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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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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28
추천수 :
273
글자수 :
706,311

작성
19.04.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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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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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갈림길

DUMMY

“어...어디에 가셨다가... 이제서야 오시는 겁니까?”

멀리서부터 부대로 귀환하던 마인극과 추자하를 발견한 차석부장 몽돌이 눈썹을 휘날리며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와서 엉성하게 읍(揖)을 하고선 곤혹스런 표정으로 급하게 말을 뱉었다.

“흠...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마인극은 평소 과묵한 성격의 몽돌이 이처럼 전에 없던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보아 분명 자신이 없을 때 외부의 요인으로 인하여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짐작했다. 마인극은 몽돌을 안심시키려는 듯 차분하게 답하며 부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보이는 눈앞의 파란 하늘은 맑고 평화로웠다.

“말도 마십시오! 어제 저녁 교위님과 추부장님이 어딘가로 가신 후에 사례교위 두 명이 들이닥쳤습니다요 ... 흐-음,”

목이 메이는지 잠시 숨을 참은 몽돌이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교위님을 찾더니 안계신다고 하니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지금까지도 저희들을 무지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요.”

급히 말을 마친 몽돌은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흠,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머물고 있단 말이지...”

마인극은 냉랭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알겠구나... 일단 먼저 돌아가 평상시처럼 근무하도록 해라. 내, 곧 뒤따라 들어갈 터이니,”

“존 명!”

몽돌은 씨익 웃으며 황급하게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추부장은 사례교위들이 왜 갑자기 점검을 왔다고 생각하는가?”

“흠, 저도 꽤 의문이 듭니다. 갑자기 감찰할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더구나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온 것도 그렇지만, 수하들을 괴롭혔다는 것을 보면 분명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추자하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집히는 구석이 없었다.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눈빛을 보내던 추자하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급하게 말했다.

“아! ... 언젠가 여도장군이 온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주군께 삼한으로 같이 가서 신선이 되는 책자의 탈환임무에 동참하자고 했다는 말씀을요,”

“그 얘기는 오늘 아침 먹으면서 추부장에게 한 말 아닌가?”

마인극이 약간은 뜬금없는 소리란 생각이 들었는지 생뚱맞은 얼굴로 답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삼한으로 출발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주군의 최종 동참의사를 확인한 후 같이 출발할 생각으로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내가 없는 시간에 왔으며, 수하들은 또 왜 괴롭힌 것인지?... 참으로 알수 없는 일이군.”

“일단 한번 만나보시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추자하가 잰걸음으로 앞서 나가며 길을 재촉했다.

“가만, 저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은 해 봐야겠군, 진정 나를 믿고 동료로서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수족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군... 내가 없는 상태에서 추부장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번 일의 돌아가는 흐름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동참여부를 선택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야,”

심각한 어조로 말한 마인극이 잠시 선 채로 천천히 손을 들어 쓰윽하며 얼굴을 쓸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인극의 얼굴이 천천히 변하더니 좀 전에 다녀간 몽돌과 비슷하게 변했다. 얼굴 윤곽뿐만 아니라 머리 색깔과 눈동자 마저도 천천히 변하더니 어느새 몽돌의 얼굴과 같아졌다. 잠시후 건장한 마인극의 체격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인극의 모습은 없어지고 몽돌이 다시 온 것 같은 모양새로 전환되었다. 몸에 비해 큰 옷을 둥둥 접어 자세를 잡는 마인극이었다. 그사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망연자실하며 지켜보던 추부장은 눈을 의심했다. 삽시간에 벌어진 상황인데다 예기치 못한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추부장이 알다시피 얼굴 근육과 뼈를 움직여 모습을 바꾼 역용술을 운용해 보았네, 다만 사례교위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없어 몸의 형태까지 변화시키는 축골공까지 사용하였으니 저들이 결코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이네,”

마인극은 입을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추부장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저 자신... 강호의 밥을 오랫동안 먹어왔었지만 지금처럼 완벽하게 역용술과 축골공을 구사하는 것을 눈앞에서 시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눈속임의 인피면구(人皮面具) 착용이나 약물을 이용해 얼굴 형태를 바꾸는 정도의 가벼운 역용술 정도를 본 것에 불과했지요. 과연 주군의 무공은 끝을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새삼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며 상황을 받아들인 추부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부대 복귀후 다른 부대원의 옷으로 갈아입으면 나의 존재는 아무도 모를 걸세, 자네는 나를 대동하고 그들을 만나 내가 오지 않은 이유를 적당히 둘러대고 그들의 동태를 파악해 보게. 나는 그들의 모습만 확인하고 나와서 자네와의 대화를 밖에서 다 들으며 상황을 판단해 보겠네.“


“마인극 교위의 수석부장 추자하라고 합니다. 찾으셨다고요?”

