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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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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0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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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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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DUMMY

새의 지저귐은 아침마다 들려오는 일상이지만, 그 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특별한 존재임을 알고는 있을까.

곁에서 자고 있는 아루아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삐걱대는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려 하자, 아루아가 우웅 하고 신음하며 뒤척였다. 그리곤 손으로 나의 옷자락을 꼬옥 쥐었다.


"리시스···."


납치사건을 겪은 이후로는 계속 이런 상태다.

한시도 나와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마법을 연습할 때에도 종종 아루아가 얼굴을 비춰주지 않으면 허겁지겁 뛰어가서 확인하곤 한다.

평소대로였다면, 이대로 누워서 아루아의 자는 얼굴을 지켜보다가 깨어난 아루아가 얼굴을 붉히도록 만들었겠지.

오늘은 다시 모험을 시작하는 날이기에 곤히 자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루아, 가자."


정이 들었다면 들어버린 식당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여관을 나왔다.


"어이! 또 들려달라고!"


뒤에서 여관주인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가벼운 웃음과 함께 목례로 작별인사를 마치고, 아루아의 옆을 걸었다.

오랜만에 걷는 거리.

유난히 아루아가 붙어왔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말을 꺼내보았다.


"그 로브, 슬슬 바꿀 때 되지 않았어? 여관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안 빨았잖아."

"으음··· 그래도 애착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못 버리겠어요···."

"뭐어, 바꾸고 싶다고 해도 돈 없어서 못 바꾸지만."


무일푼이라는 경제적인 절박함이 극에 달한 현상황을 웃음으로 넘겨보고자 하하 웃었다.

이렇게 웃어봤자 돈이 생겨나는 건 아니다.

그래도···


"풉, 뭐예요, 그게."


연약하게나마 웃어주는 아루아가 있다면, 그마저도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이후로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미궁을 향해 모여드는 모험가들을 뒤따라 걷다가,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역시 의뢰를 받고자 하는 모험가들이 가득했다.


"···."


좋지 않은 기억이 위장을 긁어내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빨리 떠나야겠다.

의뢰를 접수 중인 카운터의 대기열에 서서 차례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차례가 다가왔고, 익숙한 직원의 얼굴이 눈에 비추었다.


"어서오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직원의 낯짝에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속내를 감추고 만들어낸 미소를 얕게 내비추며 용건을 말했다.


"달란으로 가는 마차를 소개해줘."

"달란입니까. 대로변에 있는 레일라이트 상인연합으로 가주시면 됩니다."


모험가의 혜택 중 하나인 이동수단의 무료 이용.

정식으로 협회에 가입한 것은 아루아 뿐이지만, 얼마 전에 영웅급 모험가인 흑기사 단테 씨가 부여한 작은 영웅이라는 칭호로 인해 나 또한 자동으로 가입이 되었을 거다.


"가자, 아루아."


등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잠시만요. 리시스 씨, 작은 영웅이란 칭호가 있습니다만. 이 마석에 손을 올려주시죠."


직원이 카운터 밑에서 푸른빛이 맴도는 마석을 꺼내들었다.

나는 서둘러 손을 올렸다.

마석에서 눈을 감았다 뜨는 것만으로도 깨닫지 못할 짧은 빛이 반짝였다.


"등록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기존 혜택에 더해서 추가적인 혜택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그렇군."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고 싶으나, 이곳에 오래 있으면 장에 구멍이 뚫릴 것만 같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모험가들이 시선을 모으며 수군거리는 광경이 꼴보기 싫었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대로변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눈에 걸리는 간판이 보였다. 드워프어로 쓰여진 간판. 그 아래에는 작게 인간어로 레일라이트, 라고 쓰여져있었다.

저기다.

하지만 그 전에 무기를 반납해야 한다. 발을 꺾어서 무기를 대여했던 대장간으로 발을 돌렸다.


"어서옵쇼."

"검을 반납하러 왔습니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검을 그에게 건넸다.

검을 받아든 대장장이는 검집에서 꺼내 상태를 살펴보더니, 흠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 그 총각···은 아닌가? 그 청년이로군."

"총각 맞습니다."

"그럼 옆에 있는 건 누구야?"


그의 고개가 또르르 돌아가 아루아에게 고정되었다.

아루아는 익숙하지 않은 이의 시선에 놀라 나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로브를 깊숙히 쓰고 있어서 정체를 들킬 일은 없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변명이라도 해두자.


"여동생입니다."


"에에···."


뒤에서 아루아의 목소리가 실망을 가득 싣고 흘러나왔다.

뭐라고 답해줬으면 했던 거냐. 너는.


아야.


꼬집지 마. 거기는 아직 안 나았다고.

아야야.

아파. 그만해, 아루아.


"그런가. 돌려받기는 했으니 귀찮게 확인할 필욘 없겠지. 그냥 가."

"잘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장간을 나와서 레일라이트 상인연합 건물 안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험가들이 수두룩, 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있었다.

마차 엄호 의뢰를 접수한 뒤, 마부가 우리를 고용할 때까지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아루아가 쌓아두었던 불만을 표출했다.


"리시스는 너무해요."

"···응?"

"여동생이라니, 널리고 널린 선택지 중에서 하필 그건가요? 상처받았다구요. 저 말이죠,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자는데도 왜 손을 안 대는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저를 여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던 거라니···."


속사포로 발사되는 언어의 포탄에 직격한 나는 변명의 여지를 잃어버렸다.


"어, 어어··· 미안···."

"그게 사과한다고 될 일인가요?"

"아니, 그치만···"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요."


흥 하고 아루아는 고개를 돌렸다. 억지로 지어낸 듯한 그 동작의 부자연스러움에 나는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일부로···






는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덜컹거리는 마차의 짐칸.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아루아를 달래줄 수 있을지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째지···?

