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0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17 14:28
조회
96
추천
1
글자
10쪽

좋은 일-2

DUMMY

밤이 깊어졌다.

요한의 앞에는 벌거벗은 남자가 묶여있었다. 털이 덥수룩한 가슴을 쉬지 않고 감시한다는 건 생각보다 속이 거북해지는 일이었다.

메스꺼운 위장을 달래고자, 주기적으로 따듯한 물을 마셨다.


“땡전 한 푼 없네요. 옷은 좋은 걸 입고 다니면서.”


벗긴 옷의 모든 주머니를 뒤져본 레나가 실망을 토로했다. 기운이 빠졌는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는 그녀였다.


“돈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니까. 받아서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거나,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겠지.”

“요한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는 아닐 거라고 보는데. 옷이 너무 좋잖아요. 찢어지지만 않았으면 중고로 팔아도 꽤나 벌었을 거예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찢어질 걸 알면서 비싼 옷을 입고 올 이유는 없었다. 옷을 몇 번이고 새로 살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차라리 대리인을 고용하는 게 수지에 맞았다.

얻어맞는 걸 좋아하고, 낭비를 즐기는 변태가 아니라면. 원한을 품은 노숙자들을 데리고 수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요한은 동의했다. 하지만 그것이 달갑지 않았는지, 삐죽 입술을 내미는 레나였다.


“이래서는 내기가 안 되잖아요. 하고 싶었는데.”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어.”

“재미없는 사람.”


대꾸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깊게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몇 번이나 들었던 말.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요한은 여전히 재미없는 사내였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절해계실 겁니까?”


화제를 돌리기로 한 요한은 컵 안의 물을 홀짝이며 벌거숭이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의식이 돌아왔음에도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리 연기에 타고났다 한들, 요한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진정으로 기절한 사람을 수없이 봐왔고, 기절을 연기하는 자는 그 이상으로 봐온 눈이었다.

형편없는 연기자의 발버둥으로는 요한을 간과시킬 수 없었다.


“으흠, 꽤나 고집이 강하신 분이네요.”


들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에게 레나가 다가갔다. 그녀의 손에는 주전자가 들려있었다.

가혹한 처방이라고 생각했지만, 요한은 말리지 않았다.


“솔직해지는 마법을 걸어드리죠.”


레나가 남자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열었다. 분홍빛 입술에서 쿡쿡 새어나오는 웃음이 몹시 자연스러웠다.


“자아, 들어갑니다.”


일말의 자비도 없이 주전자를 기울였다. 굵은 물줄기가 콸콸 쏟아졌다. 뒤로 젖혀진 남자는 물을 머금지 못하고, 들어오는 족족 집어삼켰다.


“커헉?! 어억!! 허어억······!”


급류를 들이킨 남자가 몸부림쳤다. 거친 힘에 버티지 못한 의자가 그를 끌어안고 뒤로 자빠졌다.


-쿵!


깊은 밤에 어울리지 않는 울림. 지면에 머리를 부딪친 남자는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꺽꺽 죽어갔다.


“숨 쉬어요, 숨. 그러다 진짜 죽어요.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질식하는 그의 뺨을 후려치며 레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갈수록 찢어지는 입이 섬뜩했다.

광기어린 미소. 거짓이 아니기에 두려웠다.

요한은 슬쩍 시선을 기피했다.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허어억······! 허억······! 씨X년······!”

“서로 귀찮은 일 없도록 하자고요. 아시겠죠?”


남자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마다 누렇게 범벅된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술을 넘고 턱에 맺혔다.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놀라운 양이었다.


“저한테 감사하셔야겠네요. 비염 치료해줬으니까요.”


레나는 남자의 옷으로 콧물을 닦아주었다. 닦는다기보다는 넓게 바르는듯한 동작이었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요한이 없었다면 빚을 갚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범해졌을 가능성이 컸다.

힘과 명목을 지닌 강자의 야만함을 요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게, 돈 줬을 때 이자타령 하지 말고 떨어졌어야죠. 어떻게 일주일에 10퍼센트가 붙어요?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제 더는 옷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오물덩어리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레나가 말했다.


“요한,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남자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자신의 콧물로 팩을 한 남자와 마주보는 처지가 되었다.

목없는 시체에도 멀쩡했던 비위가 울렁거렸다.


“좋아요. 그럼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

“······데이브다. 맥스터 상회의 수금원이지.”

“그게 다인가요? 제가 알기론, 암시장에서 마약거래 중개도 하고 있으시던데요.”


테이블에 걸터앉은 레나가 요염하게 다리를 꼬았다.


