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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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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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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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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DUMMY

마리촌의 변두리에 위치한 마리객점(摩異客店)에서 오랫동안 점소이로 일해온 장자면(蔣炙麵)은 최근 벌어진 사건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주류(主流)를 이루는 지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삼한 전체에서 가장 번화한 마리촌에서 이십 여명이 죽었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이렇게나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뜬 상인들이 많이 오고가는 길목에서, 이리도 많은 칼잡이들이 싸워서 죽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로군,”

혀를 끌끌 찬 장자면은 갑자기 썰렁해진 객점 안을 둘러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근래 이렇게나 휑하게 손님이 없기는 오랜만이었다.

“내 비록 어릴 적 강보(襁褓)에 싸인 채 이 곳 객점 앞에서 발견되어 스무살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점소이 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이런 큰 사건을 보는 건 처음이군... 전쟁이 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제기랄!”


그러나 장자면의 시야는 한정된 것이었다. 늘 객점 안에서 보고 듣는 사건들만 정통할 뿐 객점바깥의 일에 대하여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객점 밖 마리촌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면은 겪어보지 못했기에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마리촌은 지속적으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한편으론 범죄도 제법 발생하고 있었다. 밝은 면의 뒤쪽에 어두운 면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원리였다. 대부분의 범죄는 부자들이 재산을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범죄를 획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 범죄들은 깔끔하게 처리되었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못하는 것 뿐이었다.


다만 이번 사건과 같이 백주(白晝)에, 그것도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에서 일어난 경우는 지극히 예외적인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유난히 강렬한 공포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마리산에 소도가 들어선 이후 가끔씩 죄를 지은 자들이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소도로 들어가기 위해 마리촌을 지나는 통에 이들을 잡기위한 포교들과의 쫓고 쫓기는 사태가 가끔 있긴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두 줄의 포승을 잘 다루는 포교들의 압승이어서 눈여겨 보거나 마음에 담아 둘만한 인상적인 장면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분명 늘 보아온 익숙한 살인사건과는 다른 유형의 큰 범죄사건이었다.

그 이유로 인해 외부 자극에 둔감했던 마리촌 주민들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경악했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제 때 헤쳐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마한 왕실에 대한 비난을 쏟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 이었다.


“흐흐 참 나, 세상 말세로군.”

장자면이 시중을 드는 마리객점 안에서 국밥과 술 한 병으로 한끼를 채우던 중년의 사내가 밥알이 튀는 것도 모르고 벌개진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사내를 향해 말하며 한숨을 지었다.

“뭐가 말세란 겐가? 내가 보기엔 잘만 굴러가는데,”

맞은 편 사내는 수긍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피식 웃으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아, 글쎄, 이 곳 마한의 소도에서 두 번의 천신제를 지냈지 않은가?”

“흠, 그랬었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두 사람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근데 말이지, 천신제에 사용한 제기(祭器)가 모두 가짜라는 구만,”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게 어떻게 가짜가 될 수 있다는 겐가?”

그러자 말을 하던 사내가 주위를 살피며 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준왕께서 조선의 왕으로 계시다가 역도인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이 곳 마한까지 오시지 않았나, 그 때 피난을 오면서 제사에 사용할 천부인(天符印)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하더구만, 천부인은 하늘에서 내린 영물(靈物)이기에 천신제를 지낼 땐 반드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구만, 만약 그것들이 없으면 하늘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에게 하늘의 말씀을 내려주지 않는다고 하더군.”

한 번 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는 의자를 바짝 당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 글쎄 두 번의 천신제에 올린 천부인이 모두 가짜라고 하더구만, 감히 하늘을 속이다니 말이야... 그러니 말세라고 할 수밖에,”

“아니 자네, 그 놈의 입구멍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 전에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두 번 다시 하지 말게나, 알았는가!”

맞은 편 사내는 혀를 차며 신신당부했다.

“이 사람아, 요즘같이 살기 좋은 때에 그런 얘길 해보게나, 듣는 사람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들을 걸세, 그렇지 않은가? 나는 가짜 제기의 할애비를 썼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걸세, 자칫 시러베아들 같은 놈이란 소리 들을까 걱정되네, 알겠는가! ”

점소이 말고는 손님들이 없자 재차 강조하며 얼굴을 붉히며 말을 뱉었다.

