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 10. 지저분한 놈 3
귀하신 놈.
생각해 봅니다.
‘이놈은 돈이 아주 많은 집의 5대 독자로 태어났다.
부모가 끔찍하게 애지중지하게 키워서 일 할 필요도 없고
남을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저놈 손을 보세요.
하얗고 통통하게 살이 찐 부드러워 보이는 손,
평생 청소 한번 안 하고 쓰레기통은커녕 휴지 한 장 만지지 않고 고급스럽게 자랐다.
유모와 가정부가 있어서 먹여 주고 재워주고 빨래해주고 청소해주고 정리 정돈해주고 이놈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살았다.
그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자기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남들이 다 해주는데 뭐 할 일이 있겠는가?
아주 귀한 자식이다.
대충 뭐 이렇게 되는 이야기이면 나도 이놈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요.
아닙니다. 집이 부자도 아니고, 독자도 아니고, 하녀도 없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트럭 운전하러 온 별 볼 일 없는 녀석입니다.
보기만 멀쑥하게 생긴 것일 뿐이지 뇌의 일부분이 살짝 맛이 갔습니다.
생각할 줄 모르는 놈입니다.
이 녀석에게 맞는 말 있는 대로 다 하고 싶은데 아는 단어가 별로 없네요.
오늘은 또 무슨 기가 막힐 일을 할지 기대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기대됩니다.
하는 짓은 내가 답답해도 어떤 때는 지켜보는 게 재미있네요.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아 참! 오늘 아침 또 그놈 컵이 내 자리에 와 있네요.
또 내가 버렸습니다.
냄새나는 놈
어이쿠!
숨이 콱 막히네요.
서류 정리하고 컴퓨터도 보다가 자려고 커튼을 여는 순간 지독한 냄새가 나요
이 냄새, 나도 잘 알아요.
무슨 냄새냐 하면 바로 발 냄새, 발 고린내예요.
나도 한때 무좀 때문에 발 냄새가 심한 편이었거든요.
지금 제 옷 가방에는 양말이 30켤레 정도 있어요. 모두 하얀색 면양말입니다.
30켤레라면 믿기 어렵죠?
사실입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양말도 대여섯 개 남아 있습니다.
발 관리 잘못해서 한번 냄새 나기 시작하면 이 좁은 트럭 안에서 아주 죽여줍니다.
나는 벗어 놓은 양말에서도 냄새가 날까 봐 비닐로 꽁꽁 잘 묶어두지요.
가끔은 샤워하다가 몇 켤레씩 손빨래도 합니다.
그리고 트럭 안에 빨랫줄 걸고 널어놓습니다.
북미대륙에서 장거리 트럭 운전하는 사람들, 참 눈물 나게 신세 처량합니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 쪼금 해 본 게 많이 도움됩니다.
아휴! 이 냄새 저놈 발에서 나는 게 분명 합니다.
이층침대 위에서 잘도 자고 있네요.
얼른 바닥을 살펴봤습니다.
양말 벗어서 바닥에 던져 놓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행입니다. 바닥에는 양말이 안 보이네요.
아니 그게 더 걱정되네요. 양말 한 개로 한 달 버티는 거 아닌가 싶어서······.
오늘 아침에 샤워티켓을 끊어다 바쳤는데 샤워를 안 한 거야?
내일 아침 물어봐야겠네요.
그냥 숨 안 쉬고 코 막고 잡을 청합니다.
이제는 그놈이 이상한 짓을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네요.
사고치는 놈
하이웨이를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라 차선 세 개가 바쁩니다.
앞뒤에 차들이 꽉 차서 줄지어 달리고 있었지요.
모두 120kmh로 쉴 새 없이 달립니다.
저 앞에 부서진 배기통이 하나 왼쪽 차선 가까이에 떨어져 있습니다.
앞에 가는 차들이 모두 그냥 그 옆으로 지나갑니다. 트럭도 충분히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도 안심하고 그냥 앉아 있었지요.
그냥 중앙 한가운데로 가면 부서진 배기통을 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럽쇼? 트럭이 점점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립니다.
