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도준 책방

철혈가문 사생아의 귀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이치아이
작품등록일 :
2020.09.02 11:30
최근연재일 :
2020.10.16 22:2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2,831
추천수 :
227
글자수 :
173,902

작성
20.09.29 23:32
조회
664
추천
6
글자
12쪽

19화. 세르갈의 신력

DUMMY

밤새 사막의 모래 위를 기어 온 반. 그는 마침내 세르갈의 신전에 들어왔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마치 반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벽에 걸린 촛대에 불이 켜졌다. 덕분에 신전의 내부가 반의 눈에 들어왔다.


‘긴 통로······.’


그렇다. 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긴 통로였다. 마치 예언의식을 치뤘던 슬라블의 신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길게 뻗은 통로 벽에는 세르갈과 관련된 온갖 것들이 양각되어 있었다.


‘모래바람과 칼, 아키바 사막을 상징하는 4대 마수, 나머지는 나도 뭔지 모르겠군. 그리고 저건 모래시계?’


하지만 벽에 빼곡한 양각보다 지금 반에게 중요한 것은 통로였다. 저 긴 통로를 기어가야 했다.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긴 통로가 반에게는 너무 멀어 보였다. 어린 시절 기었던 것보다 더욱더.


‘피곤하다······.’


이미 반의 몸은 진작에 한계를 넘었다. 살아난 게 기적인 상처를 입고 밤새 기어왔다. 한참 전에 쓰러졌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순 없었다.


‘가야 한다··· 가야만 한다···’


반은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가야 한다고.


강렬한 열망 덕분이었을까.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반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몹시 느렸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저 통로 끝에 있을 제단에 닿을 테니까. 이미 시간 감각을 잊은 반은 그저 묵묵히 기어갔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한참.


마침내 반의 눈앞에 거대한 제단이 나타났다. 슬라블에 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바위를 깎아 만든 제단. 그 위에는 낡은 검이 한 자루 꽂혀 있었다.


턱.


반은 제단 위에 손을 얹었다. 기적을 바라며 가까스로 이곳까지 온 반. 하지만 그런 기대가 배신당하는 순간도 있는 법.


제단에 손을 얹었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렇게 죽는 건가.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후훗’


죽음의 순간이 오자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작은 헛웃음이 나올 뿐. 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제단에 손을 얹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반의 주위엔 적막만이 가득했다.


휘이익-


처음엔 작은 바람 소리였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하지만 바람 소리는 점점 커졌다.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멀어져가는 반의 의식을 도로 불러올 만큼 거센 바람이 반의 얼굴을 때렸다.


‘뭐지······.’


갑작스러운 주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 하지만 그런 반을 이해시키겠다는 듯 바람은 점차 거세게 불어왔다.


마치 반이 초대 가주의 이름을 물려받았던 그 순간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거센 바람이 몰려들었다. 누워있던 반의 몸이 들썩거릴 정도의 강풍.


이제 반은 완전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힘겹게 눈을 뜬 반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거센 모래바람이었다. 피부를 따갑게 때리며 바람은 계속 휘몰아쳤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반 이니그람 스트라페.]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반은 입을 열어 말했다.


“세르갈 신이시여. 당신께서 저를 살리셨습니까?”


반이 묻기가 무섭게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


자신이 예상하던 것이 맞았다. 다시 태어난 이유는 역시 세르갈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반의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기적을 바랄 수 있지 않을까. 반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부디 제 망가진 몸을 고쳐주세요.”


하지만 이어지는 세르갈의 말은 반을 다시 절망으로 빠뜨렸다.


[나는 이미 너를 되살리며 모든 힘을 다 썼느니라. 다시 힘을 모으려면 수백 년은 기다려야 할 터. 그때 이미 너는 죽고 없을 것이다.]


믿었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반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까득.


그때, 세르갈이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네가 다른 신전이 아닌 이곳을 찾다니. 너에겐 참 다행이구나. 여긴 내 최초의 신전이다. 따라서 가장 많은 힘을 쓸 수 있지.]


반의 얼굴에 다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힘을 잃은 세르갈 신이지만 이곳에선 힘을 조금이나마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의 신력을 나눠주마. 테오도르가 사용했던 힘이지. 나의 신력은 비교할 데 없는 강인한 힘. 네가 견뎌내기만 한다면 몸 정도는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말거라. 테오도르조차도 신력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한 건 15살 무렵이니.]


