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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47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0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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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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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지하국가 달란

DUMMY

주황빛.

거기에 이어서 선선한 찬 바람.

유난히 어두운 나무의 그림자.

잔잔히 스며드는 익숙하면서도 상냥한 향기.

머리카락을 데우는 부드러운 체온.


"아, 일어나셨네요."


아루아가 보였다.

노을빛에 물든 하늘하늘한 하늘색의 단발머리가 바람에 스치우며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이마에는 그녀의 손이 올려져 있었고, 나의 머리카락은 들판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어지고 있었다.


"뭐랄까, 그리운 느낌이네."

"무릎베개는 처음 해드리는 건데요?"

"예전에 우리 엄마가 곧잘 해주곤 했었거든. 동화책 읽으면서 말이야. 그래서,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보이지 않는 아루아의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쿡쿡거리며 웃는 그 입가와는 달리, 내려가지 않는 눈꼬리였다.


괜한 트집을 잡으려는 건 아닐까.

의문이 나오려던 입을 다물고, 얌전히 어설픈 미소를 감상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감정이란 있는 법이니까.


"원하신다면 읽어드릴게요."

"응, 부탁할게."


아루아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서는 눈을 다시 감았다.


붕대에 감싸인 어깨는 기억하고 있던 통증을 서서히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이 아픔을 잊고 있자.

스쳐가는 바람이 실어날라줄 테지.


"마침 잘 됐군요. 저도 심심했던 참입니다."


마부석에서 고삐를 잡고 있던 케지만도 아루아에게 부탁했다.


"기대하라고, 아루아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고요한 밤하늘의 별과도 같으니까."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금도 충분히 좋습니다."

"···두 사람 다 아부 떨지 마요."


케지만과 크크큭 웃었다.


톡.


이마에 손톱만한 충격이 와닿았다.

아프지도 따갑지도 않은 딱밤이었다.


슬쩍 눈을 떠보니, 아루아가 어딘가 슬퍼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리해서 웃지 않아도 돼."


그녀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말이 최선이었다.

이마저도 괜한 참견이었다.


"무리해서 웃은 적은 없는 걸요. 시작할게요. 편히 들어주세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루아는 책을 펴고, 이야기를 담은 점자들 위로 손을 올렸다.


...


"리시스. 도착했어요."


자칫 잘못하면 작은 새의 목소리라고 여기며 흘려보낼 것만 같은 속삭임이 나를 깨웠다.


아루아가 있었다.

입가의 미소는 여전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베어나오는 고심의 편린 또한 여전했다.


또 한 가지 여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능력한 나였다.


"···천장이 있어."

"네."

"지하국가니까 당연하죠!"


기운차게 말했지만, 케지만의 목에서는 피곤함이 물들어있었다.


하긴.

괴조의 시선을 강탈하는 구애의 춤을 추고 쉬지도 못한 채로 고삐를 잡았으니 지쳤겠지.


상인이라는 직업도 마음고생 몸고생 다 하는 직업이구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케지만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뇨, 뭘요, 두 분 덕분에 스릴 넘치고 즐거운 닷새였습니다."


부끄러운지 뒷통수를 벅벅 긁으며 우하핫 하고 웃는 유쾌한 남자를 뒤로 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당신들 이름이 보인다면 덥썩 낚아오죠! 아, 참! 이거 가져가세요!"


휙.


케지만이 작은 주머니를 던졌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그 주머니를 얼떨결에 받았다.

하마터면 정면으로 맞을 뻔했다.


"이건···?"

"여러 가지로 잘해주셔서 보너스입니다!"


가치는 알 수 없지만, 그 안에 든 건 동전들이었다.

의뢰 달성 보수는 달란에 들어오면서 아루아가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액수가 주머니 안에는 들어있었다.


"건강하시고, 죽지 마세요!"


껄껄대며 손을 흔드는 케지만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에게서 등을 돌리며,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손을 흔드는 아루아에게 주머니를 건네주며, 가자고 얘기했다.


"좋은 분이셨네요."

"···응."


고개를 끄덕이며 개운치 않은 심정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무얼 생각해도 결국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아니.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옳지 않다.


옆에 아루아가 있다.


그녀가 있는 한 최대한 밝게 있자고 결심했다.

웃고 있다면 나 또한 웃고 있자고 결정했다.

그것이 누구도 구해내지 못한 나의 최선이다.


괜스레 나섰다가는 악화되기만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언젠가 아루아가 마음을 열고 말해줄 때가 오겠지.

때가 되면 분명 그동안 답해주지 않았던 것들을 답해줄 거다.

그럼 나는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의 나를 연기하자.


생각을 정리하니, 차츰차츰 달란의 거리가 보였다.


거리에는 불이 켜진 가로등과 켜지지 않은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키는 대체로 작고, 어깨가 넓다.

귀와 코가 유난히 뭉툭하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하며 꾸불꾸불하다.


드워프는 세르나리아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사방에 둘러싸이니 적응되질 않았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커다란 리프트들이 광석을 나르고 있었다.

길을 가다 보인 표지판에는 여러 종족들의 언어가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달란 산맥 제 1층 상업지구에 어서오세요.


상업지구답게 드워프가 아닌 종족들도 보이기는 한다.

크게는 둘이지만. 인간과 페쿠스.

그 외에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국가 간의 무역이 활성화된 종족이 거의 이 셋 말고는 없다시피 하다.

