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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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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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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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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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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천거된 장수들

DUMMY

외랑대신과 무장대신을 보내고 돌아서는 구리달의 옷깃으로 온화하기 그지없는 따스한 훈풍이 지나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 밤의 하늘도 따스한 기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구리달에겐 만족스런 밤이었다.

며칠 뒤면 외랑대신 진황이 위만왕에게 천거할 장군들의 명단을 정리하여 보내어줄 것이다. 구리달의 역할은 왕을 알현한 후 자신이 계획하고 처리한 일인 양 떠벌리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특히, 연나라에서부터 위만왕이 신임하던 장군 몇 명을 고려해서 선발했다는 생색을 내는 것은 그가 보고할 내용의 핵심이 될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얽히고설킨 어려운 문제들의 실타래가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것 같아서 참으로 흐뭇했던 것이다.


며칠 뒤, 외랑대신으로부터 가벼운 비단꾸러미처럼 포장된 서찰이 비밀스레 전달되었다. 차출 대상 장수 열 명의 자료였다.

그렇다면 남는 건 장수들의 운용방법이었다. 군대라는 단체 생활에 익숙한 장수들이 집단으로 움직일 경우 노출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융통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수직적 계급사회에 익숙한 장수들 상호간의 위계질서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도 하나의 고민거리였다.

수시로 일의 추진 상황을 왕에게 직보해야 하는 구리달로서는 장수들이 노출되지 않고 상호 협력하에 <천경보전>을 무사히 탈환해오면 모든 문제는 끝이 나겠지만 그 과정은 무척이나 험난한 문제들을 차분히 풀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어서 사뭇 많은 걱정과 우려가 혼재되어 나타났다.


그럼에도 구리달은 잘 되리라고 믿었다. 그가 생각하는 어려운 문제들도 조만간 외랑대신과 무장대신이 적의 알아서 적절한 방안을 도출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적어도 그들과는 이제 공생관계에 접어들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천경보전>을 가져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구리달은 위만왕에게 받은 칭찬의 말들과 그에 따라 전해지는 왕의 하사품을 두 대신에게 조금씩만 나누어주면 될 일이었다. 또 가끔씩은 위만왕이 주재하는 자리에서 여러 대신들 앞에서 외랑대신과 무장대신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그들의 활동을 치하해주도록 위만왕에게 수시로 귀띔만 해주면 될 일이었다.


구리달이 의도했던 이상으로 위만왕은 차출 장군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구리달의 장황한 설명과 아첨도 그를 웃게 만드는데 한몫했다. <천경보전>을 향한 조선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구리달의 마음처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열 명의 장수는 조선군 내의 최상위 계급인 상장군과 대장군의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서열을 가진 표기장군 두 명을 필두로 하여 표기장군의 아래 계급인 거기장군 한 명, 방위장군 네 명, 사례교위 두 명, 성문교위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노회한 상장군이나 대장군들은 실력과 경험은 풍부할지 모르나 현장에 나서 활동하기에는 부적합했기에 누락한 것이었다.


<천경보전> 탈환 작전은 전쟁이 아니었다. 상장군이나 대장군의 탁월한 병법과 군세를 통한 공격이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번 싸움은 오로지 직접 몸으로 부딪쳐 승부를 내어야 하는 각개전투(各個戰鬪)의 사투장이 될 것이었다. 그들의 목숨은 그 대결에 참여하는 비용이었다. 노회한 상장군이나 대장군들이 선택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들에게는 조선의 변방을 지켜야한다는 보다 큰 명분과 역할이 강조되면서 마무리되었다.