“솔직하게 말해요. 멀쩡하게 돌아가고 싶으면. 내일이 아내 기일인데, 꽃 한 송이는 갖다 줘야죠. 안 그래요?”


데이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건 순식간이었다. 손끝까지 창백해진 그는 당황조차 하지 못했다. 입을 벌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면 오히려 침착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듯했다.


“네년이 어떻게······?”

“그건 영업비밀이랍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레나였다. 요한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지긋이 보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흑색의 롱스커트. 그 전부가 시커먼 속내를 투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성이 사악한 건지, 사악해진 건지······’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녀에게는 타인을 불쌍하게 보이도록 하는 재능이 있었다.


“자, 그럼 처지도 깨달으셨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살려만 준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저는 거짓말 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까요.”


레나는 요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리다고는 할 수 없는 손이었다.

요한은 어깨에 감기는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훌훌 털어냈다. 좋은 의도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참고로 여기에는 살아있는 거짓말탐지기가 있으니 괜한 수작 부릴 생각 마시고요. 서로 편하게 가자고요.”

“그래,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녀석들이 찾아올 테니. 그때는 나도, 너희도 끝장이다.”

“녀석들이요?”


데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스터 상회의 처리반. 노동협회 같은 단속기관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야. 신고자도 흔적도 없으니, 누구도 일의 진상을 알지 못하지.”

“생각보다 이성적이네요, 데이브.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하고 죽으나, 닥치고 죽으나. 죽는 건 똑같을 텐데, 의리도 없는 개새끼들 엿이라도 먹이고 가야지.”


헤에. 레나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데이브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밤보다도 깊은 눈동자에 흥미가 담겼다.


“됐고, 빨리 풀어주기나 해. 이대로라면 정말 다 죽는다고.”

“그건 싫네요.”

“그래, 죽기 싫으면······”

“풀어주기 싫다고요.”


데이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듯했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레나의 말을 이해했을 때의 그는 코웃음을 쳤다.


“거기 있는 형씨 믿고 그러는 건가? 에헤이, 관두는 게 좋아. 형씨도 깨나 싸움 좀 해본 것 같지만, 녀석들한테 찍소리도 못하고 죽을 테니까. 그도 그럴게 녀석들은······”

“소울 마스터. 맞죠?”


소울 마스터. 처음 들어보는 어색한 단어에 요한은 기억을 되돌렸다. 나지막이 읊어봐도 짚이는 바가 없었다.

회상을 해매이다 영혼과 연관되어 있고, 그것을 사용한다는 추측으로부터 비슷한 존재를 떠올렸다.


‘용사.’


자신의 영혼을 무기로서 구현하여, 특수한 능력으로 전장을 휩쓸었던 인간의 특수전력. 영혼의 형태와 크기라는 순수한 재능으로 이루어진 ‘소울웨폰’의 위력은 천차만별이었으나, 그만큼 특출한 자들은 강력했다.

전장에서 힘은 곧 명예. 강인한 영혼을 가진 용사일수록 칭송받고, 우대받았다. 극소수의 용사만이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용사가 필요 없어지기를 바랐다.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었다.


『네 녀석만 없었으면······!』


문득 요한은 회상을 그쳤다. 사고를 멈추었다.

당분간은 무념과 고요에 빠져있기로 했다.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 주의거든요.”


한동안 이어지던 고요에 레나의 목소리가 씌워졌다.

데이브는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레나는 흥미를 거두었다. 짓고 있던 미소만을 남겨두고 평소와 같은, 허무에 젖은 눈동자로 돌아왔다.


“나는 녀석들이라고 했어. 하나가 아니야.”


그것은 얼핏 잘난 척으로 보였다. 레나를 향한 명백한 무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레나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시란 동급 이상의 상대에게서 받을 때나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아래의 인간이 아무리 무시를 한다 한들, 가소로울 뿐이었다.

다른 누구가 아닌 레나이기에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었다.


“맞아요, 하나가 아니죠.”

“아무리 뛰어난 소울 마스터라고는 해도 다구리는 못 이겨. 게다가 녀석들 중에서는 A급도 하나 있다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이번에는 보람 있는 상대인 것 같아서요.”


데이브가 허허 웃었다. 레나의 말을 허세라고 여기는 태도였다.

솔직히, 요한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잠깐 접을래여... 21.06.18 37 0 -
공지 표지가 생겼습니다! 21.06.10 35 0 -
22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4 +2 21.06.15 27 0 12쪽
21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3 +1 21.06.13 29 0 11쪽
20 말해요 21.06.12 23 0 11쪽
19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2 21.06.10 37 0 11쪽
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