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 윌슨 3. 예기치 않은 히치하이커
3. 예기치 않은 히치하이커
잡아서 끌어내자니 더러워서 만지기 싫고, 혹시 물까 봐 겁나기도 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쫓아내자니 인도적인 면에서 너무 잔인한 일 같기도 하고, 재수 없이 동물 학대 죄로 신고 당할지도 모르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수석 문을 열어 둔 채, 운전석에 앉았다.
개는 구석에서 배를 바닥에 깔고 가만히 엎드려 있다. 내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 직감적으로 내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개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트럭 안에 버티고 앉아 있는 저 뻔뻔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나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썹을 이리저리 씰룩거리다 가증스런 혀를 내밀어 발을 핥고 쓰다듬는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위에 턱을 포개고 눈을 감았다. 이제는 아예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뻔뻔스럽고 괘씸한 녀석.
나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즉시 출발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선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을 정리해 판단 해보기로 했다.
일단, 개 주인은 여기 트럭 휴게소에 없다. 직원에 의하면 며칠째 혼자 돌아 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그럼 떠돌이 개일 수도 있다. 집에서 도망 나온 게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버려진 개인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을 볼 때 내가 데리고 가도 뭐라 할 사람은 일단 없는 셈이다.
‘그래, 일단은 가자. 가다 보면 무슨 수가 나겠지.’
나는 다시 시동을 걸고 서서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트럭 휴게소를 빠져나가면서도 계속 옆 거울로 뒤를 봤다.
금방이라도 누가 쫒아오면서 ‘개도둑이야!’ 소리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터스테이트 35번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도 따라 오지 않았다.
이때 뒤에 있던 개가 슬그머니 앞으로 나와 조수석으로 올라 와 앉았다.
“좋아, 내가 당분간 너를 태워주마, 하지만 다음 정차 할 때까지 만이다.
다음에서 너는 내리는 거다. 알았지?”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트럭 운전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어도 오늘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처음이다. 내가 히치하이커를 태우다니···. 그것도 주인 없는 개를···.
누런색 바탕에 검은 털이 나 있고 하얀 털이 약간 섞인 잡종견인데다 꼬리를 내리고 귀를 뒤로 눕히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드는 모습은 가히 가관이다.
아마 이개를 데리고 길가에 서 있으면 많은 사람이 동전을 던져 줄 것이 분명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규정상 배우자 외에는 동승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래전 조카를 태우고 나간 운전사가 교통사고를 당해 함께 사망하자 보험문제로 복잡하게 일이 꼬인 후 회사가 허락하지 않은 동승은 규정위반이며
해고당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개도 허락하지 않은 동승자로 취급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운전하면서도 자꾸만 개를 바라보곤 했다. 볼수록 궁금증은 커졌다.
'도대체, 어떤 개일까? 주인은 있는 걸까···? 목에 맨 파란색 스카프를 보면 반드시 누군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홀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을까? 하필이면 왜 내 트럭에 올라타고 나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거지?'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개 같으면 왔다 갔다 하거나 최소한 움직이기라도 할 텐데, 이 놈은 마치 굳어버린 석고상 같이 앉은 자세로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제법 귀도 쫑긋하게 세우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이고 앞발은 쭉 뻗어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있다.
어떻게 보면 진지하게 보이고, 또 어찌 보면 바보 같기도 하지만 그 처음 봤던 불쌍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 국경수비대 검문소를 통과하고 세 시간을 달려 어느덧 샌안토니오를 지났다. 라레도에서 이미 충분한 휴식을 했기에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에 1000 킬로미터씩 운전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운전해야 한다. 10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서쪽으로 향하여 한참을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개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개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으응! 왜 그래?”
“뭐야? 내리고 싶냐? 잘 됐다. 당장 내려주지···.”
“아니면, 으응 알겠다. 너 마려운 거지? 오줌 아니면 똥···. 똥! 안 돼!”
“너! 내 트럭 안에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 너 제삿날이 되는 줄 알아! 안 돼 참아!”
아무리 급해도 절대 하이웨이에서 멈출 수는 없다.
난 위급상황이 아니면 절대 트럭을 고속도로 갓길에 세우지 않는다.
다행히도 바로 엑싯 사인이 보이고 트럭스탑 휴게소 간판이 보였다.
“어휴 ,다행이다! 너 억세게 운이 좋은 개다.”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문부터 열어 주었다. 개는 쏜살같이 튀어 나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뛰어 갔다.
정말 급했나 보다 생각했는데 정작 볼일은 보지 않고 구석구석 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이내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트럭을 주차하고 화장실로 향하다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무단 탑승한 괴생명체와 영원히 결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나는 트럭과 개가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보며 망설였다.
인연이란 필연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으며 실타래같이 엉키고 꼬이며 수천 년을 이어가는 인연도 있다.
모든 인연은 운명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개와 인연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참 후, 트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 개가 안 보이기를 바랐다.
어디로 가버렸으면 시원하지 더 골치 아플 일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도 한 듯 그 개는 어김없이 내 트럭 문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 초라하고 애절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어디를 얼마나 빠르게 달려갔다 왔는지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
‘어쩐다? 다시 태우고 가나 그냥 가나?’
이번엔 이대로 두고 나만 떠나면 그만이다. 더 골치 아플 이유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다.
그러나 그 불쌍한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문을 열고 말았다.
이왕 여기까지 한번 태우고 왔는데 조금 더 태우고 간들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기회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오케이 타라! 그렇지만 다음 스탑까지만이다. 다음에는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가는 거다.’
문을 열어주고 비켜서자 계단을 훌쩍 뛰어 올라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하이웨이에 들어서자 그놈은 다시 조수석의자에 앉아 의젓하게 자리를 잡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당연히 자기자리였던 것처럼······. 그리고 불쌍하게 짓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전방만 주시했다.
별 이상한 녀석이다. 처음에 받았던 처량한 인상에서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좀 기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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