표기장군과 거기장군은 원래 도읍인 평양성에 상주하는 군대를 통솔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대장군을 보좌하여 전쟁에서 전략전술을 관장하는 높은 벼슬이었다. 한 때는 공신이나 외척들에게 상징적으로 부여되던 자리였으나 대외적으로 급변하는 대륙의 혼란 속에서 전쟁의 우려가 한층 커지는 바람에 점차 병법에 능한 전문적인 무인 출신들로 그 자리가 채워지고 있었다. 그들이 차지하는 군대 내의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에 있었기에 그들의 심복을 심으려는 고위 관료들 간의 보이지 않는 암투로 인해 정쟁의 대상이 되는 보직이기도 했다. 그만큼 군대 내에서 실세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표기장군과 거기장군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다만 서열상의 상하 구분에 지나지 않았고 거기장군을 달고 삼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표기장군이 되는 구조였다.


전장군, 후장군, 좌장군, 우장군으로 구성된 방위장군들은 표기장군과 거기장군들을 보좌했다. 그들은 실제 전쟁터에 나가서 최일선의 선봉에 나서는 직책이었다. 많은 무용담이 회자될 정도로 용맹을 떨치는 장수들이 많은 자리였지만 역설적으로 실력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실세의 관료들에게 줄을 대지 않고는 더 이상의 고위직에 오르기가 힘든 자리였다.눈에 두드러지는 전공을 지속적으로 세우지 못하면 그대로 퇴역해야 했는데 그것은 사병으로 시작하여 자력으로 오를 수 있는 한계점에 있는 직위였기 때문이었다.


교위는 서열상으로는 장군계급의 아래 단계 직위였으나 고위 무관으로 인정받는 자리였다. 통상 장군의 반열에 들어가는 전(前)단계인 경우가 많았다. 관할하는 업무는 군대내에서 가장 광범위했으며 취급하는 업무에 따라 군대 내에서의 품계(品階)가 달랐다. 중앙 및 지방의 군대동향과 지방군대의 기강상태를 점검하는 것은 물론 각 관청의 관리들에 대한 감찰 업무도 처리하는 사례교위는 인원수가 다른 교위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는데 그 희소성으로 인하여 하위직에 있는 웬만한 장군에 버금가는 품계를 가졌다. 야망을 가진 명문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직위였다.


그에 반해 각지에 분포된 성문의 경비와 수비를 담당하는 성문교위는 한직이었고 다른 업무에 종사하는 교위들에 비해 인원수가 많았다. 그럼에도 지위에 비해 녹봉이 매우 높았는데 업무의 난이도 때문이었다. 성문교위는 그 수하의 병졸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했는데 계획된 도발 또는 예기치 못한 사고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 일상을 몸으로 견뎌야 하는 무서운 자리였다.

세상은 넓었고 악행을 저지르는 고수가 많은 탓이었다. 모종의 목표를 이루려는 극강의 고수들에 의해 그들은 단지 경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미없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깊은 밤에 일어나는 희생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지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로 한낱 가벼운 파리 목숨 정도로 인식하는 강호인들의 관행 때문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성문교위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는데 웬만큼의 무공을 익히지 않고서는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안정적인 수입을 원하는 고수들에게 선호되는 직책이었다. 지방의 성문 혹은 도읍인 왕검성의 으슥하고 차가운 담벼락 밑에서 몸으로 나라를 지탱하는 병졸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수장이었다. 필연적으로 목숨을 흥정하며 일을 해나가는 숙명 같은 자리였는데 나라를 지탱하는 표 나지 않는 주춧돌 같은 존재들이었다.


표기장군인 여도와 모용맹문,

두 사람은 대륙인 출신이라는 공통점 있었다. 여도는 위만왕과 같은 연나라출신의 정예군인 출신이었으며 긴 창의 옆면에 반달모양의 칼날을 매단 화극을 무기로 하고 있었다. 모용맹문은 조나라 출신으로 여러 가지 무기를 두루 사용할 만큼 무예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백발백중의 활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만, 무공이 뛰어난 만큼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 직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만큼 자기중심적이어서 가끔씩 돌발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외형적으로 드러난 그들의 성향 외에 구리달이나 외랑대신, 무장대신이 모르는 그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여도는 겉 다르고 속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었고, 모용맹문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너무 많이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여도는 속으로는 동료나 부하들의 공적에 대해 질투와 의심을 되풀이하는 음험한 성격이었으나 겉으로는 관대해 보이게끔 행동해서 위장했다. 그러한 점은 싸움터보다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왕실의 국정 운영과정에서 정치력으로 발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반해 모용맹문은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숨기지 않고 마무리해내는 욕망의 화신이었다. 더구나 이를 해내는 과정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달라고 적극적으로 표방하며 다녔기에 주변에서는 혹여 그와 함께 있다가 불똥이 튀는 화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여 꺼리는 상황이 연출 되곤 했다.


