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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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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2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19 03:16
조회
68
추천
2
글자
12쪽

좋은 일-3

DUMMY

요한은 데이브를 지하실에 가두었다. 배관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하실의 방음은 완벽에 가까웠다. 끝없이 흐르는 물소리가 그곳으로 흘러드는 말소리를 지워주었다.


“이제야 조용해졌네요.”

“시끄러운 사람이긴 했어.”


지하실에서 올라온 요한은 적당히 빈 바닥에 앉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구부러진 무릎에 팔을 걸쳤다. 의자에 앉는 것보다 안락하게 느껴지는 자세였다.


“드물게 의견이 맞네요. 그래도 그 가벼운 입 덕분에 금방 끝났지만요.”

“소울 마스터였나.”

“네, 인류를 위해서 싸우는 선택받은 전사이자 영혼을 구현화한 ‘소울웨폰’의 사용자. 다른 말로 하면, 용사죠······ 이미 짐작하고 계셨을 테지만요.”


곧 있을 전투를 기대하기라도 하듯, 레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요한은 달갑지 않았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누가 어디에서 무얼 하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것이 설령 살인이라 한들. 자신과 연관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용사로서의 정의감이라던가, 의무라던가. 150년 이상이 지난 현재에는 필요도 없고 남아있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레나라는 소녀는 계속해서 그에게 싸움을 강요하고 있었다. 마치, 이를 위해 맥스터 상회에서 돈을 빌렸다는 것처럼.

당연하고, 태연하게.


“이번에는 볼 수 있겠네요. 요한의 소울웨폰을요.”


기대하고 있다.


“······꺼낼 생각은 없어. 웬만해서는.”

“사연이라도 있나보죠?”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안타깝다는 말을 뱉으며,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아쉬운 기색이다.

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자신의 사연만큼 타인의 사연을 소중하게 다뤄줄 사람이라고는 보고 있지 않았다.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알다가도 모르겠군.’


자그마한 호기심이 돋아났다. 그러나 요한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곁눈으로 레나를 담고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말을 건네지도, 답지 않은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시간을 때웠다.

꽤나 오랜 정적이 흘러갔다.

벽에 기댄 뒷목이 따끔거렸다.


“레나.”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숙여.”


감춰지지 않는 살기. 요한은 레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구해줄 필요는 없었다. 레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챙그랑!


산산이 흩어지는 유리조각이 달빛을 담아 반짝였다. 메마른 소나기를 뚫고 나아가는 화살의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슬로모션으로 포착 중인 요한의 눈조차도, 유리창을 부순 화살을 찾지 못했다.


-콰직!


투명의 화살이 마루를 부서뜨렸다. 발목을 노린 사격이었다. 화살의 각도를 보면 여러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겠으나, 투명한 화살은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일부로 발목을 노린 건가······’


책상 밑에 엎드린 레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는 객관적으로 미인이었다.


‘확실히 아깝긴 하지.’


가볍게 손목을 풀었다. 오래 전부터 벽에 기대고 있던 탓에 들키지는 않았지만, 안전하다고는 절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위치였다. 화살의 관통력은 요한의 등을 쉽사리 뚫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명이 아니야.’


세 명이 더 있었다. 감춰지지 않은 살기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피의 악취가 사방에 만연하고 있었다.


‘상당히 죽였군.’


한두 명 죽인 걸로는 묻어나지 않을 혈향(血香)이었다. 수십 명. 그것도 상당히 처참하게 살해하지 않으면 이런 진득한 악취는 풍길 수가 없었다.

살인을 즐기는 자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었다. 악취와 자만심. 죄책감은 어디에도 없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살육자들.

그러니 살기를 띄운다.

몸에 베인 피를 지우지 않는다.

희생당해버린 무고한 생명의 숫자는 자랑거리밖에 되지 못한다.


‘때문에 강하지.’


