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29,532
추천수 :
273
글자수 :
706,311

작성
20.10.07 12:42
조회
58
추천
0
글자
10쪽

대책없는 다짐

DUMMY

달빛이 흐르는 밤풍경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어디든 아름답다.

천취루의 안채에 자리한 후원에도 만월(滿月)에서 쏟아져 내리는 부드러운 달빛이 아늑하게 깔리고 있었다.

“으아아!”

안채의 높은 담을 겨우 뛰어넘은 인영이 부상당한 몸을 격렬하게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달빛 속에서 좌우로 흔들리며 그악스럽게 우는 그의 모습은 흡사 적개심으로 울부짖는 한 마리 들짐승 같았다.


“낭패로군, 우리가 우려했던 사태가 벌써 발생하다니 말이오,”

장군 여도가 뒤쪽에 서있던 루주 민머린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무리 칼끝에 목숨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무림인의 숙명이라곤 하지만 오늘의 이 참혹한 결과는 참으로 쓰라립니다. 아흐으,”

설마설마했는데 위사 삼십에 부루주 독고달, 거기다 장군 장자숭까지 조동일에게 패해 전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물 간 퇴물 늙은이라고 얕보았다고 해도 모두가 희생된 것은 너무나 참혹한 결과였다.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살아 돌아온 무사는 수하 위사들을 거느리고 포구의 싸움을 현장에서 지휘하던 위사부장 소심(蘇芯)이였다. 선실에 있던 차 주전자에 독을 타고 옆에 정박한 배를 장악해서 다음 공격을 준비한 것도 그였다. 또한 그 선공마저 실패하면 마지막으로 모든 위사들이 물속에서 뛰어올라 습격하는 작전을 설계한 것도 그였다. 당시, 준비한 상황들이 실패하자 그도 뱃전에 오르기 위해 물속에서 솟구쳤는데 그 때 조동일의 언월도에 가슴 언저리 쪽을 베여 물에 가라앉았었다. 그러다 천우신조로 조류에 떠밀리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 겨우 목숨을 건진 상태였다. 심각한 부상을 안고도 현장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밤새 걸어온 그는 보고 들은 것을 모두 보고한 후에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러진 갈빗대에 걸린 장기(臟器)들이 끊임없이 칼로 도려내는 통증을 반복하며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 놈... 괴물같은 그놈에게 당한 부하들을 위해 ... 부디 복수를 ...”

침묵하며 쌓였던 울분을 참아내던 소심은 눈물 몇 방울 남기고 그대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동일 같은 고수가 장복(長服)하는 차 주전자에 무언가를 집어넣은 후 평소처럼 복용하도록 하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지 ... 절정고수들의 감각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주변의 변화 하나까지 놓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지,”

여도의 옆쪽에 서있던 모용맹문이 침묵을 깨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적을 너무 몰라서 당한 패배라고 질책하는 듯 퉁명한 목소리였다. 소심의 귀환(歸還) 때문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소심에게 단 한 마디의 위로도 건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 밤은 결코 아군의 희생을 위로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절정고수의 음식이나 술, 차에 독을 타는 것은 차라리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귀한 가르침으로 삼겠습니다.”

위사장 해시개가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의 비참한 결과가 자신의 과오인 양 숙연(肅然)한 표정이었다.

“다만, 조동일의 무공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사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는 과거 대륙의 살수집단인 흑혈문을 멸문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강호 역사상 일개 고수 혼자서 방대한 조직을 와해시킨 전례가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경외(敬畏)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화려한 외양 아래 세속의 쾌락거리를 모두 제공하는 본채와 달리 천취루의 안채는 삼 년 비워둔 폐가처럼 썰렁한 상태에서 얘기가 계속됐다.

“그 힘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하는 의문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며 여러 소문들이 떠돈 바 있습니다. 그중의 한 소문이 설득력이 높았는데 그것은 조동일이 흑혈문도들에 대해서 거침없는 대량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악인에 대해서는 혹독하리만치 가혹하게 응징하기로 유명했던 만큼 자신을 죽이려한 악인들에게 처참한 복수를 했다는 얘기였지요.”

“대량학살이라?”

입에 돌을 매단 것처럼 묵직하게 침묵하던 여도가 상심을 깰 이유라도 발견한 듯 이채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독이지요!”

해시개는 얼핏 외모만 보면 몸싸움에 안달하는 덩치 큰 한량느낌이나 의외로 냉정한 지략가의 내면도 가지고 있었다.

