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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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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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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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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행의 징조

DUMMY

그렇게 시작된 패도문주 독고파의 <천경보전>을 찾기 위한 강호 재출현은 그러나 그의 호기로운 생각만큼 만만하지는 않았다. 독고파의 여유로운 강호 유랑을 선도하는 궉세사의 업무 추진이 더뎠기 때문이었다. 조선반도 각지에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패도문도들로부터 받는 정보들은 대개 검증이 가능한 가치 있는 정보와는 동떨어진 것 투성이었다.


<천경보전>의 행방은 마한의 왕실에서 극비로 다루는 사안인데다 보관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탁왕자의 행방도 좀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리무중이었다. 그런 탓에 궉세사가 보고받는 대부분의 정보들은 삼한 지역이 아닌 조선이나 대륙에서 역으로 되돌아온 소문들을 다시금 짜 맞추어 얘기를 만드는 과정을 거듭하는 답보(踏步)상황이 계속된 탓이었다.


그나마, 독고파가 오랜만에 나온 강호의 변화된 여러 모습을 감상하며 시선을 다른 곳에 있는터라 궉세사의 부진 상황을 감내해주는 형국이어서 호되게 질타를 당하는 위기를 피할 수 있음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평소의 비정한 독고파였다면 궉세사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의 강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독고파는 오랜 권태 끝에 강호로 다시 나온 터라 새롭게 흥미를 주는 여러 요소들에 관심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직접 움직일 상황이 되면 그때 움직이면 되는 것이었고 당장은 흥미가 생기는 것에 관심이 갔다.

“궉부장의 노고를 내 인정하니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 말라. 나는 지금 전혀 급하지 않으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이 패도문주의 참된 모습일테니 나는 지금 강호를 더 느끼고 싶다. 흠~”


일의 진척이 없자 난감해 하는 궉세사를 보면서 독고파가 말했는데 그 여유로운 말투는 평소와 달리 부드러워서 궉세사는 얼핏 놀랐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당금(當今) 조선의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 제왕의 모습이 패도문주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세상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로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어찌 보면 신선으로 가는 전단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며 느긋해지기로 했으니 편히 일을 추진하라.”

평소의 문주답지 않은 배려가 섞인 지시는 궉세사로 하여금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 같았다.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듣는 궉세사를 보며 독고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천경보전>을 찾는 업무가 진척이 느린 면은 있지만 궉부장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양새라든지, 조그만 것이라도 세세히 보고하는 모양새라든지, 하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지... 그런 상황에서 궉부장을 더욱 옥죈다는 것도 사실은 우스운 일이야. 흠, 나는 일부러 다른 곳에 시선을 두는 척 할 테니 궉부장의 수하들을 잘 지휘하여 확실한 정보를 만들어 보고하라.”


오랫동안 패도문을 관리해온 독고파는 수하들을 냉혹하게 몰아칠 때도 있고 넌지시 풀어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여유가 있기에 모르는 척하며 풀어줘야 하는 때였다.

‘지금 이후로 보다 정제된 정보들이 가끔씩 보고될 것이다. 그때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이기만 하면 될 것이고... 궉세사는 더욱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할 것이다. 그의 성향으로 보아... 모든 건 시간의 문제일뿐 현재로서는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듯 하군. 흠~’

독고파는 더욱 여유를 가지기로 마음 먹었다. 여전히 마음 가는 대로 앞장서기만 하면 모든 게 준비되는 편안한 강호의 유랑행으로 즐거운 일들이 기다릴 것이기에 편안한 세월이었다.


궉세사는 <천경보전>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표나지 않게 문주인 독고파가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도록 미리 동선을 짜놓고 안내하고 있었다. 먼저 조선에서 풍광이 화려하기로 소문난 지역을 돌아다니며 문주인 독고파가 관심을 보일만한 것들을 접하게 했다. 독고파가 관심을 보이는 대상이 생기면 다음의 여정은 그것을 위주로 짤 예정이었다. 그런 후 <천경보전>에 대한 결정적인 진전이 있을 때 삼한으로 가는 경로였다.

삼한으로 가기 전 조선에서 패도문의 문주를 위협할 대항마는 없다는 전제하에 최대한 많은 지역을 경유할 것이었다. 지역별 특산물이나 새로 생긴 시설물, 풍광이 좋은 명소 등은 빠지지 않는 품목이었다.


독고파가 관심을 보인 대상은 수시로 변했는데 지금은 여염(閭閻)집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여인들이었다.

젊은 시절 대륙에서 활동한 기간 동안 거의 야밤에만 활동한데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살아왔기에 여자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이방인의 신분인 자신이 언제 어디서 먼 이역만리에서 최후를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지극히 폭이 좁은 인간관계만을 형성토록 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와 패도문을 창업한 후 조직이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에는 호화로운 대저택인 패도궁에 기거하면서 온갖 호사를 누리기 시작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조선 왕실의 견제를 우려하여 왕검성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아순달 지역의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송화강 유역에 지어진 패도궁은 규모는 왕궁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화려함으로 따지자면 왕궁에 못지않았다. 주변으로 풍광이 화려한 연풍 호수가 있어 계절마다 정원의 풍경이 호수의 물빛을 반영하여 자연스레 변하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에는 형형색색의 진귀한 물고기들이 유영하며 눈을 즐겁게 했다. 매 끼니마다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진수성찬이 대령되었으며, 시간을 맞추어 심신의 피로를 해소해주는 여인들이 공급되었다.


