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46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13 16:53
조회
33
추천
1
글자
17쪽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DUMMY

『마법도 못 쓰는 녀석은 누구도 지킬 수 없다.』


숲지기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였습니다.

···아니요, 숲지기 시험을 보지 못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님께 버림받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엘프들의 사회에서는 어딜 가건, 무얼 하건 마법을 쓸 줄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멸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마법을 쓰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할 수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노력했습니다. 남들이 비웃더라도 노력했습니다. 머리 위로 쓰레기가 날아오고, 누군가가 혀를 차고, 쫓아내고, 욕을 해도.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이런 저라도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분명 참고 노력하면 뭐라도 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간직하고 있던 기대도, 믿음도, 시험장에서 쫓겨남과 동시에 저에게서 떨어져나갔습니다.

부서져버렸습니다.

시험관의 목소리가 제 귓가에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앞도 보지 못하면서 활을 잡다니, 나를 놀리는 건가?』

『마법도 쓸 줄 모른다고? 넌 사람도 아니다.』

『너에게 시험 볼 자격은 없다. 꺼져라.』


평소에도 자주 듣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오늘따라 아프게 와닿았습니다.

애타게 견뎌왔던 저의 희망은 약간의 거친 손길이 닿은 것만으로도 처참히 무너져버렸습니다.


「날씨가 좋네요···.」


제 꿈이 부서진 걸 축하하는 것처럼 날씨가 맑았습니다.

이제는 우는 것마저도 지쳐버렸습니다.

의미 없는 노력을 반복하는 것도 싫증이 나버렸습니다.

이 세상은 한 번도 저의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누가 살아가고 싶은 걸까요.

괜찮다며 다독여줄 가족도,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도 없습니다. 처음 보는 행인마저도 침을 뱉으며 지나가는 자신을 사랑할 자신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제 인생에서 저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적어도 죽는 것만큼은 제가 결정할 수 있겠지요.

따스한 빛을 내리는 저 태양에게 제 죽음을 축하하도록 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어요.

죽을 곳도, 죽는 날도, 죽는 방법도.

선택권은 모두 저에게 있었습니다. 혼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기뻤던 탓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숲속을 걸어갔습니다.

죽을 곳도, 죽는 날도, 죽는 방법도 모두 정해놓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몸일지라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라면 최고의 죽음을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어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와우!"


누군가가 저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팔을 날개처럼 힘차게 뻗으며 온몸으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다가 이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크게 소리쳤습니다.


"거기 누구시죠?!"


그리곤 평온한 죽음을 방해한 침입자에게 석궁을 겨누었습니다.


"두 손 들고 바닥에 엎드리세요! 안 그러면 쏠 테니까!"


이 사람이 만일 제 죽음을 방해하러 온 것이라면 망설임 없이 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길동무로 삼아버리는 편이 좋겠지요. 그것이 제가 처음 이 세상을 향해 일으키는 작은 반란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간단히 말에 복종해주었습니다.


"당장 엎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의미도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부탁입니다무기건뭐건아무것도없으니까부디목숨만은살려주세요지나가던여행객입니다평범한시민입니다불우한일을마주한불우이웃입니다."


그리고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게 아니겠어요?


「이상한 사람···.」


저는 그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이렇게나 간절히 비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깔보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우해줄 것만 같다고 섣부르게 판단했습니다.

여차저차 대화가 흘러갔습니다. 무얼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얼 들었는지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리시스였고, 나이는 21, 널리고 널린 인간족 청년이며 출신지는 세르나리아 변경에 위치한 에리프 마을. 한순간의 변덕으로 모험을 떠났고 좋아하는 음식도 싫어하는 음식도 딱히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추억 속에 각인되어버린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예쁜 이름이네."


처음으로 이름을 칭찬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는 제 이름의 뜻을 모르겠죠. 그야, 인간이니까요. 그래도 그 말은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기쁜 말을 해주는 그와 더 오랜 시간을 있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저의 집으로 그를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열심히 그의 마음을 흔들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인간족 남자는 제가 무얼 해야 기뻐해줄까요. 연애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무언가 해야겠다 싶어서 껴안았습니다.


"잠시 실례할게요."


가슴과 가슴을 맞대자, 그의 심장박동이 들려왔습니다. 느긋했던 소리가 어느새 가쁘게 바뀌어있었습니다.

기뻐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런 제가 껴안은 탓에 괴로워하는 걸까요.

