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48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19 00:40
조회
18
추천
0
글자
13쪽

돌팔이 의사

DUMMY

"어~이~ 정신이 들어?"


쿡쿡.

누군가가 나의 볼을 찔렀다.


"뭐야, 아루아."


눈을 뜨면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따스하고 부드럽다.

···잠깐, 뭔가 다른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슬쩍 고개를 들어서 소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길게 기른 녹색의 머리카락과 눈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 그리고 누가봐도 폭발 직전인 표정의 일그러짐.

차가운 한기와 함께 섬뜩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곧바로 튀어오르듯 손을 놓으며 물러났다.


"미안···!"

"거기서는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지."

"죄송합니다.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목숨구걸까지 하면서 용서를 구하자, 소녀는 흐흥 하고 코를 울리며 기분좋은듯이 다리를 꼬았다.


"그래, 그래야지."


아루아보다 키가 작다. 그리고 뭐랄까, 다크서클이 있는데도 나이가 어려보인다. 십대초반정도일까. 그런데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다.

카리스마, 라는 말은 이럴 때에 쓰는 거겠지. 실로 엄청난 카리스마다.

하지만 나를 찍어누르는 위압감을 이겨내고서 물어봐야만 했다.


"아루아는, 어딨습니까?"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듯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허, 너 말이야. 지금 자기 상태가 어떤지는 알아?"

"···그래서 아루아는 어딨습니까?"

"하아, 걔라면 옆방에서 자고 있어. 별 짓 안했으니까, 그렇게 무서운 표정 안 지어도 돼."


아, 이런,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어루만져서 굳어진 얼굴의 근육들을 풀었다.


"당신은 누구죠?"

"나는 엘리. 세계 최고의 마(魔)의야. 지금은 돌팔이로 불리지만."


대체 자신을 세계 최고라고 부르는 건 얼마나 자신감이 과도해야 하는 걸까.

궁금했으나, 그런 의문은 묻어두기로 했다.

엘리가 검은색의 스타킹을 신은 자신의 다리 위로 팔을 올리고, 그 위로 턱을 괴며 나를 노려봤다.

지긋이.

넌지시.

나에게로 자신의 가득한 불만을 쏘아댔다.

차마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스르륵 눈만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하아, 너는 왜 만날 때마다 이 모양이니."


엘리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진절머리가 난다는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날 때마다···?"


그건 나를 예전에 만났다는 걸까.

나는 엘리를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났던 사람의 얼굴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10년 전에 만났던 사람일지라도 얼굴을 보면 대강 기억해낼 수는 있다.


"전에 오범회한테 잡혀갔던 거."


엘리는 탁자 위에 놓인 컵을 들고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컵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옥수수 스프가 들어있었다. 미지근하지는 않고 살짝 따듯한 온도. 마시기 편했다. 벌컥벌컥 비우고 옆에 내려놓았다.


"그때 그걸 누가 치료해줬다고 생각해?"


정확하게 말하자면, 잡혀간게 아니라 쳐들어간 거지만. 결과적으로는 꼴사납게 장난감으로 농락당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크리섬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크리섬 씨가 해준 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지금 너의 이빨이 제대로 붙어있었을까?"


반대로 질문이 돌아왔다.

생각도 상식도 기억도 따라가질 못하겠어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네?"

"신관의 기적(奇跡)은 떨어져나간 뼈까지 붙일 수는 없어. 최고위 기적인 '셀레니르 아르셰'마저도 떨어져나간 신체의 일부를 재접합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 말은 즉, 내가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에 엘리가 나를 치료했다는 건데.

엘리가 정말로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가정한다면, 부러졌던 이빨이 원래대로 돌아왔던 것과 내 빈사상태가 단 한 달만에 말끔히 해결되었다는 점이 어느정도 납득이 간다.

세계 최고, 라는 말에 무지막지한 신빙성이 더해졌다.


"대충 눈치는 챈 것 같네. 네 예상대로야."

"그렇군요."


여기서 나는 돌연히 솟아오른 신빙성에 의문을 가지기로 했다.

