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8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6.13 18:47
조회
29
추천
0
글자
11쪽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3

DUMMY

요한은 눈을 감았다. 헛것을 들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의식의 심층으로 잠겨들었다. 영혼에게는 여러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울림’에 몰두한다. 옅은 파동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사물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 한없이 퍼져나가, 다른 영혼을 탐색한다.

눈을 떴다. 자신의 왼편, 숨결마저 닿을 가까운 곳에 레나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해요. 묻고 싶은 게 많으니까.”


레나가 속삭였다.


“제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요한의 침묵을 주시하던 노엘이 말했다. 비스듬히 턱을 괸 그녀의 검지는 탁자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일부러 자신의 심리상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리라. 답을 촉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결전제에서 우승하라고 했어.”

“허?”


갈등 끝에 나온 요한의 한 마디에 노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연스러웠던 얼굴로 노려보니 이질감이 상당했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야.”

“알겠습니다.”


표정을 거둔 노엘은 취조를 이어나갔다. 예상과 달리 폭력적인 수단은 사용하지 않았다. 물어오는 질문은 레나와 연관된 일이 전부였다.

동시에 입학한 이유는 무엇인가. 입학 이전에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언제 만났는가. 어디서 무얼 하였는가. 특별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이유. 밀리엄에게 접근한 목적. 그리고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하였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가. 등등.

그간의 모든 행적을 샅샅이 물어왔다. 곁에 선 레나는 그저 사실대로 말하라고만 지시할 뿐, 어떠한 날조도 시도하지 않았다. 마치 노엘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쥐어주려는 듯이.


“이렇게까지 일관성이 있으면······”


노엘은 이를 악 물었다. 말아 쥔 주먹은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쾅!


굉음이 울렸다. 내려친 주먹이 탁자를 움푹 찌그러뜨렸다.


“웃기지 마!”


신경질적으로 던진 의자가 날아왔다. 왼쪽. 레나가 서있는 장소로. 그것은 아마 우연이었다.

노엘은 그곳에 레나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의자가 허공으로 떠오른 그 순간부터 의도인지 우연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레나가 위험하다. 숙여서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요한의 눈동자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며 안달했다.

이대로 매듭을 풀어버린다면. 레나가 의자에 맞도록 내버려둔다면. 갖가지의 선택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로 인해 일어날 파장들은 생각할 수 없었다.

짧은 순간.


-투둑!


매듭을 풀어낸 요한은 손을 뻗었다. 날아오는 의자를 가로막았다. 뻐억 하고 뼈를 울리며 부딪쳤다. 팔이 잘려나갈 것 같은 통증. 부러졌다고 직감했다.

의자가 떨어졌다. 미미하게 생겨났던 바람이 멎었다.


“거기까지!”


불쑥 솟아난 쩌렁쩌렁한 목청이 눈길을 집중시켰다. 중년의 남성이 서있었다. 다부진 어깨와 곰을 연상케 하는 두터운 목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한 차례 곁눈으로 요한을 훑어본 그는 한 차례 고개를 숙였다.


“1위 무관님!”


어째서 말리냐는 듯 노엘이 소리쳤다. 그러나 1위 무관이라 불리는 남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골절이 심하군. 의무실로 데려가.”

“이쪽으로 오시죠.”


군복을 입은 부관은 경례를 남기고 등을 돌렸다. 요한은 그를 따라갔다. 1위 무관은 자리에 남았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허가되지 않은 폭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군이라는 집단이니 꾸중이라도 듣는 건 당연했다.


“노엘.”


둘만이 남은 취조실. 1위 무관은 죽일 듯 노려보는 노엘을 내려다보았다. 잘못된 적의가 그에게로 향해지고 있었다.

한 가닥 이성을 건드린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전락할 추태였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위태롭게 하였는가. 한때 순진무구했던 얼굴에 떠날 줄을 모르는 복수심과 증오와 멸의(滅意)를 묻혀놓았나.

1위 무관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곰인형을 끌어안고 다녔던 시절부터 봐왔다.

때문에 폭주하는 그녀를 군인으로서 처벌하기 힘들었다. 그녀와, 가족의 안녕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꾸중조차 놓지 못한 채로, 남자의 두툼한 입술은 한숨 같은 위로만을 내뱉었다.


“괴롭다는 건 안다, 노엘.”

“당신이 뭘 알아!!”


노엘이 어깨에 올라선 다정함을 내치며 윽박을 질렀다. 노려보는 두 눈동자에 투명한 장막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눈물은 굴러떨어졌다.


“방해할 거면 제발 죽이라고! 사형시키라고! 부탁이니까! 왜 맨날 감싸주는 건데? 왜 이제 와서 잘해주는 건데······! 그 때에는 손 하나 까딱 안 했으면서······!”


