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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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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70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6.07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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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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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DUMMY

식사가 끝났다. 밀리엄은 하렌베르크 가의 직계혈통이었다. 그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미뤄두기로 했다.

평소보다 일찍 식사를 끝마친 요한은 레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폐허의 잔해에 걸터앉아, 생각들을 정리했다. 어째서 용사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 알아냈다. 나쁘지 않은 진전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언사에 사용된 표현들로부터 뜻과 의미를 조합해서 세워낸 가정으로 알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려나요. 당신이 저를 불러내는 날이 오다니.”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뜨는데.”

“그게 재밌는 거잖아요.”


영문 모를 농담을 하며 레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요한의 곁에 붙어 앉았다. 그리고는 허공에 뜬 발을 동동 굴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궁리하던 도중, 레나가 먼저 물어왔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뭐죠? 고백은 아닐 테고······”

“왜 알려주지 않은 거야.”

“서프라이즈가 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믿어주실 건가요?”


요한은 대답을 망설였다. 사람의 마음은 결심한 바와 다르게 움직이는 때가 있다. 만일 그녀가 자신을 속이려 한다면 속아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정작 때가 되니 자신이 없었다. 믿겠다고 한다면, 그녀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셈이었다.


“믿으라면 믿겠어. 하지만 나는 기계도 인형도 아니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 언젠가 너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리고 때가 되면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고, 협박하시는 건가요?”

“강제하지는 않아. 그리고, 네 목적이 인류를 멸망시킨다 같은 극단적인 것만 아니면 다소 불량하더라도 이루어줄 셈이야.”

“그건 듬직하네요.”


레나가 뛰어내렸다. 어디로 가는가 싶더니 브래드의 앞에 가져온 고기를 내려놓았다. 주인과 고기를 살갑게 반기는 걸 보면, 늙어도 개는 개였다.

레나는 자신의 개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잘 있었냐며 안부를 묻는 걸로 보아, 대화하고 싶지 않는 모양이었다.


‘민감한 주제였나.’


요한은 뒷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목적을 알려달라기에는 시기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바심을 낸 것 같았다. 밀리엄이 하렌베르크 가의 후계였다는 것을 감추었다는 사실에 실망이라도 느낀 걸까.

지금의 요한은 한 마디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레나를 만나고, 아카데미에 들어와 노엘과 밀리엄을 만났다. 그러는 사이 잃어버렸던 감정들이 제법 돌아왔다고 실감했다.


‘나답지 않아.’


조금 진정하기로 했다. 평소의 무뚝뚝한 자신으로 돌아왔다. 레나가 무엇을 숨기건 신경 쓰지 않는다. 시키는 일을 하면 그만이라고, 그간의 비뚤어졌던 사고방식을 되돌렸다.


“할 말은 그걸로 끝인가요?”

“일단은.”


거짓말을 했다. 하는 말이 짧으니 그나마 쉬웠다.


“요한. 기분 나쁘실지도 모르지만, 한 마디만 해도 될까요. 악의는 없으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주시고요.”

“글쎄, 자신은 없는데.”

“긍정으로 받아들일게요.”


레나는 한 호흡을 쉬고 말했다.


“귀여워요. 당신은.”

“응?”


요한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당체 이해하지 못할 표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렇게까지 뜬금없으면 당연 험담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녀가 말을 하기 이전 악의가 없다는 전제를 깔아놓지 않았더라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금 과장된 표현이다. 레나에게 무력으로 무언가를 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미안, 의미를 모르겠어.”

“그럴 줄 알았어요.”


레나가 쿡쿡 웃었다.


“그래도 알려주지는 않을 거예요. 남들한테면 몰라도.”

“알아서 생각하라는 거야?”

“무시해도 좋고요.”


요한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묻어두기로 했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알게 되리라. 그러니 지금 당장 머리를 앓을 이유는 없었다. 귀엽다는 말이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건 아닐 테니까.


“이제 가야겠네요.”

“그러게.”


레나는 브래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일어섰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기약을 남기며 걸음을 떼었다. 요한은 조용히 그 뒷모습을 따랐다.

만일 그녀가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 극단적인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은 그녀에게 설득될 수 있을까? 아니면 최후의 순간에 그 목숨을 끊어놓는 게 가능할까?

어느 하나 정해놓지 못한 채로 둘째 날의 수업이 시작됐다.


...


“좋은 아침이에요. 노엘 씨.”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노엘은 아침부터 기운찼다. 줄어들 줄을 모르는 목청이며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경례까지 쉴 틈 없이 연발하는 그녀에게 체력낭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부터 무한한 것을 쓸데없는 곳에 쓴다고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낭비라기보다는 배출에 가까웠다.


“셀리카 선생님은 아직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늦잠이라도 주무시는 걸까요.”