두 사람이 이번 임무에 참가한 목적도 서로 달랐는데 그건 모두 그들과 한 줄을 잡고서 밀어주고 당겨주며 권력을 행사하는 고위관료들의 목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군대내 계급서열상 이번 임무의 지휘권을 가질 것이 확실한 두 장수 간에 벌어질 암투의 개연성이 충분했음에도 탁상공론의 달변만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구리달은 이를 눈치 챌 수 없었다. 이는 영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외랑대신 진황조차 간과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구리달이나 진황이 현장에서의 경험이 전무하거나 일천한데서 오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거기장군인 맹음,

학문과 견문이 깊은데다 언변도 탁월한 학자풍의 장군이었기에 휘하의 군인들을 운용하는 솜씨가 탁월했다. 수하의 군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조선의 명장중 한명으로 병법운용에 있어서는 최고봉의 수준이나 무공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왕실에 변변하게 줄을 댈만한 후원자를 만들지 못해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군이나 충성심만큼은 누구 못지않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발탁되었다. 토착 조선인으로 말 타기의 명수이며 조선 검술의 고수이다.


방위장군중 한명인 전(前)장군 탁포자,

진나라가 중국대륙을 통일할 때 멸망한 제나라 출신의 유민을 부모로 둔 장군으로 일찍부터 무관으로 복무하며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운 경험 많은 장군으로 활과 말을 잘 다룬다. 한 방향으로만 화살 통을 차는 다른 궁사들과 달리 그는 양쪽에 화살 통을 찬 채로 말을 타고 달리며 양 방향으로 활을 쏠 정도였는데 백발백중의 실력을 발휘하는 고수였다. 그는 조선의 서쪽 변방에서 이민족과 치룬 몇 번의 전투에서 월등한 체력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공을 인정받아 평서장군에서 전장군으로 진급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서운 기세의 젊은 장수였다.


방위장군중 한명인 후(後)장군 위욱,

위욱은 칠 척이 넘는 키에 체격이 웅대했으며 용력이 당대 최고로 일컬어지는 장수였다. 젊은 시절 동네 건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서 그들과 함께 이권에 관여하는 상인들의 뒤를 봐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판단할 때 옳다고 생각한 일이였기에 행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나중에는 동네건달과 상인이 결탁하여 그를 이용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미련 없이 그들과 절연하고 강호인의 생활을 접는 결단을 보여준 사나이였다. 그 후 군대에 입대하여 비록 머리는 나빴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충직함으로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워 후장군의 지위에 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토착민 출신으로 강호의 경험도 제법 있는 권법의 달인으로 맨주먹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고수였다. 그러나 무기를 쓰는 싸움에서도 곤봉 모양의 철퇴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실전 전투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 하는 상남자로 알려져 있다.


