 정도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반이 자신의 경지를 한탄하고 있는 사이. 세 개의 작은 그림자가 본관의 창문을 넘고 있었다.


쉭- 탁!


잽싸게 움직이는 소리에 이은 가벼운 착지음. 소음의 주인공들은 주위를 한껏 경계하며 반과 호아킨이 갇혀 있는 구덩이로 다가왔다.


“반....님..?”


그림자의 주인공은 작은 목소리로 반을 불렀다.


‘루카스?’


목소리는 비록 작았지만, 한방을 쓰는 반으로서는 모를 수가 없는 루카스의 목소리였다.


대답이 없는 반에게 이번엔 라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 님, 저희가 빵하고 물을 조금 가져왔어요. 지금 구덩이로 던질게요······.”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소곤소곤 말을 하는 라길. 반은 라길의 말에 이들이 왜 잠들었어야 할 이 늦은 시간에 훈련장에 나왔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려고······.’


반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전생에서는 가문의 인정을 받는 데만 매달려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을 사귄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삼인방의 모습을 보자니, 반은 어쩐지 코가 시큰해지는 것 같았다.


‘나를 도와주면 처벌을 피하지 못하는 걸 알 텐데, 바보 같은 녀석들······.’


반의 대답이 없자, 마크가 직접 음식을 가지고 구덩이로 내려오려던 찰나. 반이 바짝 마른 입술을 떼고 말했다.


“빨리 돌아가라······, 난 괜찮다. 오늘의 일은 잊지 않으마.”


바싹 마른 반의 입에서는 쇳소리가 났지만, 내용은 단호한 거부였다. 반의 말에 삼인방의 몸이 일순간 굳어졌다.


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삼인방을 돌려보내기 위해, 다시 한번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너희들이 나눠질 필요가 없어······, 돌아가라.”


루카스와 마크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셋 중 가장 영리한 라길이 둘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반 님이 말씀하신 거니까 우린 따라야지.”


하지만 반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 작은 소란을 옆 구덩이에 있던 호아킨이 놓치지 않았다는 것. 호아킨은 삼인방을 향해 명령했다.


“물······. 나에게도 물을 가져와라······.”


호아킨의 참가로 또다시 지체되는 삼인방의 발걸음. 그들로서는 스트라페의 적자인 호아킨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침묵을 타고 전해지는 삼인방의 고민을 느낀 반은 염려됐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조만간 교관에게 들킬 터. 반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호아킨! 스트라페답게 행동해라. 너희는 어서 돌아가.”


비록 물기 하나 없는 목소리였지만, 반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 힘 덕분일까. 평소라면 호아킨의 명령에 꼼짝 못 했을 삼인방은 용기를 내 뒤돌아설 수 있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발소리.


‘다행이군······’


교관에게 걸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간 삼인방을 생각하며 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반의 한숨이 무색하게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카진. 이 벌을 지시한 헬키움의 책임자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잘하고 있나 한 번 구경이나 할까 해서 와봤더니 재밌는 광경을 보게 되는군.’


카진은 즐거웠다. 조카들의 고생하는 얼굴이나 한번 구경할까 해서 왔는데 웬 아이들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구덩이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반을 생각하는 삼인방의 충성이 장했지만, 이곳은 헬키움이다. 규율은 엄정해야 하는 법. 반에게 음식이 전해지는 순간 카진은 그들을 잡아 똑같은 벌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반이 물과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 녀석이라도 삼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을 텐데. 그걸 참아내다니. 허허.’


게다가 호아킨을 향해 스트라페답게 행동하라고 호통을 치다니. 카진은 그 ‘스트라페답게’라는 말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결정 내렸다. 삼인방의 충성심과 반의 강직함을 보아 이번 한 번은 눈감아주기로.




-



하루 한 차례, 근신의 벌을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 모금의 물이 허락되는 정오 시간.


본래 이번 벌을 책임지고 있는 루인이 물통을 들고 왔을 훈련장에 느닷없이 카진이 나타났다. 한 손에 물통을 든 채로.


막 훈련을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가려던 생도들은 잔뜩 얼어붙었다. 딱히 무엇을 잘못하지 않았어도, 존재만으로 위압이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카진처럼.


