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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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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78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29 01:02
조회
52
추천
4
글자
8쪽

책임

DUMMY

“와아! 진짜 현실적인 꿈이지 말입니다!”


문제가 생겼다. 요한을 뒤쫓아 온 노엘 에스카르트는 본인이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했다. 순간이동에 가까운 요한의 보법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무리도 아닌 반응이었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에잇!”


뒤에서부터 덮쳐오는 기척을 감지한 요한은 가벼운 스텝으로 달려드는 노엘을 회피했다. 군인이라 그런지 날렵하고 예리한 몸놀림이었다.

물론, 군더더기 없는 동작인 만큼 단조로웠다. 움직임을 예측하고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에잇! 에잇!”


포기를 모르는 노엘은 계속해서 요한을 덮쳤다.

왜 그러는 걸까. 꿈이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슬슬 도망칠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녀의 뇌리에 착각을 새긴 것은 다름아닌 요한이었다. 스스로가 저지른 일에 책임은 져야했다.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현실을 말해주었다.


“있지, 이거 꿈 아니야.”

“에이 무슨. 꿈에서는 다들 그렇게 말하지 말입니다! 본인을 꿈속에 가두려고!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알려주셨지 말입니다!”


이런. 요한은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할머니가 왠지 모르게 미워졌다.

어째서 그런 무책임한 말씀을 하셨던 걸까.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겠지마는, 그것을 알지 못하니 억울할 따름이었다.


‘보법을 또 한 번 쓰는 건 역효과일 테고······’


한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대화가 통하질 않으니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물이라도 끼얹으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차갑다고 해서 말을 믿어줄 것 같은 노엘이 아니었다. 오히려 차갑다면서 좋아할지도.


“에헤헤! 이거이거 꽤나 쉽지 않은 숨바꼭질이지 말입니다!”

“숨바꼭질이 아니고 술래잡기인데.”

“이런 괘씸한! 엑스트라는 잠자코 잡히면 되는 겁니다!”


졸지에 엑스트라가 되어버린 요한이었다. 아득히 잊고 있던 자존심이 묘하게 상처 입었다.


“으윽! 잡을 수 없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제발포기해.


“어째서 전우 분들은 아침마다 가랑이 사이를 가리고 있었는지! 이 참에 알아내고야 말겠습니다!”


요한은 그녀의 전우들이 동료를 위할 줄 아는 참된 신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로 깨닫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노엘이 자신을 붙잡으려는 이유를 알아버린 이상, 더더욱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슬슬 약속시간인데.’


작은 시계탑을 바라보며 레나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언제까지고 노엘의 착각에 어울려줄 수는 없었다. 마침 노엘이라는 인간의 유해성을 깨달은 요한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점차 요한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시작한 노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두 팔을 벌린 그녀는 요한이 직접 다가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간 동작을 주춤했다.

1초도 채우지 못한 일순. 그러나 요한에게는 충분한 빈틈이었다.


-툭!


“으겍!”


노엘이 괴상한 비명을 토해내며 스러졌다.

철퍼덕 엎어진 그녀를 가까운 기둥에 안치시켰다. 수업이 끝나고, 시계탑의 종이 울릴 때면 깨어나리라.

곧장 폐허로 향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걸었다. 심장 언저리에 바람이 부는듯한 감각.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요한이 별 일 없이 자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정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레나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다니. 스스로가 의아했다.


“조금 늦으셨네요.”

“일이 좀 있었어.”


잔해에 걸터앉아 발을 동동 구르던 레나가 다가왔다. 뒷짐을 진 채로 멀뚱히 서있는 요한의 바로 앞에 멈춰섰다. 상체를 기울여, 지긋이 요한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녀였다.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선녀 같아서.”

“어머, 지금 저한테 작업 거시는 건가요?”

“생각대로 말했을 뿐이야.”


흐응. 레나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지었다. 요한은 넌지시 향해오는 그 검은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거짓이 없으니 찔릴 양심도 없었다.

진실한 입장임에도 의심을 마주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가 좋아지면 말해줘요. 냅다 차버리게.”

“그렇게까지 못을 박아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모르잖아요. 일단은 남녀사이니까. 임자 있는 몸을 빼앗는 취미는 없을 거 아녜요?”


레나는 자신의 품에서 목걸이를 꺼내보였다. 그녀의 약지에 들어맞는 크기의 약혼반지가 걸려있었다. 안쪽에는 그녀의 것이 아닌 이름이 새겨져있었지만, 요한은 구태여 읽지 않기로 했다.

만날 일이 없다면 알 필요는 없었다.


“없긴 하지.”

“대답이 애매한데요.”

“애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요한은 스스로의 성향이 어떤지도 몰랐다. 물론, 남의 연인을 빼앗는 건 좋지 않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이성과 정서가 일치할 수는 없는 법.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니 단언하지 않았다.


“그건 좀 슬프네요. 용사들은 전부 그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삭막한 삶을 살았던 건가요?”

“내가 특이한 거겠지. 전장에서 만나서 전장에서 결혼하는 케이스도 있었으니까. 한 때에는 왕실에서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주겠다면서 몇몇 녀석들한테 연인을 만들어주기도 했었고.”


당시의 왕실은 요한에게도 적합한 이성을 알선해주고는 했다. 왕실의 화사한 정원에서 수려한 무늬장식의 티세트로 아리따운 아가씨와 분위기 있는 만남을 가졌었다.

상대방은 생선으로 단호박 스프를 끓이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요한은 드워프의 기갑병을 상대할 때 베기와 찌르기 중에서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에 대해 떠들었다.

말 그대로 대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가씨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요한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리따운 아가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울면서 떠나갔다.

프라이드 높은 귀족의 자제를 무관심으로 대접한 벌칙은 의외로 사소한 것이었다. 국왕조차 아껴 마신다는 최고급 홍차로 본의 아닌 샤워를 했다.

그걸로 끝. 그것이 요한의 일생에서 가장 연애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어, 음. 잠시만요, 요한. 웃어도 될까요?”

“웃을 것까진 없잖아.”

“됐어요, 그냥 웃을게요.”


이야기를 들은 레나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어차피 웃을 거 동의는 왜 구한 건지. 별로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인데 굳이 비웃고 넘어가는 그녀가 얄미웠다.


“이제 됐어?”

“네, 덕분에 실컷 웃었어요.”


그녀는 흔쾌히 끄덕이며 남은 웃음을 가두었다. 그렇게 웃고도 남은 게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제 본제로 넘어갈까요. 결전제에 관해서 할 말이 있어요.”

“등급 때문인가.”

“정확해요. 아무개 씨가 자질 측정을 거부해버려서, 당분간은 바쁘게 움직여야해요.”


당연한 소리였다. 자질측정을 거부한 탓에 F급이 되어버린 요한을 인간의 수장들이 미쳤다고 결전제에 내보낼 리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질 하나만으로 전투능력을 평가하는 바보들일 리도 없다.

등급을 높이기 위한 제도나 시험이 마련되어있을 터.


“뭘 하면 되지?”

“대련. 전부 짓밟으세요.”


가장 심플한 해결책이었다. 때문에 무엇보다 설득력이 깊었다. 자신보다 높은 등급의 상대를 쓰러뜨리면 그것만으로 자신의 우위가 증명된다. 단순명료한 만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입증.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투영 수정을 이용한 자질측정을 거부한 것은 요한이었다.

거부권은 없었다.


작가의말

 어쩌면 표지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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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3 2 11쪽
14 필연 21.06.02 37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69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8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6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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