하지만 반에겐 상관없었다. 실낱같은 희망만 있어도 도전했을 테니까. 반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단호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견뎌보아라.]


세르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점차 반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 정신 차려라. 무조건 해내야 한다.’


모여드는 바람을 느끼며 반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점차 모여드는 바람, 그 속에서 이질적인 힘을 느껴지기 시작하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참았던 반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물론 비명을 지른다고 고통이 끝날 리 없었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세르갈의 신력. 그 힘이 반의 몸으로 파고들 때마다 입에서는 참지 못하고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애초에 신력은 인간의 몸으로 견딜 수 없는 신의 힘. 그것을 견뎌낸 테오도르가 굉장할 뿐이지, 반의 반응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반은 몸속을 부수는 듯한 고통에도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집중······해야 해···, 마나를 움직인다고 생각하자······’


반은 몸으로 밀려 들어오는 신력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성난 파도와 같이 반의 몸을 돌아다니는 세르갈의 신력. 그 힘은 도저히 다스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산화를 썼던 순간처럼 금세 온몸이 갈기갈기 찢길 터. 갓난아기 때부터 세심하게 마나를 다루는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반의 몸은 진작 그렇게 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비록 고통스러웠지만 반의 몸은 신력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신력은 조금씩이지만 반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반은 고통 때문에 이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분명 본능적으로 반은 신력을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반의 입에서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억겁과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지났다.


어느새 반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한없이 집중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조용히 있을 뿐.


그리고 마침내.


번쩍.


반이 감았던 눈을 떴다. 고통으로 실핏줄이 다 터져 온통 새빨간 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의 표정은 평온했다.


반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세르갈의 신력을!


‘해낸 건가······.’


반이 느낄 수 있는 건 신력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망가졌던 몸이 다시 움직였다.


산화를 사용한 후 망가져 버린 반의 몸. 그 몸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반의 표정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그런 반에게 세르갈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낼 줄 몰랐는데 놀랍구나. 내 힘은 신력 중에서도 가장 강인한 힘. 모든 것을 막는 방패이자 모든 것을 뚫는 창이다. 고작 마나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지. 네 몸도 한층 강인해졌을 것이다.]


세르갈이 말하지 않아도 반은 느끼고 있었다. 충만한 마나의 축복을 받은 몸이 강인해지듯, 신력을 받아들인 반의 몸에서는 전에 비할 바 없는 힘이 느껴졌다.


‘아직 마나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훈련하면 될 터.’


하지만 먼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아직 세르갈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한 것이다. 아무리 스트라페의 수호신이라고 할지라도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자신에게 쓰다니. 반은 진심으로 세르갈에게 고마웠다.


“스트라페의 수호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반의 감사 인사. 하지만 세르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세르갈에게서 작지만 분노가 느껴진 것이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반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고, ‘이니그람’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런 세르갈이 스트라페의 수호신이라는 호칭을 싫어한다?


‘이 모든 일이 스트라페의 수호신으로서 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괜찮다. 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네가 더 강해지는 것이다.]


이어지는 세르갈의 말에 반은 점점 의문스러워졌다. 남들이 들었다면 그저 강해지라는 축복의 말 정도로 듣고 넘겼겠지만, 방금 세르갈의 태도를 본 반에게는 아니었다.


‘유일한 방법? 어쩌면 세르갈에겐 내가 반드시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하지만 반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세르갈에게 감사한 마음은 정말이었다.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으니까. 지금은 사소한 일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반은 지금 너무 피곤했다.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세르갈 역시 이런 반의 몸 상태를 모르지 않았다.


[일단 좀 쉬거라. 신력을 받아들인다고 삼일이나 못 잤으니. 테오도르도 신력을 받아들이고 잠을 며칠이나 잤지.]


‘내가 삼일이나?’


그동안 삼일이나 지났다는 소리에 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놀람도 반의 눈이 감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피곤했다.




-



반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세르갈이 말을 걸어왔다. 힘을 다 썼다 하여, 혹시 대화도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아직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몸을 움직이지 못했던 며칠 전과 다르게, 반은 몸을 일으켜 세르갈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감사의 인사는 됐다. 이번에 너무 많은 힘을 썼구나. 잠시 후면 대화도 하기 힘들 터. 몸을 추스르면 떠나거라.]