대략 세 시간은 대화가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라. 나. 너의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머리라도, 이 소녀의 노여움을 해소시킬 방법을 궁리할 수 있을 거다.


"리시스 님은 대단하시더군요. 동급 모험가인데도 영웅급 칭호를 달고 계시다니."


허허허. 하고 달갑게 웃는 마부의 웃음소리는 주위의 풍경과 다름이 없었다.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저어··· 아루아···?"

"죄송해요, 리시스. 졸리니까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아, 응, 알겠어."


멍하니 마차의 뒷편으로 멀어져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덮은 천막에서 그려져 나오는 풍경에는 지루함과 평화로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루아의 화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자.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매 한 마리가 날고 있는 게 보였다.

매는 한참동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마차와 똑같은 방향으로 날고 있어서 그런가.

뒤쳐지기는커녕 가까워지고 있다.


"···응?"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매가 마차를 따라오고 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몸집이 거대해진다.


"어, 어어어어···?!"


점점 커진다. 급격하게 자라기 시작한다.

거리가 있는데도 집체만한 크기.

이건 평범한 매가 아니다.

몸을 돌리고, 마부를 향해 외쳤다.


"전속력으로 달려!"

"네···? 무슨···"


갑작스런 호령을 따라가지 못한 마부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히, 히이이이이익!"


겁으로 침식된 몸을 떨며, 말들을 마구 채찍질 해댔다.


"이랴이랴이랴이랴이랴이랴이랴이랴이랴이랴···!"


깜짝 놀란 말들이 급격하게 가속을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아루아!"


자는 척을 하고 있던 아루아는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일어나, 자신보다 큰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저 새는 대체 뭐지?

들어본 적이 없다.

거대하다.

그리고 거대하다.

또, 거대하다.

눈이 세 개다.

다리도 세 개다.

날개는 네 개.

뭐야, 저거. 멋지거나 징그럽거나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는데.


"쎄에에에에에엑!"


마차 위를 날고 있던 괴조가 울부짖으며, 급강하했다.

날개를 접고, 직선에 가깝게 떨어지다가 추락하는듯 싶더니, 날개를 피며 급상승.

마차의 짐칸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습격.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푸슉.


때를 기다리고 있던 아루아가 방아쇠를 당겼다.


거대 석궁에 의해 발사된 화살은 목격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가, 괴조의 눈에 꽂혔···


어야 했는데.


빗나갔다. 나는 눈앞에서 펼쳐진 괴조의 마법 같은 곡예를 부정하고 싶었다.


괴조가 화살이 발사되기 직전에 날개를 접으며 몸을 비틀었다. 회전력을 갖춘 녀석의 육체는 공중에서 옆으로 구르며 화살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날개에 맞는듯 했으나, 두터운 깃털에 의해 화살은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저런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도 저런 날렵한 동작이 가능하다니···.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대로라면 저 녀석은 낮은 고도에서 상승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괴조는 멋드러지게 부정했다.


날개를 재차 펼친다.

세 개의 다리를 땅에 내딛는다. 옆으로 몸을 던진 관성을 한 번에 버텨내는 건 녀석에도 불가능한 일인지, 같은 동작을 두 번 반복했다.

옆으로 회전, 날개를 펼치며 땅을 내딛고, 옆으로 회전, 날개를 펼치며 땅을 내딛고.

그대로 세 발을 땅에서 튕기며 높이 날아오른다.


"뭐야, 저거···"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은 선사하는 괴조의 움직임에 소름이 돋았다.


"리시스! 뭐라도 해봐요!"


석궁에 화살을 메기며 아루아가 엉거주춤한 나를 향해 외쳤다.


덜컹.


커다란 돌부리를 넘은 건지, 마차가 부웅 떴다가 내려앉았다.

얼 빠진 채로 서있던 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쿠당탕 넘어졌다.


"으, 으으으···!"


아프다.


낫지 않은 상처로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켰을 때, 마차를 덮고 있던 천막은 괴조에 의해 찢겨나가 있었다.


"리시스!!"


아루아의 날카로운 외침이 귓가에 울렸다.


"···이미 차렸어. 방금 넘어진 게 꽤 아팠거든."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멋있는 대사를 하며 허세를 부렸다.

침착하게 목을 내리깔고, 그녀에게 말을 전했다.


"아루아, 저 녀석이 다시 덮쳐올 때 눈을 노려."


"···저 녀석은 제가 방아쇠 당기는 걸 보고 있어요."


"알고 있어."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절망으로 가득한 나락으로 떨어져보기도 했다. 그래서 바뀌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나마 아루아가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보자고.

그런데도 방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저건 못 이긴다고 무의식적으로 단정짓고 있었다.

평범하게 나로 살아왔던 나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스읍··· 하아···."


손가락이 존재하지 않는 허전한 손에 의식을 집중했다.

은은한 마력이 손바닥 위에서 피어올랐다.

본래라면 여기서 「에너지 볼」을 만든 뒤에 얇게 펴서 날카롭게 연마해야 하지만.

「에너지 커터」를 한 번이라도 성공시켜본 사람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 편법에 중간과정은 필요가 없다고.

손에서 마력을 지속적으로 발현시킨다.

그 상태에서 뚜껑을 덮는 거다. 반대쪽 손으로도 마력을 발현시키며, 두 손을 마주보게 한다.

이어서 손과 손의 거리를 빠르게 좁힌다.

서로 마주보고 발생되는 마력은 앞으로도, 뒤로도 날아가지 못하고 머물며 응축되어 옆으로 퍼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원반이 생겨난다.

다음부터는 간단하다.

마력을 있는대로 때려박으면 된다.


「에너지 커터」


준비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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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4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1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5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29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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