병영내에 있는 교위의 막사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례교위 관경과 위태갈을 찾은 추자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그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옆에는 몽돌의 모습으로 변한 마인극이 공손히 명령을 기다리듯 얌전히 서 있었다.

“자네는 왜 왔는가? 어제 그렇게 혼나고도 다시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용기하나는 대단하군! 아니면 미련한 건가? 후후... 마교위가 온 것을 확인한 이상 자네를 볼 일은 더 없으니 이제 그만 나가보게, 냉큼! ”

사례교위 위태갈이 거만한 표정으로 일갈했다. 순간 냉랭해진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분위기가 일순 어색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추부장은 재빨리 눈짓을 보내면서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물론 사례교위들의 요구사항이었기에 일부러 동작을 표나도록 크게 하여 마무리한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어제 초저녁부터 지금까지 마인극 교위와 함께 부대를 함부로 이탈한 사유와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소상히 아뢰어라, 만약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내 반드시 군율로 엄히 다스릴 것이니 명심해서 단 하나라도 거짓없이 보고토록 하라.”

신중한 표정의 사례교위 관경이 단호한 표정으로 엄포를 놓으며 윽박질렀다.

“마교위님의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마교위님이 먼저 가서 처리하였으나 추가적으로 제가 도와줘야할 상황이 생겼기에 저도 합류한 것입니다. 다만, 본연의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직근 상관이신 편육 호성장군께 사전에 보고하여 수하들의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그 후에 마교위님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볼일을 보았습니다만... 제 행동이 사례교위 두 분에게 군율위반이니 뭐니하면서 모욕이나 징벌을 받을 정도로 위반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추자하는 눈에 힘을 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추상같은 사례교위의 권위에도 불구하고 따박따박 제 할 말을 다하는 추자하의 반응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사례교위들은 순간 놀랐으나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엄포를 놓았으나 오히려 반격을 당한 형세였다. 잠시 당황하던 위태갈이 곧 정신을 가다듬고는 느닷없이 버럭 고함을 치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진실을 규명하고자 사실관계를 물어본 것에 불과한데, 너는 우리가 너와 네 상관인 마인극 교위에게 모욕을 주기위해 이 곳에 왔다고 지레 짐작하고 말을 내뱉는 형세로구나, 네 이놈, 무엄하다!”

위태갈의 온 몸에 분기로 인하여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관경이 급히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근무상황에 토를 달 이유는 없을 것 같으니 나중에 확인해 보면 될 것이고...그나저나 지금 마인극 교위는 어디 있는가?”

“교위님은 ... 아직 집안일이 완벽하게 마무리 되지 않아 조금 지체되고 있습니다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은 들은 관경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흠... 바쁜 전갈을 위해 어제 급하게 왔는데 공교롭게도 아직까지 마교위를 만날 수 없으니 답답하군, 언제부터 성문교위 한명을 만나는게 이렇게 힘들어졌는지 모르겠군, 우스운 일이야 후후... 이젠 시간을 돌릴수도 없고하니 부득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겠군, 이만 가보겠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던 길에 위태갈이 추자하의 무덤덤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건성으로 툭 말을 던졌다. 아직도 불쾌한 듯한 말투였다.

“마교위가 오면 우리가 왔던 것에 대해서 말해 주도록,”

“오셨다는 것만 말씀드리면 되는 것입니까? 혹시 전하실 말씀이라도...”

추자하는 그들이 방문한 목적을 알고 싶었으나 먼저 얘기하지 않자 조심스레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네 놈 따위가 알아야할 일이 아니다!”

위태갈이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불쾌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마교위님께서 오시면 내일까지는 두 분을 찾아뵐수있도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추자하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군인 마인극이 알고자 했던 것이 그들의 방문 목적이었기에 짐짓 모른 채 하며 건조하게 말했다. 가볍게 자극을 던져야 그에 대한 반응도 부담없이 튀어나오리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흠, 내일이라...아, 내일은 안될 것 같네, 우리가 비밀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먼 길로 향하는 것이 내일 저녁이니 자칫 서로 어긋날 수가 있겠군... ”

잠시 망설이며 생각을 정리한 관경이 잠시후 말을 이었다.

