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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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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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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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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갸르키카의 솜

DUMMY

"흠, 좋아, 딱 맞는군."


릭은 의수를 내 손에 씌우더니,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의수, 라고는 해도 기사들이 입는 갑주의 장갑 부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꽃잎이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무늬네요."


아루아가 감탄했다.

그러자 릭은 그리움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의 손끝을 내려봤다.


"예전엔 금속세공사로 일했었지."

"이렇게나 잘 만드시는데, 왜 대장장이로 전향하신 겁니까?"

"딱히 이유는 없어. 금속세공사만 아니면 어떤 직업이라도 괜찮았지."


의수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손가락을 움직여보려고 애를 쓰는 나를 대신하여, 아루아가 답했다.


"아내 분을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그래."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대화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보고 미완성이라고 했던 그의 말을 떠올렸다.


"완성은 언제 됩니까?"

"거의 다 됐어. 하지만, 진도가 멈춰버렸지."


진도가 멈췄다, 라는 말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까.


"왜죠?"

"재료가 부족해. 아니, 없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곤란했다.

이대로 의수가 완성되지 못한다면 여러모로 불편한 식사시간이 해결되질 않는다.

옷도 혼자서 입을 수 없다.


최근에는 아루아의 모성애가 과도치게 상승한 탓에 씻고 나오면 속옷까지 입혀주려고 한다.

목욕을 할 때에도 같이 들어가서 씻겨주겠다는 걸 뜯어말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저희가 구해오겠습니다."

"그리 흔한 재료가 아니야."

"구해오겠습니다."


굳세게 밀어붙이자, 릭은 재료에 대해 알려주었다.


"가르키카의 솜이 필요해. 정확히는, 그 솜으로 만든 실이 필요하지."

"가르키카의 솜?"


처음 듣는 솜이다.


"가르키카라고 하는 종족한테서 얻을 수 있는 솜이야."


처음 듣는 종족이다.


"무역은 안하나요?"


아루아가 물었다.


"무역은커녕 적대적이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공격한다더군."


"그 정도면 마물이라고 취급받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래서 마물로 취급하는 국가도 몇 있지."


1차 종족전쟁 이후, 많은 종족들이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았으나 여전히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종족들은 많다.

그들은 때로 마물로 분류되어 사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가가는 것만으로 공격하는 적대적인 종족이라면 마물로 분류되어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갸르키카는 어디에 있습니까?"

"녀석들은 주로 마력이 풍부한 숲에서 굴을 파고 서식한다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다녀오죠."


의수를 더 손봐놓겠다는 릭을 뒤로 하고, 아루아와 거리를 걸었다.

리프트를 타고 1층으로 간 뒤,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마차에 타서 달란의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먼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산맥이 보였다.

그 끝자락에는 새하얀 눈이 뒤덮여있었다.

산맥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달란 산맥인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산줄기.

온갖 자원이 끝도 없이 흘러넘치는 광부와 대장장이들의 국가.


전에 올 때에는 자고 있어서 눈에 담지 못했다.

떠오르고 있는 태양마저 가려버리는 드높은 산맥의 꼭대기가 내가 이 세계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리시스, 그러다 넘어지겠어요."


뒤로 걷고 있자니, 아루아가 주의를 주었다.


감상은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더 품기로 하고, 그녀의 말대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달란에서 가까운 숲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해가 하늘의 가운데에 떠있을 때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달란까지 이어진 길에서 벗어나 숲의 안쪽으로 들어간 다음 멈춰섰다.


"이쯤이면 되겠지."


손 위로 희미한 마력을 발현시켰다.


살짝이라도 흔들리면 흘러내리는 물을 호수에서 얕게 뜨는 느낌이다.

희미하게 흘러나온 마력들은 날아갈 힘이 없기에, 그대로 떨어져 손바닥 위에 고인다.


새하얀 빛을 띠는 마력의 호수가 생겨났다.

