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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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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5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6.08 22:42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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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DUMMY

신체와 검술만으로 가능한 평가가 모두 끝난 시점. 요한은 현재까지의 모든 평가에서 A를 받았다.

S는 받을 수 없었다. 5명의 교사가 참관해야 했고, 그 상태로 전원의 동의하에만 받을 수 있는 평가가 S등급이었다.


“시원찮네요. 교사진까지 합쳐도 당신이 최강일 텐데.”

“어쩔 수 없잖아. 제도가 그렇다니까. 그리고, 그런 자만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레나와 대화하던 요한은 문득 등골을 타오르는 오한을 느꼈다. 리스트를 훑어보던 셀리카가 시선을 보낸 탓이었다. 흘끗거리는 그녀의 시선은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기대와 호의에는 익숙한 요한이었으나, 이성의 정열적인 시선에는 면역성이 없었다.

목검으로 합을 주고받은 이후, 셀리카는 줄곧 저런 상태이다. 원한이라도 사버린 걸까. 교사를 상대로 도가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온갖 가능성들이 뇌리를 스쳐가는 와중에도 순전히 사랑이란 단어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와드릴게요.”


한 마디와 함께 레나가 요한의 팔을 끌어안았다. 새까만 눈동자로 셀리카를 주시했다. 레나가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자, 어째선지 셀리카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요한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으음, 일단은 나이도 별로 차이나지 않을 테고. 교사랑 학생 간에 그렇고 그런 관계가 있어도 불법은 아니니까요, 이곳은.”


그렇고 그런 관계라니, 그게 뭔데.


“조심하세요, 요한. 세상에 무서운 여자는 많답니다.”

“······네가 할 소리야?”

“어머, 농담이 늘었네요.”


레나가 쿡쿡 웃었다. 농담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셀리카도 더 이상 거북한 시선을 보내오지 않게 되자, 레나도 몸을 떼고 물러났다.


“마지막으로는 소울웨폰을 이용한 능력평가네요. 항목은 이능응용, 구현 순발력, 파괴력 등이 있어요.”


셀리카가 또 한 번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순전히 기대로만 이루어진 눈빛. 요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숙했다. 적어도 수백, 많으면 수만에 달하는 기대를 등에 짊어지고 살았던 용사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의식조차 되지 않는다.


“요한 학생부터 할까요!”


셀리카가 들뜬 목소리로 제안했으나,


“거절하겠습니다.”

“예?”

“아무 때나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F등급으로 처리해주셔도 문제없습니다.”

“네?”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

셀리카는 얼떨떨한 표정을 거두지도 감추지도 못하고 얼어붙었다.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투영 수정을 이용한 자질측정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어젯밤 알게 되었으니, 무언가 사정이 있으리라 자연스레 생각할 수 있었다.


“알겠어요. 그 대신,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셀리카의 속셈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십중팔구 교무실로 불러내어 사정을 물을 것이다. 하지만 답해줄 생각은 없다.

어째서 소울웨폰을 사용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사정이라고 한다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존재한다. 그것은 고집이었다. 동료들의 유지를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고집.


“그럼, 다음으로는 레나 학생.”


아쉬움을 머금은 목소리로 셀리카는 레나를 불러냈다. 하지만 그녀는 요한의 곁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도 패스할게요.”

“······.”


셀리카가 울상을 지었다. 3초를 세면 눈물까지 나올 것 같았다. 뚝 떨어져버린 입꼬리를 올리지도 못하고, 비틀비틀 걸어와 조용하던 노엘의 손을 잡아끌었다.


“구현 순발력부터 시작해볼까요?”

“뭐랄까, 소외감이 느껴지지 말입니다······”

“신호에 맞춰서 소울웨폰을 구현해주시면 돼요. 간단하죠?”


노엘의 항의는 안중에도 없었다. 셀리카는 억지로 미소를 되찾으며 박스처럼 생긴 녹음장치를 조작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신호가 울렸다.


-삑!


은빛의 철갑이 손끝에서부터 미끄러지며 노엘의 팔과 어깨를 뒤덮었다. 보호구 형태의 소울웨폰이라고, 그 광경을 보던 누구나가 생각했다. 그러나 구현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허공에 은색의 오라가 일렁였다. 가로로 늘어나고, 세로로 뻗었다.

무형의 방패. 그것이 실체를 갖추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터엉!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함께 둔탁한 금속음이 울려퍼졌다. 자신의 키를 웃도는 직사각형의 대형 방패를 가로로 눕혀들고도 노엘은 의연했다. 무게를 잊어버린 움직임에 위화감마저 드는 광경이었다.


“어, 으음. 구현완료까지 6.23초 걸렸네요. E등급이에요.”


회중시계를 들여다본 셀리카가 말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노엘은 조용했다. 다만 곁눈질로 요한을 잠깐 바라보다 말았다. 평소와는 명백하게 다른 기색. 요한은 그것을 무어라 부르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경계.’


어째서라는 의문이 드는 건 자연스러웠다. 노엘 에스카르트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이틀 전. 악감정을 품을만한 사이가 되기도 힘든 기간인데다가 그 이틀간 그녀가 보여준 감정들은 하나같이 호의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내가 아닌가.’


