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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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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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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글자수 :
9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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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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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4

DUMMY

“노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말머리를 돌렸다. 물음을 당하기가 두려워 궁금하지도 않은 사실을 물었다.

1위 무관은 잠시간 요한을 훑어보았다. 그의 담담한 시선을 묵인하고, 요한은 답을 기다렸다.


“좋은 몸을 가지고 있군. 실례가 아니라면 등을 보여줄 수 있겠나?”


다시 한 번 화제가 돌아갔다. 요한은 불만을 품지 않았다. 서로 한 번씩 화제를 바꾸었으니 공평하다면 공평했다.


“초면에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그대가 어떤 인간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라네.”

“그걸로 혐의가 풀린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사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요구라면 사양하고 싶군요.”

“내 오랜 지론이네. 전사의 삶은 등에서 우러나온다고 말이네.”


곰 같은 인상이 씨익 웃어보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혓바닥이 씁쓸해지는 미소였다. 팔짱을 끼고서는 악의는 없으니 안심하라고 덧붙이는 그였다.

못 미더운 사람은 아니리라. 노엘의 광분을 막아선 것도, 포박을 자력으로 풀어낸 일을 불문에 부친 것도 그였다.

일단은 빚이 있었다. 등을 보여줄 뿐인 간단한 요구라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요한은 한 팔로 옷들을 끄집어 올렸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1위 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오지 않고 제자리에서 지켜보았다. 수많은 자상이 남아있는 등이었다. 맨살을 남겨두지 않은 난도질의 위로 화상이 덧씌워져있었다.

등 뒤의 상처는 무사의 수치라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그것은 찌질이의 개소리라고, 요한의 등을 바라보며 남자는 생각했다.


“멋진 등이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입은 상처들이야. 강인하고, 올곧아. 수많은 전사들의 등을 봐왔건만, 이 정도까지의 거물은 처음일세.”


허허. 억지로 낸 웃음소리가 귓가를 지나갔다.


“이제 됐습니까?”

“그래,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대를 믿도록 하지. 그대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과신은 독입니다.”


뭉쳐올린 옷 끝 내려놓으며 요한은 충고했다.


“꼭 녀석처럼 말하는군.”

“녀석?”

“아무것도 아닐세. 내 친구가 생각나서 말이야. 그 놈에게 자주 듣던 잔소리였네.”


회상에 잠긴 목소리. 모닥불에 땔감 넣듯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전우를 잃은 병사였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게 되는 것은 전쟁을 올바르게 끝마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리라.

한 층 복잡해진 심정을 끌어안으며 요한은 또다시 자책을 삼켰다.


“아직도 이 세계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나보군요.”

“사람이 있는 한, 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군이라는 집단은 어디서나 건재하지. 그나저나 그대는 제법 과거적인 말투를 쓰는구먼.”

“입버릇입니다.”


가볍게 둘러댔다. 거짓이 혀에 익어갔다. 솔직한 성격을 늘어가는 말솜씨로 덮어 가리니 어딘가 불안해졌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의구심을 품은 순간, 레나의 심정을 조금 이해한 것 같았다.


‘지킬 수 있는 말이었던 걸까.’


조금 불량하더라도 그녀의 바람을 이뤄주겠다고, 내뱉었던 약속은 지킬 수 있었던 걸까. 망설인 탓에 실수를 저지르거나 양심적으로 거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둘 중 어느 하나는 저질렀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저는 언제쯤 풀려날 수 있을까요?”


1위 무관에게 물었다. 미웠던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나는 이토록 변덕스런 사람이었던가. 변덕이라기에 지나치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거두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도 되겠나?”


제대로 된 답변이라면 이상의 심문은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덧붙이는 1위 무관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물어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어떻게든 속여 넘겨야만 하는 것을 물어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떻게 포박을 풀 수 있었는지, 어째서 맞지도 않을 의자에 팔을 뻗었는지 궁금하군.”


예상대로의 물음이었다. 요한은 준비해둔 거짓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군에서 배웠습니다. 보통 병과와는 다른 특수전력이었기 때문에 갖가지 험난한 훈련들을 때려박혔죠. 포박을 빠르게 풀어낼 수 있었던 건, 그 잔재입니다.”