“입구멍 간지러워 나오는대로 뱉었다간 크게 당할걸세, 명심하게!”

마한에서 소도를 건설한 이후 작년에 처음 열렸던 천신제는 그야말로 삼한이 성립된 이후 실시된 최대 규모의 행사였다. 마한의 왕실을 비롯한 삼한 전역의 고위관료들이 참석한 바 있으며 외국의 친선사절단까지 망라되어 마리산이 떠나갈 듯 웅장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올해 가을에 열렸던 천신제는 그 규모가 축소된 채 진행되었다. 왕실에서의 참석이 현저히 준 데다 외국의 사절단 숫자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천부인이 가짜여서 하늘의 감응(感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근거를 제공한 것이었다.


“천신제 규모를 줄인 것은 오로지 왕실의 의지임에도 백성들 사이에서 허황된 소문이 퍼져 있으니 걱정이오. 천신제를 처음 지낼 때는 기념비적인 행사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니 최대한 크게 개최하는 것이 맞고 이후에는 내실있게 운영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여서 그에 맞도록 추진한것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아무것도 아니지만 크게 번질수도 있을 것 같으니 뭔가 대비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준왕이 중신(重臣)들을 모아놓고 근자(近者)에 일어나고 있는 어수선한 상황들에 대하여 의견을 물었다.

“최근 소도를 둘러싼 여러 심상치 않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하(殿下)께서 들으신 그 소문도 그 일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흠차대신 경욱이 신중하게 입을열었다. 연로했으나 건강했고 강단있는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전하께서도 아시고 계시지만 최근 마리촌의 변두리에서 이십여 명의 칼잡이들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조사해 본 바 의심스러운 점이 제법 있었습니다. 소신은 당초 그 사건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래 저자가 발달한 크고 부유한 마을의 주변에 몰려 든 온갖 수상한 무리들의 의례적인 영역다툼 정도로 판단했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그리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자리를 함께 한 준왕과 중신들의 눈과 귀가 일시에 경욱에게로 쏠렸다.

“살해당한 무리들은 폭력조직인 패도문의 조직원들이었습니다. 조선을 본거지에 두고 이 곳 삼한까지 세력을 넓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큰 조직의 무사들이 일방적으로 도륙(屠戮)을 당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한의 왕실 차원에서 패도문의 무리들을 처벌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패도문보다 훨씬 강한 조직이 이 곳에, 그것도 마리촌에 확실히 존재한다는 반증이 된 것입니다.”

망설이는 기색없이 말하는 경욱의 표정을 본 군신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리촌에 신흥 무장세력이 최소 한 개이상은 또아리를 틀고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경위를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만 자신들의 세력과 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싸움일수도 있습니다만 흉흉한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일수도 있습니다. 소문이 나기 좋게 오가는 백성들이 가장 많은 시간에 공개적인 장소를 택해서 패도문 무리들을 척살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경욱의 심층분석을 들은 준왕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경의 생각으론 조직간 다툼을 일으킨 조직과 소문의 진원지가 동일할 수 있다는 것이요?”

“그렇습니다.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공포를 심어준 것은 분명 의도를 가지고 한 짓이 분명합니다. 민심을 흉흉하게 하려는 목적이지요. 민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 소문인데 그 또한 그들 세력이 관여되었다고 판단됩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긴 채 얘기를 듣던 준왕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흐음, 그들 세력을 제 때 수습(收拾)하지 못하면 자칫 사직(社稷)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오. 그렇지 않소?”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가정하여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탁왕자가 준왕을 바라보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전하께서 우려하시는 소문은 또 다른 소문으로 잠재우시면 될 것입니다. 마리촌을 위주로 퍼지는 소문은 국지적인 것이어서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마리촌은 먹고사는 것에 구애를 느끼지 않는 백성들이 대부분이어서 불만을 얘기할 계층은 극히 한정적입니다. 추운 지금 그들의 입만 얼어붙게 만든다면 그들이 만드는 소문까지 얼어붙어 버릴 것입니다.”