주저앉았다. 부서질 듯 떨리는 두 손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끌어안았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공을 붙잡으려는 시도가 꼴사나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자신의 품 안에 잠들어있는 작은 천사가. 실틈 같은 눈을 뜨고서는 헤실헤실 웃으며 손가락을 붙잡아주었던 그 아이가. 눈앞을 아른거렸다.


“내가 다 죽일 거예요. 다 죽이면 되잖아······ 그래, 그냥 죽이면 안 돼요? 그 사람도 그렇고, 그 망할 여우년도 그렇고······ 죽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노엘, 그쯤해라.”

“목을 잘라서 매달아놓을 거예요, 우리 아빠처럼.”

“노엘!”

“손가락은 편지봉투에 넣어서 친척들한테 보내야지. 그러면 엄마가······!”


-짜악!


정적이 메아리쳤다. 멍하니 앉아있던 노엘은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뜨거웠다. 아른거리는 아픔 위로 눈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걸어서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처참한 뒷모습이었다. 실성한 시체가 발을 내딛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어깨가 벽에 쓸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가끔씩, 나도 흔들릴 때가 있는 것 같아 벨리안.”


1위 무관은 어질러진 의자와 탁자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앉았다. 맞은편에 투영되는 누군가를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눈을 가렸다.


“너의 선택이 원망스러워.”


...


군의관이 나갔다. 그의 손길이 떠나간 팔에는 부목과 붕대가 싸여있었다. 거동이 급격하게 불편해져버리고 말았다. 잔존하는 통증이 지끈거렸다.

골절은 언제나 성가셨다. 그래도 이곳은 전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나마의 위로였다.

부러졌음에도 검을 휘둘러야 하는 절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나은 처지에 도달할수록, 보다 나은 처지를 위해 노력하는 존재였다. 과거에는 그저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없는 세계에 깨어나니, 예상보다 바라는 게 많았다.


“조금은 감사라도 하지 그래?”


고맙다는 한 마디를 원했다. 그러나 정작 모습을 드러낸 레나는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피할 수 있었어요. 쓸데없이 나서서는······”


그래, 쓸데없이 나서서 다쳤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팔을 다친 탓에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레나가 질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해했다. 하지만 애초에 요한이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기계였다면 지금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노력을 비웃음 당하며 있었을 거다.

그런 스스로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서투른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는 너에게 교정을 받으며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었을 거다.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당신도 이해하고 계시잖아요, 요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해 못해.”

“뭐라고요?”

“이해 못한다고.”


몇 번이고 말해줄 수 있다.


“너는 항상 감추고 둘러대기만 하잖아.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으면서 이해를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많이 바뀌셨네요, 요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래, 네 덕분에 바뀔 수 있었어. 상당히 감정적으로 변했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만큼, 모든 감정들이”


요한. 레나가 이름을 불렀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끊기 급급했다. 격양된 심정을 가라앉히지도, 새까맣게 물들어버린 머릿속을 정돈하지도 못한 채로.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다.


“지금 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아요? 이 사람한테 알려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말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심장이 쇠창살에 걸린 것만 같았다. 스스로의 호흡에 질식했다. 억지로 소리를 밀어올려 토해냈다.


“어차피 말해줄 생각도 없었잖아.”

“아뇨, 솔직히 고민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폐허로 불러내서 제 목적을 이뤄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계속 고민했다고요.”

“이번에도 거짓말이구나. 속아달라고 부탁하려는 거면, 미안.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아.”

“증거 있어요? 확실하냐고요.”

“나는 확신해.”


끝나지 않을 말싸움이 이어졌다. 서로의 논리는 희박해지고, 요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은혜 같은 거 다 됐으니까.”


대화를 그친 것은 레나였다. 평소의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애초부터 그녀는 흥분하지 않았다.

요한이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것에 불과했다.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니, 바보가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반성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한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라는 존재를 외면했다. 뒤에서 머물던 기척은 망설일 새도 없이 떠나갔다.


'이건 무슨 표정이냐고.'


일그러진 얼굴을 만졌다. 눈시울이 뜨거운 이유는 모른다. 지금의 자신은 보기 흉할 것이 분명했다.

눈을 감았다. 당분간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다투었던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격양됐다.


-철컥.


문이 열렸다. 1위 무관이 들어왔다. 그가 조금만 더 빨리 와주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했다.


“안색이 좋지 않군. 군의관이 실례를 저질렀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고개를 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3 B둘기
    작성일
    21.06.13 18:48
    No. 1

    감정선의 표현은 늘 서투른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도 그렇고... (뭐야, 전부 부족하잖아...?)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깐 접을래여... 21.06.18 37 0 -
공지 표지가 생겼습니다! 21.06.10 35 0 -
22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4 +2 21.06.15 28 0 12쪽
»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3 +1 21.06.13 30 0 11쪽
20 말해요 21.06.12 23 0 11쪽
19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2 21.06.10 37 0 11쪽
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5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4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8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70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4 3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