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하이웨이 6
트럭은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곧게 뻗은 하이웨이를 시원스럽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지만 에어컨은 시원한 바람은 서늘하게 해 준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갈 길이 멀다.
먼저 트럭 휴게소에 들려 기름부터 채워야 한다.
정오를 막 지난 시간이라 트럭 주유소는 한가했다.
일단 트럭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유리창까지 깨끗하게 닦은 후 텅 빈 주차장 한가운데 주차 하였다.
아내가 싸준 점심도시락을 열었다.
언제 만들었는지 김밥이 나란히 차곡차곡 담겨져 있다. 괜스레 울컥 해진다.
어젯밤 그렇게 바가지를 퍼 부었는데 언제 일어나 김밥을 만들었을까?
두 개째 집어 먹는데 갑자기 "과르르릉~" 요란한 엔진 소리가 바로 옆에서 울리더니 "치이익" 파킹브레이크를 하는 소리가 났다.
어느 놈인지 그 넓은 주차장 놔두고 하필 내 옆에다 주차하는 심보는 또 뭐란 말인가?
밖을 내다보니 롱노우스 스타일(long nose)의 KW트럭이 조수석 쪽에 바짝 붙여 세웠다.
롱노우스트럭은 트럭의 앞 엔진 후드가 높고 길게 앞으로 튀어 나온 올드 모델로 그 위용이 대단한 진짜 아메리칸 스타일의 트럭으로 한때 트럭커들의 꿈의 트럭이요 선망의 트럭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거칠고 무식하게 보이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후드가 높고 길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 바람의 저항도 많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높아서 경제적이지 못하다. 요즈음 새로 나오는 트럭들은 디자인이 에어로 다이내믹하고 짧은 후드로 바뀌었다.
지금도 나이가 많은 아메리카 트럭 드라이버에게 할리 데이비슨 모터 사이클 만큼이나 자존심과 긍지를 세워주는 트럭으로 손꼽힌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롱노우스 트럭이다. 그들은 갖가지 장식을 많이 하는데 바로 옆에 주차한 이 트럭 역시 장식이 휘황찬란하다.
앞에 크롬 범퍼가 넓이가 1피트나 되게 장착 되어 있고 정면 유리창 위에 크롬으로 된 차양이 비스듬히 길게 내려와 앞 유리 창을 3분의1정도 가리고 있으며 또 빼놓을 수 없는 쌍 배기통이 양쪽으로 우람하게 솟아올라 있다.
역시 크롬색이다.
지붕에는 에어혼이 쌍나팔처럼 길게 앞으로 튀어 나와 있으며 문 옆에는 라이트로 장식된 커다란 통이 달려 있다.
빨간색의 스몰라이트가 양 옆으로 10개 세로로 5개씩 화려하게 달려 있다. 지붕에는 두개의 창문이 비행기 조종석 창문처럼 돼 있고 그 아래로 라이트가 여덟 개나 나란히 달려 있다. 아마 밤에 보았다면 화려한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바로 옆에 주차해 있는 이 트럭이 터프한 아메리카 트럭커들의 대표적인 롱노우스 트럭이다. 이 트럭은 무지막지하게 큰 엔진소음 외에 괴상한 장식을 달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기어가 운전사의 키보다도 높게 올라와 있고 손잡이 헤드가 해골모양의 크롬에다 눈은 빨간 돌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해골은 기어헤드뿐 아니라 롱노우스 후드에도 장식 되어있다 그리고 엔진 라디에터 앞에는 스켈레톤이 마치 교수형에 처한 후 뼈만 남은 듯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대쉬보드 위에는 종이 커피 컵, 플라스틱 음료수병 등 온갖 잡동사니가 지저분하게 쌓여 있다. 운전사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대단히 게으르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엔진 소음은 옆에 주차해 있는 내 트럭에까지 그 진동으로 전해 올 정도로 땅을 울린다.
이런 트럭이야 북미대륙을 다니다보면 자주 보니까 별것 아니다. 문제는 텅 빈 주차장을 놔두고 하필 내 옆에 바짝 주차해서 조용히 점심을 즐기려고 하는 분위기를 깨냐 하는 것이다.
조수석 창으로 그 트럭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그 운전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말했다.
"왜 넓은데 놔두고 내 옆에다 주차 하냐?"
그가 대답한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데? 지금 시비거는 거야?"
듣기 좋은 대답을 기대 한 것은 아니지만 신경질적인 그의 태도가 몹시 눈에 거슬렸다. 나도 트럭운전을 하지만 이럴 때는 정말로 트럭운전사가 싫다.
그 녀석은 귀찮다는 듯 커튼을 치고 안으로 사라졌다.
빨리 먹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번뜩 머리에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그의 트럭이 이상할 정도로 바짝 붙여 주차한 것이 수상하다.
‘혹시 연료도둑?’
디젤 연료 절도는 최근 유류가격이 폭등하고 나서부터 부쩍 늘었다.
트랙터 연료통은 대용량으로 800리터가 들어간다. 무려 천 달러나 된다. 대부분 잠금장치도 없는데다 매일 밤마다 트럭 휴게소에 나란히 주차하게 된다. 간단한 호스 하나로 쉽게 빼 갈 수 있다. 최근에는 전문 도둑들은 조그만 소형 모터가 달린 호스를 사용하여 순식간에 탱크를 비워버리고 사라진다.
지금까지 두 번의 연료 도둑을 경험하였다.
첫 번째는 전혀 눈치도 못 챘고 연료가 반이 없어졌다.
두 번째는 트럭스탑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연료통이 완전히 비었다.
생각해보니 전날 밤에 바로 옆에 주차한 트럭이 조수석 문을 열기 힘들 정도로 바짝 붙여 주차 했었다. 내가 잠자는 사이에 사이펀으로 연료를 몽땅 뽑아간 것이다.
연료를 가득 채우면 천불어치나 되니 일주일 수입이 고스란히 날아가고 훔친 녀석은 며칠 동안은 일 안 해도 배부를 것이다.
첫 번째는 이것도 경험이라고 하고, 두 번째는 훔친 놈보고 나쁜 놈이라고 말하지만 세 번째로 당한다면 내가 바보이고 병신이다.
세 번째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트럭과 내 트럭을 함께 사진 찍었다 물론 그 트럭의 번호판이 잘 보이도록 찍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트럭의 창문을 내리고 그놈이 고개를 내밀며 신경질적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사진 찍는 중이다."
"왜 내 허락 없이 트럭 사진을 찍느냐? 찍지 말라! 씨발."
갑자기 그놈이 쌍욕을 하였다.
나쁜 새끼! 욕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도 화가 났다.
대부분의 트럭운전사들은 사진을 찍으면 좋아 하는데 이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과잉반응을 보인다.
그 놈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트럭을 움직여 옮겨 갔다.
내가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내 옆에 바짝 주차 한 후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고 의심이 들었다.
틀림없이 연료를 훔쳐 가려고 했다가 내가 사진을 찍어 두니까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가는 걸 거야. 다른 대상을 찾겠지.
'지저분한 새끼,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감히 이 울프를 노리다니.'
놈이 떠나 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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