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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모험이 떠나고 싶었기에 떠나보았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5.10 03:18
최근연재일 :
2020.07.23 00:47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36
추천수 :
7
글자수 :
224,703

작성
20.07.15 22:17
조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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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갸르키카의 솜-6

DUMMY

아루아가 잠들어있었다.

곤히 잠들어있었다.

죽은 건 아닐까.

걱정스런 마음에 그녀의 숨결을 살펴봤다.

오르락 내리락.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에게 향하는 갖가지 감정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차마 아루아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정도의 뻔뻔함조차, 나는 지니지 못했다.

날 위해 목숨 걸고 싸워준 이 소녀에게 나를 대신하여 죽어달라고 빌었던 나였다.

그런 마음을 가슴에 담았다는 기억의 잔재는 나를 한심스러운 존재로 만들었고, 창피함이라는 못을 박았다.

못은 나의 입과 머리와 가슴에 각각 하나씩 박혀있었다.

아루아가 깨지 않도록 그녀의 무릎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앉아,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가녀린 목을 살며시 내 어깨 위로 올렸다.

시끄러운 죄책감이 소리없이 나를 타고 흘러갔다.

아루아의 작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누굴까.

문득 생각했다.


나는 리시스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자신을 치부해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름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었던 나는 지금의 나하곤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절박한 상황에 놓여야 비로소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그 말을 부정했었던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착하게 살아온 사람은 착함이 몸에 배어서 절박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끝까지 착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은 평범함이 몸에 배어서 절박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끝까지 평범할 거라고. 자신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어떠한가.


「···나는 쓰레기다.」


그런 감상 말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으니까 버리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게.』


헛소리였다.


『아루아, 나 강해질게. 네가 웃으며 걱정 근심 없이 모험할 수 있도록.』


개소리였다.


『이건 내 심술이야. 너와 대등한 존재로 있고 싶은 나의 유치한 고집.』


하나부터 열까지 다 허울뿐인 허세였다.

지금 여기에 남은 것이라곤 허세와 허울로 이루어진 껍데기가 벗겨져나간 알몸뚱이 찌질이였다.

고작 세살 차이라고 했었던 아루아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부정했지만, 이제와서야 뒤늦게 와닿았다. 나는 그저 어른인 척 하고 싶은 사춘기 소년이었다.

아니, 그보다 어린 한낮 꼬맹이에 불과했다.

그런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보호자 흉내를 냈던 걸까.


「나는··· 나는···.」


대체 누굴까.

나는 누구인 걸까.

나는 나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내가 나에게 붙인 이름들이 하도 많아서 정할 수가 없었다.


「아루아라면···.」


짧지 않은 세월동안 나를 봐온 아루아라면 정해주지 않을까.


···또 이런 생각이다.

그렇게나 자책을 해놓고서 또 다시 기대려 하고 있다.

아루아에게 나의 모든 무게를 맡기려고 하고 있다.

알고 있다.

그녀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기대지 않고는 나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아루아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고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남자는 바뀌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에서 들여다본 밑바닥을 매꾸지 못한 채로.

어쩔 수 없다고.

나는 평범하고 나약하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쉽사리 단정지으려 하고 있었다.


괴롭다.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런 건 내가 만든 내가 아니다.

아루아의 곁에 있고 싶다.

내가 만들어낸 나로 있고 싶다.

껍데기가 사라진 나는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추악함을 껴안고 있었다.


「만약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잘 모르겠다.

모른다.

모른다고.

나한테 묻지 마.

나를 내버려둬.

울지 마.

뭘 잘했다고 우는 거야.

울어서 뭐가 해결되는데.

울 자격도 없으면서 왜 우는데.

나를 잃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두려움은 깊게 잠든 소녀를 깨웠다.


"리시스···?"

"나는···! 나느은···!"

"무슨 일이에요? 말해봐요."


잠에서 깬 아루아가 깜짝 놀라며, 눈물이 흐르는 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상냥했다. 다정하고 온화했다.

이렇게나 상냥하게 나를 위해주는 아루아에게 대신 죽어달라고 빌었었다.

그때 그 소망을 입에 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역겹다.

역겨워. 역겨워. 역겨워.

구제불능 쓰레기가 받아들여지고 싶다고 바라고 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고 당치도 않은 바람을 끝내 입밖으로 끄집어냈다.


"나는, 너와 있고 싶어."


···말해버렸다.

이 말을 들은 아루아의 반응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아닌 나의 반응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맑은 하늘의 미소를 선뜻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이지, 제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요.」"


그리고 나는 울고불며 호소하겠지.


"나, 잡혀갈 때, 네가 대신 끌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네가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바랐어. 네가 나를 구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어."


이건 나의 예상과 달랐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한 번 트여버린 말문은 막힐 새도 없이 자신의 죄책감을 쏟아내고 있었다.


"너에게 했던 말들, 전부 거짓말이었어. 대등하게 있고 싶다는 것도, 널 위해 강해지겠다는 것도, 버려지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것도. 다 허세였고, 다 거짓이었어."

"리시스···? 잠시만요, 잠깐 진정해요···."


아루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얼굴에는

가득한 실망감과

끝없이 펼쳐지는 현실부정,

더는 말하지 말아달라는 애원이

한껏 물들어 있었다.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조차 전부 개소리였다고!!!"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입을 닫아버렸다.