“그럼, 마교위가 오면 전하게... 일전에 여도 표기장군이 얘기했던 일에 동참할 뜻이 섰다면 오늘내로 일체의 개인 일들을 모두 정리한 후 내일 아침 사시 정각(巳時 正刻)까지 왕실에 있는 무장대신의 집무실로 오라고 하게... 만약, 동참할 의사가 있다면 말이지... 그렇지 않다면 올 이유가 없겠지, 그렇지 않은가, 흐~음”

관경이 위태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천하의 명장들이 다 모이는 자리인데, 행여 말석이라도 준다고 할 때 얼른 와서 숙이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거야, 암 ~”

위태갈이 장단을 맞추듯 걸음을 멈추고 엄숙하게 대답했다.

“동참하지 않으면 앞날이 험악해질게야... 감히 성문교위 따위가 왕실의 호의를 무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위태갈은 불쾌한 음성으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으나 기실은 뻣뻣한 추자하에게 마인극 교위에게 반드시 전해 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 안으로 그동안 조선에서 맺어놓은 인연들을 정리하는게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일단은, 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추자하가 허리를 깊이 새기며 차분하게 말했다.

“외지에서 들어와 만든 인연중에 그리 대단한 것은 없지 않을까 하네만... 자네는 생각이 다른가 보군? 하긴 여러 장군들을 비롯한 우리들이야 이미 많은 시간을 두고 정리를 다하긴 했지만 말이야,”

위태갈이 비아양거리듯 말을 받았다. 말인즉슨 마인극을 제외한 천거 장수들은 이전부터 상호 연락을 하면서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투였다. 그런데 마인극에게는 오늘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더구나 사례교위 두 사람의 대화로 볼 때 장수들은 이방인에 불과한 마인극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도 부정적인 것 같았다.

“섭섭해도 하는수 없지 않은가? 우리들이야 임무를 완수하면 그에 따른 신분상승과 각종 보상이 돌아와 대대로 집안의 경사가 되겠지만, 마교위야 곧 이곳 조선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애국심이 있어 이번 일에 목숨까지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은 것은 사실이네... 하여 그동안 마교위에게는 비밀에 붙였던 상황이고...”

얘기를 듣는 추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말을 하던 관경은 추부장의 얘기를 마인극이 들으면 심기가 불편하리라 판단했는지 대충 얼버무렸다.

“잘 알겠습니다. 교위님께서 오시면 자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추자하의 반응이 신경이 쓰이는 듯 그들은 급하게 막사를 나갔다. 냉랭했던 분위기 속에서 주군을 모욕한 그들로 인해 수치심에 젖은 표정을 짓던 추자하는 황급히 떠나는 그들의 뒤통수에 경멸의 눈빛을 날리며 적의를 표했다.

`이 놈들은 주군을 그들의 동료로 생각지 않는구나, 그저 고강한 무술실력을 가진 돌격대장 정도로 여기는구나... 주군의 능력으로 공을 세워도 그들은 그 공을 뺏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지... 어디 네 놈들이 몽땅 다 붙어서 덤벼 보아라, 주군이 감당을 못하실까 ...푸~웃!“

터져나오는 실소를 금치 못하던 추자하의 앞에 어느 틈엔가 차석부장 몽돌이 나타나 의아한 표정으로 급하게 물었다.

“아니, 그 놈들... 아니, 그 분들은 가셨습니까? ...어제는 한 며칠 머물것처럼 그리도 험하게 굴더니, 의외군요.”

“주군, 언제 오셨습니까?... 아니... 아니, 자네 언제 왔는가?”

갑작스런 상황에서 처음엔 마인극인줄 알고 예를 차리던 추자하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잠시 머리를 흔들며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평소답지 않게 제가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시고 말입니다. 어서 부장님의 막사로 돌아가셔서 쉬십시오...”

몽돌이 걱정스런 눈빛을 날리며 안쓰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괜챦네, 자네 말대로 사례교위들의 성격이 지랄 같더군, 하도 어이없는 말들을 지껄여대는 바람에 신경을 많이 썼더니 잠시 정신이 혼란했던 듯하네.. 자, 우리 같이 나가세, 곧 교위님이 이 곳으로 오실테니 말일세,”


“그 놈들의 얘기는 다 들었네, 추부장의 생각은 어떤가?”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마인극이 추부장을 불러 신중하게 물었다.

