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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29,496
추천수 :
273
글자수 :
706,311

작성
20.09.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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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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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첫번째 격돌

DUMMY

깊이를 알 수없는 심연처럼 어두워진 금천호수.

뱃전을 맴돌던 새들의 울음마저 내일로 숨어들었고 별빛은 초롱했지만 아직 온전히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아직 여명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홀로 잠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뱃머리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는 조동일의 표정이 다른 날들에 비해 유난히 날카로웠다.

“이렇게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경우가 근래 있었던가? ... 참으로 오랜만이군, ”

어젯밤 궉세사의 방문이후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더니 급기야 한 시진도 되지않아 벌떡 잠에서 깨고 만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된 경험에 의한 습관같은 것이었다. 강호에서 몸으로 익힌, 앞에서 번득이는 칼날을 보다보면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당하게 되는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깨어 있던 예리한 신경이 그를 깨운 것이다,

옷깃으로 날카롭게 파고든 강바람에 문득 피냄새가 묻어났다.

그 냄새는 유난히 강했고 조동일은 흠칫 몸서리를 쳤다.


마리촌의 번화한 저잣거리 끝 쪽에 자리한 주루에 들른 조동일이 국밥 한 그릇과 곡주 한 사발을 놓고 주변의 대화를 청취하던 때는 미시(未時)였다.

주인이 곰보 과부여서 곰보집으로 불리는 그 주루는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좋아 손님이 들끓었고 외지 상인들의 출입도 잦아 늘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흘러 다니는 소문을 수집하기 좋은 명당(明堂)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결코 무림인 같지 않은데...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지난 세 달 동안 이 두 눈으로 몇 번을 확인했습니다.”

주루의 마루턱 쪽에 앉은 두 사람이 게슴츠레하게 조동일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가 않아, 저잣거리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늙수그레한 중늙은이가 전설적인 무공을 펼친 절정의 고수라고? 허허, 참.”

혀를 차며 어이없어 하는 상대를 보며 맞은 편 사내가 말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듯, 싸움의 결과 또한 승자에 대한 치사(致詞)로 인해 과장되기 일쑤지요, 오늘 그것이 증명 될 터이니 지켜보시지요.”

“흠, 그리되겠지,”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어 손짓으로 나가자는 시늉을 하며 뒷문으로 돌아섰다.

날듯이 뛰는 그들의 모습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동일이 곰보집을 나온 때는 신시(申時) 무렵이었다.

“어떤 놈일까? 한동안 멀리서 미행하더니 오늘은 제법 가까이 붙었는걸,”

근래 자주 있었던 일이어서 무덤히 넘어 가려고 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뒤꼭지가 시려웠다.

“슈웅!”

코 끝으로 아침에 풍기던 피냄새가 진동하는 순간이었다.

저잣거리 밖으로 십 여리 떨어진 한적한 야산을 지나 포구로 접어드는 찰나,

조동일의 등 뒤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재빨리 피한 조동일의 눈가에 건너편 숲의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언뜻 한 사람이 급히 몸을 숨기는 것을 본 조동일이 바람처럼 급히 그 곳까지 달려갔으나 자취가 없었다. 필경 고도의 경공술로 빠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이놈, 정말이지 활의 고수가 아닌가! 멀리서도 이리도 강하고 정확하게 날려 보내다니... 내 오늘 불길한 예감에 전신의 신경을 곧추세웠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군... 더구나 경공 또한 절정인걸 보니 보기드문 절정고수가 틀림없군, 흐음.”

아무리 둘러보아도 활을 쏜 자의 흔적이 없자 그는 가던 길로 되돌아왔다.

문득 화살을 피했던 곳의 근처에 박혀있는 너럭바위에 빗맞아 떨어진 화살이 보였다.

긴 세모꼴의 쇠붙이 재질로 된 화살촉이 두드러졌다. 조선의 화살이었다.

“조선에서 온 무장들이 벌써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가? 허허,"

조동일이 입술을 비틀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나를 잘못 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활을 쏜 자객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용의주도하지 못했다.

한때 중국대륙의 밤을 공포에 떨게했던 조동일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한적한 곳이어서 신변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고는 하나 거대한 대륙의 강호를 호령했었던 조동일의 신경이 장소를 가려가며 긴장을 늦추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것은 죽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을 본능같이 오랜 세월 쌓이고 굳어진 습관이었다.