엎질러진 컵을 바로 세우니, 그곳에 남는 것은 한 줌조차 채우지 못할 나지막한 감정들뿐이었다.

아루아는 감고 있던 눈까지 떠가며, 장미꽃의 색을 지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일까. 초점이 없었던 그녀의 눈은 올곧게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소리없이 벌어진 입이, 애처롭게 떨리는 입술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흘려보내는 것마저 힘겨운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정적이 어디로 흘렀는지 알 수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눈에 맺힌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질 리 없었다.

정적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익숙한 끌림이 전해져왔다.

아루아가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리시스···!"


무얼 전하려는 걸까.

듣고싶었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흉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리시스!"


두 번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려고 했으나, 중간부터 아루아가 억지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돌렸다.


쪽.


뜨거운,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매끄러운 무언가가 나의 이마에 잠깐 머물렀다 떠나갔다.


"어···?"

"이걸로 참아줘요."


나는 내 이마를 어루만져보았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아루아가 등을 떠밀었다.


"자, 빨리 가요. 갸르키카가 오고 있어요."


애틋한 미소였다. 힘없이 꺾여버린 손목은 아프지도 않다는 듯, 흘러내린 눈물의 존재마저 잊은 채로, 여느 때처럼 해맑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너는···?"

"헤헤, 죄송해요. 못 움직이겠어요."

"그게 무슨···?"


그녀의 다리를 살펴봤다.

두 무릎이 퉁퉁 부어있었다.

부러져있었다.

혼자서 움직이는 건 누가봐도 불가능했다.


"무리해버렸지 뭐예요."

"시끄러."


헤헤 웃는 모습이 꼴보기 싫었다.

구할 수 있었으니 이걸로 만족한다고 납득하는 그 표정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다.

나는 쓰레기다.

구제불능인 쓰레기.

변덕이 심한 찌질이다.

그렇다면 새삼스런 심술 좀 부린다고 해서 평가가 낮아질 일은 없을 테지.


거미에게 물어뜯긴 상처는 아물지 않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통증도, 감각도 없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소의 익숙함마저 전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팔이 초월적인 힘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무능함을 앞에 두고 능숙하게 포기했다.

등을 돌리고, 절뚝절뚝 걸어가서, 아루아의 곁에 앉았다.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루아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자신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가요, 저리 가라고요···!"


손도 발도 움직이질 못해서 고개로 밀어내려 했다.

나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단단히 힘을 주고 버텼다.

그것이 나의 보잘것없는 마지막 의지였다.


"가! 가라고! 제발···! 미워서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는 머리가 이상해져 있었다.

어째선지 싫다고 말하는 아루아를 보고 안심했다.

가다듬어진 마음으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아까 말했잖아. 나는 적어도 네가 함께 죽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고."

"그이상 말하지 마!"


무시하고 계속 꺼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너를 대신해서 죽어줄 용기가 없어. 그러니까, 적어도 너와 함께 죽을 거야."


순엉터리인 논리였다. 맞물리지 않는 논리는 가다듬고 가다듬어도 불협화음만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협소한 음악적 지식에 따르면.

심금을 울리는 악보에도 불협화음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뭐야···! 그게···! 당신 바보 아니야···?"


남는 것은 허탈한 헛웃음밖에 없었다.


"하하, 바보를 욕하지 마."


나 치고는 제법 멋진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멍청이···."

"이제와서 그런 걸 욕이라고 하는 거야?"

"사기꾼! 나쁜 새끼, 개새끼!"


아루아의 고운 입에서 그런 말들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


이건 고백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죽기 전이라면 좋을대로 오해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도 좋아해."


이걸로 연인이 된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삶이었지만 마지막만큼은 낭만적인 로맨스소설의 주인공이었다.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무라무리무아."


갸르키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이루키무?"

"으무리아무."


이어서 느껴지는 부유감.

그리고 복슬복슬한 털.

다시 부유감.

또 다시 복슬복슬한 털.


""무르무르무르무르!""


당채 뜻을 알 수가 없는 기합.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궁금해서 눈을 떠봤다.


"엥?"


이게 뭐람. 무슨 일이람.


갸르키카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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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잠깐의 휴식 20.07.23 23 0 15쪽
37 도적의 가르침 20.07.22 20 0 12쪽
36 신, 그리고 모험가의 국가 20.07.21 22 0 11쪽
35 새로운 손가락 20.07.20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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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갸르키카의 솜-7 +2 20.07.17 30 1 13쪽
» 갸르키카의 솜-6 20.07.15 29 1 12쪽
30 갸르키카의 솜-5 +2 20.07.14 33 1 12쪽
29 외전 - 그 소녀가 살아가는 이유 +2 20.07.13 33 1 17쪽
28 갸르키카의 솜-4 +2 20.07.13 25 1 12쪽
27 갸르키카의 솜-3 20.07.11 22 0 14쪽
26 갸르키카의 솜-2 20.07.10 21 0 11쪽
25 갸르키카의 솜 20.07.10 29 0 12쪽
24 인형을 만드는 대장장이 20.07.08 30 0 13쪽
23 지하국가 달란 20.07.08 26 0 11쪽
22 변수 20.07.06 26 0 12쪽
21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20.07.05 24 0 12쪽
20 마법을 연습하자 20.07.04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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