플뤼겔이라는 종족도 무역은 하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먼 데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물건이 없다나.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 머시기 하면서 비판하지만, 그런 건 일반인인 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거리를 걸으며, 가지고 있는 동전들을 세어보았다.

우선 아루아가 받은 주머니에 2실버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보너스로 받은 주머니에는 1실버와 27쿠퍼가 들어있었다.

총 합계 3실버 27쿠퍼.


그럭저럭 괜찮은 여관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식사를 하며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다.

하지만 의수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결국엔 또 카페가 답인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는 괜찮아요."


아루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모험이랍시고 위치만 옮겨다니면서 카페를 하는 건 미안하다.


반은 다행이고 반은 불행이지만, 달란에는 카페가 없다.

드워프들에게 차는 밋밋한 물과 다름없다.

그들에게 차라고 한다면 숙성된 싸구려 포도주와 시원한 맥주 뿐이다.


"곤란하네."

"돈은 나중에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의수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일리 있다.


"응, 그러자."


그러기 위해서는 2층으로 내려가는 게 알맞겠지.


1층이 상업지구라면, 2층은 생산지구다.

검과 방패, 혹은 마도구와 같은 드워프의 정수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2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1층의 끝에 위치한 거대 리프트에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어디에서 왔냐, 무얼 하러 왔냐, 어디로 갈 거냐 등등.

일관성 있게 답하자, 검문관은 리프트에 들여보내주었다.


"그 젊은 나이에 손가락을 잃다니, 상심이 크겠구먼."


먼저 리프트에 탄 채로 나와 아루아가 받는 검문을 엿들은 중년의 드워프가 측은함이 듬뿍 담긴 눈빛을 보내왔다.


이 사람은 뭘 원하는 걸까.


살가운 미소를 급조하여 꺼내놓았다.

그리고 하하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사랑하는 이들의 체온을 느낄 면적이 줄어서 정말 상심이 큽니다."


덜컹.


리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고 내려가는 리프트에서 그들의 기술력과 정교함이 묻어나왔다.


"···승강기가 조잡하게 느껴질 정도네요."


아루아도 감탄을 표했다.


"드워프의 기술력은 대단하네. 여기라면 의수를 찾을 수 있겠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아무래도 옆의 중년 드워프에게 흘러들어간 모양이었다.


"의수를 찾는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그 괴짜를 찾아가면 되겠구먼."


중년 드워프는 덥수룩한 수염을 흠흠 하고 더듬었다.


"괴짜···?"

"있단 말이지, 대장장이 한담서 요상한 인형만 만드는 녀석이. 고 녀석이라믄 손가락 붙여줄겨."

"그렇군요. 혹시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흠흠 하고 길게 자란 수염이 들썩였다.

이어서 그는 말없이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쪼끔만 받을겨."


그의 손에 10쿠퍼짜리 동전을 쥐여주었다.


"좋아쓰, 리프트에서 내리면 쭉 가쇼. 거기서 시계탑이 있을 거여. 왼쪽으로 꺾어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고, 쭉 가다보면 뭔 나무토막 잔뜩 쌓인 집 하나 있을겨. 거기여."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오크족 사투리 잘하시네요."


철컹.


리프트가 정지했다.

눈앞에는 1층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거리가 보였다.

불이 켜진 가로등과 꺼진 가로등이 차례대로 놓였다는 것과 비슷한 건축양식을 사용한 건물들을 제외하면, 닮은 건 거의 없었다.


사방에서 모루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오고, 땀냄새가 섞인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면 가마에서 붉게 달아오른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

흘러나온 쇳물은 벽면을 타고 오른 길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갔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인형을 만들겠다고 하는 건 괴짜로 취급받을 만도 하다.


드워프들이 망치를 내리치며 부르는 노동요를 들으며, 나무가 잔뜩 쌓인 집을 찾았다.


초라한 집 한 채가 있었다.

주인은 별로 사려깊지 못한 사람인지, 나무로 만들어진 별의 별 잡동사니들을 길가에 쌓아두고, 그것들로 창문을 가려놓았다.


"으음··· 과거에 대한 집착이 느껴져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팟.


"어···?"


지하를 밝히던 가로등의 불빛이 꺼졌다.

햇빛이 비추지 못하는 지하세계에서의 유일한 빛이 꺼지는 순간 어둠이 찾아왔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루아···!"


그녀를 불렀다.


"여깄어요."


뒤에서 아루아가 끌어안았다.

꼬옥 조여오는 팔이 나를 안심시켰다.


"안심해요. 수상한 사람은 없어요."

"그렇구나."


이해했다.

가로등이 왜 반은 불이 켜져있고 반은 꺼져있는지.


팟.


다시 불이 들어왔다.

불이 꺼져있던 등에는 불이 켜지고, 켜져있던 등에는 불이 꺼졌다.


아루아가 무사한 걸 확인한 뒤, 문에 노크했다.


똑똑.


그리고 기다렸다.

또, 기다렸다.

언제 나오는 거야.


다시 두드렸다.


똑똑.


그리고 기다렸다.

그런데도 답은 없었다.


똑똑.


역시 답은 없었다.


똑똑.


···아, 제발 나와주세요.


똑똑.


덜컥.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온 퀭한 드워프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누구야?"


짙게 내리깔린 다크서클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피로와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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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1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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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4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6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30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 지하국가 달란 20.07.08 27 0 11쪽
22 변수 20.07.06 27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5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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