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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44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06 22:4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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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변수

DUMMY

괴조가 날아온다.


"지금."


신호에 맞춰 아루아가 방아쇠를 당겼다.

괴조는 눈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며 곡예를 시전한다.

똑같은 패턴.

날개를 접고, 몸을 비틀고, 괘도를 바꾼다.


이제 내 차례다.


녀석이 날개를 펴기 전에 손목을 잽싸게 비틀었다.

기다렸다는 듯 새하얗고 날카로운 원반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속도는 느리지 않다.

「에너지 볼」에 비하면 목표까지 닿는 시간이 길지만.

커다란 몸뚱이를 한 번 굴린 저 녀석이 쉽사리 피할 수는 없을 거다.


슈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원반의 종착지를 지켜보았다.


팍.


"쳇···!"

혀를 찼다.

눈을 노렸으나, 날아간 원반은 괴조의 발끝에 부딪혔고 미세한 흠집조차 주지 못했다.

적어도 몸에 부딪혔다면 흠집 정도는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다.

바로 다음 원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려는 괴조에게 두 번째 원반을 날렸다.


슈우우우우우우웅.


원반이 맞을 것처럼 보이기도 전에 녀석은 날아올랐다.

목표를 잃은 원반은 한참을 날아가다 점차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쌔애애애애애애액!"


턱 밑에 달린 괴조의 눈 두 개가 나와 아루아를 각각 주시했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

「에너지 커터」는 속도가 느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가 아니다.

어지간한 일반인이 사용자를 작정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어중간하게 날아오는 피구공처럼 간단하게 피할 수 있는 속도다.

즉, 저 새에게 주시당하고 있는 이상은 「에너지 커터」로 피해를 주는 건 무리다. 화살을 피한 시점에서 한 번 더 구르면 될 뿐이다.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겠어.」


하지만 어떻게···?


음···


"저, 저기요! 우리 괜찮은 거 맞죠?!"


마부석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마부의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오며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케지만 씨! 고삐 놓고 뒤로 와!"

"네네네넷?! 하지만···!"

"됐으니까!"


마부석에 머물려고 하는 마부를 짐칸으로 끌어왔다.


"저한테 뭘 바라시는 겁니까!"


케지만이 항의했다.


"바라는 거?"


바라는 건 많지 않다.

딱 하나.


"춤이라도 춰봐."


"네···?"

"에에···?"

마부와 아루아의 표정에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라는 꾸밈없는 의문이 동시에 떠올랐다.


"리시스··· 실망이에요."


아루아가 새에게 석궁을 겨누며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부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질책했다.


"고용주한테 모욕감을 주려는 겁니까! 이건 모험가 협회에 고발할 겁니다!"

"됐으니까, 일단 해봐. 당신이 쓰러뜨릴 것도 아니잖아."

말을 꺼내며 마부 케지만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얼떨떨한 표정.

싫다고 전력으로 고개를 내젓고 있다.

음, 자극이 부족한가.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지닌 몇 안 되는 특기를 쓸 때가 왔다.

"아니면, 춤 실력에 자신이 없나봐? 요즘 춤 못추는 남자는 인기 없다는데."

일명. 남자의 자존심 건드리기 술법.

"그그그그긋···! 제가 노총각이란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푸슉.


아루아가 화살을 발사했다.


괴조는 여느 때처럼 간단히 피하고 날아오르며 발톱으로 뭐라도 낚아채려 했다.

몸을 숙여서 마차와 일체가 되는 느낌으로 늘러붙었다.

이크, 위험했다.

목 날아갈 뻔했네.


"리시스! 앞으로 세 번밖에 못 쏴요! 빨리!"


시간이 별로 없다.

아루아가 계속 벌어주는 시간은 화살이 떨어지는 순간 끝이다.

그렇다면, 자존심을 더 긁어내자. 짓밟아버리자.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춤 못춰서 여자한테 인기 없는 남자입니다, 하고 얼굴에 써있거덩! 그치? 아루아!"


케지만의 애처로운 눈길이 아루아의 등을 향했다.

여기서 아루아의 역할은 중대하다.