말은 떠나라고 했지만 세르갈은 한동안 반의 질문들에 대답해주었다. 덕분에 반은 그동안 궁금하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세르갈이 말해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신력에 대한 것.


‘내 몸에 들어온 신력 대부분은 몸을 치료하며 사라졌다는 건가.’


때문에 결국 반의 몸에 남아있는 신력은 1성 수준. 비록 신력이 마나보다 몇 단계는 높은 파괴력을 지녔기에, 1성의 신력으로도 3성의 기사와 맞먹는 위력을 보이겠지만. 반이 바라는 것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어쩌면 신력을 통해 쿤드에게 닿을지도 모르지. 결국 수련해야 할 게 한 가지 더 늘었군.’


아직은 미약한 힘이었지만, 분명 신력은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터. 쿤드와 싸우는 그 날까지 갈고닦아야 했다.


그리고.


‘사막의 초입에 자이언트 맘바가 갑자기 나온 것은 불가능한 일. 나를 노린 녀석이 있다. 그 녀석도 찾아서 반드시 죽여주마.’


복수해야 할 대상이 하나 늘었다. 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제는 복수를 위해 다시 돌아가야 할 때.


반이 긴 통로를 되돌아 나와, 신전의 문을 힘주어 밀었다.


쿵.


문이 열리자, 밝은 햇빛이 반의 눈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반을 기다리는 건 햇빛만이 아니었다.


커비가 사막의 모래 위에 서 있었다. 그 뒤로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이는 전사들이 보였다.


‘이들이 모두 이자벨라의 일족?’


반이 신전을 내려오자, 커비의 뒤에 서 있던 한 노파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뭣들 하느냐! 저 녀석을 붙잡아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철혈가문 사생아의 귀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29화. 정보국의 습격 +2 20.10.16 386 9 12쪽
29 28화. 반과 프리네 +1 20.10.14 358 7 12쪽
28 27화. 벨리안의 흉갑(2) +1 20.10.13 396 8 13쪽
27 26화. 벨리안의 흉갑 +2 20.10.10 448 8 14쪽
26 25화. 새벽의 축제 여관 +1 20.10.08 454 4 14쪽
25 24화. 메디나로 가는 길 +2 20.10.07 495 7 13쪽
24 23화. 벨리아의 성인식 +1 20.10.06 540 7 12쪽
23 22화. 마물 사냥(2) +1 20.10.03 590 8 12쪽
22 21화. 마물 사냥 +2 20.10.02 614 8 12쪽
21 20화. 일족의 마을 +1 20.09.30 645 8 12쪽
» 19화. 세르갈의 신력 +1 20.09.29 665 6 12쪽
19 18화. 커비와 로지 +1 20.09.28 722 6 15쪽
18 17화. 생존 훈련의 시작과 끝 +2 20.09.27 760 7 12쪽
17 16화. 엘린과의 담판 +1 20.09.25 747 7 12쪽
16 15화. 근신(2) +1 20.09.24 758 8 12쪽
15 14화. 근신 +2 20.09.23 741 7 11쪽
14 13화. 교류전(6) 20.09.22 751 9 12쪽
13 12화. 교류전(5) 20.09.21 743 8 14쪽
12 11화. 교류전(4) 20.09.18 746 9 12쪽
11 10화. 교류전(3) 20.09.17 904 6 14쪽
10 9화. 교류전(2) 20.09.16 798 8 13쪽
9 8화. 교류전(1) +1 20.09.15 850 6 12쪽
8 7화. 순혈의 방 20.09.12 894 6 13쪽
7 6화. 다가오는 교류전 20.09.10 871 8 12쪽
6 5화. 스트라페의 헬키움(4) 20.09.09 927 8 12쪽
5 4화. 스트라페의 헬키움(3) 20.09.08 947 6 15쪽
4 3화. 스트라페의 헬키움(2) 20.09.04 1,090 8 13쪽
3 2화. 스트라페의 헬키움 +1 20.09.03 1,124 11 13쪽
2 1화. 스트라페의 사생아 +1 20.09.02 1,284 10 14쪽
1 프롤로그 +4 20.09.02 1,583 9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