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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소울 아카데미의 F급 전직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B둘기
작품등록일 :
2021.05.14 01:52
최근연재일 :
2021.06.15 06:1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84
추천수 :
84
글자수 :
98,679

작성
21.05.25 06:29
조회
69
추천
3
글자
10쪽

무너진 그곳에서

DUMMY

차분해진 밀리엄에게 교내를 안내받고 있을 때였다. 먼 곳에서 한 명의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안경을 쓴 그녀는 꽤나 빠른 걸음으로 접근해왔다.

밀리엄에게로 고정된 눈동자. 시선을 의식한 밀리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설을 설명하던 그의 말소리가 급격하게 가속했다.


“그런고로학생식당은등급에따라배식시간이달리되오니착각하지않으시길바라며이상으로교내안내를마치겠습니다그럼저는이만.”


피융. 의성어로 표현한다면 그런 소리였다.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밀리엄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반면 그를 도망치게 만든 여학생은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한심하다는듯 한숨을 내쉬며 밀리엄의 뒤통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손짓.


“포박하라. 에르사멧.”


-촤아악!


눈 깜짝할 새에 구현화된 채찍 형태의 소울웨폰이 뱀처럼 뻗어나갔다. 끝도 없이 늘어나는 그것은 밀리엄의 달리기를 웃도는 속도로 날아가 그의 발목을 포박했다.


“아악! 싫어! 일하고 싶지 않아!”


밀리엄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실례했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 요한과 레나에게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그녀는 밀리엄을 어깨에 들쳐메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난처한 사람이 많네요.”

“그러게.”


빈자리를 바라보며 한동안 서있었다. 본래라면 기숙사를 배정받고, 담당교사와의 일면식을 가져야할 차례였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기까지의 시간은 아직 남았고, 기숙사는 해가 지기 전이라면 곤란할 일은 없었다.

한 마디로 자유였다. 예기치 못한 자유. 레나는 침음을 삼켰다. 요한은 그녀가 적절한 방안을 떠올릴 때까지 기다렸다.

머지않아 레나가 입을 열었다.


“안내받지 못한 곳이 하나 있는데, 가보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본다고 해서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요한의 의사를 결여되어있었다. 이루고자 하는 의지도, 자유에 대한 선망도. 종결을 맞이한 전장에 묻어두었다.

단지 앞서 걸어가는 레나의 뒤를 좇았다. 인적 없는 복도를 걷고, 누가 가꾸는지도 모르는 안뜰을 지나, 어딘가를 향해.

요한은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 낭랑한 발걸음의 목적지를 유추하지 못했다.


“여기에요.”


이윽고 그녀가 멈춰선 그곳은 옛 왕실의 폐허였다. 무너지다만 백색의 벽은 이끼의 터전이 되었고, 부서진 마루의 아래에는 이름 모를 풀과 꽃이 무성하게 피어있었다.

짓밟힌 채 일어나지 못한 잡초는 아직까지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어째서 이런 낡은 장소에 오는 것일까. 의문을 가졌지만 머지않아 취식 금지라는 표지판을 찾을 수 있었다.


“잘도 찾았네. 이런 곳을.”


레나의 곁에 선 요한은 말했다.

밀리엄에게 안내를 받는 동안 그 어느 풍경에도 들지 않은 장소였다. 이곳에 있다는 걸 알지 않고서는 찾아올 수 없었다. 단순히 눈썰미가 좋다는 것만으로는 변명하지 못할 터였다.


“하고 싶은 말이라고 있는 거야?”

“그냥 한 번 와보고 싶었다고 하면, 믿어주실 건가요?”

“의심하지는 않아.”


잠시 침묵이 머물렀다. 레나는 뒷짐을 지고, 한 발 한 발을 높게 들어 내디뎠다. 별채로 추정되는 폐허. 잔해로 이루어진 테두리를 따라 걸었다. 두 번의 모퉁이를 돌자, 그녀의 숨은 돌연히 멎었다.

깜짝 놀란 레나는 항상 머금고 다녔던 미소마저 잃은 채로, 드러난 감정을 감추는 것도 잊은 채로 자신을 놀래킨 존재의 이름을 불렀다.


“브래드!”


그것은 노견이었다. 연갈색의 노견. 털은 빠지고, 피부는 늘어져 생기다운 요소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한 마리의 개. 심지어는 그 다리도 이제 움직일 수 없는지, 자신의 삶에 돌아와 준 주인에게 달려들지도 못했다.


“끼잉······!”


노견은 짖지 못하고 울었다. 그래도 꼬리만은 어떻게 살랑거렸다. 떡이 진 꼬리털로 흙바닥을 빗자루질하며, 레나를 반겼다.


“왕족이구나, 너.”


브래드를 끌어안은 레나가 겨우 미소를 되찾았다.


“이래서야 얼버무릴 수도 없겠네요.”

“어차피 알려줄 거였잖아. 그걸 위해서 데려온 걸 테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셨잖아요.”

“예상하고는 있었어. 소울 이터라는 이명을 아는 건, 극비문서의 열람권을 가진 극소수의 왕족뿐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레나의 외견은 젊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왕실의 붕괴는 10년 전의 일이었다. 아무리 그녀의 나이를 많이 치더라도,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을 넘기지 못했으리라.

