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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18.11.28 15:30
최근연재일 :
2023.05.10 22: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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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6,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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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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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노추

DUMMY

“중대신 구리달이 아뢰옵니다.”

위만왕에게 약조한 세 달의 기한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진 구리달이 그동안의 성과를 보고했다. 군부내 최고 무공의 장수들로 구성된 결사대를 파견했고 천취루를 거점으로 본격적인 탐문조사와 무사들의 양성을 통한 무력 대결까지 망라된 것이었다.

“중대신은 들으라, 짐이 위기에 빠져있던 이 나라 조선의 왕이 된 이후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만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이 조선이 안정기에 접어 들었으니 나라 안팎으로 걱정할 것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듯 짐의 천하가 계속 태평성대를 누리려면 짐이 속히 불사 불로초를 구해 먹어 영생을 누리고, <천경보전>을 확보해 익힌 다음 신선의 경지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짐은 오늘 중대신이 들려준 그 방안에 대해 매우 흡족하게 생각한다.”

뜬금없이 구리달에게 들려주는 위만왕의 호언장담은 현실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씨를 말려 버린데다 안정기에 접어 든 통일제국 한나라와 이역(異域)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교역을 중개하면서 얻은 일시적이고 간접적인 혜택을 보고 있었다. 상당한 변수를 가진 그 상태를 위만왕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 경이 그토록 노력하니 조만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사 불로초도 아직 까지는 얻지 못했으니 더욱 여유를 가지고 그 일을 확실히 진행하라.”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 위만왕을 보며 구리달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재량을 준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편,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울 것이다. 일말의 압박이 내려앉았다.

“ 돌다리도 두드리고, 얕은 물도 깊은 듯이 건너는 여유를 가지고 최선의 노력으로 임무를 완수하겠 사옵니다.”

지금처럼 위만왕의 기분이 좋음이 확실할 때, 생각보다 많은 기간이 소요될 것임을 사전에 넌지시 암시해 놓는 것이 혹시 지연될지도 모를 장래를 위한 대비책이 될수 있었다. 역시 구리달은 노련한 신하였다.


왕궁에서의 일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마차 안에서 문득 하늘을 쳐다보던 구리달이 황급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한참 하늘을 올려다 본 그가 이내 머리를 좌우로 내저으며 텁썩 좌석에 주저 앉았다. 하늘빛이 무척이나 험상궂었다. 노을이 물러 간 하늘에 붉은 별 하나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고, 시뻘건 안개가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다. 좌석에 머리를 뒤로하여 숙인 구리달의 눈썹이 경련을 일으키며 고약하게 떨렸다.

“아, 어이해야 좋단 말인가...”

천기를 제대로 짚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천신제 업무를 관장하면서 천문관측과 점성을 담당하는 일관(日官)들과 교류를 가지며 배운 적도 있는 그였다. 천문을 읽는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고 무의식 중에 한숨도 새어 나왔던 것이었다.

“ 아, 세자마마...”

구리달의 뇌리에 병약한 왕세자 위도(衛悼)의 축 처진 모습이 떠올랐다.

“어쨌든 그 일은 일관들이 해야 할 일이니 상관말자... 그들이 사실대로 보고할지 아니면 거짓말을 할지, 아니면 아예 모른 체 할지, 그건 그들의 문제이니,”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밤 풍경들이 혼잣말을 하며 침울한 구리달의 옆을 무심히 지나갔다.


조선은 아직까지는 살기가 좋았다. 근래 계속된 풍년으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고 외부 국가들간의 교역로도 여전히 활발하게 기능하여 왕실의 재정도 탄탄했다. 그러나 세월은 녹록지 않은 도전들에 노출되고 있었다. 갈수록 가뭄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더니 한나라 주변의 이민족들이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키며 조선을 자극했다. 그러나 아직도 과거에 젖어 있던 위만왕은 노골적으로 정사를 등한시했다. 재위 십오 년간 현명한 재상과 용맹한 장수들이 넘치나는 강대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또한 스스로를 도통하여 세상이치를 꿰뚫어 보는 도사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신선의 중간단계라고 믿은 것이다. 오랫동안 불사불로초에 가깝다는 온갖 약초들과 신선들이 먹는다는 음식들을 장복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주변 정세를 간과하다보니 혼암했고 그에 따라 많은 정책들이 실패했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위만왕에게 보고되지 않고 묻히기 일쑤였다. 마음에 차지 않는 말을 하거나 논쟁을 자초하는 대소신료들을 마른 풀 베듯 무참하게 처형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솔하게 다가가는 신하가 적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 계속되었다. 그 상황에서 간언(諫言)할 자 또한 있을 리 만무했다.


“살다보니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람이 오래 살수록 그 살아 온 세월의 아집에 쌓여 모든 상황을 처리하는 경향이 뚜렷하군요. 어떤 경우는 나이에 비례하여 탐욕을 키우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더군요, 자칫 추한 모습으로 남을 텐데도 말입니다.”

중대신 구리달이 외랑대신 진황과 무장대신 을차린을 그의 집으로 불러 저녁을 대접하며 말했다.

“으레 그렇듯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는 경우는 그것을 포장하기 위해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지요. 허허,”

진황이 그의 말을 받아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을차린은 그들의 말에 끼지 못했다. 암호처럼 주고받는 대화에 끼기엔 정치적인 면이 부족한 그였다.