“그들을 따라 갈지, 아니면 지금 이대로 근무할지를 말하는 것입니까?”

추부장 역시 진중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추부장의 생각으로는 이번 임무의 동참여부를 선택하는 것은 마인극의 장래를 좌우할 정도의 중요한 문제였다.

“무슨 임무인지 잘 알지는 못해도... 이 일의 동참여부는 전적으로 주군의 권한입니다. 다만 제 생각으로 동참 이후에는 ... 그들의 말석에서 겨우 꼭두각시 정도의 역할을 하는 선에서 그칠 것 같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임무를 감당해 주는 무사로 동참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 할 그들이 주군을 마치 아랫것을 부리듯 함부로 대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판단은 동참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나는 당초 그 임무에 동참할 예정이었다. 연나라 출신의 여도장군이 이국의 나라인 조선에서 공을 세우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하면서 임무를 완수하면 나의 고향나라를 점령한 한나라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약속했거든 ... 물론 출발 전에 약속한 많은 돈도 준다고 하였고 말이야,”

잠시 침묵하던 마인극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도장군이 떠난후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 일개 교위에 불과한 내게 그렇게나 융숭한 보답을 약속할 정도라면 그들이 하려는 임무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가 무척 궁금했었지.”

얘기를 하면서 막사의 출입구쪽으로 시선을 돌린 마인극이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더군, 그들은 나를 그 곳에서 제일 먼저 희생시킬 계획을 짠 것이야, 겉으로는 나를 위해주는 척 하면서 돌격대장으로 부릴 심산이지, 그러니 자기들끼리는 사전에 모든 것을 공유하고 준비하면서도 정작 맨 먼저 싸움의 선봉에 설 내겐 일체의 아무런 내용도 알려주지 않은 것이야...그들에게 나는 그저 싸움의 선봉에 서서 길을 터주는 역할만 하다 현지에서 죽어줄 용병같은 존재였어, 결국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허용이 되지않는 시한부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었어, 풋 ~ 하하”

실소를 머금으며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 마인극의 앞에서 그의 말을 듣고있던 추자하 역시 악다문 입술을 깨물었다. 마주보던 그들의 얼굴에 왠지모를 분한 쓴웃음이 서늘하게 번져 나갔다.

“내가 그 정도의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이용만 당하고 죽을 정도의 수준이라, 흠...”

처음엔 단순하게 그들의 임무에 동참만 하면 된다고 판단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사안이라는 판단이 들자 갑작스레 긴장의 그림자가 얼핏 스쳐 지나갔다.


“한동안 잠잠하게 세월을 보낸 주군의 인생에 태풍이 몰아칠 것 같습니다. 큰 바람은 잠시 피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만...”

추자하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하게 말했다.

“제 아무리 강한 태풍이라도 결코 굴복하거나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태풍의 끝에 매달려 올 또 다른 운명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당당히 맞이하고 싶네.”

굳은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마인극이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말끝머리에서 잠시 생각에 잠기며 눈을 감으며 말했다.

“다만... 한편 생각하니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하나의 인연을 매개로 그 줄들로 엮였다는 묘한 생각이 불현 듯 드는군.”

“그 줄은 어디서 부터 나온 것인지요?”

추자하가 눈동자에 힘을 주며 물었다. 그도 뭔가 짚이는게 있는 듯했다.

“책자일세, 신선이 되는 방법이 적혀 있다는 책자, 천하 제일의 고수가 되는 비기를 기록해 놓았다는 책자.”

단정적으로 말을 한 마인극은 연이어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령낭자를 납치했던 패도문주 독고파가 강호를 유랑한 것도 그 책자를 찾기위해 나온 것이라고 했어, 책자의 소재지를 찾다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부녀자들을 납치하는 물의를 일으켰지만...그리고, 이곳 조선의 장수들이 비밀리에 수행할 임무도 그 책을 탈환해 오는 것이지,”

추자하가 애기를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자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마인극은 확신을 가진 듯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책자는 삼한에 있지. 결국 그들 모두, 아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력들도 충분히 있을수 있겠지, 그들이 모두 삼한에 모이게 될걸세. 책자의 소재지는 정확히 몰라도 어쨌던 삼한에서 뭔가 큰 일이 벌어지는 건 예정된 사실이야, 그들이야 외부에서 공격할 세력들이고... 삼한내에서는 공격자들을 막고 책자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 방어세력이 눈에 불을켜고 지키고 있겠지 .. 조만간 그 모든 세력들이 삼한에서 충돌하겠지, 멀지 않은 장래에 말이지, 내일 이곳 장수들이 출발한다고 하지 않는가? 뭔가 확신할만한 것을 알아냈다고 봐야 하겠지,”

“주군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삼한이라... 예상못한 상황이군요. 삼한으로 떠날 미령낭자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조속한 시일내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추자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모든 상황으로 보아 그들이 행할 다음 단계는 군대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마인극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으나 섣불리 입밖으로 내뱉기는 조심스러워 말을 아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의 결정대로 행동하겠다고 마음먹는 추자하였다.