우선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거짓은 그 끝에 섞어넣었다.


“팔을 뻗은 이유는 노엘에게서 짙은 살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방에서 빠져나올 구실을 만들려 했었습니다.”


눈동자를 주시하며 요한은 말했다. 잠잠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혼탁한 감정들이 거짓에 동반된 불안과 죄책감을 수면 아래로 잠가놓았기에. 그저 직시하는 것으로는 진위를 가려내지 못했다.


“흠. 알겠네.”


코를 울린 1위 무관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겨놓고 방을 나섰다. 이윽고 무관은 팔찌처럼 생긴 금속을 들고 돌아왔다. 요한에게 그것을 건네며 자신의 손으로 차달라고 부탁했다.


“이건 뭐죠?”

“나는 자네를 믿네. 하지만 그대로 돌려보내서는 노엘 녀석이 난리를 피울 테지.”

“감시장치입니까. 처음 보는 형태군요.”


신기한 물건에 관심이 돌아갔다. 무겁던 감정들이 짧은 순간 잊혀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감시장치와는 사뭇 다른 형태와 사용법에 호기심을 느꼈다. 과거의 감시장치란 대상의 주요내장에 부착시켜 강제적인 제거의사를 감지하면 폭발하는 형태였다.


“자네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


요한을 바라보던 1위 무관이 말했다.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으면서도, 열 살 먹은 우리 아들보다 순진해보이기도 하니.”


무관이 허허 웃었다. 요한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자신이 순진하고 철없는 이유는, 아마 평범한 이유가 아닐 것이다. 전장에서 올바른 만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입었기 때문도 아닐 것이다.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고칠 수 없는 단점을 남이 지적한다 해서 어쩔 도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귀담아 들어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반발심만 유발하는 충고를 흘려들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요한이란 인물은 심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성숙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어린아이일 것이란 불안은 버리지 못한다.

이미 '죽은’ 인간이기에.


...


처음으로 겪은 죽음의 기억은 혼탁했다. 애매해서 떠올릴 겨를도 없이 잊혀져갔다.

순수한 영혼에게 죽음을 인지시키는 실험이라고 했던가. 어렴풋이 엿들은 말은 뒤늦게 추측한 망상에 가까웠다.

알 수 없는 관들이 뇌에 들어오고, 날카로운 수정들이 죽지 않을 만큼 박혔다. 레버가 내려가고, 눈앞이 깜깜해질 즈음에 버티지 못할 한기가 온몸에 휩싸였다.

암전이 된 세상 속에는 앞을 더듬을 팔도, 발버둥 칠 다리도 남지 않았다. 무한한 허무에 잠겨 어떠한 사고도 해내지 못한 채로 멍하니. 뚜렷한 정신만을 유지한 채 존재했다.

점차 희미해지는 감각이 기세를 더하고, 움직일 수 없었던 나의 무언가가 소실되어갈 때. 비로소 두렵다는 감정을 느꼈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며 애원한 것은 죽어버린 영혼을 떠안고서 눈을 뜬 순간이었다.

흐릿한 청각이 따가운 환호성을 가로막았기에. 깨어난 나는 나를 죽인 흰 가운들의 얼굴도, 이름도 담아내지 못하고 곤히 잠들었다.

그것이 첫 번째 죽음에 대한 모든 기억. 아니, 모든 망상이다. 그 어린 삶은 너무나도 탁하고 어두워서 버리는 게 옳다고 무의식은 판단했다.

자신을 생물이라 믿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무의식을 심정을 어렴풋이 헤아릴 뿐. 가루 같은 파편들을 모아놓고, 어딘가로 밀어놓고. 그대로 망각했다.

처음으로 겪은 죽음의 기억은 혼탁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떠올리는 일은 없다. 떠올리려 노력하는 일도 없다.

단지 살아있고 싶은 나는 그것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뒤가 아닌 어딘가로 걸어간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며,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분명 그곳에는 나의 죽음을 보다 혼탁하게 만들어 줄, 다양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


꼬박 새벽을 넘겼다. 미리 자둔 잠이 있어서 크게 졸리지는 않았다. 아카데미에 돌아온 요한은 내부를 방황했다.