그 호수는 희미하고 미약하기에, 작은 바람에도 일렁인다.


「마력 탐지」


개나 소나 다 배우는 완전 간단 마법서의 세 번째 페이지에 적힌 마법.

마력의 강약 조절을 배우는 단계이다.

지난 일주일간 연습했다.


찰랑찰랑 호수가 일렁였다.

마력을 담은 바람이 불었다는 뜻이다.

바람이 부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좌우로 흔들리던 호수가 앞뒤로 흔들렸다.


"저기인가. 가자, 아루아."

"잠시만요."


쭈그리고 앉은 아루아가 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덕분에 발을 옮기던 나는 성대하게 엉덩이를 박으며 넘어졌다.


"아야야···!"

"앗···! 죄송해요."


아루아가 성급히 사과했다.


"아니야, 괜찮아. 근데 왜?"

"맛있어보이는 나물이 있어서 뜯어가려고요."


나물.

그러고 보니 먹어본 지 한참 지났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곧잘 해주곤 했는데.


그리운 어린 시절의 나물 맛이 지금은 가물가물했다.

아루아의 요리를 먹어본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는 못 먹었다.

늘 식당에서 먹었으니까.


가정식이 그리웠다.


"나도 도울게."


그리하여 나와 아루아는 나물뜯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은 채로.


...


"엇."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주위의 나물이란 나물은 있는대로 뜯어버린 뒤였다.

솜을 챙기기 위해 가져온 여분의 가방은 맛있는 나물들로 가득 차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노을,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을 지체해버렸다.


돌아갈까.

생각해봤으나, 아루아가 만족스러운 듯이 "이제 가죠."하고 말했기에 그냥 가기로 했다.


다시 손 위로 마력의 호수를 만들었다.

마력이 깃든 땅으로 인도하는 바람을 따라 걸어나갔다.


그리고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때.


"리시스, 멈춰요."


아루아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겼다.

그녀의 지시대로 멈춘 뒤 주위를 둘러봤다.

손에서 호수를 따라내고 날카로운 원반을 준비했다.

아루아는 능숙하게 석궁을 겨누었다.


"뒤는 맡길 게."

"에스코트 잘 부탁드릴게요."


딱히 이렇게 하자고 정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샌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었다.


집중하자.

노을이 지는 시간부터는 위험한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


나는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가졌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안정시켰다.


"무우무크!"


소의 울음소리를 닮은 외침이 울려퍼졌다.


"무리아 무크!"

"가무르! 키아카!"


외침이 늘어난다.


"셋이에요. 창을 들고 있어요."

"지능이 있다는 건가."


그대로 원반을 날리려다가, 잠시 멈춰서 생각했다.

잠깐만.

마력이 깃든 땅에서,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고, 적대적인 종족이라면.


"무르아 가루키카!"


그래, 갸르키카.


"아루아, 잠깐 석궁좀 내려봐."

"네?"

"쟤네는 갸르키카야."


아루아는 아 하고 뒤늦게 깨달았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윽고 갸르키카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은 뿔과 갈색 털이 난 도마뱀에 곤충의 다리 6개가 붙어있다고 설명하는 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갸르키카들은 돌을 깎아 만든 창을 겨누며 나와 아루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루아, 전에 알려줬던 그거 해."

"네?! 지금이요?!"

"지금 아니면 늦어."


내게 검이 있었다면, 내가 했겠지만 지금은 없으니 아루아에게 시키는 수밖에 없다.

아루아는 으으 하고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내가 알려주었던 동작을 취했다.


툭.


아루아는 몸을 굽히며 느릿느릿 석궁을 내려놓았다.

다시 일어서며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나도 따라서 두 손을 올렸다.

큼큼 하고 아루아는 일부로 목을 울렸다.

그리고는 목을 칼칼하고 낮게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거, 말로 합시다. 말로."


소녀의 목소리로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걸로 충분하겠지.