만일, 이 소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이 문장을 나의 모든 사고에 붙이기로 했다.

우선은 아루아가 무사한지를 직접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몸을 일으켰다.

부러진 발목이 꺾이··· 뭐야, 멀쩡하잖아···?

팔도 움직여봤다. 멀쩡하다.

심지어는 흉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라···?"


내 몸이 이상하리만치 멀쩡했다. 폐광산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이라는 것처럼.


"너무 무리하지는 마. 뼈를 붙여두긴 했지만 아직은 불안정하거든."


얼빠진 얼굴로 멀뚱멀뚱 엘리를 쳐다봤다.

엘리는 이런 반응을 수도 없이 봐왔다는듯이 태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굉장하지? 단테가 아니었으면 체험도 못해보고 죽었을 걸?"

"단테 씨가···?"

"걔가 너네들 지켜봐달라더라. ···귀찮게시리."


그렇게 말하며 새끼 손가락으로 귀를 파고서 후 하고 불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루아, 라고 했던가? 걔는 치료하는데에 조금 애먹었어. 신체구조가 이상하더라고."

"그렇게나··· 다쳤던 건가···. 나를 위해서···?"


잊혀졌던 죄책감이 또다시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있는데, 어중간하다고나 할까? 그런 몸이었어."


그건 무슨 뜻일까.

아루아가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몸이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고 해서 어중간하다는 표현을 쓰는 건 상당히 거슬렸다.


"아루아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 몸이라곤 해도, 어중간한 몸은 아니···"


아니. 단칼에 부정하며 치고 들어왔다.


"아니, 어중간해. 그건 엘프도 아니야. 사람도 아니야."

"그게 무슨···!"


화가 치밀어올랐다.

의식이 잠깐 끊겼다가 돌아왔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엘리는 태연하게, 그러면서도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그, 저기 이건···."


변명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떠한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서 스르륵 힘이 풀려나갔다.


"때리지 않아줘서 고마워."


나도 모르게 치켜들고 있던 주먹을 내렸다.

그리고선 나를 은혜도 모르는 무례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미안··· 지금 나는 정리해야 할 것들이 태산이어서··· 무심코 너에게 향해버렸어···."


묘하게 맞물리지 않는 말을 하고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침대에 다시 앉았다.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내가 말이 좀 심하긴 했어."


태연하다고 생각했던 엘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스물일곱이나 먹었는데, 말이 서투른 건 여전하네."


도저히 그렇게까지 나이를 먹었으리라곤 상상도 안 되는 겉모습이었다.

많아 봐야 십 대 중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을 좀 돌려도 될까?"

"그래."


"···말을 놓아도 된다는 건 아니었는데. 뭐, 좋아. 용서해줄게."


엘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정적이 생겨나자, 창문에서 쇠 두들기는 소리가 새어들어왔다.


캉.

캉.

캉.

캉.


그 소리는 시끄럽지 않았다. 얼마 가지 못하고 엘리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하나 물어보겠는데, 너는 왜 모험을 하는 거야?"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예전의 나라면 그렇게 답했겠지.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험을 떠난 계기였다. 모험을 계속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허무감으로 차있었던 마음은 한 번 비워지고, 아루아의 곁에 있고 싶다는 욕심으로 다시 차올랐다.

모험을 막 떠났을 때에 간직했던 목표는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더이상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다.


"특별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비상한 두뇌를 가진 것도 아니고,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을 가진 것도 아니야. 정직하게 일러주자면, 너는 지나치게 나약하고 과도하게 평범해. 이대로 얼마 가지 못해서 죽겠지."


맞는 말이다.

내가 걸어왔던 모험은 하나같이 위태로웠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


"그럼에도 모험을 떠나려는 이유는 뭐야?"


짧게 답하자면 이러했다.


"나를 용서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길게 답하자면 이러했다.


"나의 밑바닥을 들여다봤으니까. 거짓의 베일 속에 숨어있던 추악한 내가 보였으니까. 그런 나를 바꾸고 싶으니까."