“독고달 부루주, 오늘 싸움에서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대가 휘하의 무사들을 지휘하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뜻밖의 말에 긴장한 독고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보자 방위장군 장자숭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나는 조동일의 위명이 결코 과장되었다고 보지 않소.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 뒤쪽에서 날린 화살을 그렇게 간단히 피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어... 비록 인기척을 없애기 위해 먼 거리에서 쏘았지만 그 정도 거리는 예전에도 빈번하게 날렸소이다. 더 먼 곳에서도 백발백중이었지... 흐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경악하는 장자숭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날아오던 그 경공은 가히 축지(縮地)를 보는 것 같았소, 과거 정찰병을 오래한 경공술 덕에 재빨리 피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한바탕 큰 싸움이 일어날 뻔 했소이다.”


여도가 지휘하는 결사대는 거점인 천취루를 기반으로 빠르게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특히, <천경보전>의 행방을 파악하는 공통의 활동 반경으로 인해 몇 번 충돌한 패도문의 주요 고수들을 척살한 이후 그 기세는 무서울 것 없이 뻗어 나갔다. 그 여세를 몰아 추후 잡음이 생길것을 감안하여 패도문의 잔당들에 대한 소탕의 일환으로 패도문의 주요 인사들을 감시하던 중 궉세사측에서 조동일과의 접촉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는 것을 포착했던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과거의 절정고수가 갑자기 출현하여 특별한 일도 없이 저잣거리의 잡놈들과 배가 맞아 온갖 잡짓을 하며 세월을 보내기에 계속 주시만 했소이다. 그런데 어젯밤 패도문의 궉세사 지부장과 비밀회동을 한 것으로 보아 조동일은 우리의 적이 틀림없소이다. 그전까지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우리에겐 제거대상일 뿐이오. 그의 정체가 확인되었으니 훗날을 위해 없애야하오. 후환이 있을지 모르니 사방을 살펴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해야 할 것이오.”

“포구에 있는 우리수하들이 이미 조치를 해놓았을 것입니다. 위사장 해시개가 휘하 무사중 가장 강한 삼십 명을 특별히 선별하여 보냈으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포구를 향해가는 장자숭과 독고달이 낮은 능선을 넘어서자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결에 금천호의 물비린내가 비릿하게 풍겼다.


선실에 들어선 조동일은 차(茶)가 담긴 주전자를 들었다. 탁자위에 잔과 함께 놓여있던 차는 홍경천차였다. 내공의 향상을 도우는 약성이 강한 차였다.

“후웃!”

한 모금을 마친 조동일의 입술 끝이 비틀리며 희미한 비웃음이 묻어났다. 독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몰래 침입했다는 증거였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 선실문이 열렸다. 유시(酉時) 무렵이었다.

“마취(痲醉)액을 한 술 이상 넣었으니 지금쯤은 꿈속에서 한창을 헤매고 있을게야.”

의기양양하게 말한 그가 탁자위에 엎드려 있는 조동일의 어깨를 두어 차례 흔들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없다. 그는 자신감이 붙은 듯 다른 손을 흔들어 뒤 쪽에 선 두 명에게 지시를 했다.

“얘들아, 어서 이놈을 포박하여 데리고 가자. 별 놈도 아니쟎나, 쯔쯔”

그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위사장 해시개의 심복이었다.

찟어진 눈매와 뾰족한 아래턱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아, 가만. 그래도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지. 혹시라도 저자가 깰지 모르니 조심해서 신속히 묶어라.”

“역시 대단하십니다. 오늘의 공은 형님의 잠입술과 마취액인 듯 합니다. 이제 돌아가 거나한 저녁이나 먹으며 포상금이나 챙기면 되겠네요. 허허”

“참 나, 이리도 쉽게 해결 될 일을 왜들 그리 걱정을 하고 있는지, 쩝,”

“글세, 이렇게 쉽게 잡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수하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치 일이 마무리된 것처럼 대화했다.


“크윽!”

조동일의 어깨를 젖히던 수하 하나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이를 악물면서 사지를 비틀었다. 양손으로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으나 벌어진 입 밖으로 소리가 뱉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사태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던 두 사람도 곧 얼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끔찍한 모습이 되어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그 때, 엎드려 있던 조동일이 일어나며 차가운 시선으로 상황을 둘러보았다.