수십 명을 살해했음에도 멀쩡하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커다란 유리조각을 주웠다. 그리고는 구태여 창문 너머로 모습을 비추었다. 새까만 석궁을 겨눈 저격수에게 시선을 일치시켰다.

화살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꿰뚫려 죽어도 억울하다 하지 못할, 멍청하기 그지없는 행동.

그림자는 방아쇠를 당겼다.


-쐐액!


파공음이 질주했다. 투명한, 최소한의 어둠도 지니지 않은 화살이 날아왔다.

요한은 손에 쥔 유리조각을 매만졌다. 손가락들에게 적절한 위치를 지정해주고, 굳세게 쥐었다.


‘지금.’


오른발을 내딛으며 자세를 낮췄다. 그대로 축을 삼아 회전하고, 팔을 당겼다.


-쌔액!


또 한 번의 파공음이 울려퍼졌다. 날카롭고, 불안정한 소리였다. 찰나에 하나의 달빛이 그어졌다. 악력을 견디지 못한 파편들이 자그마한 눈처럼 떨어졌다.


“아하아아악!!”


먼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손가락을 잃은 그림자가 떨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달빛에 제 손가락을 비추었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데도, 그는 계속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바닥에 떨어졌으리라고는 믿지 못하듯이.


“이제 나와도 돼.”


문고리를 잡으며, 레나에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보지 않기로 했다.

무언가를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밖으로 나왔다. 유리조각을 쥐었던 손에는 출혈이 상당했으나, 머지않아 그쳤다. 손바닥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났다. 요한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인간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


“꽤나 기세등등하시군.”


누군가가 말했다. 청년의 목소리였다. 요한은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각기 다른 형태의 검을 든 청년이 둘 서있었다. 도끼를 든 한 명은 그 반대편이었다.


“제프 녀석······ 당해버린 건가.”

“그 놈은 우리 중에 최약체지.”

“처리반의 수치야.”


서로를 마주보고 낄낄 웃는 그들이었다.

요한은 무념으로 일관했다. 사람으로서 남겨두었던 일말의 동정심이 빠르게 말라갔다. 그들에게도 사연이 있고, 재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자비가 자취를 감추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야, 저기 우리 보고 있는데?”


문득 한 청년이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가로등에 몸을 숨긴 취객이 하나 있었다. 손에 든 봉투에는 누군가에게 주고자 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히익······!”


겁에 질린 취객은 딸꾹질을 하며 달아났다. 비틀대는 걸음에 자신을 맡겼다. 그러나 턱없이 느린 그 뜀박질은 세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멈추었다.


-푹!


먹먹한 울림이 정적을 짓눌렀다. 붉은 검이 이름 모를 사내의 가슴을 꿰뚫었다.


“어, 어억······!”


망연한 얼굴의 남자가 피를 토해냈다. 검붉은 선혈이 떨어졌다.


“이걸로 다섯. 오늘 밤은 내가 1등이네.”


그곳에서 요한은 포기했다.


“아니,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저 녀석을 죽이면 동점일 테니.”


도끼를 든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요한을 바라봤다.

요한은 그 시선에 응해주었다. 일말의 카리스마도 없는 얼굴이었다. 청년은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입꼬리를 올렸다.


“간다!”


도끼가 달려왔다. 큼지막한 날이 그대로 내려찍혔다. 어떠한 기교도 부리지 않는 일격이었다. 단순하고, 때문에 위력적이었다.

요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봤다.


-콰앙!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걸로 나도 다섯!”


도끼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무기를 어깨에 멨다.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새 혈흔이 생기지 않았다는 걸 모르는 것은, 그 도끼에 묻은 피가 하도 짙었기 때문이리라.

요한은 그의 뒤에 서있었다.


‘아지랑이.’


청년의 눈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것은 갈라지는 요한을 목격했다.

다만, 그 허상을 파악하지 못했을 뿐.


-촤악!


