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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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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1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6.02 05:12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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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필연

DUMMY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저녁을 먹고, 레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입학생을 맞이할 때에만 개방한다는 성문은 어째선지 닫혀있었다. 의도적으로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도중 알게 된 사실이었다.

빈자리는 넷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맥스터 상회의 처리반은 네 명이었지만, 그 네 명이 모두 퇴학을 당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요한이 모르는 새에 다른 입학생이 들어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혹을 버리지는 못했다.


‘일부로 한 명 남겨둔 건가.’


약점을 잡았으니 학원 내에서 이용해먹을 심산일까.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레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도무지 그 의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단서가 부족했고, 생각을 거두었다. 이제 와서 레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밤이어서 닫은 걸 수도 있고.’


망상가가 될 마음은 없었다. 몸을 돌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의 도서관은 취침시간 전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밀리엄에게 설명을 들었었다.

그는 오늘도 수련장에서 창대를 휘두르고 있겠지. 노력하는 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금기가 아니라면, 누구보다 먼저 그에게 전수해주고 싶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글쎄. 비슷한 사람에 대한 미련이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결전제의 역사, 상실의 기록, 우리는 어쩌면 전쟁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서의 제목들을 하나씩 훑으며, 필요한 것들을 골라집었다. 책을 읽는 건 오랜만이어서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두꺼운 세 권을 겹쳐들고, 누런빛을 띠는 전구 아래에 앉았다. 푹신한 의자가 제법 편안했다.


「결전제의 역사는 정확히 15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성체를 자부하는 다섯 종족의 대전쟁은 자멸이라는 결과밖에 낳지 못했다. 시작의 원인조차 소실되어버린 장기전은 세계의 절반을 파괴했고, 7할의 생명과······」


‘결전제의 역사’를 곁눈질로 훑어보던 요한은 책을 덮었다.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온 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아는 것은 그거면 충분했다.

다음으로 ‘상실의 기록’을 펼쳤다. 제목만을 보았을 때, 가장 목적에 가까웠다.


「결전력 13년, 엘프는 인간에게 용사라는 칭호를 금지시켰다. 토지도, 권리도 빼앗지 않았다. 노예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그것만을 금했다. 그들의 의중은 현재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인간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토대인 용사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외에는······」


팔락팔락 책장을 넘긴다.


「결전력 16년.」

「결전력 19년.」

「결전력 21년.」


요한은 손을 멈추었다. 13년부터 33년까지의 기록이 검열되어 있었다. 이후의 기록은 일방적인 토지와 인구, 채굴권 등의 상실이었다.

결국 검열당한 20년의 사이에 원하는 답이 있을 거란 추측밖에 건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지.’


때가 되면 레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왕실의 금서고에 들어갔던 그녀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레나가 우연히 원본을 읽었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를 바라야만 한다.


‘가능성은 희박해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아.’


책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쩌면 전쟁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라는 장문의 제목을 지닌 책을 펼쳤다. 이것만은 순전히 관심으로 골랐다.

전쟁을 경험했던 자로서, 그 한가운데서 스러진 자로서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때에는 어쩔 수 없었어. 노예로 사는 것보다 고깃덩이가 되어 사라지는 게 나을 거라 모두들 생각했으니까. 반란군을 창설했고, 혁명을 일으켰지. 전쟁을 위한 혁명 말이야.」


의문이 떠올랐다. 역사 서적이 꽂혀있어야 할 책장에 소설이 꽂혀있던 것이었다.

사서가 실수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책을 소중히 하지 않는 독자가 대충 빈 곳을 찾아 꽂아넣은 걸까.

길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요한은 회고록의 탈을 쓴 그 소설에 몰두했다. 내용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노예가 될 바에는 전장의 고깃덩이가 낫다, 인가.’


결전제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인간족의 최하위 계층이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며 반란군을 창설하고, 혁명을 일으켜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 당연히 개체 하나하나가 최약체인 인간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몰살을 당했고, 그 최후의 생존자들이 은신처를 옮겨가며 처절하게 살아간다.

그런 내용이다. 요한은 그것이 머지않은 미래라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현실이 되리라.

그 전에 손을 써야만 했다. 자신이, 자신의 동료들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륙해낸 평화를. 살아남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는 전쟁으로 죽는 누군가를 보고 싶지 않았다.


“곧 퇴실시간입니다. 해당 도서는 학생증을 소지하고 계시다면 대여해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금방 나가죠.”


사서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책의 제목을 본 사서는 어째선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금서가 왜 여기 있지? 이상하네.”


요한은 그 중얼거림을 기억하며 도서관을 나왔다.

선선한 밤공기가 폐에 스며들었다. 여름밤의 바람은 부드러워서 좋아했다. 독서로 쌓인 피로와 맞물려 기분 좋은 수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걸음을 떼었다. 모닥불을 지피고, 신문지로 만든 돗자리에 누워 잠들고 싶었다.