아루아가 나의 심중을 눈치챘다면.

나를 믿고 있다면.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그걸 본인 앞에서 말하다니, 리시스는 배려가 없네요!"

···완벽해.

케지만의 등 뒤로 아루아에게 엄지를 세워보였다.


"이이이익!"

케지만은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춰드리죠! 암! 해드리고 말고요! 잘 보고 반하지나 마시라구요! 제 구애의 춤을!"


고개를 들어 괴조를 바라봤다.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고정되어 있다.


고개를 내려 케지만을 바라봤다.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통통한 팔과 다리를 요염하게 움직이고 있다.

뒷꿈치를 맞대고 다리를 살짝 굽히며 팔과 손으로 자신의 덥수룩한 머리를 매끄럽게 쓰다듬으며 어깨를 들썩인다. 거기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웨이브.

출렁이는 뱃살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허리를 씰룩거리면서 말 그대로 섹시하게 구애의 춤을 추고 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너무 잘 추잖아.

꾸물꾸물 출렁출렁.

뭐야, 저거, 징그러.

더부룩하게 수염 난 아저씨가 저런 춤 추고 있으니까 거부감이랑 위화감 장난 아니네.


내가 추라고는 했지만.


"하! 어떻습니까, 아루아 씨! 제 구애의 춤은! 하! 호화! 화아!"

"어, 어어··· 대단하시네요. 여러 의미로···"

"우와하하하핫! 보셨습니까! 리시스 씨!"


···안 본 눈 삽니다.


"계속하세요! 정말 대단하니까!"

"음! 음! 그래야죠!"


하늘을 바라봤다.


괴조의 눈동자를 주시했다.

확연하게 케지만을 주목하고 있다.


···계획대로.


내가 저 괴조였더라도 이런 수상하고 이상한 움직임에는 주목할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 되면, 나나 아루아 둘 중 하나는 놈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된다.


눈동자의 각도를 눈대중으로 계산해봤다.


"···나인가."


이번에는 아루아가 활약해줘야겠다.


"아루아! 눈을 노려!"

"네!"


쌔애애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괴조의 울음소리.

활공하던 괴조가 날개를 접고 낙하를 시작했다.


"히, 히이이익!"

케지만이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멈추지마! 계속 춰!"


거리가 가까워진다.

눈은 세 개.

미간에 하나, 턱 밑에 둘.

하지만 아무리 고도를 낮춰도 마차보다 낮아질 순 없다.

그러니 미간에 있는 눈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녀석이 우리를 보는 눈은 단 두 개.

하나는 케지만이 주의를 끌고 있고, 다른 하나는 「에너지 커터」를 만드는 나를 향하고 있다.


쐐애애애애애액.


괴조가 땅에 닿기 전, 날개를 펴 곡선을 그리며 상승을 시작했다.

곧 날카로운 발톱이 덮쳐오겠지.

커터는 준비완료 상태.

케지만은 덜덜 떨면서도 자칭 구애의 춤을 계속하고 있다.

아루아는 숨을 죽인 채, 방아쇠 위로 검지를 올리고 녀석의 눈을 쫓고 있다.


빠르게 상황파악을 끝낸 뒤,

손목을 비틀었다.


슈우우우우우우우웅.


원반이 날아갔다.

하지만 맞기는커녕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스르륵 굴러가는 거대한 눈동자가 원반을 쫓았다.

다른 하나는 케지만에게 고정된 상태.


아루아가 맹점을 노리기에 최적의 요건이 갖춰졌다.


다가온다.

지금이다.


"케지만! 엎드려!"


결정적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파가가가각.


날카로운 발톱이 마차의 일부를 부수며 상품이 든 나무상자를 낚아채, 잘게 부숴버렸다.

붉은 포도주가 사방으로 터지며 시야를 가렸다.

다른 발톱 하나가 날카롭게 나의 생명을 위협해왔다.

나는 죽게 되겠지.

아루아가 평범한 사수였다면.


괴조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겠지만.


나는 그녀를 믿고 있다.


자, 목도하라.


이것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수의 실력이다.