방위장군중 한명인 좌(左)장군 장자숭,

장자숭은 소싯적에 연나라에서 의협심이 높은 협객으로 이름을 날린 강호인 출신이었다. 나름대로 학문에도 힘 쓴 그는 한 때 지방의 관리가 된 적도 있었으나 그 곳 관리들 간의 분쟁에 휘말려 고생한 전력이 있다. 그때이후 관료의 생활을 접고 다시 강호를 떠돌다가 조선에 정착한 후 군인이 된 경우였다. 강호에 있을 때 그는 강한 무용을 자랑했다. 원숭이만큼 긴 팔과 강한 어깨를 이용하여 쏘는 활은 무엇이든 맞힐 수 있었고 어디로든 날릴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교분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기에 자원하여 들어간 군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살리기 못했다. 그의 실력을 몰라 본 장군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일개 정찰병으로 시작한 군 생활에서 그는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을 몸으로 체득하였다. 장수의 용기와 기백만이 소속된 병사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기 진작 방법임을 느낀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통솔력을 발휘하여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했다. 정찰병 출신답게 경공술에 능하였으며 백발백중의 활쏘기 외에도 아무리 먼 곳이라도 긴 창을 던져 원하는 장소에 꽂을 수 있는 용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창은 장팔사모로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무기였다. 병사들에게는 최고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장군으로 알려져 널리 칭송받고 있었다.


방위장군중 한명인 우(右)장군 황보철영,

황보철영은 토착 지방 명문가 출신의 소년장군으로 대대로 장군을 지낸 집안의 분위기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무예와 병법의 이수에 힘썼다. 칠 척의 큰 키에 당당한 덩치와 단아한 얼굴을 한 상남자였다. 특히, 그는 혼란한 대륙의 정세로 인해 이민족들이 변경에서 조선백성들을 괴롭히는 광경을 본 후에 약관의 나이에 비슷한 또래들을 모아 그들을 물리치는데 주력하였다. 이후, 모두 함께 군대에 자원하여 독자적인 부대를 이룬 후 출전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늘 선봉에 서서 교전을 벌이며 수많은 적장들을 베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용맹과 무훈에서는 가히 으뜸가는 활약이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을 사용한 도법은 가히 잔인함의 극치라고 할 만큼 날카롭게 베는 특성으로 인해 적들을 공포에 빠지게 하는 일이 많았다. 토착 명문가 출신답게 충성심이 대단했으며 방위장군중 가장 어려 소년장군으로 불리고 있었다.


사례교위 관경과 위태갈,

두 사람은 제법 공통점이 많았다. 토착민 출신이라는 점, 강호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극강의 무술고수라는 점, 둘 다 강호에 있을 때 친한 친구에게 원한을 안긴 파락호 출신의 지방유지와 시정잡배들의 우두머리를 친구를 대신하여 살해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의협심과 대담무쌍한 담력을 보유한 점, 대도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점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차이점도 제법 있었다.

관경은 체격이 우람하지 않았으나 위태갈은 체격이 장대했다.

관경은 강호에서의 다양한 실패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며 실력을 키워온 능력자였지만 위태갈은 타고난 불세출의 용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강호에서건 군대에서건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천하장사였다. 어찌 보면 난세에 딱 어울리는 전형의 인물이었다. 무공 수준으로만 본다면 정탐이나 감찰의 업무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조선군을 통틀어 최강의 장수 반열에 들어갈 정도의 극강 고수들이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여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성문교위 마인극,

지나온 과거를 정확하게 반증할 자료가 없을 정도로 베일에 쌓인 인물로서 신장유구국 출신의 색목인이다. 혼란한 대륙의 전쟁 상황으로 피해를 입은 고향을 떠나온 후 조선에서 자리를 잡기위해 제법 많은 일을 겪었다. 당시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은 강호의 세계로 접어들어 청부 해결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면 받는 성과금을 모으는 것이었는데 솜씨가 좋아 오래지않아 제법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임무 수행중 뜻하지 않게 임무와 관련 없는 선의의 백성들이 자신으로 인해 희생되는 상황을 겪은 후 강호를 은퇴했다. 그러던 중 출중한 무예를 필요로 하는 성문교위의 직이 녹봉이 많다는 것을 알고 지원하여 군대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그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공사 간에 빈말이 없고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을 정도의 진중한 성향을 가졌으나, 그렇다고 모나지도 않아서 의외로 많은 신뢰를 얻는 사나이였다. 타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그 신뢰의 바탕에는 그의 강력한 무공실력이 뒤를 받치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의 무공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극도로 절제된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수련한 영향 덕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엄청난 내공이 바탕이 되어 전개되는 필살기들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다고 얘기되고 있으나 군대내에서 그와 무공을 겨룬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지거나 죽기를 각오하고 결투나 대련을 요청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강호에서 활약하는 그 어떤 고수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¹ 팔십 근이나 되는 무게의 쌍철극을 무기로 사용하였는데 칠 척 거구에 근육질의 사나이가 쌍철극을 휘두르는 모습만으로도 상대는 공포에 질렸다. 그와 함께 성문을 지킨 병사들이 아직까지 외부의 그 어떤 고수들의 침범을 받았어도 피해를 받은 일이 한번도 없는 것이 그 증거였다.


