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하이웨이 11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트럭에서 내렸다.
‘아니 이럴 수가!’
후드에 달려 있던 거울의 쇠로 된 프레임이 심하게 구부러졌고 거울은 반쪽이 깨졌다.
왼쪽 범퍼를 보고는 아연실색을 하였다. 범퍼가 심하게 안쪽으로 구부러져 앞 타이어에 닿아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보는 순간 대경실색을 하였다.
조수석 탱크에 장착된 계단 두 개가 파손되었다. 아래쪽은 반쯤 떨어져 덜렁거렸다.
솟구치는 분노가 속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이놈, 반드시 복수하고야 말겠다!'
범퍼를 발로 차고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신경질적인 쌍욕뿐이다.
그놈이 사라진 쪽을 향하여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도 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미친놈처럼 발광하였다.
시커먼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트럭운전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어떤 때도 오늘 밤보다 더 재수 없고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덜렁거리는 계단은 아예 떼어 내버리고 망치와 쇠 지렛대를 꺼내 앞에 굽어져 들어간 범퍼를 폈다.
범퍼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나는 연장 상자에서 가죽끈을 꺼내 범퍼를 묶어 나무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트럭을 조금씩 후진하여 겨우겨우 타이어에 닿지 않을 정도만 벌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온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안경 사이로 빗물이 흘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약 오르고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싸움에서 진 패배자는 할 말이 없다 처량할 뿐이다.
그래도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주유소나 휴게소를 찾아가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충 마무리하고 트럭을 출발 했다. 비에 젖고, 지치고, 의기소침해진 나는 운전하는 것도 귀찮아서 아주 느리게 달렸다.
다행히 얼마 안 가서 길가의 좁고 기다란 간이 주차장을 발견하고 트럭을 세웠다.
휴게소가 아니라서 화장실도 없고 겨우 주차할 만한 공간만 있는 곳이다.
역시 다른 차량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다. 이 밤중에 한적한 숲속 길가에 차를 세워 둘 사람은 당연히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로등이 있어서 트럭을 살펴볼 수 있었다.
깨진 미러,
부서진 계단,
안쪽으로 꺾이어져 들어간 범퍼는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힐 뿐이다.
그때 가로등 아래 기둥에 설치된 전화박스가 눈에 들어 왔다.
공중전화가 아니고 사고 났을 때나 견인이 필요한 비상시에 사용하도록 설치해 놓은 비상전화다.
뚜껑을 열어 보았다. 전화 수화기만 달랑 있고 다이얼판도 없다.
아마도 수화기를 들면 자동으로 누군가가 응답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911이든지 아니면 경찰 또는 하이웨이 패트롤에게 연결되어 있겠지.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트럭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트럭을 치고 도망갔다?'
어떤 트럭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번호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고 증거라고는 부서진 미러와 범퍼 떨어진 계단뿐이라 그냥 지나가는 트럭이 그랬다고 하면 믿어 줄까?
이때 하이웨이 앞쪽에 불빛이 비쳐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승용차겠지 생각했는데 불빛이 가까워질 무렵 엔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났다.
승용차가 아니고 트럭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지나면서 속력을 낮추어 아주 천천히 서행하였다.
'오 마이 갓!'
맞은편에서 오는 차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나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비록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이지만 그 트럭에 불빛은 내 기억에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틀림없다.
바로 그놈이다.
그놈이 돌아왔다.
그놈은 아주 천천히 서행하며 지나갔다.
아마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같았다.
천천히 지나가더니 다시 속력을 내서 길 반대쪽으로 가버렸다.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멀어져가는 트럭의 빨간 불빛을 계속 지켜보았다.
한참을 달려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던 트레일러의 제동 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트럭이 멈추어 섰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나는 길 한가운데로 나가 트럭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았다.
다시 불빛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 가는 것이 아니고 회전을 하고 있다.
‘아니 저놈이 도대체 뭐하려고?’
그냥 가버릴 줄 알았던 트럭이 회전을 했다.
좁은 하이웨인데다 트럭은 길고 커서 한 번에 돌지 못하고 여러 번 꺾어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되돌아 오는 회전을 하는 것이다.
방향을 바꿀때마다 그 요란한 굉음의 엔진소리가 숲속에 울리고 고막을 사정없이 후벼파고 들어왔다.
‘아! 저놈, 정말 끈질기고 지독한 놈이!’
나는 다시 비상전화 박스로 달려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경찰이든 누구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한참 만에 발신음이 가는 신호 소리가 났다.
여러 번 발신음이 울리는데도 응답은 없었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트럭이 돌리는 쪽을 살펴보았다.
헤드라이트가 비쳐 오는 것으로 보아 u턴을 마치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 같았다.
두 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 트럭은 다가오고 있고 수화기에는 아직 대답이 없고 점점 초조해졌다.
그냥 수화기를 내동댕이치고 트럭으로 올라와 시동을 걸었다.
즉시 출발하여 이번에는 놈이 오기전에 내가 먼저 하이웨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놈은 내 뒤로 추격하여 바짝 따라 왔다.
내 트럭을 추월하기 위하여 이쪽저쪽으로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나도 놈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며 추월하지 못하게 막았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좁고 커브가 많은 숲 속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앞만 보기도 바쁜데 뒤에까지 신경 써서 봐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구나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밤이라 시야도 밝지 못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와이퍼를 최대속도로 작동시키며 온몸에 신경을 바짝 조이고 이를 악물었다.
빗길이라 하이드롤릭 현상에 의해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일단 내가 앞에 있으니까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두 번이나 당한 수모를 복수하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이때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나고 트레일러가 중심을 잃고 왼쪽 차선으로 크게 밀려 나갔다.
놈이 내 트레일러의 뒤를 들이받은 것이다.
크게 왼쪽으로 밀려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오고 다시 왼쪽으로 크게 S자를 그리며 두 번을 왕복한 후 가까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나의 트럭은 속력이 뚝 떨어졌고 이 틈을 타 그놈은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와 옆에 바짝 추격해 왔다.
나의 트럭은 그놈의 트럭과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바야흐로 분노의 하이웨이 위에서 죽음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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