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하이웨이 1
트럭 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
침대에서 일어나 주전자에 커피 물부터 올려놓고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내렸다.
나란히 주차하고 있는 트럭들의 우람한 엔진소리가 새벽공기를 파열시키고 있다.
트럭 휴게소의 찌든 냄새와 매케한 배기가스가 속을 메스껍게 하였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3주째,
그동안 토론토에서 출발하여 인디애나주, 일리노이 주, 퀘벡 주, 펜실베이니아주, 뉴저지 주, 버몬트 주, 버지니아 주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이렇게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무려 10여 개 주를 돌아다녔다.
총 주행거리만 해도 장장 만육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둔 비닐봉지가 생각났다.
여러 켤레의 양말들을 빨래하기 귀찮아서 대충 비닐봉지에 넣어 침대 구석에 던져 놓은 것에서 나는 냄새다.
빈속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빈 뱃속에 온기를 짜르르 전해 온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새벽 5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 별들이 가물거리는 어두운 밤이다.
지금 출발해야 약속 시각 8시까지 브루클린에 도착할 수 있다.
뉴욕 시내로 가는 화물은 언제나 잔뜩 긴장된다.
복잡하고 길이 좁고 20여 미터나 되는 대형 트럭이 갈 수 없는 길이 많기 때문이다.
트럭의 시동을 걸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 사이로 어둠을 헤치며 하이웨이에 올랐다.
태판지 다리를 건널 때쯤 동녘 하늘이 푸른빛을 띠며 밝아 오고 허드슨 강에는 아스라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침 출근 차량들로 차선 4개가 점점 밀리기 시작하자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게 된다. 한 시간 정도 여유 있게 출발하였는데 차들은 자꾸만 늘어 날뿐 속력을 내지 못하고 정체된다.
결국, 뉴욕시의 브루클린에는 약속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였다.
나는 안절부절 초조하게 운전해서 달려갔는데 정작 화물을 받는 회사는 왜 늦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내에 자리 잡은 상업지역이라 대부분의 건물이 대형 화물을 받는 도크시설이 없어서 크고 작은 트럭들이 길에 세워 두고 물건을 싣고 내리고 있다. 이중으로 주차하기도 하고 어떤 트럭은 반대방향으로 주차해 있다. 지게차들도 길거리를 이쪽저쪽으로 분주하게 물건을 실어 나른다.
지나가는 승용차들이 요리조리 곡예 운전으로 지나간다.
무질서하고 혼잡한 상황이지만 그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거나 불평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내가 배달해야 하는 회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길이가 20여 미터나 되는 대형 트럭을 도로 차선의 한가운데 세워 두고 하역작업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을 내리는 작업은 세 시간이 넘게 걸려 끝났다.
이렇게 간신히 배달을 마치고 나니 뉴저지 픽업 시간이 또 촉박하다.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 뉴저지 패터슨까지 가는 길은 짜증의 연속이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화물을 픽업하고, 이제 캐나다 몬트리올로 간다.
배가 고프다.
오늘 뭘 먹었는지 생각해보니 기억나지 않는다. 연거푸 타 마신 두 잔의 커피외에 아무것도 안 먹었다.
뉴욕 시내 브루클린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가까스로 배달을 마쳤기에 뉴저지 픽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과 점심을 거른 채 부랴부랴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다.
북미에서의 장거리 트럭운전사들의 생활은 이렇게 힘들고 더럽고 지저분한 직업이다. 장거리 트럭운전을 시작한 지 벌써 9년째, 경력이 쌓이는 만큼 점점 몸도 마음도 무거워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지겨운 노숙자 같은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몸과 마음이 지쳤다.
오늘 밤에는 캐나다 국경을 넘어야 내일 몬트리올에 배달하고 몬트리올에서 토론토로 가는 화물을 받으면 이번 주말에 집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시간이 모자란다.
벌써 오후 4시, 앞으로도 3시간은 더 운전해야 겨우 캐나다 국경에 도착할 수 있다.
혼잡한 뉴저지를 벗어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87번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바로 첫 번째 휴게소에 트럭을 세웠다.
전자레인지에 라면을 끓일 물부터 올려놓고 급히 화장실로 갔다.
9년 전,
처음 트럭운전을 시작하였을 때는 공중화장실에서 이 닦고 세수하는 것이 창피했다. 그래서 밤늦게 아니면 아침 일찍 사람이 없는 때를 이용해서 휴게소 공중화장실에 가서 볼일도 보고 세수했다.
지금은 누가 보건 말건 아무렇지 않다. 이제는 공중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거나 발을 올려놓고 씻을 정도로 용감하고 무식해졌다.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실크 와이셔츠에 실크 넥타이만 매고 출근하였다. 지금은 하얀 와이셔츠를 마지막으로 입어 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캐나다에 와서 자유분방하고 편한 옷차림이 좋더니만 이건 점점 정도가 지나친다.
트럭운전사에게는 체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트럭운전 몇 년 사이에 더러워지고 뻔뻔해지고 거칠어진 자신을 보면 분명히 사람은 변한다는 말이 맞다. 그렇다.
전자레인지에서 라면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운다. 김치 병을 꺼내보니 바닥에 몇 조각의 김치와 국물만 조금 남아 있다. 라면에 쏟아 부어 넣고 허겁지겁 후루룩후루룩 먹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변해도 라면 맛은 변하지 않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질리지 않고 그 맛 그대로다.
휴게소를 나와 하이웨이 87번에 올랐다. 캐나다를 향해 출발하였다.
적재최대중량에 가까운 20,000kg의 화물을 실은 트럭은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하였다. 여러번 기어 변속을 한 후에 겨우 탄력을 받아 100km/h의 속력에 이르렀다. 승용차들이 줄줄이 앞지르기를 하며 추월해 앞서 갔다.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고 느긋하게 뒤로 기대앉았다.
이제 쉬지 않고 3시간, 이대로 운전해서 달려가면 국경에 도착할 것이다.
라면 국물 맛이 아직도 입안에 칼칼하게 남아 있다.
담배 한 대 꺼내 물고 라이터를 집는 순간, 갑자기 승용차가 바로 트럭 앞으로 끼어들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가 승용차의 빨간 제동 등을 보는 순간 손에 집었던 라이터를 팽개치고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트럭 타이어에서 끼익 소리가 나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거운 중량의 관성이 그대로 앞으로 밀렸다. 승용차와 추돌하기 일보 직전, 승용차는 다시 속력을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저놈이 미쳤나?’
승용차는 요란한 배기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모골이 송연하고 등줄기에 싸늘한 전류가 흘렀다.
‘저 x놈의 자식!’
입에서 쌍스런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즉시 악셀레이터를 바닥까지 쎄려 밟으며 놈을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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