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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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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6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6.06 00:32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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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양다리 아니라고

DUMMY

그래, 요한은 비난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참견하지도 않았다. 요한은 그를 여전히 타인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간섭으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요한은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도 단언하지 못하는 입장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드는 것은 방관보다 못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적어도 뭐 하나는 알 수 있으리라. 지긋이 기다렸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밀리엄. 재능 없는 자의 노력은 민폐일 뿐이다. 이 이상 선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조용히 살거라.”

“하지만 형님!”

“나는 너를 단 한 번도 동생이라 여긴 적이 없다. 다시는 형이라 부르지 마라.”


밀리엄이 입을 다물었다. 뻐끔거리는 그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려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이상 전해지는 것은 없다. 밀리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홀로 남아 실성했다. 힘겹게 빠져나온 목소리는 형언할 수 없는 만감에 잠겨있었다. 찢어지고, 피와 땀이 뒤섞여 질척한 손바닥을 바라보며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요한은 그저 괴로우리라는 짐작밖에 할 수 없었다.


“하하.”


밀리엄은 짧게 웃었다. 걸어가서 창대를 주워들었다. 자세를 잡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첫발을 내딛으며 찌르고, 뒷손을 들어 창대로 올려치고, 그대로 미끄러뜨려 회전. 연계를 끊지 않고 이어나간다.

잡념은 창대를 쥐었을 때부터 없었다. 독하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요한은 그를 바라보며 자신의 옛 제자를 떠올렸다. 닮은 점이 많았다. 감회가 입가에 스쳐지나갔다.


“계속해.”


요한은 방해가 되지 않을 장소에 걸터앉았다. 때로 비난은 적절한 자극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저번보다 몰입도가 현저하게 높았다. 창끝에 힘 이외의 무언가가 깃들어있다. 본인은 깨닫지 못한 모양이지만, 도와줄 생각은 없다. 스스로 깨우칠 수 있을 거다.

근거없는 확신이라 비웃어도 좋다. 하지만 요한은 믿고 있다. 노력은 언젠가 보답 받는 법이라고. 자신의 제자가 일생을 바쳐 증명해준 신념이었다.


『자, 나를 봐! 나도 이제 용사야!』


노력 말곤 하지 않았던 말괄량이 소녀를 떠올렸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화르륵!


“엇.”


밀리엄이 동작을 정지했다. 딱딱하게 굳은 채로 꿈뻑꿈뻑 창끝을 바라봤다. 불이 붙어있었다. 나무로 된 창대를 활활 불태우며 번져나갔다.


“으아아아!”


어떻게든 불을 끄려 밀리엄은 창대를 붕붕 휘둘렀다. 그러나 불길은 쉽사리 사라져주지 않았고, 끝내 밀리엄은 아끼던 연습용 창을 버려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해냈구나.”

“뭡니까 이건!”


설명을 요구하는 눈초리가 요한에게로 흘러왔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려줄 예정이었다.


“너는 방금 네 영혼의 본질을 찾은 거야. 그리고 그것을 무기에 동화시켰지. 그래서 불이 붙었고.”


운이 좋았다고 요한은 덧붙였다. 정말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반드시 필요한 우연. 제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그 우연을 겪지 못하는 이상 용사로서의 발전은 불가했다.

하지만, 노력하다보면.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넣고, 그 너머의 낭떠러지로 떨어뜨리는 걸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찾아오는 필연이기도 했다.

시기의 차이이다.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건만, 하루만에 깨우칠 줄은 몰랐다. 단지 그뿐이었다.


“으음, 전혀 모르겠는뎁쇼.”

“이대로 정진한다면 몸으로 이해하는 때가 올 거야. 그러면 더욱 강해지겠지.”

“그게······ 정말입니까?”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밀리엄의 턱밑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환희가 차올랐다. 얼핏 보면 허탈해보일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는 하하 웃었다. 그보다 맥이 빠지는 웃음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행이다.”


확신이 없었으리라. 자신의 노력이 옳은 것인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발자국을 남기며 앞을 향해 나아갈 때마다 불안에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럼에도 돌아가질 못해서. 누군가가 인정해주길 바랐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을 표정이었다. 요한은 같은 표정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같은 표정을 봐왔었다. 누구보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헤아릴 수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물어볼게 있어.”


요한은 화제를 돌렸다. 매끄럽게 돌릴 말주변은 없다. 필요한 때에 직설적으로 묻는 게 방식이었다.


“그게 용건이었군요. 알겠습니다. 아는 것이라면 답해드리죠.”

“라일에 대해서 알고 싶어.”

“라일 드래곤하트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밀리엄은 오랫동안 망설임을 거두지 못했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기에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정말 한참이 지나서야 밀리엄은 결심했다.


“요한님. 당신은 분명 강합니다. 그리고 상냥한 일면도 지니고 계시죠. 가끔씩 허언이라고 생각될 말들을 하시기는 해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남의 이야기를 본인의 동의도 없이 꺼내는 건 역시 꺼려지는 일이었던 걸까. 밀리엄의 성격이라면 잘못되었다 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의 예상은 화려하게 빗나갔다.


