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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43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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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갸르키카의 솜-4

DUMMY

발목이 많이 호전됐다. 뛰는 건 무리지만 절뚝거리며 걷는 건 가능하다.

아루아는 자신에게 더 기대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으나, 숨결이 거칠었다.

이 이상 무리를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거절하고 아루아의 앞을 걸어갔다.

길은 왼쪽으로 꺾여있었다.

힘겹게 찾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하다싶은 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아가기를 관뒀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나서, 아루아에 이끌리기를 거부하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발을 숨기지 못한 거대한 거미가 숨어있었다. 촘촘하게 가시가 돋은 손가락이 어렴풋이 보였다. 손가락을 닮은 거대한 다리가 보였다.

들키지는 않았다. 괜찮다.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저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 비좁은 길에 몸을 숨길 수 있다. 상황을 지켜보다 안전해지면 이동하자.

모퉁이를 돌았다.

지나왔던 좁은 길이 보였다. 저 안이라면 안전하다.


"들어와, 아루아."


그렇게 말하며 몸을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툭.


무언가가 몸의 중앙에 걸렸다. 그리고 그 존재를 깨닫기도 전에 끊어졌다.

뭐야, 이건.

손으로 만지려고 해봤다. 잡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설마···."

"리시스!"


휙.


시야가 기울었다. 붙잡히고 날아간다. 바위들로 이루어진 천장이 보인다. 이윽고 허리에 충격이 전해졌다.


"괜찮아요?!"

"덕분에···!"


거미의 다리가 눈앞에 보였다. 마디 하나하나가 사람만하다. 가시 같은 털들이 촘촘히 박힌 검붉은 다리로 먹잇감을 잡기 위해 바닥을 슥슥 긁고 있다.

아루아가 나는 뒤로 던지지 않았더라면 저 다리에 걸리고, 고치가 되어서 녀석의 침에 녹아가며 죽었겠지.

겪고 싶지 않은 죽음이다.


"아루아, 내가 저 녀석에게 잡혀가면 혼자 도망쳐. 어떻게든 시간을 벌게."

"그게 지금 할 소리에요?!"


하긴 그렇네.

어떤 일이 닥치건 걱정부터 시작하는 나의 좋지 않은 버릇이다.

아루아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부축할게요."

"괜찮아, 먼저 가."

"하지만···!"


다시 한 번 괜찮다고 말하며 아루아의 등을 밀었다. 잠시 주춤하는 모습에 다시 재촉했다.


"가!"


그제서야 아루아는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쪽 발을 들고 통통 튀어서 아루아를 뒤쫓았다. 보기에는 우습겠지만 다친 발목을 쓰지 않아도 된다.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바닥에서 뛰어다니기란 쉽지 않으나, 괜찮다.

저 녀석이 헤집기를 포기하고 돌아서 오기 전에 도망치자.

남은 발목마저 접질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감수해야한다.

간단히 따라잡혀 버릴 속도다.

저 좁은 길이 녀석의 몸을 틀어막지 않았을 때의 현재는 가늠하고 싶지도 않다.

마법이라도 날려볼까. 저 거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만한 다리를 까딱이고 있을 때가 기회이지 않을까.


「에너지 커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위력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빠르게 만들어야만 했다. 빛도 희미하고 위력도 낮은 원반을 사람만한 마디로 날렸다.

통통 뛰면서 원반의 끝을 지켜봤다.


파샥.


상처조차 주지 못하고 맥없이 사라졌다.

위력이 낮은 건가?

아니, 그것도 있겠지만 저 털들이 문제다. 마력을 흐트러뜨린다.

내 마법으론 턱도 없는 건가.

쓰러뜨릴 생각은 없었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하나 줄었다는 건 심리적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피해가는 수밖에 없겠어.」


지금 놓인 이 상황은 불행이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이 폐광산에 자리잡은 포식자의 위치를 알아냈다.

이걸로 도망친 뒤에는 비교적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무너지는 거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무너지는 경우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도저히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이다.


이대로 달려나가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리시스···!"


앞서 달려가던 아루아가 멈춰섰다. 뒤로 돌고, 나의 손을 잡아 이끈다.


"무슨 일이야!"

"앞에 하나 더 있어요!"


아루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하나의 다리가 통로에서 발을 내밀었다.


"두 마리···?!"


툭. 투둑.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들이 연이어 끊어졌다.

천천히 움직이던 거미가 이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필 이런 때에···!"


좁은 통로에서 빠져나오면 그 다음은 커다란 통로를 지나야만 한다. 그것이 이 복잡한 갱도의 얼마 되지 않는 규칙이다.

샛길과 샛길의 거리는 멀다.

위로 올라갈 수록 길의 넓이는 넓어지고, 몸을 숨길만한 좁은 통로의 수는 적어진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발을 디뎠다.

'너의 마음은 물로 되어있다.'


우드드드득.


발목이 괴상한 각도로 꺾이며 몸을 지탱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내 몸이 그렇게 망가져가고 있다는 느낌만이 전해졌다.

거리는 제법 있다. 지금이라면 뭐라도 수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마력을 모았다. 은은한 빛이 선명해지더니 구체를 형성했다.

「에너지 볼」


파앙.


구체가 날아간다.

노리는 건 녀석의 눈.