“<천경보전> 얘기를 정말 잘 꺼냈어, 암....흐~음...”

위만왕으로부터 장하다는 칭찬과 함께 한 짐 가득 임무수행을 위한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하사품들을 싣고 집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구리달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구리달은 위만왕에게 총애를 받고있는 과정을 떠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몇 해 전 패망한 진나라의 진시황이 불로장생초를 구하라고 보낸 방사(方士) 서불이 조선의 봉래산에 있는 큰 바위에 서불과차(徐巿過此)를 새긴 것이 고을의 관리에게 발견되어 보고된 바 있었지...’

그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신선의 존재가 확실히 있음을 사실로 받아 들였고 그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과대 포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녔다. 흥미로운 소문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떠돌아 다녔는데 마침내 위만왕의 귀에까지 전해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의심 많은 위만왕은 실재(實在)하는 증거 없이 떠도는 소문에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갈등을 하곤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신선을 믿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위만왕에게 구리달이 확답에 가까운 실물 증거를 보였는데 그것이 <천경보전> 이었다. 적시에 위만왕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충신의 손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빠른 눈치가 한몫을 한 것이었다.

‘지금 조선의 국정은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외세도 잠잠해졌고 백성들의삶도 여유롭다. 대내외적으로 중요한 국가적 대사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위만왕은 관심을 쏟을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는데 실로 적절한 기회에 왕의 환심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야...’

“이제, <천경보전>만 손에 넣으면 나에 대한 왕의 신임은 극에 달할 것이다. 이제 목표물을 확인해서 가져오기만 하면 나는 영원한 충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야,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말이야...흐흐 ~”


구리달의 머릿속으로 열 명의 정예장수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쳤다.

그들만 잘해 준다면 구리달의 앞날은 사방으로 꽃향기 가득한 꽃길을 걷는 영광의 세월을 맞을 것이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² 신장(神將)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미 삼한의 각 지역에는 사전에 나가서 정보를 수집하며 본진의 출격을 기다리고 있는 선발대가 포진하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서도 내노라하는 장수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이 여러 지역에 구축한 거점들과 현지인들을 포섭하여 얻은 정보는 대개가 가치가 있었기에 다시금 허리띠를 조이면 조만간 멋진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이번에 선발된 장수들과 그들이 완벽하게 협력을 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빠르게 임무를 완료하면 좋겠지만 조금 늦더라도 좋을 것이었다. 너희들이 똘똘 뭉쳐 잘 처리해주겠지... 암 그렇게 되어야지. 제발 마무리를 잘 해다오, 너희들이 성공해야 나의 남은 인생이 탄탄대로가 될테니 말이다...’

되뇌이듯 속으로 외치는 구리달의 염원은 무척이나 간절했다. 구리달의 눈가에 그들 한 명, 한 명이 뚜벅뚜벅 그의 앞길에 황금빛 주단을 깔기 위해 걸어 나오는 듯 선명했다. 그들 모두 충실한 조선의 장수들이자 구리달의 목적을 달성해 줄 그의 ³ 사자(使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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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약 50킬로그램, 1근 : 약 0.6킬로그램

² 무당과 장님[盲覡]이 모시는 신으로서 용맹스러운 장군의 신격

³ 윗사람의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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