작은 속삭임으로 칭찬했다.


"잘했어."

"이거··· 진짜로 효과 있나요···?"


아마도.


"안 통하면 어떡하죠···?"

"꽁지 빠지게 도망쳐야지."

"하우으으···!"


속았어요, 라고 중얼거리며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아루아를 보고 껄껄 웃고 싶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다.


갸르키카들이 서로 말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그 말이 우리에게 있어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알지 못하기에, 언제든지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저들이 덮쳐온다면 바로 앞에 있는 저 녀석을 「에너지 볼」로 쓰러뜨린 뒤에 도망치자.


"무리아으무?"

"마이루키무?"

"무르아키루."


세 갸르키카는 우리에 대한 처우를 결정한 듯했다.

천천히 창을 좁혀왔다.

그러다가 한 명이 창을 내빼더니, 등을 밀었다.


앞으로 가라는 건가.

의도는 모르겠지만, 바로 창을 찔러오지 않았다는 건 다행이다.


"르키무 으마."


나와 아루아는 그들이 데려가는 곳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멈췄을 때는 해가 거의 져버린 뒤였다.


앞에는 커다란 땅굴이 보였다.

그곳의 입구에는 양쪽에 창을 든 문지기가 둘 서있었다.


우리를 데리고 온 갸르키카 한 마리가 땅굴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다른 갸르키카를 데리고 나왔다.


새로 온 갸르키카는 다른 갸르키카들과는 달리 머리에 돌로 만든 왕관을 쓰고, 손에는 돌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목에는 이름 모를 꽃들을 엮어 만든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족장인가.

생김새를 보아하니 보통 갸르키카는 아니다.


족장 갸르키카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을 열었다.


"왔냐 무엇 빼앗으러. 나쁜 자."


덜덜 떨리는 소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대륙 공용어가 나왔다.

발음이 이상하고 단어도 4살짜리 어린 애들이나 쓸법한 간단한 것들.

하지만 대화에는 문제없는 수준이다.


나는 족장 갸르키카에 맞추어 우리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나 없다 손가락. 부탁한다 필요하다 그대들의 솜."


그러자 아루아도 거들었다.


"생각없다 나쁜 짓. 주면 도와준다 솜."


···알아들었을까?


정적이 흘렀다.


족장은 동그랗고 커다란 검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우리를 노려봤다.


정적을 따라 나의 땀이 볼을 따라 흘렀다.

긴장감도 흘렀다.

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이윽고 족장이 지팡이로 땅을 콱콱 강하게 두드렸다.

날카로운 외침이 숲속에 울려퍼졌다.


"무으무 크리카!"

""무크!""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갸르키카들의 창이 순식간에 갯수를 늘렸다.


"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족장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땅굴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안에서 수많은 갸르키카들이 창을 들고 뛰쳐나왔다.


"저, 저기요, 리시스?"


아루아가 불안에 떨며 내 옆으로 붙어왔다.


"왜?"

"이제 어떡하죠?"

"아까 알려줬잖아? 꽁지 빠지게 튀어."


이런 경우도 대비해서 손에서 마력을 흘리고 있었다.


「에너지 커터」


우리들을 빙 둘러싼 갸르키카들의 안면에 날렸다.

급조한 마법이기에 위력은 낮지만, 갸르키카들을 놀래켜서 뒤로 물러나게 할 위력은 된다.


자신들의 얼굴을 향해 원반이 날아오자 그들은 몸을 숙이거나, 뒤로 물러나며 원반을 피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다음 마법을 급조했다.


「에너지 볼」


파앙.


퍽.


급조했음에도 상당한 위력을 갖춘 구체가 한 갸르키카의 안면을 강타했다.

녀석이 넘어지며 틈이 생겼다.


이때를 놓쳐선 안 된다.

넘어진 갸르키카의 창을 발로 걷어차며, 아루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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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5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1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5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 갸르키카의 솜 20.07.10 30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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