“흑혈문 멸문시 많은 문도들의 시신이 목내이(木乃伊)처럼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피부 또한 검게 변색이 된 상태였고요. 극독에 중독되었음이 확실한 증거였지요. 그 정도의 극독을 시전하고도 조동일이 아직까지 멀쩡하다는 것은 백독불침지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소문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험악한 인상에다 듣기 거북한 껄끄러운 말투에는 어울리지 않게 해시개는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상황 때문인지 그의 말이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갔다.

“특히, 조동일처럼 독인(毒人)의 경지에 이르면 내공이 몇 단계나 오른다고 합니다. 체력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도 강철같이 단단해지지요. 오늘 우리 측의 피해도 어찌 보면 중과부적의 결과였을지도 몰라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수하들의 모습이 생각났는지 말을 하면서도 해시개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했다. 찌그러진 얼굴과 달리 청산유수처럼 흐르는 얘기는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좀 더 실력있는 무사들이 많이 가서 진지하게 싸웠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해시개는 자신이 그 싸움에 끼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듯했다. 수하 위사들이 패배한 것에 대한 쓰라림이 그를 짓누르는 모양새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호인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조선군 제일의 장수중 한 명인 장자숭 장군까지 희생된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결과야 ... 수치스럽군!”

여도가 씨근덕거리며 내뱉은 그 말에 사위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이제 더 이상 그 얘기는 하고싶지 않은 듯 여도가 손을 저으며 침묵을 깼다.

“자, 일단 그 얘긴 그만 합시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사라졌다는 조동일이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오. 그 정도 무공이라면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 언제든 마주하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터인데 그에 대한 대책은 있소이까?”

얼핏 <천경보전>을 찾기 위해 온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희생이라 생각해서인지 여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빠른 대책을 강구하도록 독려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조동일의 문제는 패도문과 연관이 있음이 확실하니 그 쪽 동향을 잘 살펴 후일을 도모하겠습니다. 상황변화가 있을 때마다 우리 측의 간자와 내부 관계자에 의한 전서구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그 첩보는 정확한 사실만 기재되어 있으니 조동일의 행방도 조만간 거미줄같은 정보망에 걸려들 것입니다. 추후 그가 포착이 되면 여도장군님께 가장 먼저 보고드리고 지시를 받아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민머린이 대책으로 제시한 것은 원론적인 얘기였다. 다시 말하면 평소 하던대로 하겠다는 얘기였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군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내놓는 대책치고는 너무 궁했다.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방법이었다.

대책이랍시고 얘기하던 민머린은 모두들 못마땅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도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조동일에 대한 정황이 확인되면 별도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장군님들께서는 강호의 일은 상관하지 마시고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하시면 될 것입니다. 우리 천취루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보필을 하겠습니다.”

민머린이 자기를 낮추는 듯 굽신거렸지만 내심으로는 그의 위치를 더욱 굳건하게 지키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 천취루의 영업을 포함한 모든 일의 전권을 가져간 여도에게 <천경보전>을 찾는 임무에나 전념하라는 속셈을 드러낸 표현이기도 했다.


“하긴, 우리가 이곳의 강호를 접수하러 오거나 여기 천취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니 ... 우리의 귀한 시간을 겨우 한 명의 강호인을 잡기위해 낭비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 민루주의 말도 일리가 있어, 어떻소? 달리 생각하시는 분이 있소이까?”

결사대장 여도와 루주 민머린이 합의를 한 의견을 무시하고 달리 의견을 주장할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모두들 별다른 뾰족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침묵했다. 동조하는 의견 표시였다.


칼끝에 목숨을 건 무사들인 만큼 운명에 수긍하는 태도는 차가웠다.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당했지만 보복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협객의 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흐르던 대로 세월을 살아가는 것, 타인의 희생을 밟고서 입지를 넓히는 것에 불과한 미봉책이나 주절거리다 아무일도 없었던 듯 각자의 처소로 향할 뿐이었다.

“허허허 ...”

침소로 향하던 해시개가 홀로 너털웃음을 지었으나 왠지 공허하게 퍼졌다.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소리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도외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9 암살의 획책 20.10.16 82 0 14쪽
» 대책없는 다짐 20.10.07 59 0 10쪽
77 첫번째 격돌 20.09.29 67 0 22쪽
76 교섭 20.09.23 74 0 12쪽
75 소문 20.09.16 90 0 13쪽
74 독대 20.09.14 73 1 11쪽
73 노추 20.09.10 73 1 11쪽
72 만찬 20.09.08 77 1 14쪽
71 그들의 첫 회동 20.09.02 78 1 25쪽
70 천취루 20.08.25 80 1 19쪽
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5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5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2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63 돌파 19.02.12 136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7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5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30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4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3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8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5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1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