잘 모르겠지만, 이대로 떨어진다면 저는 이유없이 사람을 껴안는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요.

혹시나 저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 저는 억지스런 이유를 들이밀었습니다.


"르페할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계를 지나가야 해요. 하지만 엘프가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어요."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실이라고나 할까요. 손만 잡고 들어와도 괜찮았지만, 구태여 그를 어깨에 짊어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딱히 불만을 내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짐짝취급 했구나."


여기서 부정하지 않는다면, 재밌는 대화가 될 것 같았습니다.

재밌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가 저를 좋아해주지 않을까요.


"네, 짐짝은 생물로 취급 안하니까요."


제 예상과는 달리, 그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언짢다, 라는 걸까요. 그런 느낌이 가득 들어찬 표정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표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대로 미움을 받는 걸까요.

두려워서 말을 돌렸습니다. 손끝으로 세계수가 있는 자리를 가리켰습니다. 제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의 숲은 익숙했기에 세계수의 위치를 대강 알 수 있었습니다.


"저기 보이시나요?"

"뭐가?"

"저 나무요."


불안함에 꼴깍 침을 삼키고, 그의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오···"


다행히도 잘 풀린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더 굉장하실 거예요."


그의 기대감을 부풀리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저에게 그곳은 세계수 같은 게 아닌 저를 경멸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벌집 같은 곳이었습니다.

세계수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떠들었다가는 시끄럽다고 미움을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너무 조용했다가는 음침하다고 미움을 받겠죠.

그래서 저를 버린 어머니께서 자주 부르시던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아빠건 엄마건 상관없이 싫었지만, 제가 알고 있는 노래라곤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발걸음을 서둘러서인지 세계수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습니다. 저는 위로 올라가기 전에 아끼는 후드를 건네주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깨끗한 걸로 주고 싶었지만, 나물을 팔아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저에게 새 후드를 살 돈이라곤 없었습니다.

꼬질꼬질한 후드일지라도 그가 저로 인해 마을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다음으론 승강기에 올라탔습니다. 처음 보는 물건에 놀라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귀여웠습니다.

세계수의 위로 올라온 뒤, 저는 서둘러서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혹시라도 마을 사람들이 제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보게 된다면 곤란했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다가 꽈당 넘어진 그의 모습에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게 될 소리를 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버리기 전에 얌전히 계세요."


미움 받으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며 걱정했으나, 그는 딱히 미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이제 이상한 사람이 아닌, 신기한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천만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그를 만난 뒤로는 신기하게도 일이 뜻대로 풀렸습니다. 고작 한 번,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한 번이나 잘 풀린 것이었습니다.

짐을 정리한 뒤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목욕? 그것도 아니라면···"

"그래, 너부터 할게."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대강 알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욕정을 품고 있는 거겠지요. 솔직히 기뻤습니다. 이런 저라도 그의 눈에는 이성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너무 쉬워서 저에게 질려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한 번쯤은 거절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지만, 정돈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세요."


입이 험한 여자아이라고 나무라지는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건 익숙한 저였지만, 그에게만큼은 미움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중하게 말을 꺼냈어야 했는데.

후회하고 있자, 사과의 말이 돌아왔습니다.


"미안."


처음으로 듣는 사과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저의 탓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나쁜 일만 생기면 저의 탓으로 돌리는 이곳의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인간들이란 모두 이렇게 따듯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그의 인간성이 따스한 걸까요.

만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저의 많은 처음들을 가져갔습니다. 이 사람에게라면 제 모든 처음을 바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음식을 칭찬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껴두었던 식재료들을 모두 사용해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음식들이 차려지기 전에 그는 샤워를 마치고 나와버렸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나오기 전에 모든 요리를 식탁 위로 올려놓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아쉽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는 저를 망설이게 만들었습니다.


"있지,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너는 혹시···"


이어지는 질문은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조바심이 난 탓에, 저는 그의 말까지 끊어가며 대답했습니다.

저를 혐오하시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는 한 편, 이런 저라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시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염치없이 말을 끊어버렸습니다.


"네, 시각장애인이에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은 모두 미움 받기 싫어서 열심히 애를 쓰는 변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저의 양심을 찔러오는 해맑은 칭찬이었습니다.


"대단하네."


이럴 때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저는 그저 웃었습니다.


"헤헤, 칭찬을 받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오랜만이 아닌,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들은 칭찬에, 처음으로 거짓말을 해버렸습니다.

저는 몹쓸 사람인가봅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작은 이기심을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의 앞에 음식들을 가져다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토끼 고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어라? 이건 무슨 고기야?"

