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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34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1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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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갸르키카의 솜-2

DUMMY

"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갸르키카들이 몸을 떨며 쫓아온다.

6개의 다리로 달려온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횃불을 물고서 달려오는 수십마리의 갸르키카가 보인다.


속도는···

빠르지는 않다.

나랑 비슷하다.


다만 물량과 지구력이 문제다.


앞서 달려가는 아루아의 등을 바라봤다.

나보다 빨리 뛸 수 있으면서도 일부로 맞춰주고 있다.


"거기 뿌리 조심해요!"


발밑을 봤다.

아루아의 말대로 유난히 튀어나온 나무의 뿌리가 내 발목을 잡으려 했다.


폴짝 뛰어서 피했다.


아루아가 없었다면 여기서 끝이었겠지.


"고마워!"


시각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한밤중의 숲에서 장애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리를 통해 사물을 보는 아루아는 다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일지라도 소리만 있다면 꿰뚫어볼 수 있다.


"먼저 갈게요!"


앞서 가던 아루아가 속도를 올리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일을 당하진 않을까.

혹시 저번과도 같은 상황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나는 자신이 없다.


최근에는 곁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다.


집착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래, 나는 집착하고 있다.

그녀의 곁에서 한시라도 떨어지는 순간 내가 사라져버린다.


마음을 나눈 사람을 잃는 걸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자신의 무능함을 합리화 시키는 것도.

나약함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리시스! 여기!"


땅속으로 하반신을 묻고 고개만을 빼꼼 내민 아루아가 손짓했다.


한편으론 안심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땅굴이에요!"


아, 그렇구나.


고개까지 들어간 아루아를 뒤따라 땅굴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루아에게는 맞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비좁았다.


그래도 아예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어서 몸을 쑤셔넣었다.


그 안에 아루아는 없었다.


어디로 간 거지?


땅굴이 어딘가로 이어져있다.


몸을 비틀고 손으로 굴을 넓히며 천천히 내려갔다.

뒤에서 발이라도 붙잡히면 끝이라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고, 덕분에 땅굴을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땅굴을 따라서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했다.


생각보다 길고 깊은 굴이었다.

어떤 생물이 지나간 통로 같았다.


두더쥐일까.

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인 남성이 지나갈 정도로 큰 굴을 팔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리시스? 따라오고 있나요?"


아루아도 불안했는지 앞에서 종종 말을 걸어왔다.


"어, 가고 있어."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땅굴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앞서가던 아루아가 멈추고, 그걸 모르는 내가 계속 앞으로 간다면···


인간적으로 그런 사태는 상상해선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창 때인 청년의 그렇고 그런 쪽으로의 상상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절제하고 있기야 하지만, 아루아 같이 매력적인 이성이 계속해서 어필해오면 여러모로 쌓일 수밖에 없다.


고개를 저었다.


인간성을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

사춘기 소녀의 장난에 넘어가는 건 어른답지 않다.


그리고···

지금의 아루아는 아루아가 아닌 것만 같다.


묘하게 감추고 있는 것만 같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감추고 있는 것이 사실은 없는 존재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위화감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러려니 했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아루아는 나에게 맞춰주고 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죽여가며 연기를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할 법한 행동들을 하고, 좋아할 법한 상황들을 만들고 있다.


착각이라면 좋겠지만.

짧지만은 않은 시간동안 그녀를 봐온 나는 아루아에게는 아루아가 없는 것 같다는 가정을 세웠다.


그녀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일치한다.

지난 세월동안 늘 그러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한 번도 그녀가 싫다고 말하는 걸 듣지 못했다.

가자고 하면 가고, 먹자고 하면 먹는다.


이상하다.

무언가 이상하다.


하지만 그 이상함을 아루아에게 직접 물을 수가 없다.


···아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아루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아루아라면 반드시 말해줄 거다.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그 망설임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땅굴을 나왔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아루아를 확인한 뒤, 툭툭 털어냈다.


"괜찮으신가요?"

"응. 너는?"

"저도 괜찮아요."


둘 다 다친 곳은 없었다.


땅굴 속을 들여다봤다.

갸르키카들은 쫓아조지 않았다.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몸집이 커서 들어오지 못했겠지.


이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늦게 깨달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둡지는 않다.

벽에 붙은 이끼들이 은은한 푸른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보랏빛을 띠고 있는 처음 보는 광석들도 있다.


"여기는···"


잘 모르겠다.

아루아라면 알고 있을까.


고개를 돌려 아루아를 바라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루아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장소.