“독서 좋아하시나요?”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기둥 뒤에서 불쑥 레나가 튀어나왔다.

일부로 놀란 척을 해주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자신의 연기실력이 형편없다는 건 요한도 아는 사실이었다.


“깜짝이야.”


그래도 시도는 해봤다.


“놀리시는 건가요?”


역효과였다.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딱히요. 그냥 산책하다 보여서 찾아와봤어요. 책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도서관으로 가니까 궁금해지잖아요.”

“응?”


요한은 의아했다. 그녀는 요한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즉, 그가 책을 들고 의자에 앉기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짧아도 장작 2시간을 되었을 장시간을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인내한다니.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내일 물어도 됐을 거다.


‘부자연스러운데.’


다른 이도 아니고 레나였다. 낭비를 싫어하고, 능사를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그녀가 용건도 없이 기다렸으리라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이다. 논리와 계산만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정처없이 방황하고 싶을 때도, 멍 때리며 밤공기를 맞고 싶을 때도 있을 거다. 의심할 노릇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생명의 은인을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웠다. 이용할 생각으로 살려놓았으니 감추는 사실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은, 혼자 자려니까 좀 외로웠어요.”


레나가 수줍게 웃었다. 그녀가 속이려고 하는 것이라면 속아주기로 했다. 희미하게 실려오는 거짓의 향기를 간과하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무얼 하면 될까?”

“숙녀한테 굳이 말하게 하실 셈인가요? 너무해요.”

“내가 생각하는 거랑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하아. 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답다고나 할까, 그래서 안심되는 거지만 그래도 얄궂어요. 같이 자주세요. 이상한 짓은 하지 말고. 이걸로 됐죠?”


요한은 알겠다고 답했다. 노숙보다는 믿을 수 있는 여성과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게 나았다. 이상한 짓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그녀였지만,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손을 잡는 것만 아니라면 문제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알고 싶은 건 찾으셨나요?”

“어떻게 알았어?”

“취미나 변덕으로 들어간 사람이 책을 쌓아놓고 읽지는 않을 테니까요.”


일리는 있었다. 변명은 가능했지만, 할 이유는 없었다. 요한은 그녀의 추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150년 전의 용사들이 사용했던 무기의 운용법, 무술, 영혼의 파장을 이용한 갖가지 잔재주까지. 전부 어디로 소실된 건지 궁금했어.”


하지만 요한은 결국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힘들게 찾은 검술교본조차도, 과거 군인들이 익혔던 것들보다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지.”

“저한테요?”

“왕실의 금서고에 들어갔던 너라면, 뭐 하나 우연히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으음. 침음을 삼킨 레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요한은 그녀가 회상을 끝내기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에는 곧잘 올려다보고는 했었다. 전장의 밤에 볼 것이라고는 모닥불을 제외하면 하늘밖에 없었으니까.

기억보다 적어진 별의 개수를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흘러간 세월을 실감했다.


“역시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여서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고, 금서고의 모든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아바마마께 들켰었으니까요.”

“그런가.”


알 수 없는 것을 붙잡는다 한들, 알 수 없다는 사실 외에 알게 되는 것이라고는 없다. 요한은 체념하며 기숙사를 둘러보았다.

창고에 만연하고 있던 곰팡이의 눅눅한 악취가 아닌, 꽃밭을 연상케 하는 감미로운 향기가 풍겨왔다.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있었고, 천장에는 고풍스런 샹들리에가 붙어있었다.


“내가 알던 기숙사랑은 격이 다른데.”

“S급 전용이니까요. F급은 어땠나요?”

“창고 열쇠를 기숙사랍시고 던져주더라.”


요한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폭로했다. 예상대로 레나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이제는 그 가식적인 웃음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 정도일 줄은, 끌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한테 고마워하세요.”

“고마워.”

“으음, 입이 너무 싸지 않아요?”


고개를 갸웃했다. 고마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원했다. 그래서 해주었다.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런데 입이 싸다니.

요한은 사색에 잠겼다.


“내가 미안해요. 잊어주세요.”


레나가 사과했다. 뒤늦게 농담이었음을 이해한 요한은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때의 자신은 무어라 해야 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농담만큼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있어.’


계단을 오를 때였다. 요한은 한기가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뒷목이 따끔거렸다. 명백한 적의가 요한은 겨냥하고 있었다. 공공연히 드러내는 혐오와 살의가 떠나가라 경고했다.

아직 마주하지도 않은 대상에게 자신의 의사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안 계실 줄 알았는데······”


소름돋은 팔을 쓰다듬어 진정시키며 레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요한에게 돌아가란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재밌겠네요. 한 번 쯤은 만나셨으면 했거든요.”


따라오라면서 레나가 계단을 올라갔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셈이었다.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인물이라고, 그의 직감이 통보하고 있었다.

필연. 요한은 거세지는 살기를 무시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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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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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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