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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37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2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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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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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도적의 가르침

DUMMY

어둡다.

빛이라고는 방의 한가운데에 놓은 램프 하나가 고작이었다.


"저기요?"


불러보았으나, 기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갔다. 램프의 빛에 다가갔다. 그것을 들고 주위를 비춰보았다.

으스스한 분위기.

녹이 슨 철판들로 이루어진 벽을 따라 빙 둘러보았다.

문을 찾아보았으나, 처음에 들어왔던 문이 유일한 문이었다.

건물의 뼈대를 이룬 얇은 판자들에는 붉은 곰팡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이거, 설마 피인가?


질척.


무언가를 밟았다. 그곳에는 피웅덩이가 고여있었다.


"뭐, 뭐야?"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어떠한 기척도, 어떠한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피웅덩이를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이건······!"


어둠을 뚫고 나온 그곳에는 대거에 찔린 채로 숨을 거둔 한 여성의 사체가 놓여있었다.

위험하다. 당장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등을 돌렸다. 문의 위치라면 기억해뒀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알려야 한다.

알리지 못하더라도 도망쳐야 한다.

살아서 나가야만 한다.

달려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좋아···!"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돌렸다.


칵.


"어······?"


잠겨있다.


"이런 씹···!"

"쉬잇."

"으갸아아아악?!"


속삭이는 살인자의 바람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램프를 집어던···

지지 못했다.

생존본능이 결코 뒤로 돌아서선 안 된다고 외쳤다.

등골이 얼어붙었다.

몸을 돌리는 순간 날붙이에 꿰뚫릴 것이다.

한기를 머금은 칼날이 나의 등에 수직으로 맞닿아있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아니, 포기하지 말자. 바로 죽지 않았다. 무언가 요구할 게 있으니, 나를 죽이지 않고 있는 거겠지.

틈을 봐서 도망치자.

밖으로만 나가면 어떻게든 될 거다.


"두 손 들고, 램프 내려놔."


지시대로 두 손을 들고서 바닥에 램프를 떨어뜨렸다.


퉁.


"내가 요구하는 건 두 가지다."

"그게 뭡니까···?"


각오는 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을 억제하지는 못했다.

겁에 질렸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이겠지.

괜찮다. 이걸로 상대가 나를 얕본다면 무엇보다 좋은 기회가 될 테니.


"하나, 저 여자는 네가 죽인 거다."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저 여자를 선생님이라 불러라."

"···네?"

"불만있나?"


쿡.


따끔한 통증이 등을 가볍게 찔러왔다.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어, 없습니다!"

"좋아, 도적 길드는 너를 환영한다."

"···네?"


날붙이가 떨어져나가며 들려온 말을 듣고서 얼빠진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곳에는 램프가 쫓아내지 못한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 외의 것은 없었다.


"뭐, 뭐지···?"


등을 어루만져봤다. 희미하게 찔린 상처는 남아있었다. 손에 묻은 피도 가짜가 아니었다.


"그, 런, 고, 로!"


덥석.


누군가가 나를 덮쳐왔다. 이번에도 역시 뒤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와닿은 것이 차가운 날붙이가 아닌 따듯하고 말캉말캉한 무언가였다는 거. 무언가, 라고 하면 잘 모를 수도 있어서 한창때의 남자인 내가 굳이 설명하자면.

아, 젠장. 설명하려고 하니까 자괴감이 든다.

것보다 누구한테 설명하려는 거야. 나는.


"내가 너의 선생님이야!"


뒤에서 불현듯이 와락 덮쳐든 여성이 나를 뒤에서 껴안다가 몸을 강제로 돌려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했다.

목까지 닿는 짧은 갈색의 머리카락, 기분나쁜 눈빛으로 천천히 나를 훑어보는 연두색의 눈동자. 피와 똑같은 액체에 젖은 질척한 거부감. 그리고 몸매가··· 성희롱의 의도는 전혀 없이 직설적으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쭉쭉빵빵.


「···나는 쓰레기다.」


자괴감과 자책감이 나를 덮쳐왔다.

자꾸만 탁 트인 골짜기로 눈이 향해버린다.

파괴력이 장난 아니다.

그걸 알고서 과시하려고 하는 걸까.

점점 몸을 밀착시켜온다.


"히, 히이익···!"


세계 최고의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 지난 21년간 지켜온 내 동정이 위협받고 있다.

아니, 안 된다. 포기하지 마라.

나는 바뀌기로 마음먹었다.


텁.


턱을 붙잡혔다. 그리고 잡아당겨졌다.


"얼굴은 뭐, 그럭저럭 합격점인가?"

"그, 저, 감사합, 니다···?"


이렇게 답하는 게 맞는 건가.


"음침한 눈빛이네? 내 몸에 관심있어?"

"하나도 없···!"

"거~짓~말."


짝.


한순간의 성욕에 져버릴 뻔한 나의 뺨을 강하게 때려주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괜찮다.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도 없습니다."

"진짜루~?"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며 밀쳐내기 위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텁.


"응···?"


손목을 붙잡혔다. 거기까지는 따라갔다. 내 눈도, 감각도, 사고도 따라갔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전부 놓쳐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부유감이 온몸을 감쌌다.

술이나 마약을 한 것도 아닌데 세상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그리고.


퍽.


"커헉···!"


떨어졌다.


"자, 방금 그걸로 얻은 교훈을 말해봐."


교훈이라니 그게 무슨···


우드득.


"끄헥?!"


천장을 바라보던 시야가 다시 한 번 빙글 돌더니, 팔이 뒤로 꺾이며 묵직한 무게감이 등을 찍어눌렀다.


"세 가지 이상 말하기 전까지는 계속할 거야."