“너희들은 내가 풀어놓은 극독(極毒)을 마셨다. 곧 몸속의 모든 혈관이 터져 끔찍한 모습으로 죽게 될 것이다.”

조동일의 목소리는 억양의 고저가 없어 마치 죽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썸뜩했다.

그의 등 뒤로 한기가 피어오르는 후광이 생기면서 선실의 분위기는 공포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죽어랏!”

선실의 상황을 유심히 보고 있었던 듯 자객들이 쓰러지자 마자 옆에 세워져 있던 배의 선실에서 낯선 얼굴의 자객들이 조동일의 뱃전으로 날아왔다. 제법 몇 달을 인정스럽게 교류하고 있는 배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배를 밑천으로 살아가던 그가 변을 당했다고 생각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이놈들!

조동일이 벼락같은 고함을 치며 허공을 날았다. 강 위에서 매서운 한 판 춤을 춘 언월도가 호랑이 털가죽으로 덮힌 칼집에 조용히 스며들 때 끔찍하게 베어진 자객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의 피보라는 사방으로 튕겨나갔고 끔찍한 시신들만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슈웅!”

그때, 배의 밑창 쪽에서 갑자기 자객들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날아오른 조동일의 언월도는 피냄새를 찾아가는 호랑이처럼 한동안 허공을 휘저었다. 물밖으로 나오자마자 베어진 십여 명의 자객들이 비명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곤두박질했다.


“멈춰라!”

섬뜩하게 조여오는 냉기를 뿌리며 사내 하나가 뱃전에 뛰어들었다. 삼십은 훨씬 넘어 보였고 단단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자객들의 시체가 뒤엉켜 혼잡한 상태인데다 지나치게 적막한 주변 공기로 인해 음습한 살기의 기운이 극에 달했다.

“네 놈은 누구냐, 여기 엎어져있는 조무래기들이 네놈 부하들이더냐?”

“야잇!”

찢겨 올라간 눈꼬리를 가진 사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살기 어린 기합을 넣으며 불식간에 달려들었다. 뱀의 형상을 한 장팔사모가 공중에서 휘몰아쳐 뻗쳐 내렸다. 사내는 제 키보다 높이 솟구쳐 내려치는 힘으로 창을 휘둘렀다. 조동일의 목 가까이에서 긴 창이 몇 번씩 회전하면서 죽이겠다며 아우성을 치는 듯했다. 사내는 끝없이 밀어붙여 재빨리 급소를 쳐서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파파팟!”

날카로운 파공성이 파도처럼 짓쳐들어오자 조동일은 여러 곳으로 신형을 바꾸며 날카로운 공세를 가볍게 피했다.

“으... 이, 이놈이!”

사내는 입을 악물었다. 자신이 필사적으로 퍼붓는 일격들이 자꾸 허탕을 치자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한 후 장팔사모를 면전에서 던졌는데 그 것마저 허공을 갈라버렸기 때문이었다.

“파파팍!”

할수 있는 공격을 다하고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해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내의 뒤로 중년의 무사가 뛰어들며 품속에서 은빛 광채가 나는 암기들을 홱 뿌렸다.

“장군님,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지금부터 이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반백의 중년사내가 조동일의 앞쪽으로 나섰다. 조동일의 옷에는 굵은 암기들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성공한 공격으로 보였다.

“네 놈이 이 공격까지 피할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역시 내 판단이 옳았어, 다행히도 묻어있는 독이 그리 강하지 않아 고통스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크흐흐!”

“오, 제 때 도와주셨소, 부루주. 이번에야 말로 공격이 성공했소이다.”

적기에 개입한 독고달 부루주의 암기공격이 성공했다는 확신이 선 장군 장자숭이 요란스러운 회심의 미소를 터뜨렸다.

그 때였다.

“하하, 네놈들은 내가 이까짓 독암기에 당하리라고 생각했더냐?”

조동일이 입술을 비틀며 웃더니 가볍게 전신을 흔들었다.

“촤르르!”

조동일의 옷에 꽂혀있던 암기들이 일시에 떨어지며 적막을 깨뜨렸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두려움에 치가 떨려왔다.

“ 네 놈들은 백독불침지신(百毒不侵之身)을 아직 보지 못했구나. 죽기 전에 실컷 봐두거라.”

“백독... 불침이라면...”

