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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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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76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30 23:29
조회
47
추천
1
글자
10쪽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DUMMY

날이 밝았다.

드르렁거리는 코골이가 시끄러운 탓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피로가 눈꺼풀을 무겁게 짓눌렀다.

요한은 자신의 밝은 잠귀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원망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창고에서 자야하는 것도 아닌데, 스러질 때까지 창을 휘두르다 선 채로 잠들어버린 밀리엄이었다.


“핫! 이곳은!”


요한의 눈총을 한 몸에 받은 밀리엄이 벌떡 기상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째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묻는 걸로 보아,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면서.


“잘 잤어?”


요한은 물었다. 그제서야 그가 그곳에 있다는 걸 깨달은 밀리엄은 화들짝 놀랐다.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이내 상황파악을 끝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밀리엄이었다.


“그럼 됐어.”


요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연하게도, 거울을 보지 않고 지은 그 미소는 여전히 섬뜩했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요한이었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발전으로는 밀리엄을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히익!”


밀리엄이 부르르 떨었다. 그 반응에 요한은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바로 표정을 거두고 평소의 무뚝뚝한 자신으로 돌아왔다.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매일 그렇게 연습하는 거야?”

“뭐, 그렇죠. 저 같은 범인(凡人)이 누군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력 말곤 답이 없으니까요.”


대단하네, 하고 무심코 뱉으려던 칭찬을 집어삼켰다. 분명 이 청년은 그 한 마디에 기세등등해져서는 밑도 끝도 없이 스스로를 떠받들 것이다.

이미 어젯밤 한 번 칭찬했으면 충분했다.


『같은 칭찬 두 번 듣는다고 두 배로 기쁜 건 아니거든?!』


문득 옛 제자의 언행이 떠올랐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그녀의 철권은 요한의 복부에 철저하게 교훈을 새겨두었다. 그 고통의 교훈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같은 칭찬은 두 번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고 있다.


“자! 그럼 힘차게 아침연습을 시작해보죠!”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낸 밀리엄이 기지개를 폈다. 선 채로 잠들어놓고도 지칠 줄을 모르는 사내였다.

노력에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수련법. 진짜 광기란 저런 게 아닐까.

존경을 넘어서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울려주시겠습니까? 혼자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나로 괜찮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밀리엄이 후다닥 수련장으로 달려갔다. 창대를 집어들고는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요한은 부담스런 시선을 등으로 흘려넘기며 모닥불의 남은 불씨를 꺼뜨렸다. 흙으로 덮어 대강의 증거인멸을 마치고, 주위에 떠도는 적당한 나뭇가지를 집어 수련장으로 향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진심이야?”

“제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봐줄 필요는 없다.


“간다.”

“오시죠!”


-휘리릭!


요한의 나뭇가지가 날쌘 바람소리와 함께 허공을 갈기갈기 찢으며 질주했다. 거친 난류의 폭풍이 밀리엄을 스쳐지나간 것은 한순간.


-빠직!


악력을 버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스러졌다. 요한은 부서진 무기를 미련없이 놔주었다.

열여섯 번. 그 이상도 가능했으나, 두 번째 타격에서 반응하지 못하는 밀리엄을 보고는 진심을 거두었다.


‘선 채로 기절했군.’


의식을 잃고도 넘어지지 않는 그 모습은 언제 봐도 대견했다. 그런 감상을 남기며 요한은 손바닥에 남은 나뭇가루를 훌훌 털었다.

이제 곧 아침이었다. 허기진 배가 꼬르륵 울렸다. 어제의 저녁식사를 잊지 못한 요한의 위장은 식당에 갈 때는 반드시 레나와 동반하란 지침을 세워두었다. 지침은 따라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법.


‘레나한테 가자.’


요한은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밀리엄이 기절해버린 이상 더는 어울려줄 수 없었다.

그렇게 어느 이의 의식도 남지 않은 새벽의 수련장. 그 한가운데 놓인 금발의 허수아비만이 쓸쓸하게 기울어져갈 뿐이었다.


...


요한의 위장은 오늘도 가차없이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다. 아침이라고 해서 그 양이 줄지는 않았다.

주방장은 무릎을 꿇었고, 모든 요리사들이 요한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인간 하나의 위장이 초래한 사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식탁 위의 접시들을 세 번이나 갈아치우고서야 요한은 지저분해진 입가를 닦았다.


“원래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식당을 나온 레나가 애써 미소를 되찾으며 물었다. 그 질문에 요한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부터 많이 먹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은 이토록 폭식을 하게 된 것일까.

회상을 거듭하던 도중,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예전에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걔가 요리를 해주겠답시고 매번 산을 쌓더라고. 근데 남기면 죽는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위장을 늘렸지.”

