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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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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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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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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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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DUMMY

"못 보던 얼굴들이군. 나를 놀리러 왔나?"


나는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아니, 나는 그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타인을 믿는 법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배우는 중이었다.


···정정한다. 배우기를 관두는 중이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단편적인 허상에 누그러들고 있었다.


초연하고 냉정하게 타인을 배제하고자 하는 그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얼마면 됩니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다짜고짜 물었다.

그에게는 한 마디 살가운 인사보다 이런 식으로 딱딱한 대화를 하는 편이 좋겠지.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강화된 의심을 샀으나, 대화는 이어졌다.


"목적이 뭐지?"


말 대신 손가락이 없는 손을 들어보였다.

그의 눈동자가 손으로 옮겨갔다가 스르르 굴러서 나와 마주쳤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얼마면 됩니까?"

"돈은 필요 없어."

"그렇다면, 뭘 하면 됩니까?"


게슴츠레한 드워프의 눈이 이번에는 아루아에게로 흘러갔다.

아루아는 등뒤로 몸을 숨겼다.


"···더럽게 초연한 녀석이군."

"칭찬 감사합니다."

"들어와라."


대화가 생각대로 풀려서 다행이다.


들리지 않도록 휴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대화조차 불가능했겠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되면 된다.

나는 그를 이용해서 의수를 얻는다.

그는 나를 이용해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간단한 심리다.


열린 문으로 몸을 넣었다.

집안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가득했다.


바닥에는 썩어가는 스튜가 담긴 냄비와 닫히지 않은 두터운 책들, 널브러진 인형의 팔과 다리가 섞여서 뒹굴고 있었다.


산을 이룬 쓰레기들을 부딪히지 않게 지나가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안 치우고 살았던 거야.」


불만은 생각에만 머무르도록 했다.


"아루아, 밖에서 기다릴래?"


문앞에서 들어오기를 망설이는 아루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결심이 선 걸까.

총총 뛰어서 뒤에 따라붙었다.


쓰레기의 산들을 피해가며 작업실로 보이는 방에 들어왔다.


드워프어와 정교하게 그려진 도형들로 이루어진 설계도, 구겨졌다 펴졌다를 반복하며 허름해진 종이, 부러진 자와 끝이 휘어진 컴퍼스, 날이 빠진 조각용 칼 등등.


쓰레기가 망가진 도구들로 대체되기만 했을뿐, 그것들이 널브러져 땅바닥을 굴러다닌다는 점만은 변치 않았다.


아루아를 위해 주변의 물건들을 대강 정리해놓고, 그녀와 내가 마음 놓고 서있을 수 있을만한 공간을 마련했다.


너저분한 그 공간에도 하나 깔끔한 장소가 있었다.

그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소녀만한 인형이 누운 책상 위였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나와 아루아의 존재를 잊은 건지, 바닥에서 조각용 칼을 들어 인형을 깎기 시작했다.


한땀한땀 공들인 손길이 닿은 인형은 마치 사람과도 같았다.

얼굴과 색을 입힌다면 사람이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만 보내야 하는 나였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의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잠자코 지켜만 봤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깨끗한 의자가 놓여있었기에 끌어와서 아루아를 앉혔다.


그대로 벽에 기대 한참을 조용히 기다렸다.


맴도는 악취는 코가 적응한 탓에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방안의 잡동사니와 하나가 된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을 쯤.


"비켜."


괴짜 드워프는 자신이 깎던 인형을 안고서 아루아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해요···."


쭈뼛쭈뼛 물러나는 아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할 거 없다고 일러주었다.


아루아가 떠난 의자 위로 인형을 앉힌 그는 인형의 팔과 다리, 손가락과 고개를 움직이며 자세를 잡고는 뒤로 물러나 초조하게 바라보더니 혀를 차며 인형을 때리듯 밀쳐냈다.


쿠당탕.


밀려난 인형은 바닥에 떨어지며 처참하게 목이 꺾였다.


"이게 아니야!"

"무얼 만드려고 하시는 겁니까."


쒸익쒸익.