열 살도 넘기지 못한 소녀가, 왕실의 극비문서에 쉽사리 손을 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이 편견일지도 모르는, 마지막 모순이었다.


“어릴 때, 하녀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도서관의 숨겨진 방을 찾았어요. 숨을 공간을 마련하려고 책들을 빼놓았던 건데, 우연히 비밀장치를 풀어버렸죠. 그게 다예요. 나머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뻔하죠?”


그녀의 말대로, 남은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충족되었다. 우연과 우연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요한은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세상사의 대부분은 우연과 실수로 이루어져 있는 법이었다.

태초의 인간이 불을 발견한 것에 어떻게라는 의문을 품으면 끝이 없다.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이곳에 자신이 있고, 레나가 있다. 아무래도 좋을 과거보다 앞으로를 생각하는 게 건설적이었다.


“네 목적은, 왕실의 복원인가?”

“글쎄요.”


애매한 대답이었다. 확신은 없었기에,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마침 대화를 끝내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나는 밀리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만나보지 못한 여성의 것이었다.


“아, 여기 계셨군요!”


밀리엄이 반갑게 웃으며 걸어왔다.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는 오랜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못 본 새에 상당히 너저분해진 차림새였다.

그런 밀리엄을 뒤따라오는 것은 은발의 여성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칼과, 진한 호박색의 눈동자. 허리춤의 검과 진녹색의 군복은 틀림없는 군인의 상징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금일 여러분과 함께 입학하게 된 노엘 에스카르트라고 합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힘을 담은 발성으로 자신을 소개한 노엘은 절도 있는 경례를 선보였다.

다소 갑작스런 만남. 그러나 불만도 의문도 없었다. 빈자리가 둘이나 남았으니 다른 입학자가 생기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선뜻 다가간 레나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레나예요. 잘 부탁드려요.”

“밀리언 공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S급 판정을 받으신 분과 연을 가지다니 영광스럽지 말입니다.”

“자질이 중요한가요? 저와 노엘 씨가 이렇게 만났다는 게 중요한 거죠.”

“오오······!”


노엘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에 존경이 차올랐다. 악수를 나누던 손에 다른 한 손까지 겹치며 레나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두 눈을 반짝이며 몇 번이고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 번 옳으신 말씀이지 말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소울웨폰의 급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만남의 기준을 재능과 능력으로 잡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레나를 예찬했다.


“이해력이 좋으시네요.”

“아닙니다. 본인은 아직 멀었습니다. 레나 아가씨의 깊은 뜻을 전부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더 많은 오해를 하지 못해 반성하는 노엘을 바라보며 요한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뜻이 있었냐며 밀리엄까지 가세하니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역시! 사상까지 S급이시군요!”

“대단하십니다! 레나 아가씨!”


바보가 둘이었다. 밀리엄만으로도 벅찼던 레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곤경이었다. 레나의 굳어버린 미소는 난처한 실소를 흘리며 그들에게서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녀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하는 건지, 노엘과 밀리엄은 시선에서 쏘아지는 무수한 별의 세례를 거두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분의 소개가 아직이었네요.”


끝내 견디지 못한 레나가 요한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팔에 매달렸다. 그녀에게 향하던 부담 그 자체의 시선이 그대로 흘러와 요한의 무뚝뚝한 얼굴에 머물렀다.


“이름은 요한. 보시다시피 150년 전의 대전쟁에서 활약한 용사님이시랍니다.”


노엘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밀리엄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했는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경악했다. 숨기지 않아도 되는 건지 물어보려던 순간, 레나가 싱긋 웃으며 상황을 수습했다.


“농담이에요.”

“아······! 아하하!”


노엘이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군인이라 그런지 사회생활에 능숙했다.

반면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은 밀리엄은 한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는 머지않아 그냥 웃는 거라고 깨달았는지 뒤늦게 따라웃었다.


“하하, 하하하······”


가식적인 웃음이 폐허를 맴돌았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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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사연 없는 인간은 없다 21.06.08 34 1 11쪽
17 전직 용사는 레나에게 실망했다. +1 21.06.07 40 1 11쪽
16 양다리 아니라고 21.06.06 33 2 11쪽
15 드래곤하트 21.06.04 44 2 11쪽
14 필연 21.06.02 38 5 12쪽
13 아니, 그러게 대련장에 있다니까. +2 21.06.01 46 4 11쪽
12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21.05.30 48 1 10쪽
11 식사는 전쟁이다 21.05.30 49 3 10쪽
10 책임 21.05.29 53 4 8쪽
9 미아 만들기 21.05.27 55 3 8쪽
» 무너진 그곳에서 21.05.25 70 3 10쪽
7 용사의 자질을 시험하지 말지어다 21.05.21 64 2 9쪽
6 입학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21.05.21 92 2 9쪽
5 그래서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데 21.05.20 86 2 8쪽
4 좋은 일-3 21.05.19 69 2 12쪽
3 좋은 일-2 21.05.17 97 1 10쪽
2 좋은 일 21.05.15 126 15 7쪽
1 칠흑의 소녀 +1 21.05.14 223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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