캉.

캉.

캉.

캉.


"···심오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더 쉽게 설명해줄 수는 없을까?"


물론 가능했다.

그래서 해주었다.


"아루아에게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어."


이번에는 진심으로 웃었다.

요 근래에 들어서 가장 해맑은 웃음이었다.


"어중간한 각오였으면 뜯어말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네."

"그치?"

"그렇다고 해서 납득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너는 내게 세 가지만 약속해줘."


세 가지. 명료한듯하면서도 적지 않은 숫자.


"첫째, 제대로 배울 것. 어떤 길드라도 좋아. 들어가서 기초적인 싸움법부터 배워."


그리고 두 번째.


"되도록 안전한 길만 택할 것. 그렇게 살아도 이 세상은 충분히 험난해."


마지막으로 세 번째.


"죽지 말 것. 이걸로 끝이야."


엘리는 하나씩 세웠던 손가락들을 접어들였다.


"이것만 약속해준다면 당분간은 너희들을 지켜볼게."


마지막 구절을 듣고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지킬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엘리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러니까, 돈좀 빌릴 수 있을까···?"


탁.


엘리는 기가 막히다는 걸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


같은 시각.


아루아는 깨어있었다.

벽 너머에서 리시스와 엘리가 어떤 대화를 하건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라고나 할까. 살짝 애매했다.

듣고는 싶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청각을 헤집어놓았다.

몸은 마법같이 나아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이나 크기를 부풀린 감정을 해소할 수 있으니까.


"하우으으···!"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팔과 다리로는 이불을 뭉쳐서 끌어안았다. 강하게 조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어루만져보았다. 변함없는 입술이었다. 그 입술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렸다.


『이걸로 참아줘요.』


한때 했었던 말과 행동이 추억의 호수에서 가라앉아있다가 다시 떠올랐다.

그건 분명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근사한 추억이 되었어야할 터였다.

하지만 죽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그저 자괴감의 덩어리였다.


"꺄아아아아아!"


베개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질렀다.

폭발해버린 부끄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와 베개를 번갈아가며 마구 때렸다.

뒹굴뒹굴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퍽퍽 때리고, 잠시 조용해졌다가 베개를 던졌다.


"하우으으으···! 아우으으···!"


참을만해 지자, 이번에는 다른 추억이 다가왔다.


『리시스는 오해하고 있어요.』


다가가서 주웠던 베개를 다시 집어던지며,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이불을 몸에 휘감고,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이불째로 침대를 내리쳤다.


쿵.


침대가 들썩였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 잠잠해지나 싶더니, 자신의 추억에는 해당되지 않는. 상상도 못한 곳에서부터 자괴감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벽을 뚫고 들어왔다.


"아루아에게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어."


화악 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대체,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요오오?!"


데굴데굴 굴렀다. 이불을 끌어안고서 퍽퍽 때리며 굴렀다. 있는 힘껏 찢으려고도 했다. 그런데도 찢어지질 않아서 던져버렸다.

던지고 몸부림쳤다.


쾅쾅.


침대를 내리치다가 얼굴을 가리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사라지질 않아서 다시 데굴데굴 굴렀다.


"앗···!"


쿠당탕.


침대에서 떨어졌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아직도 잔재했다.

한 방에 보내버리자고 마음 먹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강하게 내려쳤다.


콰지직.


"어라···?"


너무 힘을 세게 준 탓일까.

부서졌다.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는 철컥, 이었다.


"아루아! 무슨 일이야?!"


열린 문의 앞에는 리시스가 있었다.

말하는 게 늦었지만 참고로 말하자면,

그녀는 현재 속옷차림이었다.


퍽.


매섭게 날아간 베개가 리시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벼, 변태···!"


작가의말

아루아는 귀엽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갈아엎겠습니다. 20.07.25 33 0 -
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5 0 12쪽
» 돌팔이 의사 20.07.19 19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2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4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6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30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7 0 11쪽
22 변수 20.07.06 27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5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