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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105 회
조회수 :
29,498
추천수 :
273
글자수 :
706,311

작성
19.02.12 09:35
조회
134
추천
3
글자
11쪽

돌파

DUMMY

“우리를 원망하지 말아라. 네놈이 무엇 때문에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본 이상 여기서 결코 살아나갈 수는 없다. 각오해라!”

혈마쌍성은 동시에 운두도를 힘차게 휘둘렀다. 검에서 내뿜어진 기류가 앞으로 뻗어나가면서 일순간 단단하고 팽팽한 검기가 마인극을 향해 돌진해왔다. 마인극은 철극을 들어 올리며 기를 불어 넣었다. 양손에 들린 철극들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세차게 뻗어나가며 검기를 파쇄해 버렸다.


“추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나서지 말라.”

싸움이 시작된 후 마인극이 추부장을 보며 조용히 지시했다. 추부장은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극은 추부장의 옆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상황을 주시하는 궉세사에게도 강렬한 눈길을 주었다. 그리곤 곧바로 혈마쌍성을 향했는데 궉세사는 마인극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를 느끼고 흠칫 뒤로 물러선 상태였다. 마치 싸움에 개입하면 먼저 죽이겠다는 신호 같았다. 궉세사의 등줄기로 한웅큼 서늘한 긴장이 스쳤다.


그러나 실상 궉세사도 내심 심하게 갈등하는 중이었다. 당초 독고파의 침실까지 억지로 끌려올 때는 독고파 문주와 마주하면 즉시 문주 곁에 가서 문주의 뜻을 따를 예정이었다. 그가 싸울 경우 죽기를 각오하고 후회 없는 일전을 벌일 예정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혈마쌍성이 등장했다. 그들은 궉세사와는 아무런 인연도, 이해관계도 없었다. 수제자인 자신이 철저하게 경호를 다짐하였음에도 별도의 비밀 위사를 둔 것은 문주가 자신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러웠다.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조그마한 귀뜸이라도 해주었다면 이렇게나 서운하지 않을 것이었다.


혈마쌍성 또한 궉세사의 존재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궉세사를 바라보는 그들의 입모양이 비아냥 섞인 실룩거림으로 보였던 것도 무척이나 하대되는 낯선 느낌이었기에 문득 자신이 비루해지는 느낌을 받은 궉세사였다. 문주를 위해 싸울 수는 있어도 혈마쌍성과는 함께하기 싫은 이유였다.

궉세사는 마인극과 혈마쌍성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중립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 밤, 궉세사에게는 매 순간 선택을 강요하는 장면들이 연속하여 생기고 있었다. 그 결정들은 수시로 즉시 목숨과 교환해야 하는 절박한 강요 같은 것이었다.


“협공일격(挾攻一擊)!”

돌연, 혈마차성(血魔次星)의 입에서 적막을 깨뜨리는 일갈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혈마일성(血魔一星)의 운두도에서도 검기가 쏟아져 내렸다. 마인극의 쌍 철극은 두 군데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그대로 받으며 부딪혔다. 몇 번의 큰 마찰음 속에서 두 개의 운두도는 지속적으로 마인극의 심장을 향해 날카롭게 조여들었고 이를 막는 마인극의 철극들도 불꽃을 일으키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런 양상으로 순식간에 수십 합의 경합이 지나갔다. 절정 고수들의 사활을 건 싸움은 연속하여 일어났고 그 순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오로지 상대에게만 집중한 그들의 모습은 가끔씩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다만 몰아치는 공기의 흐름과 검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들만 그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피비린내가 허공을 나르며 묻어났다. 공격하던 혈마일성의 어깨 쪽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었다. 마인극의 철극이 어느 틈엔가 그를 벤 것이었다. 혈마쌍성은 악연실색(愕然失色)했다. 천하에 그들의 협공을 제대로 받아낼 고수도 몇 안 되지만 공격하는 그들이 상처를 입은 것 또한 참으로 오랜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혈마쌍성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들과 맞서고 있는 마인극은 여전히 빈틈없는 자세로 맞은편에 서있었다.


맞은편 쪽에서 싸움을 구경하는 두 놈은 잔뜩 긴장한 채 싸움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혈마쌍성은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는지 급격히 화를 내며 이를 갈았다.

“이 애송이 놈! 요절을 내주마!”

혈마쌍성은 각자의 운두도를 비스듬히 치켜 세워 올렸다. 그들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식을 펼칠 심산이었다.

마인극의 마음도 급했다. 빨리 이들을 처리하고 미령낭자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짙어져갔다. 맞은편 저들의 자세에서 풍겨오는 기류로 보아 이번 초식에 사생결단을 낼 심산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어차피 바라던 바였다. 시간만 질질 끄는 것은 마인극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마인극은 양손에 쥐고 있던 철극을 합체하여 하나의 긴 철극을 만들었다. 그리곤 중간에 있는 손잡이 부분을 양손으로 잡더니 철극을 자신의 눈까지 들어 올렸다. 철극에서 예광(銳光)들이 켜켜이 쌓이며 달무리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새하얀 서리가 뭉실뭉실 맺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마인극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철극만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되었다.


