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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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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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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6.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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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2

DUMMY

“요한.”


걸어가던 레나는 멈춰섰다. 거짓말이 들켰으리라고는 진즉에 깨닫고 있었을 터였다. 요한은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돌아서는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알려달라는 욕심은 접어놓았다.

그저 간단한 부탁 한 마디를 원했다.


“속아주시겠어요?”


원하는 말이 돌아왔다. 요한은 안심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한은 돌아섰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척을 실어 감추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레나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어색하고도 두려운 감정들이 흘러들어왔다. 심장의 언저리를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감각. 이름은 모른다. 좋지 않은 것이라고만 알았기에 평정을 잃기 전 스스로를 격리했다.

이성과 감정이 괴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당분간은 떨어져 있는 게 좋겠어.’


지금의 요한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조만간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냉정해지자.’


일단 조금 걸었다. 그래도 허기에게는 이길 수 없어서 식당으로 갔다. 평범한 학생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메뉴를 선택할 권리도 없는 그곳에서 말라붙은 빵 하나와 물 한 잔을 배식 받았다. F급에게는 자리에 앉을 권리조차 없었다.

불만은 들지 않았다. 말라붙은 빵을 쥐어뜯을 때마다 괴로움이 비어졌다.


‘완전히는 안 되는군.’


기억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극미량의 감정들이 사이사이 껴있었다. 하지만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하기로 했다. 언젠가 잊혀지리라. 철없는 요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끝없이 도피한 것이었다. 가두고, 죽였다. 그로서 망각했다.

손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내고 교무실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식음과 휴식의 한 때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은 교사라고 다를 리 없었다.


“요한 학생!”


남아있던 셀리카가 벌떡 일어났다. 손을 흔들며 다가와 요한을 잡아끌어 그대로 의자에 앉혔다. 남이 했다면 과장스러웠을 반응인데도 그녀가 하니 왠지 모르게 자연스러웠다.


“안 오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잖아요!”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바구니를 도로 내려놓으며 셀리카가 말했다. 샌드위치와 주먹밥이라는 독특한 조합의 점심메뉴였다. 그것을 저도 모르게 눈으로 쫓게 되는 것은 허기진 생물로서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이리라.

하지만 줄곧 그를 마주보고 있던 셀리카가 그 시선의 행방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거니와, 모르는 척 흘러 넘기는 일은 가능성으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을 사로잡으려면 우선 위장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요리 실력에 자신이 있는 그녀는 환심을 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거 드세요.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거든요. 교무실에 온 기념으로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거짓의 냄새를 맡은 요한은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손때가 묻어버린 음식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냄새로도 독이나 해로운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의심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능을 거스르지도 못했다.

요한은 샌드위치를 덥석 물었다. 정성과 실력이 두루 느껴지는 맛이었다. 터져버린 침샘이 식욕에 박차를 가했지만, 허겁지겁 삼키지는 않았고 절제했다. 의심이 거둬지는만큼 조금씩 갉아먹었다.


“맛있나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조각을 삼킨 요한은 엄지로 입주변을 닦았다. 맛있기는 했지만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최소한의 식사를 했으니 충분하다. 선의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오랜 생각이었다.

시선을 눈앞의 여성에게로 되돌렸다. 셀리카는 요한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입이 비자마자 화제를 꺼냈다.


“저를 부르신 이유는 뭐죠?”

“아, 그건 말이죠. 요한 학생을 교사추천으로 제가 주관하는 B클래스에 편입하고 싶어서 동의를 구하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한은 사색에 잠겼다. 예상외의 용건이었다. 그리고 달콤한 제안이기도 했다. 등급이 높은 클래스에 편입된다면 보다 결전제의 출전에 다가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요한은 곧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이른바 심술이었다. 정작 본인은 눈치 채지 못한 반항심이 이성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원인 모를 감정을 따를 것인가, 레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요한이 고민하는 사이.

셀리카의 정수리에 꿀밤이 직격했다.


“아얏!”


드물게 진지한 눈빛이었던 셀리카가 찔끔 눈물을 머금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출처 모를 고통에 당황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뒤를 돌아보았다.

정장차림의 여교사 한 명이 서있었다. D-3반의 담임이자, 오늘로부터 하루 전 요한과의 대련으로 정신을 잃었던 켈리나였다.


“남의 학생 뺏어가지 마라.”

“그치만 언니!”

“변명은 듣지 않겠다.”


콩. 켈리나가 다시 한 번 꿀밤을 놓자, 셀리카는 입을 꾹 닫았다. 신음을 참으며 울먹이는 모습이 마치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 같았다.


“요한, 어제의 결례는 사과하마. 지금은 너 같은 실력자를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부디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한 차례 고개를 숙인 켈리나가 다가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일반 기숙사의 열쇠였다. 요한은 그것을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사과의 표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바깥에 머문다면 레나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오늘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잔존하는 감정들을 결핍시키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 주에 보지.”

