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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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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94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21 23:59
조회
64
추천
2
글자
9쪽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DUMMY

-철컹!


커다란 자물쇠가 입을 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밀리엄은 남은 잠금장치들을 능숙하게 풀어나갔다. 둔탁한 해제음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이제 들어오시면 됩니다.”


오랜 세월 굳어있던 문고리를 돌리며 밀리엄이 가볍게 손짓했다.

밖에서 잠기는 구조,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지 않는 밀리엄 본인을 바라보며 요한은 멈춰있었다. 의심이란 언제든 합리적인 법이었다.

마침 적당한 일침이 떠올랐다.


“옛 왕조가 문 뒤의 암살자를 살피기 위해 만든 게 레이디 퍼스트야. 쓸데없는 격식은 집어치우는 게 좋아.”

“헉······! 그건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깍듯하게 몇 번이고 사과하는 밀리엄이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라던가 용서해주십시오, 라던가. 표현을 바꾸며 온 세상의 사과를 긁어모으는 그였다.

어째서인지 살려달라는 애원도 섞여있었으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안전하니 들어오셔도 됩니다!”


방안으로 들어간 밀리엄이 말했다. 겁을 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건만, 그의 목소리는 처절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진짜예요?”


옆에서 레나가 속닥였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자신이 용사로서 활동했던 시기에는 그러했다. 전쟁터에서 쓸모 있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지뢰밭에 여자와 아이를 먼저 보냈다는 유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좋지 않다는 건 똑같았다. 강자를 살리기 위해 약자를 희생시키는 생명의 착취. 요한은 단 한 번도 온당하다 여긴 적이 없었다.


“지금은 의미가 많이 바뀐 모양이지만.”

“의심이 지나치긴 했어요.”


저벅저벅 걸어들어갔다. 레나는 그 뒤를 따라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큼지막한 수정 덩어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외의 사물은 보이지 않았다. 붉은 비단을 홀로 차지한 수정은 방안의 유일한 사물이었다.


‘투영 수정.’


요한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닿은 생물의 영혼을 투영하여 비추는 특별한 결정체.

좋은 기억은 없었다.


“이곳에 손을 올리면 소울 마스터로서의 자질을 측정하실 수 있습니다.”


설명과 함께 밀리엄은 손을 올렸다. 그러자, 투영 수정에 일렁이는 불꽃이 깃들었다.

눈동자의 색을 닮은 푸른색의 불꽃. 그러나 그것은 그의 손바닥보다 커지지 못하고 크기를 유지했다.


“노력가구나, 너.”

“아하하, 과찬이십니다.”


겸손을 떨면서도 헤벌쭉 웃는 밀리엄이었다.


“무슨 급이야?”

“E등급입니다.”


헤에. 레나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실력주의인 이곳에서 E등급으로 학생회장이라니, 대단하시네요.”

“아하하하핫! 아니요, 아닙니다! 재능이 없으니 그만큼 노력하는 건 당연하지요!”


입이 귀에 걸렸다. 조금만 더 올리면 찢어져 피가 나지 않을까. 이제는 얄팍한 허울에조차 겸손이 남아있지 않았다.


‘칭찬에 약하군.’


요한은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밀리엄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슬쩍 시선을 레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쿡쿡 웃고 있었다.

절대로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앗! 그렇습니까!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도 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밀리엄이 손을 떼고 물러났다. 투영 수정을 헤엄치던 작은 불꽃은 조금도 지나지 않아 흩어졌다.

비어버린 수정을 향해 레나가 다가갔다. 망설임도, 기대도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손길.

요한은 그녀가 진즉에 소울웨폰을 다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어오른 흑화가 폭발적으로 투명을 먹어치웠을 때에는 제법 놀라웠다.


“이건······!”


모처럼 흥분을 가라앉힌 밀리엄이 기겁했다. 진정할 줄을 모르는 사내였다.


“A급, 아니······! S급······!”

“우와, 정말인가요? 와아.”