생도들은 무언가 트집 잡히지는 않을까 평소보다 더욱 질서정연하게 열을 맞춰 섰다. 괜히 밥을 먹겠다고 가다가 지적이라도 받을까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선 생도들.


카진은 그들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는 구덩이 앞으로 다가갔다. 어제 보았던 즐거운 광경 때문에 손수 물을 주러 나온 카진. 그가 컵에 물을 따라 호아킨과 반에게 건넸다.


꼴깍.


마음 같아서는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으나, 물컵 속의 물은 그럴만한 양도 안 됐다. 한 모금에 물을 삼키는 반과 호아킨.


그런 조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진이 흘러가는 투로 가볍게 물었다.


“그래, 별일 없었느냐?”


비록 가볍게 흘러가는 투였지만, 반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어제 일을 아는 건가?’


구덩이 속에 갇힌 자신들에게 별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재빨리 생각해봐도 카진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항상 물을 주던 루인 대신 갑자기 삼촌이 온 것은 그것 때문인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반이 생각하는 사이, 물을 마시고 한숨 돌린 호아킨이 재빨리 카진에게 말했다.


“삼촌, 어제 저 녀석을 따르는 아이들이 와서 물과 음식을 주고 갔어요.”


분명한 거짓말. 어제 삼인방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간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 호아킨은 카진에게 거짓을 고했다.


‘허허, 호아킨 이 녀석이 거짓을 말하는군.’


어제 상황을 직접 지켜본 카진은 호아킨이 말이 거짓임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문제였다. 수많은 생도들이 보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호아킨의 거짓말을 짚어낸다면, 스트라페의 적자가 거짓말이나 일삼는 것이 된다. 가문의 명예에도 좋지 못할 터.


거짓을 말하는 호아킨이 괘씸했으나, 가문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진은 그 말에 대꾸해줄 수밖에 없었다.


“호아킨, 확실한 것이냐?”


“예.”


카진의 확인에도 거짓말로 일관하는 호아킨. 이제 카진은 반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반. 호아킨의 말이 사실이냐?”


카진의 질문에 반의 머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앞서 생각한 것처럼, 삼촌은 어제의 일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근데도 그 자리에서 처벌하지 않았다는 것은 넘어가 줄 마음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사실이 아닙니다.”


서로 상반된 반과 호아킨의 대답. 하지만 호아킨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반을 따라다니는 세 녀석들을 확인해 보십시오. 그럼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호아킨으로서도 생각이 있었다. 그 세 녀석을 조사하면 분명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까진 알아낼 수 있을 터. 그 아이들이 음식을 주지 않았다고 완강히 주장한다면, 자신은 말소리가 들려서 착각했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이미 밤에 숙소를 벗어나 이곳까지 온 것만으로 삼인방이 처벌받기에 충분했다. 호아킨으로서는 질 수가 없는 싸움.


카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어지간하면 넘어가고 싶었는만 호아킨이 저토록 강하게 주장한다면 세 아이를 불러 확인해야 했다.


‘자, 반. 어찌할 테냐.’


카진은 시선을 돌려 반을 내려다봤다. 반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삼인방을 불러야 했다.


그때, 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아킨. 그렇게 말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구나. 총교관님 제 배를 갈라 위장을 확인해 주십시오. 호아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음식물이 남아 있을 터. 하지만 만일 거짓이라면, 피는 피로 갚는다는 스트라페의 규율에 따라 호아킨의 배도 갈라주십시오.”


살벌한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말투. 하지만 담담했기에 오히려 정말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듯한 진실함이 느껴졌다.


반의 살벌한 말에 호아킨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 모습을 본 카진이 호아킨을 압박했다.


“호아킨. 어찌할 테냐?”


“그.. 그게”


삼인방을 먼저 조사하라고 고집한다면 호아킨에게도 방법이 있겠으나, 반의 충격적인 요구에 당황한 호아킨은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호아킨에게 도망갈 수 있는 구멍을 슬쩍 열어주었다.


“오래 굶으면 헛것을 보고 듣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형님이 혹 어제 잘못 들은 것은 아니신지요?”


