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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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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글자수 :
706,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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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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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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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환락경에 빠지다.

DUMMY

가화를 물린 독고파는 잠시 피로한 눈을 감았다. 묘령의 곤륜노 여인이 웃는 모습이 천천히 떠올랐다. 신선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강한 자극을 준 여인이었다. 사내라면 당연히 끌릴 매력이 충만한 여인이었다.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겠지. 오늘은 무척이나 운이 좋은 날인 것 같군... 그런 ¹ 우물(尤物)을 발견한 것에 더하여 가화에게서는 양기를 돋우는 영물(靈物)인 환약과 호골주를 얻어 섭취하였으니 더 이상 무얼 바랄까... 어쩌면 이게 가화가 얘기한 신선이 되어가는 길이 아닐까... 허허”

독고파는 천천히 오늘 하루 경험하는 기이한 경험으로 기분 좋은 독백을 내뱉었다. 지금은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온전한 희열로 충만했다.


그때, 독고파는 왠지 온몸이 서서히 공중에 뜨는 느낌을 받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마치 ² 열락의 폭포수 물결에 빠진 듯 했는데 전신의 혈관들이 하나하나 용솟음치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했고 그 흐름을 제대로 탄 채로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오묘한 상황이 연속되고 있었다. 한동안 연속하여 지속된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가져다 주었는데 때론 천천히 때론 충만하게 온몸의 구석구석을 강렬하게 스쳤다. 처음 느끼는 감동스런 현상이었다.

‘이것이 진정 환락경인가? 이 기기묘묘한 감흥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즐거움이다. 혹시 이것이 신선의 경지에 이르기 전의 상황일까? 그렇다면... 아까먹은 호골주와 환약이 가화의 말대로 진정 신선이 되는 영물(靈物)인 것인가? 그렇다면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 가장 크고 깊은 변화를 각인하는 날이 될 것이다. 아, 정말 신선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흐~음’

모든 것이 인상적인 하루가 지나가는 저녁에 독고파는 문득 그동안 풀지 못한 비밀 몇 가지를 푼 것처럼 머리가 몽롱해졌으나 가슴은 시원했다. 아마 호골주가 혈관을 타고 온몸의 기운을 활발하게 돌린 탓인 듯 했다. 열어놓은 빈청의 창문으로 어둠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채 짙어지고 있었다.

“아, 궉부장은 돌아왔겠지? 하긴 벌써 돌아와 있겠구만. 흐흠”

자문자답하며 중얼거린 독고파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늘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수제자 궉세사. 무공이 조금만 더 받쳐 준다면 다음 후계자가 될 수도 있으련만... 뭔가 부족해, 뭔가가...’

독고파는 천천히 일어나 빈청 밖으로 나갔다. 그의 인기척을 듣고 어느 틈엔가 궉세사와 그 수하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최음제에 취한 미령을 문주의 침전에 뉘어놓은 상태로 독고파가 나오기만을 기다렸기에 빈청에서 인기척이 나자마자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래, 일은 성공했느냐?”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속히 침전에 드시옵소서. 문주님을 위해 오늘 밤에 화려한 꽃으로 피어오를 여인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궉세사는 피곤했지만 그래도 손을 부비며 간드러지게 말하는 특유의 아부 근성까지 쉬는 건 아니었다.

“그래, 수고했구나. 내, 오늘 너의 공로를 각별히 기억할 것이야! 흠~”

독고파는 만족한 듯 호탕하게 말했다. 평소와 달리 격하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치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궉세사는 안도했다.

“뒷처리는 깔끔하게 했겠지? 늘 그렇듯이 말이야...”

늘 묻는 말이었다. 한번도 문제가 없었음에도 습관처럼 되어버린 말이었다.

독고파는 당연한 일을 괜히 물은 듯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궉세사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발길을 돌리려 했다.

“저, 그것이... 약간의 소란이 있긴 하였으나 이내 정리하였습니다. 문주님께서 걱정하실 만한 사항은 아니오니 심려 놓으십시오.”

궉세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소대로라면 독고파가 침전에 들기까지만 침묵한다면 모든 상황은 모면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의 수제자인 허망을 비롯하여 납치 현장에 남겨둔 수하들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그 현장을 떠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목에 걸린 고기의 굵은 가시 같은 답답함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적절한 잔꾀를 통해 많은 난관을 헤쳐나온 궉세사의 본능상 그 내용을 다 말하지 않고도 일단 독고파가 기분이 좋을 때 그 상황에 대한 운이라도 띄어 놓아야 한다는 판단이 든 것이었다. 냉정한 독고파가 나중에 일단의 수하들이 없어진 것을 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 책임자였던 궉세사가 부담해야 할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느냐? 어쨌거나 현재는 모두 잘 해결되었겠지?”

독고파는 예상외의 답변을 듣자 기분이 나빴지만 그리 큰 소동은 없었으리라 짐작을 했는지 잠시 멈춘 발길을 다시 돌려 침전으로 향했다. 답변을 다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한 팔로 궉세사 일행에게 그만 보고하고 처소에 가서 쉬라는 손짓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겨우 그만한 일도 제대로 못하다니, 그 인적 드문 곳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하긴, 그 색목인 계집이 무공을 숨기고 다니는 것 같긴 했어... 그래도 궉세사 정도면 그런 계집 정도는 가볍게 제압해야 되지 않느냐 말이지, 흠... 멀었어, 아직 멀었어...’