“진제국 시황의 생애가 전형적이었던 같소이다. 갖가지 소문으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퀴퀴하고 음험했던 출생의 비밀이 내뿜었던 부패한 냄새가 그의 생애 전반을 지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오.”

구리달과 진황, 그들은 위만왕을 얘기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찬역(簒逆)하여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이방인이라는 한계로 인해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함을 내심으로 늘 고민하던 위만의 내심을 눈치 빠른 그들이 놓칠리 없었다.

“정권을 잡은 후 내치에 집중하고, 외부를 다스리느라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겠지만 태평세월이 되면서 조그만 허언에도 혜안이 흐려질 정도로 감정적으로 변했음은 부인하지 못할 역사라고 봐야 할 것이오.”

구리달이 신중한 낯빛으로 진황을 바라보았다. 진황의 심중을 알고 싶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어정쩡하게 듣고만 있던 을차린도 그제서야 얘기의 흐름이 현재의 왕실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걸 느꼈는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진시황이 어떤 사람입니까? 중국대륙을 통일하기 전에는 휘하 신하들과 장군들을 존중해주며 힘을 빌렸으나 천하를 손에 넣은 다음에는 인간으로선 천하에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선 ... 신하들이건 누구든 주변사람들을 그 전처럼 중히 여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지요.”

“흠, 그렇긴 했지요.”

진황의 말에 구리달이 대답하며 득의의 웃음을 교환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왕실 또한 진시황이 보여준 행태를 되풀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충심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사람부터 의심하는,”

진황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왕실얘기가 나오자 을차린도 식사를 하다가 흠칫 놀라며 멍한 눈으로 진황을 바라보았다.

“맞는 말씀이오, 그러나 지금의 왕실은 불로장생과 신선술에 골몰하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물론 우리가 <천경보전>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그 눈길과 신경들을 잡아두고 있지만요, 우리가 없다면 왕실의 그 시의심(猜疑心)이 어디로 가겠소이까? 모든 신하들이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허허”

구리달이 태연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적기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을 보여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정사에 골몰하다 일상이 괴롭거나 혹 몸이 편하지 않으면 필연코 <천경보전> 얘기를 꺼낼 것입니다. 중대신께 부담이 많이 갈 것입니다.”

진황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구리달을 걱정하듯 말했다.

“혹 왕실에서 부르면 두 대신과 함께 예정된 일정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고 할 것이오. 당장 보관 장소도 알수 없을뿐더러 마한 왕실에서도 그것을 지켜내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보고하겠소이다. 아무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것이외다.”

“기간을 길게 잡도록 하자는 말씀이시지요?”

쭉 듣고있던 을차린이 한마디 거들며 되물었다.

“이건 전쟁에 준하는 막중한 임무입니다. 나라를 뺏긴 준왕이 얼마나 깊은 한을 품고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내린 보물인 <천경보전>을 쉽게 내줄리 만무하지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방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우리로선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왕실에도 그 점은 꼭 이해를 시켜야 할 것입니다.”

진황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리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치켜들었다. 앞에 앉은 두 사람도 함께 동참하며 득의의 웃음을 교환했다.


밤이 이슥할 즈음에야 구리달의 집에서 나온 진황의 눈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묻어났다. 늙은 관료인 구리달은 업무능력은 없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빨랐고 눈치도 빨라 처세에 능했다. 그런 그가 왕실을 매우 냉혹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의외였다.

“문제는 마한으로 내려간 결사대가 아니고 우리들인 것 같군요.”

“어차피 <천경보전>문제는 오래 못 갈게요. 아무리 길어도 한두 해 안에는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 되겠지요. 그러나 조선의 왕실은 계속 될 터이니 우리는 앞날에 대한 걱정거리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게요.”

진황의 함축적인 물음에 구리달이 현실적인 답을 던졌다.

구리달의 집 담벽은 제법 길고 높았다.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우뚝 서 있었다. 마당 주변은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어두웠다. 결사대를 출발시킨 후 큰 짐 하나를 벗은 진황은 후련한 마음으로 구리달의 집에 초대되어 왔다가 졸지에 큰 바위를 만난 듯 했다.

“허허 ... 그것 참,”

차가운 밤하늘을 올려보며 허파에 바람 빠진 웃음을 짓는 진황의 얼굴이 한없이 어둡고 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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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천취루 20.08.25 80 1 19쪽
69 침투 19.08.27 76 1 10쪽
68 마리촌 19.08.08 68 1 14쪽
67 갈림길 19.04.08 75 1 23쪽
66 뜻밖의 수확 19.03.09 155 1 16쪽
65 월하의 정사 19.02.15 312 3 17쪽
64 필연적인 조우 19.02.12 208 3 14쪽
63 돌파 19.02.12 136 3 11쪽
62 혈마쌍성 19.02.11 157 3 14쪽
61 피비린내 19.02.11 150 3 13쪽
60 환락경에 빠지다. 19.02.08 275 3 11쪽
59 환약과 호골주, 신선을 느끼는 길 19.02.08 172 3 14쪽
58 남매의 분노 19.02.07 130 3 17쪽
57 납치범들의 최후 19.01.30 164 3 14쪽
56 절세의 곤륜인 미녀 소미령 19.01.29 203 3 14쪽
55 엽기적 사건들의 발생 19.01.28 164 4 16쪽
54 기행의 징조 19.01.24 138 4 12쪽
53 패도문주 독고 파 19.01.23 165 4 16쪽
52 소문을 쫓는 검객들 19.01.22 142 4 6쪽
51 천거된 장수들 19.01.21 161 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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