“어차피 사례교위 놈들의 말을 밖에서 다 들으니 이 곳에서 계속 교위로 복무해본들 별로 유익할 건 없을 것 같더군. 마침 패도문주가 값비싼 선물도 주고 갔으니 앞으로 살아가는 건 문제가 없는 것이고... 패도문주가 삼한으로까지 간다면 그 세력들 또한 같이 갈 것이니 미령낭자의 안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군. 그렇지 않은가? 추부장!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마인극을 보며 이심전심을 느낀 추부장도 싱겁게 웃었다.

천천히 막사 안을 둘러보는 추부장의 뇌리에 허허로운 태풍이 불어왔다.

군인이 된 이후로 그의 인생은 무미건조했지만 매일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켜켜이 대기하고 있어 세월 보내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항상 긴장하고 살던 강호의 세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일상이었다. 뒤늦게 찾은 천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그런데 사례교위들이 다녀간 이후 상황은 급반전했다. 주군인 마인극 교위는 남들의 부당한 요구에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하수인의 역할을 할 성격이 결단코 아니었다. 그러할 진데 자신을 적들과 맞서는 최선봉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욱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반란으로 뺏은 왕위에 더해 하늘이 준 조상 대대로의 보물마져 약탈하러 간다는 소문도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옳지못한 일을 행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 소문이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그 소문이 사실로 다가왔기에 장래를 향한 운명의 선택은 필연이었다. 부녀자 연쇄납치사건에 우연히 연계된 후 패악질의 우두머리인 패도문주 독고파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얻게된 우연한 정보와 조선군 정예장수들의 비밀스런 출정이 사실은 공통된 하나의 책자를 손에 넣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큰 사건이었다. 그것을 아는 순간 그들도 부지불식간에 격동하는 시대의 한복판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쨌거나 현실은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마인극이 장수들에게 합류하면 모든 상황은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장 군대내에서 조직적인 박해의 가능성도 있는데다 자칫 인사이동에 의해 마인극과 추자하가 상호 먼 거리로 떨어져 근무할 수도 있었다. 결국은 제대를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이 태풍은 어디로 갈 것이며 과연 그 끝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주군이나 나나 뒤로 물러설 성격은 아니니 정면에서 마주쳐보고 싶다. 길지않은 인생, 결코 아쉬운 후회를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운명에 맞서 뚜렷이 맞서서 싸우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추부장이 한쪽 팔로 턱을 받친 채 생각에 골몰한 마인극을 보면서 웃음띤 목소리로 말했다.

“옳은 일을 하실 것이니... 모든게 뜻하신대로 잘 될 것입니다.”

추부장과 눈이 마주친 마인극은 추부장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인극은 빙긋이 웃으며 결기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옳은 일이라... 그래, 그 옳은 일을 위해 우리 한번 목숨을 걸어 볼까?

강호의 넓은 천지로 나가서 우리의 이름을 멋지게 한 번 걸어 보자구!“

좌탁에서 분연히 일어서는 마인극의 양 어깨가 무섭게 팽창하고 있었다.

막사를 나온 마인극은 망설임없는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추자하도 그의 곁에 재빨리 따라붙었는데 두 사람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진 건 금세였다.

잠시후, 평온하던 일상의 바람을 거칠게 가르며 달려온 그들의 발길이 멈춘 곳은 호성장군 편육이 근래 호화롭게 치장하여 거주하고 있는 관사의 문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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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교섭 20.09.23 74 0 12쪽
75 소문 20.09.16 90 0 13쪽
74 독대 20.09.14 73 1 11쪽
73 노추 20.09.10 72 1 11쪽
72 만찬 20.09.08 77 1 14쪽
71 그들의 첫 회동 20.09.02 78 1 25쪽
70 천취루 20.08.25 80 1 19쪽
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 갈림길 19.04.08 75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5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1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63 돌파 19.02.12 136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7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5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30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4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3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7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5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1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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