"섣불리 볼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 독공에 조차 강할 줄이야, 도대체 네 놈의 정체는 무엇이냐?"

고강한 고수일 줄은 알았지만 지금처럼 상대로 하여금 벽에 부딫히는 듯한 절망을 주는 조동일을 보면서 장자숭과 독고달은 뒤통수를 때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다.

“네 놈들은 천취루의 부루주와 조선의 장수가 분명하구나, 죽기 전에 날 죽이려는 까닭이라도 실토한다면 시신만은 온전히 보전해주마, 그렇지 않다면 네 놈들을 갈가리 찢어 날짐승의 먹이로 던져줄 것이야, 후후.”

“네 이놈, 어디서 요망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네놈이 패도문의 궉세사에게 고용되어 우리를 치려고 한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감히 조선의 장수들과 맞설 생각을 하다니 가소롭구나! 네놈은 조선이 무섭지 않느냐?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다면 조선왕실에서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장자숭이 이를 악물며 조동일을 향해 악을 썼다.

"조선에 있어야 할 장수가 여긴 왠 일로 왔을꼬? 조선의 간자 아니면 조선에 반기를 든 역적중 하나 아니냐 ... 네 말로 보아하니 간자가 틀림없으니 어느 곳에서 죽어도 여한은 없을터, 내 오늘 여기서 네놈들을 벨테니 원망은 하지 말아라."

조동일의 굳은 얼굴을 본 두 사람의 얼굴에 일순 긴장감이 덮였다.

'이런 때려 죽일 놈, 얄량한 실력을 과신해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구나!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이 주먹까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식은땀을 흘리던 장자숭이 이를 갈며 승냥이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리곤, 두 눈을 치켜뜨며 날아 올라 오른쪽 주먹을 번개처럼 내둘렀다. 모든 병장기, 심지어 독공마저도 무용한 조동일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육탄전은 마지막 방법이었다.

“빡!”

“크악!”

마주친 주먹들이 충돌하는 소리와 뼈가 으스러져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장자숭의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비틀비틀 뒤로 물러선 장자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젊은 시절 군부내에서 철권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을 만큼 맨 주먹싸움은 누구와 겨루어도 자신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조동일 이라고 하는 바위에 부딪혀 찌그러진 두부처럼 부서진 손을 보는 것은 현실이었다. 악몽을 꾸는 것이라 자위할 수밖에 없었던 장자숭은 이빨을 빠각빠각 갈면서 눈에 흉흉한 핏발을 세우며 마지막 힘을 모았다.

“끄아아 ... ”

장자숭은 왼손에 공력을 집중했다. 죽음을 염두에 두었기에 아픔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위잉!”

강렬한 태풍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소리가 강가를 긴장시켰다. 또 한 번의 주먹이 마주친 후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소리를 낸 장자숭이 야차의 얼굴로 변한 채 고개를 처량하게 숙였다. 원숭이를 연상시킬 만큼 긴 양팔이 피투성이가 되어 덜렁거렸다. 꿇어앉은 장자숭의 뒤쪽으로 붉은 노을이 수평선을 물들이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인생과 무관한 비정을 던지는 듯 했다.

“퍽!”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동귀어진(同歸於盡) 하려는 듯 앞뒤 보지않고 달려드는 장자숭의 돌진을 옆으로 살짝 돌며 피한 조동일이 강하게 턱을 올려쳤다. 휙 돌아간 턱과 함께 뒤집어진 장자숭이 털썩 엎어져 떨어지더니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이후 잠깐 경련하더니 허옇게 눈을 뒤집었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였다. 이후 숨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천취루의 누구도 예기치 못하게 장자숭이 갑작스레 죽었다.


모든 과정을 지켜 본 독고달은 돌처럼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피가 거꾸로 도는 듯 심장이 울렁거렸다. 무수한 강호생활로 충분히 많은 싸움을 경험을 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 방금 본 것처럼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고수를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별된 천취루의 위사들이야 약할수 있다고 치더라도 장자숭 장군은 조선군 전체에서도 가장 고강한 장수중 한 명 아니던가,

`지금처럼 죽음을 가깝게 느끼는 건 평생 처음이다. 죽음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같구나. 아! 내 인생도 여기서 끝인가,`

“부루주, 네놈도 나를 패도문의 복수를 위해 고용된 살수라고 생각하는가?”