그러나 달리면서 쏜 탓인지 목표에서 빗나가 몸통에 맞닿았다. 맞닿은 구체는 털들에 의해 흐트러졌다.

에너지 볼을 쏘는 동안에 달리기가 느려졌다. 안 그래도 가까운 거리 더욱 좁혀져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잡히고 만다.

목숨을 건 도박으로 에너지 커터를 만들었다.

발을 멈췄다.

"맞아라···!"

손목을 비틀었다.

거미의 눈은 8개. 즉, 약점도 8개라는 말이 된다. 철갑을 두른 드래곤이건, 폐광산에 사는 거대 거미건, 눈까지 단단하지는 않겠지.

원반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좋다. 맞는다. 녀석이 눈을 맞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에 도망치면 된다. 거미라고 해도, 눈을 잃으면 상당히 아프겠지.


슈우우욱.


파샥.


"뭐···?"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됐다. 이럴 리가 없다.

원반은 눈에 직격했다. 내가 직접 봤다. 녀석의 왼쪽에서 두 번째에 달린 눈에 맞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다. 원반이 사라졌다. 녀석의 눈에서 피가 뛰쳐나온다거나 움직임이 멈춘다는 현실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왜···?"


거미를 향해 물으면서도 답은 알고 있었다.

거미의 눈이 다친다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눈앞에는 거대한 다리가 보였다. 나를 찍어 죽이려는 기세로 날아들고 있었다.


"우앗?!"


생존본능이 한 뼘의 차이로 몸을 날렸다. 바닥을 구르다가 일어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자신은 도저히 나질 않아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달렸다.


"리시스! 숙여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아루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지시대로 바닥 위로 엎어졌다.


콱.


무언가가 박히는 소리가 났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슬쩍 눈을 떠서 거미를 봤다. 눈에 화살이 꽂혀있다. 거대한 다리를 마구 휘둘러대며 벽과 바닥을 거침없이 짓누르고 있다.


"잘했어!"


아루아를 칭찬하며 일어서서 달렸다.

고통으로 분노한 거미가 거칠게 사방을 휘저으며 다시 쫓아오기 시작했다.


"리시스! 더 빨리!"


아루아는 그렇게 말했으나, 지금 내가 내고 있는 이 속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방금 화살이 마지막이었어요!"


그렇다면 이제 잡히는 순간 끝장인가.

거미가 눈을 잃고서 날뛰며 달려오고 있다. 방금 전까지보다는 느려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내가 더 느렸다. 발목을 접질린 내가 아무리 달려봤자, 여덟개의 다리로 달려오는 저 거미의 속도에는 한참 못 미친다. 금방 따라잡힌다. 나도 그렇고, 아루아도.


「···그렇다면 내가 희생하는 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발을 멈춘다면.

아루아는 살아서 갈 수 있다.

나는 아루아의 기억 속에서 바보 같이 희생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그녀의 기억에서나마 약간의 의미를 가지고, 그나마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핑계잖아···.」


맞는 말이다. 이건 도망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하는 핑계다.


"커헉···!"


묵직한 다리가 나의 등을 찍어눌렀다.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으드드득.


"허억···!"


묵직함에 짓눌린다. 완치되지 않은 뼈들이 으스스 부서진다. 이상하게도 아프지는 않다.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의 몸은 망가진 걸까. 그 정도로 망가진 몸이라면 다시 일어서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위해 멈춰서준 저 소녀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폐 속에 공기가 남아있을 때에 말하자.

도망치길 망설이는 저 소녀에게.

도망치라고 말해주자.


"아루아···!"


「죽고 싶지 않아···!」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허세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결핍되어 있었다.

어느샌가 내가 했던 말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겠다는 약속은 나의 몸과 함께 짓눌린 채로 부서져 버렸다.


"도와줘···!"


얼굴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이것들이 그녀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쓸데없는 영웅심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그나마 움직이는 팔을 꼴사납게 뻗으며 그녀를 향해 헤엄쳤다.

이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나를 대신해서 끌려가줬으면 좋겠다. 오범회에 납치되었을 때는 내가 노력했으니, 이제는 아루아가 노력할 차례다. 그렇지 않으면 불공평하다. 나를 대신해서 이 거미의 먹이가 되어주어야만 한다.


"살려줘···!"


적어도 혼자서만 죽는 건 싫다. 곁에 아루아가 같이 있어야만 한다. 쓸쓸한 건 싫다. 나 혼자서 끔찍한 꼴을 당하는 건 싫다. 죽고 싶지 않다. 이 거미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다.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치 속에서 거미의 침에 녹아내리는 건 싫다.


"싫어, 싫어, 싫어···!"


몸이 끌려간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거미의 이빨에 팔과 다리를 난도질 당한다. 소리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배로 가져간다. 끈적한 실이 뿜어져나와 나의 하반신부터 뒤덮기 시작했다.


"아루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답은 없었다.

내가 보고 있던 세상이 빠르게 회전했다.

밑에서부터 어둠이 차오르더니, 세상을 끝까지 매꾸었다.


...


"아루아!!!"


그는 마지막으로 저의 이름을 외치며 고치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눈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요.

거미는 보란듯이 제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리시스가 들어있는 고치를 들고서 어디론가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끓어오르는 감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 감정에게 몸을 맡기기로 정했습니다.


"···저기요. 그 사람은, 아직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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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5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1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6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30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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