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 19. 놈 아닌 놈 5
다가오고 있는 그 사나이의 뒤에서 손이 하나 뻗어져 나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지하게 큰 손이었다.
"어떤 놈이, 뭐야?”
앞으로 다가오던 사내는 그 큰손에 이끌려 돌아섰다.
아주 굵직한 사나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험악하게 굴던 그놈의 어깨를 꽉 움켜쥐고 서 있다. 그 옆에는 몸집이 비대한 사나이가 팔짱을 낀 채 내려 보며 서 있었다.
어깨를 붙잡힌 그놈이 어깨를 흔들며 반항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손이 그의 팔을 붙잡아 세게 비틀었다.
“아앜”
그놈은 졸지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봐, 숙녀가 앞에 계시니 얌전하게 구는 것이 당신 팔을 온전하게 간직하는 길이다!”
울프는 그놈의 팔을 비틀고 있는 굵직한 사나이와 눈이 마주쳤다.
“허버트?”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굵직한 사나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허버트? 정말 너구나!”
“하하하, 울프, 잘 있었냐?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 바보 같은 놈, 아니 냄새나는 놈, 아니 굵직한 놈 허버트가 나를 보고 그 시커먼 눈썹을 움직이며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CB라디오로 들을 때만 해도 넌 줄 몰랐지, 그런데 트럭을 본 거야. 바로 울프 내 트럭이더라고! 그래서 달려왔지."
오래전에 트레이닝 시켜 주다 포기한 그 바보 같은 놈, 냄새 지독한 놈, 허버트였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은 바보가 아니다 이 울프와 티나를 구하러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 영웅 허버트이다.
“헤이 맨, 뭐가 됐던 당장 울프와 숙녀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자네 똥구멍에서 불이 나오게 해 줄 거야.”
허버트와 그 몸집이 비대한 사나이의 기세에 풀이 꺾여버린 그놈은 나와 티나에게 중얼거리듯 사과하고 슬그머니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일이 싱겁게 끝나버리자 주위에 몰렸던 구경꾼들도 각자 자기 트럭으로 흩어졌다.
트럭스탑 휴게소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트럭들도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 4명은 트럭 레스토랑에 함께 자리했다.
허버트와 그의 비대한 친구 그리고 티나와 나 이렇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허버트, 트럭운전 그만둔 줄 알았는데?”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헤헤헤, 그만두었었지!”
그의 얼굴은 아주 밝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전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의 이야기인즉, 우리 회사에서 일주일 만에 해고되고 다른 회사를 찾아갔으나 경력이 없다고 받아 주지 않아 트럭운전을 포기하고 몇 달을 그냥 직업 없이 놀다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내말이 생각나 다시 트럭회사를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는 것이다. 주로 농산물을 운반하는 벌크(bulk)트럭회사로 고정된 곳만 다니고 일도 쉽고 간단해서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지금은 옆에 있는 뚱뚱한 친구와 함께 팀으로 운전하는 중이라고 했다.
마침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내일처럼 기뻤다.
“잘했다. 정말로 잘 됐다. 드디어 네가 해냈구나! 자랑스럽다!”
우리 네 명은 함께 식사하고 아주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허버트는 역시 스테이크를 시키고 튀나도 함께 스테이크를 시켰다.
티나는 연신 허버트에게 고맙다고 했고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은 내가 그동안 트럭운전 하던 날 중에서 최고로 기분 좋은 날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자 트레이니 티나와 함께 다니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티나는 분명히 훌륭하고 터프한 북미의 여자 트럭커가 될 것이다. 티나는 마지막 날 내게 책 한 권을 선물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고 하며 첫 장에 사인 해 주었다.
Dear Wolf! Thanks a lot!
Mother Trucker Christina
울프 고맙다
마더 트럭커 티나
북미에는 20만 명의 여자 트럭운전사들이 일하고 있다. 전체 트럭운전사들의 5%가 여자이다.
남자들만이 일하는 거친 세계에서도 우먼파워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녀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성적희롱, 그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여자들도 북미를 횡단하는 트럭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운전하는 트럭커들도 많다.
그들도 당연히 여자이기 때문에 치마도 입고 싶어 하고 하이힐을 신고 싶어 한다. 하지만 뭇 남자들의 야유와 희롱 때문에 터프하게 입는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트럭커들은 자주 만난다고 한다. 그녀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모두 한결같이 외롭고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북미에서의 트럭운전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 힘들고 고독한 직업임은 확실하다.
티나는 내가 감탄할 만한 대단한 여자였다. 용기 있고 대담하며 열심히 일하면서 틈틈이 딸에게 전화하는 자상한 엄마이다.
티나는 언젠가는 다시 트럭이 아닌 모터사이클을 타고 북미 대륙을 훨훨 날아다닐 것이다.
워낙 터프하게 행동하므로 티나가 여자라는 것을 잊을 뻔했는데, 딱 한 번 여자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누구든지 처음으로 트럭운전을 시작하면 먹을 것에 대한 준비가 없어서 제때 먹지 못한다.
티나 역시 2주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통통하던 살이 많이 빠졌다. 살 빠졌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뿐, 청바지가 자꾸 흘러 내려서 수시로 바지를 끌어 올려야 했다.
불편해했다.
가끔 트럭을 검사할 때 허리를 숙이면 그녀의 하얀 엉덩이의 골까지 슬쩍 내비치곤 했다.
은근한 그 즐거움도 잠시뿐, 자꾸 바지를 추켜올리던 그녀는 송곳과 망치를 빌려 달라고 하더니 벨트를 풀어 간단하게 구멍을 하나 더 뚫고 다시 걸쳐 입었다.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렇게 해서 북미에는 터프한 여자 트럭커가 한 명 더 늘었다.
Mother Trucker! 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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