독고파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 명의 수제자 중 자신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가진 청출어람의 수제자는 없었다. 다만, 궉세사가 가장 약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가 후계자 지정을 늦추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직 다들 조금씩 모자라...아직도 내가 챙겨야 하다니, 못난 놈들...”

독고파는 수제자 세 명을 떠올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 일만 끝나고 나면 후계구도를 본격화해서 패도문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었는데 궉세사는 일단 후계구도에서 한 발 멀어질 것은 확실해 보였다.

“궉부장이 속에 품은 야심만큼의 실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아... 눈치 빠르지. 충성스럽지. 수하들 관리 잘하지...하! 어렵다. 어려워.”

현지에서 생긴 문제를 보고받은 일로 하여 여러 생각을 하던 독고파가 독백을 하며 걷는 동안 발길은 어느새 침전에 당도해 있었다.


독고파는 잠시나마 궉세사로 인해 망친 기분을 복구하기 위해 침전의 문앞에서 진기를 모아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진 독고파는 선계(仙界)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침소를 보는 순간 그는 빈청에서의 무아지경 속에서 느꼈던 그 신비하고 오묘했던 감흥을 떠올렸다. 새로운 다짐도 덩달아 피어 올랐다.

‘오늘 내 일찍이 본 적 없던 절세미인을 희롱하면서 마침내 신선의 경지까지 올라가 보리라. 말로만 듣던 천경보전을 손에 넣어 수련한다면 반드시 신선이 될 것이고 필히 이런 황홀경을 매일 느낄 수 있을 것이야. 정말이고 말고... 아니면 오늘처럼 호골주와 환약을 매일 복용하여 신선의 경지를 갈수도 있겠지... 아무튼 오늘 이 곤륜노 여인을 통하여 선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고 싶구나.’

독고파는 자신이 정말 신선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신선의 세계는 오늘과 같은 황홀경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느낌을 놓치기 싫었다.

궉세사를 급하게 물린 것도 기실 그런 이유가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침전의 중앙에 위치한 침소로 향하던 독고파의 눈동자가 경탄에 차서 휘둥그레진 것은 침소위의 예기치 못한 광경 때문이었다. 얌전히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던 곤륜노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할지 갈피를 못 잡은 듯 한 그녀의 큰 눈동자에는 습막(濕幕)이 번지고 있었는데 이미 흘러서 말라버린 눈물자국이 뺨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 깨어난 후 납치되어 온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곤 한탄하며 우는 것 같았다.


기실, 그녀는 잠에서 깬 후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컸지만 그보다도 많은 무사들과 싸우던 마리안 언니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었다.

“아, 언니가 무사해야 할텐데...흐흑...”

서글픈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미령은 갑자기 마음과 달리 반응하는 몸상태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어찌된 영문인지 조금 전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일렁이는 욕망의 폭풍이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깊은 슬픔으로도 도저히 누를 수 없는 이 더러운 감각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저 눈물이라도 흘려야 이 상태를 조금이나마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내 너를 특별히 어여삐 여겨 우리 함께 신선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야, 오늘 밤 너를 통하여 함께 선계로 들어가 황홀경의 홍수에 빠져보자꾸나. 흐흐흐”

독고파는 미령을 위로하는 듯 천천히 얘길하고선 불쑥 앞으로 다가갔다.

과연 여인은 멀리서 본 그대로였다. 천하의 절색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었다.


사슴처럼 가늘고 긴 목덜미, 가냘픈 듯 하지만 건강하게 뻗어있는 어깨선은 청초함을 강조하는 듯 했지만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와서는 농염함이 짙게 묻어났다. 거기다 길고 보드라운 머릿결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가히 빙기옥골(氷肌玉骨)의 나신(裸身)은 독고파의 심장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흐음 !”

패도문의 문주가 된 이후로 오랜 기간 마음에 드는 여인은 누구든 안아본 독고파였다. 그러나 이 여인만큼은 여느 부녀자들과는 달랐다. 자신도 모르게 그 아름다움에 심취되어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은 본능이었다.


“으음... 아!아!”

그 순간 미령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찌 들으면 통증에 수반되는 고통의 소리였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남자를 갈구하는 여인의 타는 목마름이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녀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가 어느새 붉게 물들며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성이 있는지 여인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다리를 꼰 채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사내의 욕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여인을 바라보는 것에 한계를 느낀 독고파의 눈빛이 세차게 번들거리더니 이내 입고 있던 옷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들끓는 욕정을 주체할 수 없는 그의 몸에서는 짙게 배인 땀 내음이 번지고 있었다.

“오늘 신선의 세계로 가는 마지막 단계로써 선녀의 환생 같은 너를 얻었으니... 내 기어이 선계가 어떤지를 마음껏 느끼고 싶구나.”

그는 여인의 곁으로 허물을 벗은 뱀이 이슬 먹은 풀밭 위를 유영하듯 소리 없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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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가장 좋은 물건, 잘생긴 여자

² 기뻐하고 즐거워함. 인간의 유한적인 욕구를 넘어서서 얻는 큰 기쁨과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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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갈림길 19.04.08 74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4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1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63 돌파 19.02.12 134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6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4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29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3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2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7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2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0 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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