“맛은 어땠나요?”

“정성은 느껴졌어.”


실은 정성만 느껴졌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어린아이가 주먹밥이랍시고 뭉쳐놓은 모래덩어리의 맛. 그러나 어째선지 복부와 뒷목이 서늘해졌기 때문에 목구멍에서 말을 잘라버렸다.

그 녀석은 이제 없을 텐데. 스스로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더는 묻지마.”


덧붙힌 요한은 그대로 입을 닫았다.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아, 하고 탄성을 내뱉고는 쿡쿡 웃는 레나였다. 정말 잘 웃는 사람이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특별반 집합이 몇 시라고 했었죠?”

“9시 반.”


레나는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시침이 아홉을 넘기지 못한 시각이었다.


“아직 여유롭네요. 예정이라도 있으신가요? 차라도 마실까 하는데.”

“노엘한테 특별반 개설을 알려주지 못해서. 잠깐 갔다 오려고.”

“아직도요? 조금 의외인데요.”

“어제 숙소에 찾아갔는데 없었어.”


바로 그 때, 한 가지의 가능성이 요한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설마, 라고 생각했으나 으레 설마라는 것은 사람을 잡기 마련이었다.

노엘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단번에 납득해버린 요한은 레나에게 확인할 게 있다 전하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설마 아직까지 있지는 않겠지.’


출처 모를 불안을 떠안고 도착한 정원.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노엘 에스카르트가 뻗어있었다. 꽃밭에 머리를 처박고는 누군가의 정성으로 자라난 꽃들을 뒹굴어 뭉개고 있었다.

처참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요한은 오랫동안 멀뚱히 서있었다. 용사의 강인한 정신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참상이었다.


“에헤헤, 할무니 더는 못 먹지 말입니다······”


머리로 땅을 파헤치며 흙을 맛있다며 머금고 있는 노엘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지렁이와 뿌리로 이루어진 흙덩이를 삼키려고 들었을 때에야 요한은 겨우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일어나. 먹지 말고. 제발.”


무방비한 여성에게 손을 대는 악취미는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요한은 노엘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흔드는 것만으로는 눈을 뜨지 않는 그녀였다.

어쩔 수 없이 입안의 오물이라도 빼내자고 판단했다. 턱을 잡고 입을 벌리려는 그 순간.


-꿀꺽!


넘어갔다.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아, 아아아······”


요한은 절망했다. 스스로를 한탄하고, 수없이 많은 자책을 거행했다. 아득하니 회고가 스쳐지나갔다.

어째서 자신은 그녀를 방치했을까. 어째서 수업이 끝날 때면 일어나리라 자신했을까.

너무나도 어리석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우웁! 우웨에에에엑!”


번쩍 정신을 차린 노엘이 무지개를 쏟아냈다. 문장으로는 표현해서 안 될 광경이었다.

요한은 그만 눈을 돌렸다.


“허억······! 허어억······!”


속을 게워낸 노엘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흙투성이 군복으로 입가를 닦아내고, 상황을 파악하려는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이 쏟아낸 무지개를 보고는 남은 것도 없는 위장을 또 한 번 게웠다.

이후 몇 번인가 우웩,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서야 노엘이 진정했다.


“죽는 줄 알았지 말입니다······!”

“여러모로 미안.”

“요한 도련님······?”


어째서 그가 이곳에 있는가. 노엘은 그것을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할 말을 했다.


“그러게 꿈 아니라고 했잖아.”

“아.”


머릿속에 떠돌던 꿈의 편린이 이제야 현실과 맞춰진 노엘이었다.


“괘, 괜찮습니다! 군에서도 자주 있던 일이라 익숙하지 말입니다! 흙, 많이 먹어봤습니다! 괜찮습니다!”


거짓말이 하나도 없는 건 어째서일까. 빳빳하게 곧추선 노엘은 괜찮습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호박색 눈동자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현실을 부정했다.

당분간 노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신입생들을 위한 특별반이 설립됐어. 집합은 9시 반이니까, 씻을 시간은 남아있을 거야. 교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오면 돼.”


그리고.


“잊어달라고 하면 잊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

“괜찮습니다!”

“정말이야?”

“괜찮습니다!”


그것은 노엘이 아니었다. 똑같은 말을 무한으로 반복하는 밀랍인형이었다.

언젠가 진짜 노엘을 만나게 된다면 다시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정해두고, 요한은 걸음을 옮겼다.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다는 걸까.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이해할 수 없었다.

요한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작가의말

식사 중이셨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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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드래곤하트 21.06.04 4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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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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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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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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