거센 입김이 그의 이빨 사이로 뛰쳐나왔다.


"말해봤자 비웃을 게 뻔해."

"비웃다뇨? 제가 당신 비위를 상하게 할 것 같습니까?"

"그래도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겠지."


그건 아니다.


이렇게까지 공들여 만든 인형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밀쳐내는 그의 행동에서는 간절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이 되었건, 나는 노력하는 사람을 비웃는 저속한 사람이 아니다.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궁금해요···."


아루아가 그에게 마음을 열려는 시도를 했다.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나는 나를 낮추며 거들었다.


"저는 비웃을지라도, 이 아이만큼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내가 너희의 무엇을 믿고?"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 아닙니까. 적어도 당신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죠."


책상의 끝에 두 손을 올리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던 그는 진정이 끝난 뒤에 입을 열었다.


"내, 딸을··· 만들고 싶었다."

"딸이요?"


아루아가 묻자, 그는 서있을 힘이 없는지 의자 위로 주저앉았다.

두꺼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내 아내가 이 세계에 남겨준 유일한 보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보석을 잃어버렸어···."


후회와 슬픔에 젖어든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아루아도 마찬가지였는지, 드물게도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다시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거기서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었고, 후회로 이루어진 담담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감정이 서려있었다.


"이봐, 꽃을 구해주게."


갑작스런 요청이었다.

하지만 나는 능숙하게 받아칠 수 있었다.

괴로운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건 내가 일삼고 살아왔던 외면이었다.


"무슨 꽃이죠?"

"쉽지는 않을 거야. 마리안타라는 꽃이지."


마리안타.


들어본 적 있다.


꽃잎이 마력으로 되어있으며, 줄기는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 뿌리는 깊숙이 자리잡는 영웅의 의지로 이루어져있다고.


"하지만 그건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꽃 아닙니까?"

"전설에서 꽃이 피어나는 게 아니야. 꽃에서 전설이 피어나는 거지."


멋진 말이었다.

내심 감탄하며, 한 때 머릿속에 만들어두었던 죽기 전에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대사목록에 추가했다.


"그래서, 그 꽃은 어딨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 꽃은 반드시 존재해."


근거 없는 믿음인 걸까.


"무슨 근거냐고 묻고 싶겠지. 유감스럽게도 나는 근거가 없어. 내 아내가 있다고 말했으니까 믿는 거야."

"그렇군요. 한 번 찾아보죠."

"뭐···?"


넋 나간 괴짜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려두고 싶을 만큼이나 그는 깜짝 놀랐다.


"이봐, 아무리 내가 말했다고는 하지만 그걸 진짜로 믿는 건···!"

"당신이 사랑했고,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당신이 안 믿어서 어쩌자는 겁니까?"


나는 바짝 마른 목으로 침을 삼켰다.

그리고, 라며 말을 이었다.


"찾아보겠다고 했지 믿겠다고는 안했습니다. 대신, 의뢰주가 있다고 한다면 있다고 믿는 것이 모험가의 올바른 어리석음이겠죠."


할 말을 끝낸 나는 그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허탈하게 하하 웃었다.


"한순간이라도 그녀의 말을 의심했던 내가 얼간이였군. 좋아, 너를 믿어보지. 나는 릭이라고 한다. 너희는 누구지?"

"저는 리시스라고 합니다."

"아루아예요."


통성명을 끝내자, 릭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리시스, 네 손가락은 내가 만들어주지. 일주일은 좀 넘게 걸릴 텐데. 괜찮나?"

"얼마죠?"

"필요없어. 마리안타를 찾아주겠다고 한 것만으로 충분해."

"···그렇습니까."


옆에서 아루아가 잘 됐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나는 기뻐할 수 없었다.

기뻐해야 마땅한 일을 앞에 두고서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석연치 않았고, 심장을 면봉으로 찔린 것만 같았다.


사라진 손가락이 처참히 분질러졌던 고통을 되새겼다.

사지의 관절이 뽑혀 제몸을 가누지 못했던 무기력함의 구렁텅이 속에서 스며든 절망의 냄새를 떠올렸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오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아루아와 거리로 나왔다.