생각을 비틀어보기로 했다. 무의식적으로 굴러간 눈동자가 레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시선을 감지하고는 싱긋 웃어보였다. 이상할 건 없다고 납득했다. 현세에 깨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요한보다는 겉보기에도 악역스러운 레나가 원한을 샀을 가능성이 컸다.


‘뭘 한 거야 대체.’


요한은 의문을 묻어두기로 했다. 레나와 함께 있을 시간은 앞으로도 많다. 그 중 언젠가 물어보면 그만이다. 구태여 지금 물어서 분쟁의 씨앗에 물을 뿌리는 우행(愚行)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렇게 지긋이 보고는.”

“별 거 아니야.”

“정말인가요?”


시선을 되돌렸다. 정면의 파괴전차에게 도로 이목을 집중했다.


-콰앙! 콰앙!


연달은 충격음이 고막을 포격했다. 깃털처럼 휘둘러지는 방패가 고철 허수아비들을 허수아비였던 무언가로 재창조하는 소리였다.

노엘이 여유롭게 걸으며 건성건성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사람만한 바위와 강철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방패의 끝에 스친 땅에는 크리에이터가 생겼고, 그럴 때마다 셀리카는 히익, 비명을 질렀다.


“그만! 그만해요! 제발!”


-쿠웅!


“알겠습니다.”


노엘이 방패를 놓았다. 주인의 손을 떠난 방패는 팔을 감싸던 철갑과 함께 은빛의 오라로 해체되어 사라졌다.


“분명 이능응용이라고 했는데······!”


셀리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요한과 목검대결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철푸덕 주저앉았다.

반면 노엘은 대답 한 마디 없었다. 셀리카를 위로하는 것도, 사과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며, 이번에도 요한을 훑어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호들갑으로 가득했던 그녀였다. 사람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고 한들, 역시 부자연스러웠다. 순전히 기분 탓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분명 무언가 있다고 요한은 확신했다.


‘에스카르트라······ 기억에는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에게 남은 기억들을 되살폈으나, 예나 지금이나 연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에스카르트라는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 애초에 한 세기를 넘어서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요한에게 원한을 가진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간과하면 안 될 것 같아.’


요한이 아니라면, 노엘은 레나에게 무언가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레나와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요한을 경계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마 셀리카와의 목검대련이 도화선이 되었겠지. 노엘이 조용해진 것은 그 다음이니 확실했다.


‘그간은 F급이었기에 경계하지 않았지만, 검술을 보고 경계대상에 들어버린 건가.’



어쩌면. 정말 어쩌면. 노엘은 원한을 풀기 위해 레나의 뒤를 따라 아카데미에 입학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 세상에 무심코 지나쳐도 좋을 가능성이라곤 없다.

일단은 가능한 데까지 생각한다. 그리고 묻어둔다.


“아, 고마워요. 요한 학생.”


요한은 넘어진 셀리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뒤에서 레나가 흐응, 하고 코를 울렸지만 무시하기로 하고 일으켜주었다.

힘겹게 일어난 셀리카는 치마를 툭툭 털었다. 이미 하얀색을 잃어버린 치마를 몇 번 털어낸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기분의 문제인 것 같았다.


“자! 그럼 이제 남은 시간 놀다가 조용히 퇴근하······ 크흠, 이상으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퇴근. 울적한 기분을 털어내는 마법의 단어처럼 들렸다. 하지만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까지 털어내지는 못했다. 예사롭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사고를 염려하는 걸까. 셀리카는 수업을 마치고도 한동안 남아있었다. 녹색 눈동자가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수고하셨습니다.”


노엘이 발걸음을 떼었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셀리카는 곧바로 공터에 남아 요한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검술에 대해서, 취미에 대해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범위의 질문들을 던졌다.

요한은 일부로 일일이 답해주었다. 대답은 진실이 아니어도 됐다. 사심이 섞이기는 했어도 셀리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레나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말리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노엘이 사라지자, 셀리카가 물었다. 모르는 일을 지어낼 수는 없었기에, 요한은 레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저한테는 짚이는 게 없네요.”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지적하지 않았다. 이유 없는 거짓말은 없는 법. 무엇보다 레나는 한 때 요한을 살아있는 거짓말탐지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속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심산도 없을 것이다.

조만간 설명해줄 것이라 믿고, 셀리카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으음,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무슨 일이 있다면, 의지해주세요. 이래보여도 교사 나부랭이니까요!”

“믿음직하네요. 감사합니다, 셀리카 선생님.”


인사를 마친 레나가 앞서 떠나갔다. 요한은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그 뒤를 좇았다. 무언가 말해주리라 생각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말이 없었다.

의구심을 억눌렀다. 기대는 진즉에 덜어놓았기에, 실망이 크지는 않았다. 상심이랄 것도 없었다.

다만,


‘조금은 말해줘도 좋잖아.’


마음이 투덜거렸다.


작가의말

 또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변명은 하고 싶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주말에 보충하겠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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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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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필연 21.06.02 38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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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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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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