혈마쌍성은 순간 당황했다. 지금껏 살수로 살아오면서 어떤 고수라도 그 빈틈을 노려 그곳에 집중하였기에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당대의 어떤 기라성 같은 고수라도 미세하게나마 단점은 있었다. 이제껏 어떤 도검류를 다루는 고수라도 틈이 있었기에 그 틈새는 온전히 그들의 먹잇감이 되어 유린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늘 승리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젊은 고수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낭패였다. 그래도 계속 공격하다보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혈마쌍성도 기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마기(魔氣)가 발출되었다. 잠시 후 혈마쌍성의 신형도 흐릿하게 흩어지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뒤쪽에서 싸움을 바라보던 추부장과 궉세사는 철극과 운두도만이 허공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삼갑자(三甲子)이상의 무공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마인극으로서도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님을 증명하는 혈마쌍성의 절식이었다.

혈마쌍성은 여전히 자신이 있었다. 처음에는 방심하여 베기는 고사하고 철극에 베여 상처까지 입었지만 사력을 다해 공격하는 지금부터는 양상이 바뀔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힘든 상대를 만나면 공격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고, 그 결과는 항상 좋았다.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없었다. 그들의 오랜 경험과 성과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쐐애액!”

불식간(不識間)에 혈마쌍성의 두 자루 검이 허공에서 날아들어와 철극을 격렬하게 찔러왔다. 긴 철극 한 자루와 운두도 두 자루는 독고파의 침실 앞에서 광포한 소음과 함께 불꽃을 일으키며 격렬하게 부딪쳤다. 허공에서 일어난 불꽃은 백색이었다가 적색이었다가 때론 청색으로 변하며 도깨비불처럼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침실 앞에서 벽장 속의 비밀공간으로 들어가 나무계단으로까지 단숨에 흐르더니 종국에는 천정을 부수고 솟아올라 허공에서 장마철의 빗줄기처럼 무시무시한 살기들을 내뿜으며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했다.


‘엄청난 고수들이다. 주군의 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만 혈마쌍성의 실력 또한 저리도 고강할 줄이야... 소문이 틀렸군. 틀렸어... 괜히 소문만 믿고 내가 나섰다면 나는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겠군... 흠, 세상 소문을 믿기도 그렇고 안믿기도 그렇군... 세상 참 무섭군.’

추부장은 혈마쌍성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을 새삼 깨우쳤다. 보지도 않고 하는 말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을,


“차-앗!”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마인극의 격렬한 기합소리가 허공에서 퍼졌다. 연속하여 운두도를 때리는 긴 철극에서는 기괴한 소리가 터져 나오며 허공을 가로 질렀다. 당대 대륙 최고의 명장(明匠)이 모든 정성을 쏟아 삼 년간을 담금질한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든 명기인 마인극의 철극이 비조(飛鳥)처럼 날아 운두도를 향한 후 마지막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채챙! 창!...”

그것은 종결을 알리는 신호였다. 혈마쌍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딪혀오는 철극의 무거운 압력에 큰 충격을 받고 운두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들이 운두도를 다시 잡기 위해 잠시 주춤하며 허점을 노출하는 순간 마인극의 긴 철극이 그 바늘 끝보다 더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고 벼락처럼 수차례 허공을 가르다가 멈추었다.

“으~윽!”

“으아악!”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은 혈마쌍성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운두도를 겨우 집은 채 나란히 서있었다. 피범벅이 되어 허리를 구부린 장승마냥 고정된 자세로 경악하며 힘없는 앞을 바라보는 눈자위에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는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이미 굳어가는 얼굴 표정은 귀신을 만난 듯 놀라고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들의 목덜미와 가슴 부근 여러 곳에서 순식간에 예리하게 베여 급격히 터지는 검붉은 피가 쏟아져 맺히고 있었다.

“네놈은 도대체 누구길래... 하~아... 우리가 이리도 허망한 죽음을 맞을 줄이야.”

혈마일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음에 가까운 말을 뱉어내더니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내며 고개를 꺾었다.

“우리를 이긴 네놈의 이력도, 이름조차도 모른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이... 허허~ 인생 참, 허망하구나. 으-윽”

혈마차성은 허연 눈자위를 보이며 부르르 떨더니 그의 검과 함께 쓰러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대들이 위명에 걸맞은 실력을 가진 것은 내 인정하리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악연으로 만난 것도 운명이라면 순순히 받아들이시오. 나를 원망하지 말고, 이런 인연을 만든 세월도 한탄하지 말고... 그저 편히 잘 쉬시오.”

마인극이 실로 오랜만에 만난 강한 상대에 대해 예의를 표하며 포권했다. 그로서도 힘든 싸움이었다. 그들의 검세(劍勢)는 예리했고 빈틈을 찾기 위해 살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빈틈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들은 마인극이 피하려는 곳을 미리 차단하려 노력했었고 일부러 허공을 가로질러 시선을 분산시킨 뒤 느닷없이 아래로, 위로 섬광처럼 빠르게 공격을 했었다. 때론 두사람이 한꺼번에 혹은 시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공격하기도 했었다.


마인극의 이마에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아직도 송글송글 맺힌 것만으로도 그들의 실력은 자칫 마인극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인극이 그토록 고전한 것은 독고파의 침소에 있는 미령낭자를 빨리 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마인극의 발을 옭아매던 것들은 이제 모두 사라진 듯했다.

눈앞의 장애물이 사라진 이상 마인극이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어느새 추부장이 달려와 독고파가 있는 방문 앞에 서서 냉혹한 표정으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길게 칼로 베어 나갔다. 혹시 모를 또 다른 장애물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일도양단된 침실문은 순식간에 반분되어 떨어져 나갔다. 다행히 추부장이 우려했던 더 이상의 장애물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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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4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4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1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 돌파 19.02.12 135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6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4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29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3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2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7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4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0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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