“하지만 잘못은 잘못. 저는 제 의사를 꺾지 않겠습니다. 양다리라니! 같은 남성으로서 그 심정을 이해는 하나, 학생회장을 맡은 몸으로서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버린 오해에 요한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어떻게 이해를 하는 건지도 의문이었다.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의 심정이라니, 요한은 같은 남자인데도 전혀 이해가질 않았다.

어서 빨리 해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일 때였다.


“아, 여기 계셨네요. 요한.”


레나가 찾아왔다. 밀리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곤두박질쳤다. 어버버 하고 칠칠치 못한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반면 요한은 안심했다. 안심해선 안 될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밀리엄과 단둘이 있는 것이라면 직접 해명을 해야 했지만, 레나가 온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알아서 풀어질 것이다.


“그래서, 밀리엄씨. 양다리는 무슨 소리일까요?”

“아! 저희 본가에서 양다리를 보내와서 함께 구워먹자는 이야기였습니다!”


대단한 순발력이었다. 밀리엄의 얼굴에 가식적인 화색이 피어났다. 어쩌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눈빛에 가능성이 비추었다.


“그게 왜 학생회장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일까요?”

“요한 씨가 수업을 빠지고 먹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요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건망증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타인의 거짓말에 조작당할 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어째선지 밀리엄이 윙크를 보내왔다. 무언가를 나타내는 신호 같았지만, 요한은 그 뜻을 몰랐다. 무시하기로 하고 사실을 토로했다.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대체 왜애액!”


밀리엄이 절규했다. 마치 신을 향한 원망과도 같았다. 구원받지 못한 신자의 하소연. 그 모습에 레나가 쿡쿡 웃으며 이제 됐다고 알려주었다.


“안심해요, 밀리엄. 제게는 약혼자가 있어요.”


고요해졌다. 밀리엄은 상황을 이해하려 사색에 잠겨들었다. 그 사이 레나는 요한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괜스레 잊고 있던 감촉이 떠올랐다. 요한은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허억!”


밀리엄이 넘어갈듯 숨을 삼켰다. 이제야 자신의 오해를 깨달은 눈치.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양다리가 둘······?”


요한은 마른세수를 했다.


...


이후 레나의 자세한 설명으로 오해가 풀어졌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어있었음을 깨달은 밀리엄은 자신의 불건전한 상상력을 자책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침은 셋이 먹게 되었다. 이야기를 수련장에서 하기에는 요한의 허기진 위장이 시끄러웠다. 사람의 말소리를 지울 정도였으니 누구도 무시하지 못했다.

S등급의 학생을 위한 전용 식당. 그곳에서 어쩌면 라일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으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으로 데려온 밀리엄에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요한은 많은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 하나면 충분했다. 불과 3초도 걸리지 않을, 간단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면 용건은 끝이었다.

그래, 단 하나. 하지만 그 하나를 묻지 못한 채로 혼란스런 식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 포크는 고기 집을 때 쓰는 겁니다! 그 스푼은 스프 떠먹으라고 있는 거고! 나이프를 빵에 꽂지 마세요! 아니, 그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닌데!”


오늘도 예외없이 음식물을 잡히는 대로 먹어치우는 요한과 집요를 넘어선 수준으로 식사예절에 집착하는 밀리엄으로 인해 특별식당의 고풍스럽고도 우아한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식탁을 지켜보는 전속 요리사들의 미소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늘었다고 이렇게까지 소란스러워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레나는 죽을 맛이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멍하니 두 청년의 사이를 바라봤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려.”


식탁 하나를 통째로 비운 요한이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최소한의 예절은 지켜야 한다고 반박하는 밀리엄이었으나, 정작 그가 말하는 예절은 최소한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결국 이대로는 끝나지 않으리라 판단한 레나가 중재하는 수밖에 없었다.


“밀리엄 씨, 그냥 먹어요. 저 사람은 원래 저러니까.”

“아무리 그래도······! 아뇨, 아닙니다. 여기서는 제가 물러나는 게 맞겠죠.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얻어먹는 주제에 참견이 심했군요.”


밀리엄은 떠있던 엉덩이를 내렸다. 심호흡과 함께 식기들을 주워들었다. 감정을 추스른 그가 조심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우아한 손짓, 각 식기의 사용법을 어기는 일이라곤 없었다. 음식을 삼키는 모습에서는 식자재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서민에게는 불가능한 귀족의 식사. 그의 모습은 레나의 흥미를 유발했다.


“흠 잡을 곳이 없는 미식이네요. 어느 가문 출신이시죠?”

“곤란한 질문이군요.”

“그래도 말해줘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직계예요? 아니면 분가?”

“어딘지는 이미 알고 계셨군요.”


밀리엄은 힘없이 웃었다. 그녀는 궁금한 것이 아니라, 확신을 얻기 위해 물어본 것이리라 깨달았다. 그것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당연하죠. 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인 이상, 인간에게 용납된 최후의 용가(勇家) 하렌베르크 를 모를 리는 없으니까요.”

“케헥! 켁! 켁!”


때마침 음식물을 삼키던 요한이 거칠게 기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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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4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8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8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70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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