레나의 그 말은 어느 시점까지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대략 30분이 지나고, 삐친 머리의 셀리카가 운동장을 후다닥 가로질러 뛰어올 때에는 모두가 레나의 예지력에 감탄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

“그렇지 말입니다!”

“이게 아닌데······?”


레나는 곧바로 진짜일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왠지 모르게 노엘은 곧바로 믿지 않고 의심어린 눈초리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며 레나를 곤란하게 만들고서야 관심을 거두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다가 넘어져서 좀 늦었어요!”

“넘어진다고 해서 30분이나 늦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요한 학생! 숙녀의 사정이란 게 있는 법이랍니다!”

“그렇군요.”


요한은 납득했다. 셀리카는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와 노엘은 불문에 부치기로 한 모양이었다. 둘 중 하나쯤은 대신해서 지적할 만도 했으나, 이해했다는 듯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소외된 느낌. 하지만 숙녀의 사정이라 하니 물어볼 수도 없었다. 요한은 관심을 거두기로 했다. 약간의 호기심이 남아있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런고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어제 알려드렸던 이론대로 소울웨폰의 구현화 방법을 배워볼 거예요.”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지 말입니다!”


어라이게아닌데. 셀리카가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다잡았다. 소울웨폰의 구현화를 이론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감각만으로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그녀의 교직생활에서도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천재가 셋 있을 뿐이라고, 그녀는 최면 아닌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며 진정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이 사람, 정말 교사로 놔둬도 되는 걸까.


“입학하신 여러분들은 모두 소울웨폰에 대한 자질을 측정하셨지만, 전투능력은 평가받지 못하셨죠?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종합전투능력평가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평가 결과에 따라 약점은 보충, 강점은 특화하기 위해 개개인의 적성에 따라 차별화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니 최선을 다해달라고 셀리카는 덧붙였다.

레나가 손을 들었다.


“자질을 넘어서는 전투력을 지닌 사람은 어떻게 되죠?”

“물론 그대로인 건 아니에요. 본인이 지닌 자질보다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닌 학생은 당연히 가등급이 올라갈 거예요.”

“들으셨죠, 요한?”


고개를 끄덕였다.


...


병과 운용 능력을 측정할 때였다.

나는 뭘까. 셀리카 유니아리스는 생각했다.

일단 태어났다. 그리고 자라왔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소울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럭저럭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A등급 턱걸이에 성공했고, 노예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럭저럭이라 표현했을지라도 당시의 본인은 필사적이었다. 다만, 남들 또한 필사적이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기에 그런 표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자신은 조금 재능이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했을 뿐인 범인(凡人)에 불과하다고. 지금도 그렇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 때문에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만심이 없다. 때문에 질투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일지라도, 시기하지는 않는다. 않을 터였다.


-카앙! 카앙!


목도가 부딪혔다. 격돌이라는 표현이 보다 가까울지 모르겠다. 맞닿을 때마다 팔이 꺾이고, 중심이 무너진다. 흘리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불규칙적으로 휘어지는 그 검의 궤적은 마치 돌풍과도 같아서 예측할 수가 없다. 어디서 불어올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때그때 직감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

불안하다. 대체 뭔데.


“감이 좋으시군요.”

“윽······!”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다음 일격이 날아온다. 순수한 칭찬이 비아냥으로 들린다.

이상하다. 분명 자신은 교사다. 그리고 상대는 학생이다. 본래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소임이지 않은가! 하지만 되려 학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뭘까.

진짜로.

나는 뭐지.

얘는 또 뭐고.


“제게 집중하시죠.”


검이 가속한다. 아직도 진심이 아니었던 건가? 이제는 감으로도 포착이 불가해졌다. 마구잡이로 막아낸다. 팔이 저릿하다. 잡념이 사라진다. 의식이 응축된다. 한계를 넘어서는 감각. 성장이 느껴진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앙!


뭐야 이거 말도 안 돼.


-우지끈!


목검이 부러졌다. 셀리카는 질끈 눈을 감았다.


-후웅!


거센 바람이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부르르 떨며 눈을 뜨자, 목전에 멈춰선 검신이 보였다. 철퍼덕 넘어졌다. 흙바닥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요한이 검을 거두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호흡이 멈춰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순환되지 않은 공기가 하얀 입김이 되어 푸하앗 터져나왔다. 겨울도 아닌데.

그 사이 요한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핏 보면 구름에 혼을 빼앗기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토록 거친 공방을 주고받았음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말을 잃었다.


“대체, 정체가 뭐죠······?”


셀리카는 물었다. 그리고, 마치 그 답을 생각해두고 있었다는 듯 요한이 답했다.


“패잔병입니다.”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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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3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7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2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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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0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5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6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1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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