그 여인들은 하나같이 미인들인데다가 요염하기로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모두들 이런저런 사연들을 안고서 패도궁에 왔을 테지만 패도궁은 그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상쇄시킬 정도로 많은 것을 보장해주었다. 패도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깥에서 누릴 수 없는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았다. 특히, 문주인 독고파의 총애를 받으면 일정 신분 이상으로 봉해졌는데 많은 재물을 축적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바깥세상에 갑작스런 기근이 오거나 외적의 침략이 있어 혼란스러워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곳이었다. 안정된 생활을 원하는 여인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다만 패도궁을 나가고 싶은 경우에는 문주가 허락하는 경우에만 이를 허용해주었는데 반드시 자신이 살던 곳에는 가지 말아야 했다. 친인척이 없는 지역을 선택하여 그중 가장 멀리 떨어진 고장에서 살아야 했는데 패도문과 패도궁에 대한 어떠한 것이라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조를 해야 했다. 만약 발설한 경우에는 조선 전역에 분포된 패도문 조직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주기적으로 살고 있는 지역의 정황을 알리는 간자의 역할도 해야 했는데 떠나올 때 상호 연결된 파견 문도의 주기적인 방문시 반드시 전달해야 했다. 패도궁을 떠난 대부분의 여인들은 스스로 노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패도궁에서 축적한 재산으로 과거를 묻은 채 잘 살고 있었기에 패도문이 각지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훌륭한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비밀스런 소문은 더욱 공개적으로 떠돌아 다녔는데 패도궁에 대한 소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그곳을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여인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빚에 팔려 자포자기한 상태로 들어오거나 납치되다시피 하여 들어온 곳이지만 대우가 좋아지면서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방문하여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인기가 높아져서 패도궁의 시녀로 선발되기 위한 자발적인 지원자들에 대하여 암암리에 경쟁을 거쳐 선발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먼저 외모와 몸매를 보고 뽑힌 여인들은 한때 조선 왕실에서 예절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늙은 관리 출신의 사내와 저잣거리에서 큰 기방을 관리한 경험이 풍부한 중년 여인으로 부터 일정 기간 동안 패도궁의 예절과 남자를 다루는 방법 등을 교육받고 숙련이 되었다고 판단되어야 비로소 패도궁에 입궁하여 독고파를 시중드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패도궁은 오로지 독고파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었는데 시중을 드는 여인들은 늘상 모시와 명주로 짠 고운 옷을 입은 위로 세세히 엮인 망사치마를 아련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녀들은 독고파와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노력을 무척이나 많이 했는데 그만큼 독고파와 면전에서 마주칠 기회가 없다는 반증이었다.

가끔 운 좋게 독고파와 마주할 기회를 얻은 시녀들은 그 잠깐의 순간이라도 사르르 떨리는 추파와 관능의 그림자를 실은 그윽한 눈동자를 독고파에게 끈끈하게 실어 날려 보냈다.

어떤 몸짓을 보내어야 남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아는 여자들의 적극적인 신호는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재수가 좋아 독고파가 욕망을 느껴 욕정이 발동하여 손을 들어 지목을 하면 최선을 다해서 ¹ 운우지정(雲雨之情)의 격정을 나누곤 했다.

한정된 범위의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그녀들의 사이에서 신분을 상승시키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기회를 얻기 위해 그녀들은 자신의 감각은 한없이 숨기면서도 열기에 찬 입술을 감미롭게 벌려가며 독고파의 욕망이 바닥을 모르는 갈증을 느끼도록 그의 눈과 가슴으로 절박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독고파는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취했으며, 하고픈 것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즉시적으로 하면서 살았다. 습관이 될 정도로 반복되는 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패도궁의 시녀들이 보이는 습관적이고 익숙한 몸짓에 이골이 날대로 나서 무료해진 독고파였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서 ² 유리(遊離)된 채 홀로 열사의 사막을 건너다 갈증으로 가라앉아 쓰러진 자신의 그림자를 처량하게 바라보는 섬뜻한 꿈을 꾸다 깜짝 놀라 일어나는 경우가 가끔씩 발생하기 시작했다.


심신을 끊임없이 수양해왔던 강호인이 무공 연습을 게을리한 결과인 듯하여 고민하던 그즈음에 마침 수제자 중 한명인 궉세사가 <천경보전> 얘기를 보고한 것이었는데 현재의 한없이 나태해진 자신을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동안 쌓여온 권태의 극복을 위해 다시 세상 밖의 강호로 나온 것이다.

산천의 풍광은 젊은 시절에 비해 크게 변한 것은 없었으나 제법 눈요기는 될 정도였으나 관심을 오래 지속시키지는 못했다.

다만, 오랜만에 나온 세상에서 그의 눈길을 가장 오래토록 붙잡은 것은 촌락이나 저잣거리를 유쾌하게 오가며 건강하게 이목을 끄는 여염집의 젊은 여인들이었다. 패도궁에 있는 시녀들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기교를 부리거나 색욕을 일으키는 복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들은 가식적이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은 상태의 자연스런 미모로 독고파의 관심을 오래토록 붙잡았다.

독고파는 여염집 여인들에게 격한 흥미를 느꼈는데 색다른 세상에서의 여인들에게 서서히 편집증적인 집착을 나타내었는데 눈치 빠른 궉세사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궉세사의 눈길도 급속하게 여염집의 젊은 여인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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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남녀 사이에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랑

² 따로 떨어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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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천취루 20.08.25 80 1 19쪽
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5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5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2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63 돌파 19.02.12 136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7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5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30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4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3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 기행의 징조 19.01.24 138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5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1 4 21쪽
50 무장의 선발을 논하다. 19.01.18 15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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