배를 가르는 것보다는 헛것을 본 게 훨씬 나은 법. 호아킨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사실 어제 힘들어서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겠네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잘못 들은 것 같기도 해요.”


반이 열어준 길을 따라 호아킨은 황급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조카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카진은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을 깨달았다.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과격하지만 확실한 해결 방법을 반이 생각해낼 줄이야. 카진은 즐거움이 가득한 눈으로 반을 바라봤다.


반은 카진의 눈에 담긴 과도한 애정에 슬쩍 시선을 피해야 했다.




-



즐거움 가득 담긴 발걸음으로 카진이 돌아가고 난 후, 5일간의 근신은 더디지만 착실하게 흘렀다.


마침내 이 괴로운 형벌의 끝이 찾아온 것이다.


자신들이 나온 구덩이를 메우는 것으로 끝나는 근신. 반과 호아킨은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구덩이에 흙을 메워야 했다.


반과 호아킨이 구덩이를 모두 메우고 물러서자 그곳에는 언제 구멍이 있었냐는 듯 평평한 땅이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끝났군.’


카진이 반에게 부과한 모든 벌이 끝나고 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물을 마시는 일. 타는 듯한 목구멍을 타고 물이 넘어가자 반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며칠이나 굶주린 창자에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넣는 것은 몹시 위험한 법. 반은 부드러운 스프를 한 그릇 떠와 천천히 입에 넣었다.


이런 노력 끝에, 목마름과 허기를 간신히 해결한 반은 샤워장으로 가서 지난 5일간의 묵은 때를 벗겨냈다. 호아킨은 씻지도 않고 이미 잠들었지만, 반에게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깔끔하게 정돈해야 했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반은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뚜벅뚜벅.


힘든 것을 참고 반이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엘린, 현재 헬키움에 있는 적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반의 배다른 누이가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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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정보국의 습격 +2 20.10.16 384 9 12쪽
29 28화. 반과 프리네 +1 20.10.14 356 7 12쪽
28 27화. 벨리안의 흉갑(2) +1 20.10.13 396 8 13쪽
27 26화. 벨리안의 흉갑 +2 20.10.10 446 8 14쪽
26 25화. 새벽의 축제 여관 +1 20.10.08 453 4 14쪽
25 24화. 메디나로 가는 길 +2 20.10.07 493 7 13쪽
24 23화. 벨리아의 성인식 +1 20.10.06 537 7 12쪽
23 22화. 마물 사냥(2) +1 20.10.03 589 8 12쪽
22 21화. 마물 사냥 +2 20.10.02 614 8 12쪽
21 20화. 일족의 마을 +1 20.09.30 643 8 12쪽
20 19화. 세르갈의 신력 +1 20.09.29 664 6 12쪽
19 18화. 커비와 로지 +1 20.09.28 720 6 15쪽
18 17화. 생존 훈련의 시작과 끝 +2 20.09.27 759 7 12쪽
17 16화. 엘린과의 담판 +1 20.09.25 745 7 12쪽
» 15화. 근신(2) +1 20.09.24 755 8 12쪽
15 14화. 근신 +2 20.09.23 741 7 11쪽
14 13화. 교류전(6) 20.09.22 749 9 12쪽
13 12화. 교류전(5) 20.09.21 742 8 14쪽
12 11화. 교류전(4) 20.09.18 745 9 12쪽
11 10화. 교류전(3) 20.09.17 902 6 14쪽
10 9화. 교류전(2) 20.09.16 798 8 13쪽
9 8화. 교류전(1) +1 20.09.15 848 6 12쪽
8 7화. 순혈의 방 20.09.12 894 6 13쪽
7 6화. 다가오는 교류전 20.09.10 868 8 12쪽
6 5화. 스트라페의 헬키움(4) 20.09.09 927 8 12쪽
5 4화. 스트라페의 헬키움(3) 20.09.08 945 6 15쪽
4 3화. 스트라페의 헬키움(2) 20.09.04 1,089 8 13쪽
3 2화. 스트라페의 헬키움 +1 20.09.03 1,123 11 13쪽
2 1화. 스트라페의 사생아 +1 20.09.02 1,284 10 14쪽
1 프롤로그 +4 20.09.02 1,582 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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