"잠···!"

"세상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아~"


퍽.


팔꿈치로 등골을 정확하게 찔렸다.


"우욱···!"

"하나, 두울, 세엣!"


아, 이거 이러다 죽겠다.

폐속에 남은 공기를 있는대로 끌어모아서 힘겹게 내뱉었다.


"방심하지 않는다···?"

"으음, 그것도 중요하지만 흔해빠진 답이잖아?"


우득.


목을 붙잡히고, 다리를 속박당했다.

그 상태로 몸이 활대처럼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 그, 그, 그, 그! 흔들리지 않는다아아아!"


스르륵.


부러진다고 소리를 지르던 허리가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휴우, 살았다.

전직관은 나를 풀어주고 자리에서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그리고.


"좋았어, 나머지 두 개!"


퍽.


"욱···!"


몸을 일으키지 못한 나의 복부를 짓밟았다.


...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일어설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헐떡이며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셀리크 선생님의 참된 말씀을 듣는 것밖에 없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


개운하다면서 기지개를 피는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셀리크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서히 감기는 눈꺼풀에 정신을 맡겼다.


...


그 다음날에도 얻어맞았다. 얻어맞으면서 세뇌식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얻어맞고, 쓰러지고, 짓밟혔다.

저항이라곤 허용되지 않았다.

관두겠다고 했으나, 그럴 마음마저 꺾이도록 철저히 얻어맞았다.

식사는 이틀 간격으로 수업을 마친 저녁에만 주어졌다.

사흘째가 되니,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맞는 것에도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어쩌면 통증이 마비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프다는 것도, 목이 마르다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너무도 흔해빠져서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몸이 괴상한 각도로 꺾이고, 피멍이 생기도록 얻어맞아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털썩.


맞다가 지쳐서 쓰러졌다.


"뭐해? 빨리 일어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셀리크 선생님께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먼저 몸을 굽히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올려치기.

슬쩍 오른쪽으로 비켜서며 얻어맞았다.

다음에 이어서는 왼발로 오른쪽으로 비켜난 나의 무릎을 꺾는다.

꺾이는 대로 꺾여지며 셀리크 선생님에게로 꺾이지 않은 발을 내딛었다.

이어서 날아오는 무릎은 몸을 비틀며 타격을 최소화한다.

팔꿈치 찍기 공격은 어깨를 돌리고, 가슴에 스치듯이 얻어맞는다.

뱀이 먹잇감을 조이듯이 몸을 엮어오는 공격은 대처법이 없다.

그냥 당해준다.


"흐윽···!"


관절이 무릎부터 순서대로 꺾이고, 땅에 엎어지며 제압당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등 위로 전해지는 말랑말랑하고 묵직한 감각이 유일한 포상이었다.


"이제야 좀 쓸만하네."


으드득.


팔이 부러지지는 않지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각도로 꺾였다.

수업이 끝났다는 알림이었다.

···아마도.


"그렇, 습니까···."

"처음에 알려줬던 도적의 불문율 세 가지 읊어봐."


폐가 짓눌려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익숙한 질식감.

그러나 익숙하다고 해서 제대로 말을 꺼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나··· 믿지, 않는다···."


도적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설령 가족일지라도, 사랑하는 자일지라도.

지키기 위해서 믿지 않는다.


"두우울···! 흔들, 리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흔들려선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위기로 다가오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희생시킨다.


"셋···!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죽이는 과정에서 어떠한 생각도 가지지 않는다. 할 수 있을까, 도 아니다. 할 수 없을까, 도 아니다.

그냥 하는 거다.

공포도, 걱정도, 자책도, 좌절도, 후회도, 절망도. 전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모두 버려라.


"잘 기억하고 있네."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셀리크 선생님께서 휘감고 있던 팔과 다리를 풀어주셨다.


"푸하악···!"


자유로운 호흡이 허락되는 그 순간 미친듯이 빨아들였다.

습하고 눅눅한 공기가 폐속을 가득 채워주었다.


땡그랑.


무언가가 날아와서 땅바닥을 굴렀다.

대거가 나의 옆에 떨어졌다.

도적들의 주 무기.

극단적인 단거리에서 치명상을 입히는 것에 특화된 검.


"잡아."


선생님의 말씀대로 대거를 손에 쥐었다.

손잡이의 형태가 달랐으나, 잡은 순간 적응되었다.

나는 이걸로 사람을 찔러본 적이 있다.

그리고 확실하게 죽이지 못했기에 새겨진 악몽을 기억하고 있다.

얼굴이 분질러지고, 관절이 부러지고 뽑히며, 끝내 손가락을 잃었다.

그런 과거를 알지 못하는 셀리크 선생님께서는 손으로 까딱까딱 나를 도발했다. 선생님의 손에는 어떠한 무기도 들려있지 않았다.


"잡고, 덤벼."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팔이 꺾이면 끝이라고 섣부르게 믿고 있었다.

세뇌 당한 가르침을 되새겼다.


「하나. 믿지 않는다.」


배우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과거로부터 충분히 배웠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둘. 흔들리지 않는다.」


그 믿음에 이제와서 깨졌다고 해봤자 새삼스러운 일이다.

진작에 사라져 있었으니까.

내가 흔들렸던 순간들은 결코 한두 번이 아니다.


「셋.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게 뭐 어쩌라고. 어찌되건 좋잖아.


"퉤."


핏물이 터진 입술을 닦으며 먼지가 뒤섞인 침을 뱉었다.

휘청이고 비틀거리다가 두 발로 섰다.

대거를 굳게 쥐었다.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스읍···! 후우···!"


마지막 호흡을 마쳤다.


눈앞의 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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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4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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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5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29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4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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