레나. 그 짧은 이름이 수없이 머릿속을 메아리치고 있었다. 어디를 가보아도 원하는 모습은 없었다. 특별기숙사의 방문을 두드려도 텅 빈 소리만이 되돌아왔다.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닐까 불안해졌다. 애타는 마음에 가슴을 움켜쥐었을 때, 먼 곳에서 용의 모습이 지나갔다.


“쯧.”


두 시선이 서로를 포착하자, 라일은 혀를 찼다. 가볍게 얼굴을 찡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지 못하는 어딘가를 향해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살며시 따라붙어 미행했다.


-쐐액!


불쑥 솟아난 검이 한 자루 날아들었다. 가벼운 뜀박질로 피했다.


“그 이상 따라오면 죽이겠다.”

“물어볼 게 있어.”


대화는 성립되지 않았다. 경고만을 남겨둔 라일은 조용히 새벽의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홀로 남은 요한은 잠시간 서있었다. 붕대에 싸인 팔을 한 차례 바라보았다. 툭툭 부러진 팔을 두드렸다. 잦아들었던 통증이 미미하게 되살아났다.

부러진 것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명 없는 몸을 혹사하기란 꺼려졌다.

그럼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조금 무리를 해보기로 했다. 막무가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라진 기척을 뒤쫓았다.


“죽이겠다고 했을 텐데?”

“물어볼 게 있어.”

“꺼져라.”


매몰찬 거절이었다. 허공의 물결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물러서기만을 강요하는 그녀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야 할까. 머지않아 지나치지 못할 화제를 떠올렸다.


“남자를 싫어한다고 들었어.”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건, 너의 아버지인 에하르벨리크(하늘을 다스리는 용) 때문이야?”


침묵. 사방을 짙은 적의로 물들이며 라일은 돌아섰다. 찢어진 눈동자가 매섭게 벌어져 쏘아보았다.

눅눅해진 공기에 숨을 내뱉으며, 요한은 평정을 유지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을 그녀를 위해 앞서 말해주었다.


“한 번이지만 만난 적이 있어. 용을 본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서 기억나는 것도 제법 많아.”

“같잖은 소리를!”


아무래도 거짓말이라 믿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검이 날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거짓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제대로 짚었다고 확신한 요한은 덧붙였다.


“성질 좋은 녀석은 아니었어. 상당한 호색한이었지. 특히나 인간족의 여성을 선호했고, 여자를 한 번 쓰고 버리는 노리개로 봤었어.”


너 같은 사람 많아. 요한은 무심코 내뱉으려던 사족을 삼켰다. 불필요한 자극이었다. 양심적으로도 거부감이 들었다. 이 말만큼은 결코 해선 안 된다고, 이성마저 가로막고 있었다.


-터억.


박차고 달려온 라일이 멱살을 붙잡았다. 한 손만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괴력에 번쩍 몸을 들어올려졌다.


-퍼걱!


공중에서 기울어진 몸이 등에서부터 내리꽂혔다. 거센 충격이 의식을 쥐어뜯었다. 입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터져나왔다. 공기인지, 피인지도 모를 무언가를 토해내며 쉬어지지 않는 숨을 헐떡였다.


“말해.”


한 가닥의 목소리가 미간에 떨어졌다. 한기로 이루어진 비수였다. 통증으로 달아오른 전신에 싸늘하게 퍼져나갔다.


“말하라고!!”


라일이 절규했다. 말을 하라는 요구와 달리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그녀의 주먹은 붙잡은 몸을 세차게 뒤흔들었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간신히 들어올린 손으로, 라일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이성을 되찾은 그녀에게 어중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냥은 안 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3 B둘기
    작성일
    21.06.15 06:18
    No. 1

    이번에 연재하는 글은 가볍고 재밌게 쓸 거야!! 라고 다짐했지만 불과 20화도 채우지 못하고 묵직해져버린 건에 대하여.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B둘기
    작성일
    21.06.15 06:19
    No. 2

    만들고 보니 주인공 성격이 '찐'이었습니다. 짜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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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8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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