어어! 내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놈 그대로 그 방향으로 꺾어서 그 부서진 배기통을 향해
질주하는 겁니다.
내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우당탕! 탕탕!
왼쪽 앞바퀴로 정확히 치고 나가 트럭 밑에서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What the hell!!!” “도대체 뭐하는 거야?”
앞에 가는 다른 차들은 그냥 다 지나가는데 왜 이놈만 하필 그리 가서 치고 지나갑니까?
꼭 일부러 그런 거 같아요.
정말로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기가 막힐 뿐입니다.
“가다가 트럭 세우고 타이어 체크 해야겠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브레이크에서 치~ 에어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때야 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하긴 뭘 어떡해! 인마 트럭 세워”
다른 건 몰라도 에어 새는 것은 무조건 세워야 합니다.
그대로 달리다가는 더 큰 일 납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납니다.
내려서 보니 배기통 조각이 튀어 올라 트레일러 중간 옆에
라이트를 깨 먹고, 다시 뒤에 트레일러 에어호스를 쳐서 호스 두 개가 와자작 끊어 졌습니다.
이거 또 길바닥에서 시간 잡아먹게 생겼습니다.
회사에 메시지 보내고 서비스트럭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자식 두세 시간 걸릴 거라고 했더니만 침대로 올라가 뒤비져 잡니다.
참 한심하더군요.
그래도 참 재수는 억세게 좋은 놈입니다.
그 쇳조각이 트럭 밑으로 튀어서 다행이지 바깥쪽으로 튀어 올랐으면 옆에 차나 따라오던 차들에 위험한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타이어 조각이 튀어 올라 픽업트럭의 정면에 부딪혀서 유리창이 완전히 하얗게 부서지는 장면을 목격했거든요.
저는 절대 넘어가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최소한 속도라도 줄이지요.
타이어 체크 할 때마다 홈에 끼인 조그만 돌들도 일일이 드라이버로 빼냅니다.
달리는 중에 빠져서 튀면 뒤따라오는 차들에 위험하니까요.
아, 그리고 오늘 드디어 다섯 번째입니다.
트레일러 문도 안 열고 또 닥에 댔습니다.
그냥 운전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습디다.
아마 세계 신기록을 작성 중이나 봅니다. 혹시 기네스북에 연락하는 방법 아시는 분 좀 알려 주세요.
"문 열어야지 이 새끼야 뭐하고 앉아 있어?"
그때야 뒤로 갑니다. 문도 안 열고 털레털레 돌아옵니다.
난 이미 알고 있었지요. 돌아올 것을···.
볼트 열쇠가 채워져 있으니 당근 열 수가 없지요. 볼트 커터 가지러 오는 것입니다.
단 한 번도 미리 챙겨 간 적이 없어요.
어이쿠, 이건 또 뭐냐?.
이 자식 정말 미치겠네.
또 팬티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요. 두 번째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발로 밟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이놈이 이층침대에 있으니까 내일은 사진을 찍어 두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이놈이 화장실 간 사이에 팬티를 찾으니까 안보여요.
이상하다 분명히 바닥에 있었는데···
이놈이 벌써 치웠나?
이놈이 정말 치웠을 거로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이 자식 절대 치울 놈이 아닙니다.
그러면 고놈의 거무튀튀한 팬티가 어디로 갔을까?
으읔 이놈이 다시 주워 입었나 봅니다. 바닥에 있는 거 필요할 때만 집는 놈이니까요.
‘바지 벗어 봐’ 하고 확인할 수도 없고 궁금해 죽겠네!
어쩌지요?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할까요?
오늘 또 물어보네요.
자기 선글라스 못 봤냐고.
이 자식은 ‘삼보 이상 선글라스!’ 하는 놈입니다.
세 발짝만 가도 꼭 선글라스를 착용해요. 박쥐족입니다,
이번엔 진짜 진짜로 밟아버리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바닥에 안보이네요.
이놈 지금 선글라스 없이 운전하고 있습니다.
울프, 평소 잘 안 쓰는 선글라스 꺼내서 기분 좋게 쓰고 있습니다.
이 기분 아주 최고입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요?
이거 뭐 연속극 코미디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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