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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29,541
추천수 :
273
글자수 :
706,311

작성
20.10.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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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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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사지(死地)

DUMMY

“나를 부른 건 무슨 용무 때문이오?”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오시면 조용히 모시라는 지시만 있었습니다.”

야심한 시간인지라 주변엔 인기척도 없었다. 그러나 화연은 극도의 경계심을 유지한 채 천마단의 단주 백곤을 여도의 객실로 안내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은밀했고 걸음걸이에서는 일체의 소리도 나지 없었다.


“이리 깊은 밤에 저를 비밀스럽게 부른 연유가 무엇인지요?”

“결례를 무릅쓰고 이 밤에 단주를 보자고 한 것, 양해를 부탁드리오.”

둘의 대화는 간결했다. 서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인듯 했다.

“당연히 계략을 가지고 저를 불렀을줄 압니다. 기별을 받고 생각해보니 탁왕자 관련 일 외에는 딱히 부를 일이 없을 것 같더군요.”

앞에 놓인 뜨거운 우롱차 한잔으로 목을 축인 백곤이 불쑥 본론을 꺼냈다.

“하하, 잘 보았구려, 사실은 그 일 때문에 부른 것이오.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들은 치밀하고 신속한 준비를 거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니 ... ”

“오, 그래 신묘한 비책이 있으신지요?”

백곤이 허리를 바짝 당겨 앉으며 여도의 표정을 살폈다.

“그렇소이다. 이 일은 우리 둘만 알아야 하는 사항이오. 그만큼 은밀히 진행하는 사항이니 우리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오.”


“그동안 탁왕자를 치기위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했었소이다. 탁왕자의 잠행때문이지요. 도무지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미행이 무척이나 어려웠소이다. 그런데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그 단서가 확인되었소이다.”

적막한 등롱불 아래에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있게 말하는 여도의 태도에서 확신이 묻어났다. 백곤이 입술을 비틀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 장소는 왕실의 의복을 관리하는 복관청(服冠廳)이었소. 마한의 왕실에 심어둔 간자가 우연히 복관청에서 의복을 갈아입고 나오는 탁왕자를 본 것이 결정적인 단서였소이다. 왕실의 업무가 모두 끝난 야심한 밤에 말이오,”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곤의 등덜미로 일말의 땀이 흘렀다.

“탁왕자는 소도에 들어간 이후 공식적인 행사를 제외하고는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었소, 그런데 그 때 우연히 왕궁에 있는 것이 확인된 것으로 미루어 왕실에 연결된 비밀 통로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소.”

“그럴듯하군요. 확인도 당연히 해 보셨을 것이고 ... 흐음”

여도의 시선을 잡은 백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마리대혈(摩異大穴) 이라고 들어보셨소?”

“들어는 봤습니다만 가 본적은 없습니다. 그저 들리는 말로는 마리산에 있는 앞뒤로 뚫린 크고 긴 동굴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곳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백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여도에게 다시 물었다.

“듣기로는 ... 길이가 구십장(九十丈), 폭이 구장(九丈)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마리산 안에만 소재하고 있어 외부와는 통할수도 없는 장소인데 그 곳이 어떻게 왕궁과 연결된다는 것인지 ... 혹시 잘못 아신 것은 아니 오이까?”

여도의 말꼬리를 잡은 백곤은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짐작한 사항을 지레 말했다. 말하는 중에도 고개도 옆으로 절래절래 흔들어댔다.

“당연히 확인했소이다. 그리고, 확신이 없었다면 백 단주를 부를 일도 없었을 게요, 흐음.”

여도는 백곤의 반응을 예상한 듯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전의 마리대혈은 누구나 오갈수 있는 곳이었지만 현재의 마리대혈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소이다. 내부 구조가 완전히 바뀐 마리대혈의 현재 모습을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외다.”

여도는 백곤이 마리대혈의 현재 상황을 알지 못하자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몇 해전 마리산에 소도를 만들면서 원래의 마리대혈에 뚫여있던 작고 협소한 몇 개의 자연동굴을 개발했다고 하오. 그 때 하나를 골라 왕실과 연결하는 땅굴작업을 했다는 것이오. 탁왕자는 이후 그 곳으로 왕실을 오갔고...”

잠시 숨을 고르며 백곤을 바라보던 여도가 말을 이었다.

“백성들에게는 마리대혈을 하늘로 통하는 동굴이라며 신성한 구역임을 강조하여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는 곳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오.”

“과연,”

백곤이 비로소 납득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대혈을 출입할 수 있는 자는 탁왕자 일행밖에는 없을 것이니 그 곳을 탁왕자의 사지(死地)가 되도록 하란 말씀이지요? ”

백곤의 느닷없는 독백에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적의 본거지로 들어가 암살하는 일이라 ... 이번엔 제법 용을 써야할 것 같군요, 허허. ”

백곤은 여도의 말끝을 이어 잡은후 자문자답하며 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여도를 무시한 채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보니 백 단주는 들리는 말과 달리 엄살과 과장이 심한 듯 하오. 듣기로 교묘한 비책으로 수탁받은 일들을 늘 기대이상으로 성사시켰다는 평들이 자자하던데... 그렇지 않소?”

까칠한 음성으로 백곤의 시선을 잡은 여도가 이맛살을 찡그리며 세차게 혀를 찼다.

“소문은 늘 과대포장되기 마련이라, 허허 ... 그럼 지금부터 우리의 일을 시작해야 겠군요. 마리대혈도 가봐야 할 것이고, 왕궁엔 언제 왕래하는 것인지, 어떤 무사가 호위하는지, 어느 장소가 기다리기에 좋을지 ...하나 하나 준비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군요. 장군께서는 우릴 믿고 좋은 소식 기다려 주시지요. 때가 되면 연락드리지요,”

백곤은 본론을 들은 이상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으나 이내 여도가 이를 깨뜨렸다.

“아 참, 탁포자 장군과 함께 이번 일을 실행해 주길 바라오. 거사의 성공에 따른 결과를 조선왕실에 상세히 보고해야 하니 양해를 바라는 바이오.”

여도의 말에 백곤이 짐짓 놀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이내 진정하며 대답했다.

“우리 천마단은 지금껏 한번도 타인과 함께 일을 해본 적이 없소이다. 이번 일의 실행도 그리 할 것입니다...다만 관전자로서 참여하는 것까지 말리지는 않을테니 그 선에서 운용해 주신다면 기꺼이 협조합지요.”

사실상 그들을 감시하게 될 탁포자의 합류를 강요받은 백곤은 껄끄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직업적 살수답게 웃으면서 여도의 객실을 떠났다.


천취루의 바깥은 추웠다. 안채의 후원을 훑고 있는 거센 바람이 사납게 잉잉대고 있었다. 허공으로 솟구친 백곤의 폐부 깊숙이 차가운 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한기가 몰려왔다. 등골로 소름이 끼쳐왔다.

“제길! 이번엔 진짜 싸움이 될 것 같구만. 그것도 아주 지독한... 훗!”

살기마저 지운 채 잇사이로 내뱉은 백곤의 섬뜩한 음성이 허공속에서 싸늘하게 흩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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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5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5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2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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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5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30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4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3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8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5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1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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