“저 망할 노처녀! 길가다 콱 자빠져라!”


뒷모습이 사라지고서야 쉬익쉬익 입김을 내뱉으며 온갖 저주를 쏟아붓는 셀리카였다.

교무실이 떠나갈 것 같은 언성이었으나, 요한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받은 열쇠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203호. 적혀있는 숫자가 눈에 익었다.


‘노엘 에스카르트.’


아카데미 입학 첫날, 노엘이 받은 열쇠에도 같은 숫자가 적혀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반기숙사가 기본적으로 2인실임을 생각하면 같은 열쇠를 받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2인실이라는 사실만을 두고 보면, 말이다. 하지만 퇴학당한 인원이 셋이라는 것과 세 명의 신입생 중 한 명이 특별기숙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물어도 될까요?”

“당연하죠!”


순식간에 홧김을 가라앉힌 셀리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반동을 버티지 못한 의자가 요란하게 넘어갔다.


“일반기숙사에서 남녀가 합방하는 경우는 있습니까?”

“으음?”


맥락없는 질문에 의자를 일으키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설령 그것이 약혼자라 한들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정학은 피하지 못할 걸요?”

“그렇습니까.”

“예외가 있다면 특별기숙사에 머무르는 S등급의 학생들이겠네요. 그들은 교칙에 의한 제제는 받지 않는데······ 허걱!”


말을 잇던 셀리카는 돌연 마른 숨을 삼켰다. 문득 그녀의 뇌리에 하나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새까만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여학생이 현재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청년의 팔을 끌어안았던 기억. 레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름다운 여학생은 분명 S등급의 자질을 보유하고 있었다.


“야한 짓은 안 돼요!”


새빨갛게 달아오른 셀리카가 소리쳤다. 그새 교무실에 돌아온 교사들과 용건으로 찾아왔던 학생들의 이목이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속셈이 들켜 당황하기라도 한 걸까. 요한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이어지는 정적 속.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질끈 감고 있던 두 눈을 열었다.


“어라?”


그곳에 요한은 없었다.


...


-철컥!


요한은 문고리를 돌렸다. 일반기숙사의 203호실의 내부는 깨끗했다. 아니, 공허하다는 표현이 보다 어울렸다. 가지런히 정돈된 이층침대와 작은 책상. 그 이외의 사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이 머물렀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풍경.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엘 에스카르트가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머무르지 않았다고 믿게 하기 위한 연출이라는 것.


‘소독약 냄새.’


방안을 조사하던 요한은 침대로부터 미약한 알코올 냄새를 맡았다. 의식을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농도였다. 결정적인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층의 침대도 맡아보았다.


‘위에서는 나지 않아.’


누군가가 머물렀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열쇠를 받자마자 찾아온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더 많은 시간이 경과했다면 열린 창문으로 모든 냄새가 빠져나갔을 테니까.

이후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했으나 그 이상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없었다. 벽에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노림수를 파악했으니 나머지는 시간을 때우는 것뿐이었다.

노엘은 해가 지기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깊고 늦은 밤, 요한이 잠들었다고 생각되는 시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짐작컨대 기나긴 밤이 되리라. 수면은 취할 수 있을 때에 취해야했다.


『조금은 스승 노릇좀 하지 그래? 밥만 축내지 말고.』

『알려줄 건 다 알려줬잖아.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요리좀 하지 마.』

『으휴! 고마운 줄을 몰라요.』

『고마울 게 없으니까 그렇지.』


-뻐억!


복부를 강타하는 충격. 명치를 감싸쥐었다. 내장이 뒤섞이는 감각과 함께 꿈에서 내동댕이쳐졌다.

잠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식은땀을 닦았다. 요한은 악몽을 꾸었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옛 제자가 있고, 그녀가 만찬이랍시고 만든 연금술의 정수가 연달아 식탁에 올라오는 절망의 세계였다.

그것은 한때의 일이었다. 과거의 편린. 새로운 것을 떠올릴 상상력은 없기에 이처럼 그의 꿈은 과거를 주로 다루었다.


‘내가 사라지고 어떻게 살았으려나.’


알아낼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전장에서 죽지는 않았을 거다. 어딘가에서 용사의 칭호를 들먹이면서 떵떵거리고 살았을 거다. 그녀의 노력은 분명 보답 받았을 거다.

라일 드래곤하트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너무나도 희박했다. 쓸데없는 미련은 버리기로 하고, 회상을 관두었다.


‘슬슬 오겠네.’


깊고 늦은 밤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잠에 들지 않는 것이 비정상인 시각. 하늘의 달은 중천을 넘어 떨어지고 있었다.

어둑한 방안. 정적에 잠겨들었다. 지긋이 기다렸다.


-철컥!


문고리가 돌아갔다. 스산한 밤공기가 흘러들었다. 쉽사리 열려버린 잠금장치에게 죄는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노엘.”


작가의말

 이번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고부터 가장 어려운 전개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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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2 21.06.10 3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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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4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8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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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4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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