방아쇠가 당겨진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간다.

그것은 포도주의 장막을 꿰뚫고 나아가,

우리들을 내려보는 거대한 눈을···.







···까드득.








아루아가 강하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틀어지지 않는 발톱의 궤도를 보고 죽음을 감지한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푸샥.


"끄으윽···!"


어깨를 붙잡고 목소리를 억눌렀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짓누르는 건 고난이었으나, 아루아를 자책시키고 싶지 않았다.


덜컹.


"우오옷?!"


쿠당탕.


일어나서 춤을 추려던 케지만이 마차 위로 엎어졌다.

격하게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지시대로 춤을 췄던 불굴의 사나이가 무너졌다.

활공한 괴조는 마차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쫓아오고 있지 않았나···?


마차를 이끌던 두 마리의 말을 바라봤다.

차이가 눈에 띌 정도로 느려져있다.

저 녀석들도 한계인 건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죄, 죄송해요···!"

아루아가 울먹이며 사과했다.

없어진 살점을 되돌려달라고 살을 찢는 고통으로 호소하는 어깨를 방치시키고, 멀쩡한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등을 두어번 토닥이며, 괜찮다고 속삭였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죄송해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아루아의 입에서 왜 그런 말이 나온 걸까.

그 의문을 고민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곳에서 괴조를 물리치고,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제는 내가 최선을 다할 차례야."


품에서 아루아를 살며시 밀어내며 손에서 마력을 발생시켰다.

「에너지 커터」

는 무리인가.

다친 어깨가 움직이질 않는다.


아니, 할 수 있다.

해내야만 한다.

언제까지고 편법만 쓰고 있을 순 없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위기의 상황에서 성장하는 법이다.

나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아니지만,

한 명의 인간이기에.

최약의 종족이기에.

살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의지를 부여받는다.


지금의 나라면 성공하리라.


그런 확신이 들었다.


마력을 발생시킨다.

은은한 빛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손바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마력을 발생시킨다.

쉽지만은 않다. 제어도 잘 안 되고 불안정하다.

또 하나의 손이 있고, 그 손은 없지만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확실히 여기에 있다.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있다고 믿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믿음을 유지한 채로 「에너지 볼」을 생성했다.

이어서, 따끈따끈한 식빵을 짓누른다는 이미지.

보이지 않는, 그럼에도 존재하는 손으로 「에너지 볼」을 짓눌렀다.

편법이 아닌 정공법으로 만들어낸 그 원반은 어느 때보다도 예리하고 강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쌔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때마침, 괴조가 급강하를 개시했다.


원반을 세로로 세우고, 녀석이 그리는 포물선에 맞추어 손목을 비틀었다.


「에너지 커터」


슈와아아아아아악.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원반을 뒤쳐지지 않고 눈으로 쫓았다.


펄럭.


괴조가 회전을 시작했다.

그대로 궤도에서 벗어났다.


씨익.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계획대로.






「에너지 볼」






파앙.






원반에 이어, 빛의 구체가 발사됐다.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내 「에너지 볼」의 명중률은 백발백중에 도달했다.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에너지 커터」보다 「에너지 볼」의 속력이 빠르다는 지식을 습득했다.


이제 그 노력들이 빛을 볼 차례다.


슈우우우우우웅.


구체와 원반의 거리가 좁혀진다.

좁혀지고,

좁혀지고,

좁혀지다가.



부딪힌다.



부딪힌 구체는 원반의 궤도를 완벽하게 바꿔놓는다.


"···나의 승리다."


푸화악.


선혈이 땅을 향해 치솟는다.


"끼에에에에에엑!!!"

하늘을 찢는 비명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퍼진다.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자신의 몸이 땅으로 떨어지는지도 모르던 괴조는 끝까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지면에 머리를 박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 하하··· 별거 아니네···"


그리고···


지면에 쳐박히는 건 아무래도 저 커다란 새만이 아니었나보다.


털썩.


정신을 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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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죄송합니다. 갈아엎겠습니다. 20.07.25 32 0 -
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5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1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6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30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 변수 20.07.06 27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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