"토끼요."


제 대답을 듣자, 그는 동심이 부서지는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토끼를 좋아했던 걸까요.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엘프는 고기 안 먹지 않아?"

"그건 엘프들 사이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많은 탓에 생겨난 편견이랍니다."

"그렇구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부질없는 노력밖에 배우지 못한 인생일지라도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는 있었습니다.

그에게 작은 지식을 하나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 인생에서 그나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맛은 어떠신가요?"


식사를 하는 도중에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며시 물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에게도 먹여주고 싶은 맛이야."


거기서 끝날 것 같은 대화였지만, 저는 그 대화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끌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이럴 때에 제 또래의 소녀들은 어떤 말들을 할까요.

기억을 더듬다가 제가 마법학원에서 쫓겨나기 전에 연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참고하기로 했습니다.


"우와, 닭살···"


이게, 맞는 걸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로맨틱하다고 말해줘."

"그것도 정도가 있죠."


이게 정말 맞는 대화일까요···?

의아했지만 아무래도 맞는 대화였나 봅니다. 저는 제가 원했던 말을 듣게되었으니까요.


"아무튼 무진장 맛있어."

"다행이네요."


이후로는 제가 말주변이 없었던 탓에 대화하질 못했습니다. 그릇을 바닥까지 비운 그는 설거지는 자신이 맡겠다면서 그릇들을 거두었습니다.

괜찮다고 말렸지만, 다시 괜찮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좋은 사람이네요···.」


먼저 침대에 누운 뒤에 저는 그를 기다렸습니다.

예의상 침대 옆에 이불을 깔아두었지만, 그가 그곳에서 잠에 들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는 척이라도 하면 어떤 짓이든 벌여주지 않을까요.

위험한 도전을 해보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생각대로 닫혀주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설거지를 끝낼 때까지 잠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실망했을 그를 위해 전에 해두었던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슬슬 이야기해주세요."


그는 알겠다면서 목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캠스타에게 물렸고, 모기에게 물리고, 곰에게서 도망치고, 멧돼지와 다투고, 늑대에게 쫓기고.

오늘 하루동안 봐온 그와 별 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황당하고,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즐거운 모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험의 마지막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너를 만났지."


어느덧 끝을 맞이한 이야기의 끝에 저를 넣어주셨습니다.

기쁘고, 또 기뻐서 울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그의 모험을 저의 눈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근사하네요."


짧은 감상을 끝으로 잠에 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들지 않고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아루아 너는 하고 싶은 거라던가 있어?"


하고 싶은 것.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있었지만, 지금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온 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를 제대로 봐주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


하지만 이렇게 말해서는 그의 모험을 방해하지는 않을까요. 혹은 그에게 거절을 당하며 괜히 어색해지지는 않을까요.

어느 쪽이 되었건 둘 다 싫었습니다.

그래서 말의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저도, 하고 싶어요."

"무엇을?"


수줍은 나머지 이불을 입까지 덮어버렸습니다. 쉽게 나오질 않는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입술부터 가려야 했습니다.


"모험이요."

"그럼 하면 되잖아."

"···저는 보기보다 겁쟁이랍니다. 헤헤··· 우습죠?"


보기보다, 가 아닌 본질적인 겁쟁이였습니다. 누가봐도 덜덜 떠는 것 말고는 해내지 못하는 무능아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우습지 않아. 나도 겁쟁이니까.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 어딘가로 돌려버리지 않고는 무너져버릴 무거운 감정을 떠안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고 일상만을 보내고 있었겠지."


"그런가요···."


"그러니까, 그때부터라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 겁쟁이인 네가 어떠한 게기를 얻고서, 스스로의 의지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너의 모험이 시작되는 거니까."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청 놓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잠재우느라 웃음의 길이를 늘렸습니다.

저를 이상하다고 생각할까요.


"리시스 씨는 역시 좋은 사람이네요."

"고작 하루 지낸 거 가지고 판단하기엔 이르지 않아?"

"그걸 묻는 데에서 이미 좋은 사람이지 않나요?"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흘러버렸습니다.

그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허겁지겁 불을 껐습니다.


"내일은 이곳을 찬찬히 안내해드릴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응, 잘 자."


부자연스러운 인사를 마친 뒤에 이불을 머리까지 덮었습니다.

그리고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갈아엎겠습니다. 20.07.25 32 0 -
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5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2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4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6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30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7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5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