레나가 조신하게 두 손을 모으며 나지막이 환호했다. 자애롭고도 겸허한 미소를 지어보인 레나의 발걸음은 변함없이 차분했다.

유일하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그녀의 어깨만이 희미하게 올라갔다.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칭찬 한 마디 정도는 원하는 기색.


“대단하네.”

“빈말이라도 기쁘네요. 고마워요.”

“빈말일 리가 없잖습니까! 이건! 인류의 희망이라고요! 같은 세대에 S급이 둘이라니!”


밀리엄이 호들갑을 떨었다. 몇 번이고 S급을 입에 담으며 레나를 찬향했다. 그럴 때마다 레나는 난처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지칠 줄 모르는 밀리엄의 입은 그녀마저 지치게 만드는듯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요한님께서!”

“됐어.”

“엥?”

“됐어, 나는.”


요한은 단칼에 거절했다.

수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저리가 났다. 투영 수정과는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요한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다름없는 물체였다.

지금 이렇게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용기를 낸 것이었다.


“하지만, 측정을 거부하시면 규정상 F급을 배정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면 돼.”


침묵이 지나갔다. 밀리엄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규정대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대신, 마음이 바뀌신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주시죠.”

“고마워.”


짧게 인사하고는 방을 나왔다. 밀리엄은 아직 교내를 안내하지 않았으니 기다려달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잠자코 기다렸다.


“어째서 측정하지 않으신 건가요?”


요한을 따라나온 레나가 물었다. 평소대로의 미소.

이번에는 숨길만한 사정이 아니었다. 그냥 말해버리기로 하고 입을 열었다.


“군에 입대했을 때, 투영 수정으로 자질을 측정했던 적이 있어.”

“어떻게 됐는데요?”

“깨졌어. 그리고 당시의 참모한테 사형선고를 받았어.”


그러나 그것만으로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던 어느 오지랖 넓은 사령관의 덕에 목숨을 부지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점차 성장하여 용사가 되었다. 전장에서의 활약이 늘어났고, 경험과 함께 명성을 쌓아갔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왕궁에 초대를 받았다.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며 전장에서 삶을 살아가는 용사들에게 안락한 휴식을 제공해주자는 왕족의 취지였다. 용사들의 사기진작과 민심의 안정화라는 의도이기도 했다.


“그렇게 왕실에 불려갔지.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왕족과 교류회를 가질 때였어. 누군가가 말하더라고, 저 용사는 군의 투영 수정을 깨뜨릴 정도로 강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뭔가 불길한데요.”


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국왕이 호응했지. 마침 왕실에는 건국시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재보가 하나 있다고.”


그것은 거대한 수정이었다. 왕가의 찬란함을 상징하는 국보 중의 국보이기도 했다. 성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쩌면 그보다도 고결한 왕실의 기둥.

요한과 국왕, 그리고 수많은 귀족들은 국보라고 불리는 투영 수정 앞에 섰다. 모두가 바라보는 앞, 요한은 긴장을 억누르고 수정에 다가갔다.

모두가 침을 삼키고, 가슴을 졸이는 순간.

마침내 요한은 수정과 맞닿았다.


“그렇게 국보 하나가 사라졌어.”


-툭!


자물쇠가 떨어졌다. 옆을 바라보니 밀리엄이 서있었다.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다니······! 이토록 배려심 넘치는 당신을 수상하게 여긴 제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습니다······!”

“요한, 그럼 교내를 둘러보죠.”

“그게 좋겠어.”


처연하게 두 무릎을 꿇고 본심을 털어놓는 밀리엄을 뒤로했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요한! 제가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선동과 날조를 마다하더라도 당신을 S급에 앉혀놓겠습니다! 반드시! ”


‘하지마, 제발······’


부담스러워서 속이 거북해질 지경이었다. 레나가 택한 무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백 번 수긍했다.

이윽고 거리가 멀어지자, 버리지 말아달라며 뛰어오는 밀리엄이었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을 학생회장에 앉혀놓은 걸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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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4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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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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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70 3 10쪽
»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5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7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5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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