“흠, 일리있는 대응인 것 같구만. 그래 마무리는 어떻게 할 건가?”

준왕은 머리를 끄덕이며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소문이 가짜라는 것을 퍼뜨릴 것입니다. 아무도 낌새를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그 소문이 가짜소문이라고 적극적으로 퍼뜨릴 것입니다.”

탁왕자의 대책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대로(大盧) 우성치(禹成治)가 물었다.

“혹여나 긁어 부스럼 만드는 형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만,”

“어차피 곪은 상태라면 끍어서라도 부스럼을 만들어 도려내야겠지요. 다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한다면 그 때 적절히 대처해도 될 것 같습니다.”

탁왕자의 대답은 자신에 차 있었다. 마리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전후 사정을 명확히 파악한 후 대책을 강구한 여유가 묻어났다.

“소문에 대해서는 왕자가 생각한 대로 한다면 무난히 해결될 것 같소이다. 하여 그 얘기는 이만 맺기로 하고 신흥 조직에 대해서는 어찌 했으면 좋겠소이까?“

“전하, 그 문제는 우리 삼한 전체의 안녕을 위하여 중대한 문제여서 극비로 다루었으면 합니다. 소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문제가 표면화 될 경우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의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문제는 소자에게 일임하여 주시옵소서,”

당면한 문제에 대해 중지(衆智)를 모으고 싶었던 준왕은 탁왕자의 얘기를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이 지난 후 입을 열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소도가 있는 마리촌이외다. 마침, 왕자가 그 곳 소도에 상주해 있으니 이번 일의 처리를 전적으로 맡길 것이외다. 소도에 천군이 있어 그 곳을 관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천군은 천신제 주관외에도 심신의 수양을 포함하여 백성들에 대한 교육까지 신경쓰야 하니 무척이나 힘이 들 것이오. 따라서 천군을 대신하여 왕실에서 도울 일이나 군대의 동원, 행정업무의 총괄 등을 위해서는 왕자의 역할이 절대적일 것이오. 경들도 왕자에게 힘을 보태주시오. 이 나라의 흥망이 왕자의 양 어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오. 흐음.”

탁왕자를 바라보는 준왕의 눈빛에 믿음이 그득했다.


그해 겨울 마리산에는 무척이나 눈이 많이 내렸다. 내려 쌓인 눈 위에 다시 또 내려 쌓이기를 거듭해서 사방 천지가 하얗게 얼어붙은 적도 있었다. 그 즈음부터 우려하던 소문은 더 이상 퍼지지 않았고 자취도 없었다. 결사대가 도착한 이후로 소도에서 내려와 천취루를 정탐하던 조동일에게 수상한 풍수쟁이가 처단된 이후였다.

어디서 왔는지 또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근본도 알 수 없는 늙수그레한 그 자가 저자의 대로에서 능숙하게 혀를 놀려 많은 행인들을 현혹하며 요망한 풍문을 뿌리는 것이 조동일에게 발견된 것은 그 자의 행운이 다한 증거였다. 노련한 조동일은 그를 미행하여 종국에는 천취루로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후 거나한 대접을 받으며 루주인 민머린에게 소문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하고 그에 대한 지시를 받는 것까지 확인했다. 소문의 근원지를 확신한 조동일은 다음 날 풍문을 퍼뜨리고 돌아가던 그를 천취루가 보이는 골목길 입구의 어둠속에서 시커먼 그림자처럼 그의 앞을 불쑥 막은 후 단 칼에 베어 죽인 것이었다.


또 다른 소문이 마리촌을 뒤덮은 것은 금천호의 얼음이 풀릴 즈음이었다.

<천부인이 가짜라는 소문이 가짜라더라.>

<천신제에 쓰였던 천부인은 진짜라더라.>

<천신제에서 하늘이 감응하여 삼한이 번성해진다더라.>

소도에서 퍼뜨린 하나의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여러 개의 소문이 되어 한꺼번에 마리촌 백성들의 삶속에 은밀하게 들이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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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4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4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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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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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혈마쌍성 19.02.11 156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3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29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3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2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7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2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0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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