사나운 일진의 연속같은 싸움을 계속해왔음에도 암기에 찢어진 옷 외에는 상처의 흔적을 찾을수 없는 조동일이 헛웃음을 흘리며 독고달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왜 은밀히 궉세사와 만난 것이냐! 우리가 입수한 소문으로는 패도문이 복수를 하기 위해 여러 고수들과 접촉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네놈을 포섭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는 것도 패도문 내부관계자로부터 확보했기에 너는 척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자, 결판을 내자. 어차피 피하지 못할 싸움이라면 즐거이 한 판 놀아야하지 않겠느냐?”

독고달은 필연코 운명이 갈릴 위중한 상황에서도 강호인의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비록 강호의 중심에 서 본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그 언저리를 메우며 가늘고 길게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무사답게 분명한 명분으로 조동일을 상대하고자 했다.

“궉세사를 만났던 사실만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제거해야할 적이 될 줄은 몰랐다. 허허, 너희들이 나를 어찌 알겠느냐?”

조동일이 허탈하게 웃으며 수평선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적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험난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구나, 오히려 편안히 준비하며 기다리면 될테지 ... 적이 있어 비로소 나를 돌아보니 나를 죽이려는 적이 나를 살게 하는 자임은 오래전부터 깨달은 역설이지, 그런 의미에서 너에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고 싶군.”

조동일의 말속에 냉기가 묻어나왔다. 독고달의 등줄기에서 시작된 한기가 순식간에 전신으로 뻗쳐나가 일순 몸이 휘청거렸으나 이를 악물면서 지탱했다.

독고달이 자신의 검을 곧게 세웠다. 검날에서 독사의 혓바닥같은 검기가 모여졌다. 그 때, 맞은 편에 있던 조동일이 오른쪽 팔을 올려 독고달을 향했다. 이어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너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세간에 알려진 맹독(猛毒) 칠종(七種)인 두꺼비, 거미, 지네, 전갈, 나방, 뱀, 벌의 독을 모두 합하여 만든 극독(劇毒)을 지풍(指風)에 실어 보냈으니 너는 곧 죽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독고달은 순간 긴장했으나 가슴 쪽에 손가락으로 누르는 자극을 느꼈을 뿐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다른 부분에 이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그가 천천히 목을 숙여 아래쪽도 살폈으나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자신을 기만한다고 생각한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조동일을 노려보았다.

“아, 아직 독이 퍼지지 않은 것 같군. 곧 효력이 나올테니 안절부절하지 마시게 ... 참, 부디 내세에서는 행복하길 빌겠네,”

모든 것을 마무리한 듯 차분히 말한 조동일이 뒤돌아 섰다. 그때 조동일의 어깨 뒤로 한순간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독고달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무너졌다. 그의 온 몸은 검게 변했는데 그 와중에 입가에는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흰자위를 드러낸 눈가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는데 마치 절규하는 야차의 모습 같았다.


`이놈들이 아직 내 정체를 모르고 있으니 오히려 활동하기 편하겠지만, 오늘 사건을 집요하게 조사해서 나를 향한다면 피차 마찬가지로 불꽃이 튀겠군.`

천취루에서는 조동일이 아직 소도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그들은 소도에서 활동하는 다른 무사들에게만 경계를 강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취루의 뒤쪽에서 소도파수대의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될 수 있음도 확실했다.

`일단은 패도문이라는 가면을 쓰면 좋겠군. 흐음`

날듯이 뱃전을 벗어난 조동일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조동일의 배 위쪽에서 한 무리의 까마귀떼가 어지럽게 몰려와 까악거리며 울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었고 짙고 붉은 황홀한 노을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 포구 입구의 낮은 능선 쪽 큰 바위 뒤에서 배를 떠나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조동일을 음흉하게 바라보는 인영이 있었다.

“흐흐흐”

나직히 냉혹한 웃음을 짓던 그가 중얼거렸다.

“역시 대단하군, 소문보다 훨씬 강해 , 천취루 세력과 조동일이라... 격렬한 싸움이 되겠군.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고 말이야 ... 이용할 만큼 이용한 후에 죽이면 일거양득이겠군.”

나직하게 읊조린 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의 인영도 금세 어둠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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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천취루 20.08.25 80 1 19쪽
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4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4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1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63 돌파 19.02.12 134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6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4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29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3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2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7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3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0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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