난폭한 소음이었다. 요한의 손에는 한 짝의 팔이 들려있었다. 요한의 것이 아닌, 도끼를 든 굵직한 팔.


“죽지는 않을 거야. 평생 그렇게 살아.”

“뭣이······?!”


말을 마친 요한은 자신의 것이 아닌 두 팔을 어딘가로 대충 집어던졌다.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픔은 없었을 거다.

무력하게 살아갈 가축을 위한 최소한의 자비다.


“이걸로 하나.”


-털썩!


거구가 스러졌다.


“뭐, 뭐야······!”

“뭔데!!”


패닉에 빠진 두 청년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해체현장에 눈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다가갔다.

한 걸음씩.

천천히.


“오지마!”

“저리가!”


두 청년이 무기를 휘두르며 물러섰다. 그럼에도 요한은 멈추지 않았다. 허무한 두 눈동자로 주시했다. 묵묵하게 잠긴 입으로 침묵했다.

그들이 모든 감각을 보는 것에 집중하도록.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빌빌 기어다니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사라진 생명이 돌아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빼앗은 타인의 삶들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평생 속죄하겠습니다······!”


무엇을 속죄한단 말인가. 그들이 속죄해야할 대상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용서받지 못한다. 속죄를 입에 담아서도 안 된다.


“흐아아아악!!”


-퍼걱!

-촤륵!


몇 방울의 피가 튀었다. 팔을 잃은 청년들은 의식을 유지하지 못하고 기절했다. 꿉꿉한 변 냄새가 풍겨왔다. 덤덤하게 소매를 움직였다. 덜 닦인 혈흔이 그의 뺨에 늘어졌다.


“보고 계십니까.”


요한은 고개를 돌려 그림자를 바라봤다. 겨눈 석궁을 쏘지 못하고, 그마저도 공포에 잡아먹혀 안절부절 못하던 저격수는 담장 위에서 뚝뚝 오줌을 흘리고 있었다.


“무, 무엇을 하면 될까요······!”


자신의 손가락을 쥐고 있는 그가 물어왔다.


“이들을 치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겠습니다!”


후들대며 달려온 청년이 팔 없는 동료들을 줄에 묶기 시작했다. 그동안 요한은 무고하게 살해당한 시체에게로 다가갔다.

희미하게 숨결이 남아있었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엄지를 깨물었다. 적지 않은 피가 흘러내렸다.


‘소생의 검.’


피가 형체를 이루었다. 흐르는 피를 굳히며, 가냘픈 세검을 구현했다. 레나가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소울웨폰이었다.

요한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주인이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 하기를 원했을 테지.


“두 번째 생명을.”


요한이 명하자, 세검이 낙하했다. 그것은 남자의 상처에 파고들어, 녹아내렸다. 붉은 빛이 일렁였고, 남자는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났다.

이제 소생의 검의 주인은 요한이 아니었다. 되살아난 남자에게 양도되었다. 첫 주인의 성격만큼이나 독특한 검. 소생된 누군가에게 달라붙어, 재생력이 되어주는 소울웨폰.

하지만 요한은 그에게 그것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약탈의 검.’


이번에는 공기가 모여들었다. 어두운 밤의 한기가. 한 곳으로 집약되며 실체를 이루었다. 그 검 또한 요한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요한이 지니고 있으나, 본래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보유한 능력은 닿아본 적 있는 사물을 자신의 손으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설령 소울웨폰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생의 검.”


요한의 호명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사내의 등에서 세검이 돋아났다. 솟아오름과 동시에 혈화(血化)된 세검이 요한의 상처에 스며들었다.

졸음이 급격하게 쏟아졌다. 흐릿해진 의식에 몸이 잠깐 기울었다. 생명의 무게가 곧이곧대로 피로로 변환되어, 요한을 먹어치웠다.


“이걸 어떻게 버틴 거야······”


세검의 주인을 떠올리며, 희박하게 미소지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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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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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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