통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주위에는 나와 아루아가 빠져나온 땅굴들이 드문드문 나있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 경사진 왼쪽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루아가 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막다른 길이에요. 돌무더기로 막혀있어요."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내려가는 수밖에 없나.


등을 돌려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형태로 통로는 이어져있었다.

빙글빙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땅굴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저 굴은 뭘까.


"리시스! 멈춰요!"


···뭐?


긴장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아루아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를 생각해버렸다.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치는 때는 언제나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말고는 없었는데.


알아차렸을 때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콰드드드득.


땅이 꺼졌다.


발을 내딛던 나는 돌연히 생겨난 땅굴 위로 나의 발을 빠뜨렸다.

기우는 몸의 균형에, 나는 발밑을 보았다.


그곳에는 톱니 같은 이빨을 가진 지렁이가 나의 발을 삼키려 들고 있었다.


"큭···!"


공중을 향해 몸을 날려봤지만, 솟아오른 지렁이의 톱니 이빨이 발목을 긁었다.


한바탕 구른 뒤에 다시 일어나보려 했으나, 깊은 상처가 남은 발목은 체중을 견디지 못했다.


불행중 다행이란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걸까.

발목이 절단되는 절망적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출혈의 양도 치사량은 아닌 것 같다.


괜찮다.

관절이 뽑히는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하다.


다시 한 번 일어나려고 시도했다.

성공은 했지만, 서있는 게 고작이다.

움직이려고 하면 발목이 접질려버린다.


나의 발목을 찢어놓은 지렁이는 기다란 몸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나왔던 땅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뭐, 뭐야··· 저거···."


아니, 그런 건 몰라도 된다.


"아루아, 다음은 어디야?"


에너지 커터를 만들어내며 아루아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은 없었다.


"아루아?"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루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녀는 여기에 있다.

내 앞에 있다.


그런데도 답이 없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다.


스르륵.

툭.


아루아가 들고있던 석궁이 그녀의 손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떨어졌다.

메겨져 있던 화살이 바닥을 굴렀다.


"아루아!"


소리쳐서 불러봤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젠장.


나의 거친입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의 버릇을 억누르고 발목을 접질려가며, 아루아에게 걸어갔다.

가만히 있으면 위험했다.


내가 다치는 건 용납할 수 있어도, 아루아가 다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내가 보고 있는 곳에서만큼은.

아루아가 다치거나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아루아."


다가가서 끌어안았다.

그제서야 아루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버리지, 마세요···!"


그건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알 수 없으면서도 나는 그녀가 품고 있던 걱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 때, 이 말만큼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버리지 않아."


보장은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라던가.

절대로, 같은 허울뿐인 소리는 할 수 없었다.


그야, 나는 흔해빠지고 널리고 널린 한 사람에 불과하고.

작은 변덕으로 모험을 떠난 어리석은 일반인에 불과하니까.


나는 비겁하다.

그리고 이기적이다.

언젠가 그녀를 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망설인 끝에 버려버리겠지.


지난 날 겪은 고통을 몸과 마음이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괜히 나서는 일이라곤 없을 거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녀의 곁에 있고 싶다.」


"버리지 않을 거야···."


다시 한 번 똑같은 말을 입에 담았을 때.

아루아는 작게 몸을 떨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어떤 표정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은··· 안전해요···."


아루아는 흔들리고 있었다.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흔들림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아마도 나는 그녀를 흔드는 바람일 테니까.


...


모험을 떠나기 수 개월 전.


리시스는 생각했다.


나는 뭘까.


카페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사이에서 평범하게 태어나서 평범하게 자랐다.

부족한 것도, 과도한 것도 없었다.

때문에 꿈도 없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카페에서 일하며 나름대로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걸 제외하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삶에서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건 있지만, 그 좋아하는 것 때문에 일상을 버릴 무모함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깨달은 순간, 자신의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줄 사람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칭찬을 해준 사람을 사랑하자고 정했다.


딸랑딸랑.


차임벨이 울렸다.

리시스는 웃으며 손님에게 인사했다.

손님은 커피를 주문했고, 리시스는 커피를 대접했다.

이윽고 손님은 커피를 홀짝이더니 방긋 미소지었다.


"맛있는 커피네요."


그것이 리시스의 첫사랑이었다.


...


『너 같은 건 집안의 수치다.』

『왜 살아있는 거지.』

『역겨워.』

『더러워.』

『구역질나.』

『죽어버려.』

『사라져.』












「버리지 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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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0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4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1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8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5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29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29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4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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