악취에서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후덥지근한 공기가 호흡을 가로막았다.


이제 이곳에 볼 일은 없었다.

가능하다면 양질의 무기를 장만하고 싶지만, 그럴 돈이 없다.


오늘은 지치기도 했고 시간도 벌써 저녁시간이니 아루아와 그럭저럭 괜찮은 식당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식사를 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여관을 찾아봐야겠다.


...


사람을 살리는 일에 귀천은 없다.


누가 그런 소릴 했을까.

한대 쥐여박아주고 싶다.


같은 의사라도 태어난 곳이라던가 얼마나 아양을 잘 떠는지에 따라 귀천이 갈린다.


그 둘을 다 만족시키지 못한 자신은 천한 의사가 되었고, 그 탓에 범죄자들이나 돌봐주고 있었다.


길게 기른 녹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는 메스로 범죄자의 배를 갈랐다.

그 안에는 생물의 마력회로를 뒤틀어버리는 성질 고약한 마법이 살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건 상당히 까다롭겠어···.」


뒤에서 조마조마하며 험상궂은 인상들로 울상을 짓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외쳤다.


"야! 추가요금 받는다!"

""에엑?!""

"뭐, 불만 있어? 니네 보스 죽는 꼴 보고 싶어?"

"아, 아뇨! 내겠습니다!"


뜯어봤자 얼마나 더 뜯는다고.


중얼거리며 소녀는 마력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마력회로를 제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복잡하게 뒤얽힌 마법은 그녀에게도 까다로운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되지 못했다.


어떤 마법이라도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면 쉽게 해제할 수 있다.

특히나 이런 기생(寄生)식 마법은 발동까지의 시간이 길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까지 확보된다.


즉, 마음만 먹으면 여유롭게 풀 수 있다.


대신에 좀 귀찮을 뿐.

귀찮아서 까다롭다.


그녀의 손에서 완벽하게 제어되는 마력이 범죄자를 갉아먹는 마법에 닿았다.

소녀는 눈을 감고 마법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깔끔하지 못한 매듭새였다.

아마도 실력에 자신 있던 마법사가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법을 실험한 모양이었다.


「나가 죽었으면 좋겠네.」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남의 몸에다 이런 장난을 쳐놓다니.

자의식 과잉도 유분수다.

그래도 덕분에 먹고 살고 있으니 다시는 마법을 못쓰게 만드는 걸로 봐줄까.

얼굴도 모르는 얼간이 마법사의 인생을 짓밟아놓을 생각을 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쿡쿡 거리며 웃었다.


이윽고 거슬리는 선이 보였다.


「여기다.」


메스의 날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이어서 섬세한 손길로 마법의 틈새를 베어냈다.


파앗.


마법진이 공중에서 생겨나더니, 산산히 조각나며 사라졌다.


이걸로 마법은 처리했다.

이어서 봉합을 끝내고, 소독까지 끝냈다.


후우.


수술 도구들의 정리까지 끝마친 소녀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피며 미소를 머금었다.


"자, 그러면 총 43골드 되시겠습니다!"

""네···?""


영혼까지 날아갈 듯한 사내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세계 최고의 돌팔이 의사한테 수술 받았으면 그 정돈 줘야지."

"사, 사기다! 사기야! 이건 사기다!"


한 명이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뒷골목 세계에서는 익숙한 일이었다.


소녀는 자연스럽게 메스를 다시 들었고, 그의 옆을 향해 휘둘렀다.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옆에 있던 벽이 갈라졌음을.


콰드득.


말끔히 잘린 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수많은 정사각형들을 바라본 사내들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부르르 떨었다.

이 또한 익숙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늘 짜릿하고 즐거웠다.


소녀는 섬뜩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할부로 할래?"


끄덕끄덕.


사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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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0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4 0 12쪽
34 돌팔이 의사 20.07.19 18 0 13쪽
33 갸르키카의 솜-完 20.07.18 21 0 17쪽
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31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8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5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29 0 12쪽
»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4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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