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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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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77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20 00:03
조회
85
추천
2
글자
8쪽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DUMMY

요한은 잠에서 깨어났다. 등을 감싼 푹신한 감촉이 어색했다.

한동안은 누워보지 못한 침대 위. 몸을 일으켰다.

깨닫지 못한 거부감이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곤히 잠든 소녀가 있었다.

검은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옅은 숨을 새근새근 내쉬는 그녀의 손은 요한의 옷깃을 쥐고 있었다.


“우으으······”


요한이 떼어내려 하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눈을 떴다.


“잠든 숙녀의 모습을 훔쳐보다니, 예의 없는 분이시네요.”

“배우질 못했으니까.”

“그런 거라면 봐드릴게요.”


무해하던 표정에 미소가 들어찼다. 잠들어있을 때는 고양이 같았는데, 싱긋 웃어 보이니 악마와 다를 게 없었다.

어쩌면 악마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요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잠들어있었지?”

“이틀이요. 덕분에 혼자 뒷정리 하느라 고생 좀 했어요.”


레나는 풀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했다. 떡이 진 부분을 그대로 놔두는 걸로 보아, 대충 감으로만 하는듯했다.


“그래서, 요한. 아기 이름은 뭐로 할까요?”


레나가 갑자기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뭐······?”

“왜 그렇게 놀라시죠? 남녀가 한 침대에서 잤으니 아기가 생기는 건 당연한데요.”


정적.

요한의 사고가 정지했다. 새하얗게 물드는 머릿속에서 제대로 된 생각이 나올 리가 없었다.

확실히 요한은 레나와 같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즉, 남녀가 한 침대에서 밤을 보냈다는 뜻.


“장난치지 마. 이불이 없었잖아.”


현실도피를 시도했다. 남녀가 한 침대에서 잤다고 한들, 그래. 이불이 없다면 아기는 생기지 않을 터였다. 이불을 덮고,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손도 잡지 않았다. 아마도 잡지 않았을 거다.


“있었어요······ 이불······ 황새가 아기 데려온다고 가져갔죠. 그리고 기억엔 없으시겠지만, 손도 잡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저 때문에······”

“······.”


요한은 마른세수를 했다. 진위를 따져본다는 간단한 절차도 밟지 않고, 그녀가 말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기가 생기다니.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침울한 표정으로 땅을 바라봤다.


“레나.”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너를 싫어하지는 않아. 꽤 예쁜 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성격은 좋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괜찮다고 여기고 있어. 어째서 내 곁에서 잤는지는 물어보지 않을게. 일단 책임도 질”

“아하하핫!”


레나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대며 배꼽을 잡고 넘어졌다. 침대 위를 뒹굴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박소했다.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인데 왜 웃는 걸까. 이해하지 못한 요한은 생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속였구나.”

“아니, 그걸 이제 알아요?! 꺄하하하핫! 진짜 가관이야! 죽을 것 같아!”


데굴데굴 구르며 꺄륵꺄륵 비웃는다. 레나의 발길질에 침대가 들썩였다. 요동치는 매트리스에서 일어선 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없던 이불이 새로 생겼을 리가 없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웃음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조금 시간이 흘렀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요.”


건더기 없는 스프를 앞에 두고 레나가 쿡쿡 웃었다. 이제는 하도 웃어서 배가 아픈지 조심스런 비웃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야속한 요한은 언짢은 시선을 일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철이 들기 전부터 전장에서 살았으니까.”

“그건 좀 슬프네요.”

“동정을 원한 건 아니야.”

“근데 동정이시잖아요.”


정적.


“밥이나 먹자.”


요한은 스프를 떠먹었다. 이상하게도 쓴 맛이 났다.

이후 몇 번이고 레나가 말을 걸어왔지만 무시했다. 이윽고 지친 그녀도 조용히 스푼을 움직였다.


“삐지셨어요?”

“아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삐졌으면서.”

“아닌데.”


실랑이가 반복됐다. 유난히도 긴 식사시간은 안 그래도 밋밋한 스프의 온기를 모조리 빼앗아갔다.

여전히 요한은 가늘게 뜬 눈으로 레나를 노려보았으나, 그녀는 그녀답게 스프를 떠먹을 뿐이었다. 요한이 어떻게 바라보건, 쥐뿔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슬슬 가야겠네요.”


접시를 비운 레나가 화제를 돌렸다.

낚싯바늘의 미끼를 물어버리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지만, 시답잖은 감정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요한은 어리석지 않았다.


“어디를?”

“아카데미요.”


아카데미. 잠시간 중얼거려보았다. 무언가를 배우는 곳이라고는 알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아카데미의 재학생일 것이라는 게 의외이기도 했다. 그녀의 연령을 고려하면, 이상하지 않지만. 그동안의 행적을 살펴보면 악당들의 악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힘들었다.

학생이라 부르기가 이토록 꺼려지는 아가씨는 없지 않을까.


“방학이었던 거야?”

“아뇨, 유감스럽게도 저는 입학을 못해서요.”

“그럼 왜 가는데?”

“입학하러요.”


구태여 알려주지 않고 입을 다무는 레나였다.

제대로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기에, 요한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상황을 예상했다.


“소울웨폰. 그리고 소울 마스터였나, 아마 네가 말한 아카데미는 그와 관련된 것들을 배우는 곳일 테고, 이틀 전의 처리반이라는 녀석들이 그곳의 학생이었다. 대충 이거면 맞지?”

“정답. 추리를 들어봐도 될까요?”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곤 그거밖에 없잖아.”

“그것도 그러네요.”


은근슬쩍 접시가 밀려왔다. 부탁한다는 한 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설거지를 떠맡기는 레나였다.

요한은 군말 없이 능숙한 솜씨로 식기들을 정리했다.


“소울 아카데미는 현재 전교생 250명이 정원이에요. 그 이상은 받지 않죠. 예전에는 더 많았다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정전 이후로 국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긴 마당에 생산성 없는 학생들을 마냥 먹여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빈자리가 필요했다, 인가······”


납득한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섬주섬 모아놓은 식기들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3분도 흐르지 않아 끝나는 가사였다.

접시 두 개와 스푼 두 개. 세제를 살 경제력은 없어서 너덜너덜한 수세미로 몇 번 닦으면 그만.

하지만 요한은 대충 끝내지 않고 성실하게 임했다. 그가 공들여 닦은 식기들은 반짝이며 점심식사를 담고자 하는 의욕을 드러냈다.


‘나쁘지 않아.’


뿌듯함이라는 낯선 감정에 약한 미소가 그려졌다. 노력하는 만큼 깨끗해지는 식기들은 요한에게 묘한 성취감과 함께 일상의 안락함을 전해주었다.


“뭐해요? 준비 안하고.”


방에서 작은 가방을 꺼내온 레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바람처럼 돌아다니며 최소한의 생필품만을 챙긴 다음 문고리를 돌렸다.

깨끗해진 식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요한의 노력이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빨리 와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철컥!


문이 닫혔다. 요한은 남겨진 식기들로부터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적어도 마지막 한 번쯤은 그것들로 점심을 먹고 싶었다.

기껏 열심히 닦아놓았는데, 쓰지도 못하고 버려져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그것들에게서 느꼈던 성취감과 안락함을 차마 잊을 수가 없었다.

끝내 참지 못한 요한은 손을 뻗었다.


“요한.”


밖으로 나오자, 그의 모습을 본 레나의 싸늘한 목소리가 지면을 기었다. 발끝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소름이 돋았지만, 굴하지 않고 식기들을 품에 간직했다.


“뭐.”

“손에 든 그 접시는 뭐죠?”

“전리품.”

“······하아.”


레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사이 요한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설득하고자 했다.


“가는 동안 점심을 먹을 수도 있잖아. 그때 사용하면 어떨까 해서.”

“당신은 정말······”


엉뚱해요.


“나도 알아.”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작가의말

갑자기 분위기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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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3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2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6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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